고치려 말아요, 아이들 ‘그대로’가 보물이니 ‘칭찬문자’로 소통하는 서상초등학교 교사 윤상보 글 / 자야 
함양 서상초등학교 교사 윤상보 씨.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참 좋고 감사해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말을 선생님에게 할 수 있다니 정말 시원했어요.” 아이들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는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나이와 직책을 앞세워 ‘각’부터 잡는 권위적인 타입은 아니겠지. 따뜻한 눈빛과 친절한 태도는 기본일 테고. 아이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보이는 모습 이면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사람일 것도 같은데…? 빈약한 상상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아이들의 문자 속 ‘선생님’인 서상초등학교 윤상보 교사가 직접 쓴 책을 탐독하기로 한다. 제목이 <교실 속 숨은 보물 찾기>다. 그가 작년에 진행한 ‘칭찬문자 보내기 프로젝트’의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나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문장들이 웬만한 연애편지보다 정성스러워 하나하나의 글줄에 오래 머물게 된다. 마침내 읽기를 마쳤을 때는 윤상보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 있었다. 칭찬 그 이상이 담긴 윤 선생의 ‘칭찬문자’ “어린 시절의 결핍감과 상처를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반대로 ‘네가 태어난 자체가 축복이고 존재 그대로가 보물이야’ 같은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사람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결핍감이나 상처가 훨씬 덜하겠죠. 또 그걸 이겨낼 만한 힘도 갖고 있을 테고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게 바로 칭찬문자 보내기 프로젝트였어요.” 
윤상보 교사가 쓴 책 <교실 속 숨은 보물 찾기>. (사진제공_윤상보/ 이하동일)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2019년부터 함양 서상초에 다니고 있는 윤상보 교사는, 작년에 6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칭찬문자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마침 아이가 다섯 명이라 요일별로 한 명씩 정해 문자를 보내기가 “딱 좋았다.” 수신인을 학부모로 정한 이유는 아이의 좋은 면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더 크고 선한 영향을 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문자지,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아무리 짧아도 공책 반 바닥은 되는 분량이고 긴 것은 한두 장이 쉽게 넘어간다. ‘얘는 이걸 잘해요’라는 의례적인 칭찬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평소엔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가 언제 잘 웃고 적극성을 드러내는지, 남들 눈에는 집중력이 부족해 보이는 아이가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해 몰입하는지와 같은, 꾸준하고도 자세히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기기에 문장 서너 줄로는 어림도 없다 할까. “사실 칭찬문자를 처음 시도했던 건 2020년인데 조금 하다 말았어요. 한 달쯤 되니까 애들한테서 더 이상 칭찬할 게 안 보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작년에 다시 할 때는 하루에 한 명만이라도 유심히 관찰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진짜로 그렇게 했더니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어떤 면이 꽃으로 확 피어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잘 보면 칭찬할 게 무궁무진하구나 싶었죠.” ‘관심’하고 ‘관찰’하면 드러나는 보물들 칭찬문자는 한 아이에게 오롯이 주의를 기울여 ‘관심’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비롯한다. 종일 그 작업을 하다 보면 섬광과 함께 ‘어떤 것’이 보이는 때가 온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때야말로 “아이들 속에 잠재된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보물들은 대체로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 그건 느긋함이나 꾸준함 같은 기질로 나타나고, 또는 유난히 예민한 감각이나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유머러스함 같은 성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이들끼리는 서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이런 점들을, 그러나 보통의 어른들은 잘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적이나 예술적 재능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들에만 눈길을 주는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6학년 아이들. 그는 일 년간 이 아이들 내면의 보물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교육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말들이 인재양성, 목표와 성취 이런 것들이잖아요. 문제는 어른들이 이미 답을 다 정해놓고 있다는 거예요. 인재는 이런 사람이야, 너의 목표는 이거야, 넌 이렇게 해야 해, 넌 그걸 고쳐야 해, 하면서요. 그 외 아이가 지닌 다양한 것들은 봐주질 않죠. 또 아이 스스로 뭔가를 하기까지 기다려주지도 않고요.” ‘답정너’를 강요하는 어른의 위치에서는 애를 써도 볼 수 없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와 시선에서 보려고 하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이들 내면의 보물이란 이런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국어와 수학 과목의 학습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독해와 작문에 능숙하지 못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들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견하기까지는, 관찰자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보물을 발견해낸다고 해서 아이가 당장 어떻게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설사 변화가 나타난들 그게 꼭 ‘어른들이 원하는’ 방향일지는 미지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지만, 윤 교사는 자신의 칭찬문자가 아이들이 뭔가를 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길 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무엇을 하거나 이루지 않아도 너 그대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은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칭찬문자를 보낸 초기에는 아이들이 그랬어요. 선생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제가 옆에서 계속 넌 그런 사람이야, 라고 해주니까 서서히 바뀌더라고요. 아, 나한테 이런 면이 있구나, 이런 사람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자기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죠. 또 저와의 관계에서 친밀해진 점도 분명 있고요. 저는 이 정도 변화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대로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죠” 아이든 어른이든 그가 사람을 만나고 관계할 때 가장 근원으로 삼는 관점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생의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기에 만난 ‘스승’이 그를 이와 같은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스승의 조건 없는 사랑과 한계 없는 포용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그는, 삶을 메웠던 고통 대신 기쁨과 평화가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면서 분명한 ‘앎’ 하나를 얻고야 만다. 행복의 씨앗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고 사랑하는 마음밭에서만 싹트고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마음공부와 명상을 통해 교육관의 전환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사진은 그가 꾸준히 다니는 ‘명상의집큰학교’ 전경.) “스승님이 제 가슴에 심어준 씨앗을 나도 다른 이에게 퍼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사랑은 사랑으로 갚는 게 최선이잖아요. 직업이 교사니까 제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실천하면 좋겠다 싶었고, 그래서 칭찬문자도 시작한 거예요. 방법은 어느 교사의 실천 사례를 보고 빌려온 거지만 그 안에는 저만의 체험과 그로부터 얻은 정신이랄까 가치관이 녹아 있죠.” 칭찬문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작년에 윤상보 교사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담당하는 교사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원해서 맡은 건 아니었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서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라는 자기발견의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고. 아이가 자기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고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그에게는, 아닌 게 아니라 딱 맞춤한 자리로 보인다. “담당교사로서 제가 하는 일은 아이들 스스로 다양한 창의 활동을 할 수 있게 판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방향 하나만 던져주면 나머지는 다 아이들이 알아서 하죠. 예를 들어 연극공연을 준비하면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서 대본 쓰고 연출하고 분장하고 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처음 시작할 땐 뭐 엉망진창이고.(웃음) 그런데 그걸 기다려주는 게 저의 일이에요. 어느 시점에 아이들에게 유익한 뭔가를 한 방울 떨궈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교사가 떨궈주는 유익함이 더도 말고 딱 ‘한 방울’이어야 한다는 것. 두세 방울만 돼도 아이들은 벌써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눈치를 보거나 흥미를 잃는다. 이 아슬아슬한 ‘밀당’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가는지를 보는 게 짜릿하다니, 천생 교사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 아이들과 함께하며 배우는 즐거움 청소년기에 한의사를 지망했다가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꿈을 접고 방향을 틀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어느새 15년. 장난기 많고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놀기를 좋아하는 그는,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하고 무서운 ‘훈련소 교관’처럼 굴 때가 간혹 있었다. 아이의 잘못되거나 부족한 점을 “뜯어고치고 바꾸는” 것이 교사의 책무라 여긴 탓이다. 이런 인식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부터 그는 아이들에게 만만하고 친근한 교사이기를 자처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책에도 썼듯이 2019년부터 우리 학교 여학생들이 역도를 배우고 있어요. 제가 담당자라서 훈련 과정에 함께하는데, 초보자에겐 무척 힘든 스포츠예요. 무거운 걸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주고요. 그런데도 군소리 않고 훈련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는 미안한 마음에 물었어요. 힘들지 않냐고, 그냥 방과후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면 더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돌봄교실에서 편하게 있는 것도 좋지만 역도를 통해 도전하고 뭔가를 이루는 즐거움이 더 좋다는 거예요. 그때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어요. 충격이면서 또 감동이었죠. 이후로 종종 그 말을 되새기며 아이들이 그런 즐거움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답니다.” 올해 들어 한 학급의 담임이 아닌 과학전담이자 교무부장으로 일하게 된 윤상보 교사는 이제 저녁마다 눈시울 붉혀가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에 아이든 어른이든 그날 만나고 관계한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보물이 무엇일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지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휴대전화에 찍히는 글자는 없어도 그는 여전히 마음으로 칭찬문자를 전송하는 발신자다. 그러니 누구라도 안테나를 높이 세워 그가 보내는 메시지와 접속하기를. 가능하면 받은 만큼 또 다른 이에게 돌려주기를. 이렇듯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소통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어떨까. 윤 교사 덕분에 그런 학교와 세상을 꿈꿔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조금은 더 행복해진 기분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소통하는 학교와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것이 윤상보 교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고치려 말아요, 아이들 ‘그대로’가 보물이니
‘칭찬문자’로 소통하는 서상초등학교 교사 윤상보
글 / 자야
함양 서상초등학교 교사 윤상보 씨.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참 좋고 감사해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말을 선생님에게 할 수 있다니 정말 시원했어요.”
아이들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는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나이와 직책을 앞세워 ‘각’부터 잡는 권위적인 타입은 아니겠지. 따뜻한 눈빛과 친절한 태도는 기본일 테고. 아이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보이는 모습 이면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사람일 것도 같은데…?
빈약한 상상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아이들의 문자 속 ‘선생님’인 서상초등학교 윤상보 교사가 직접 쓴 책을 탐독하기로 한다. 제목이 <교실 속 숨은 보물 찾기>다. 그가 작년에 진행한 ‘칭찬문자 보내기 프로젝트’의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나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문장들이 웬만한 연애편지보다 정성스러워 하나하나의 글줄에 오래 머물게 된다. 마침내 읽기를 마쳤을 때는 윤상보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 있었다.
칭찬 그 이상이 담긴 윤 선생의 ‘칭찬문자’
“어린 시절의 결핍감과 상처를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반대로 ‘네가 태어난 자체가 축복이고 존재 그대로가 보물이야’ 같은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사람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결핍감이나 상처가 훨씬 덜하겠죠. 또 그걸 이겨낼 만한 힘도 갖고 있을 테고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게 바로 칭찬문자 보내기 프로젝트였어요.”
윤상보 교사가 쓴 책 <교실 속 숨은 보물 찾기>. (사진제공_윤상보/ 이하동일)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2019년부터 함양 서상초에 다니고 있는 윤상보 교사는, 작년에 6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칭찬문자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마침 아이가 다섯 명이라 요일별로 한 명씩 정해 문자를 보내기가 “딱 좋았다.” 수신인을 학부모로 정한 이유는 아이의 좋은 면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더 크고 선한 영향을 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문자지,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아무리 짧아도 공책 반 바닥은 되는 분량이고 긴 것은 한두 장이 쉽게 넘어간다. ‘얘는 이걸 잘해요’라는 의례적인 칭찬으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평소엔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가 언제 잘 웃고 적극성을 드러내는지, 남들 눈에는 집중력이 부족해 보이는 아이가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해 몰입하는지와 같은, 꾸준하고도 자세히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기기에 문장 서너 줄로는 어림도 없다 할까.
“사실 칭찬문자를 처음 시도했던 건 2020년인데 조금 하다 말았어요. 한 달쯤 되니까 애들한테서 더 이상 칭찬할 게 안 보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작년에 다시 할 때는 하루에 한 명만이라도 유심히 관찰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진짜로 그렇게 했더니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어떤 면이 꽃으로 확 피어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잘 보면 칭찬할 게 무궁무진하구나 싶었죠.”
‘관심’하고 ‘관찰’하면 드러나는 보물들
칭찬문자는 한 아이에게 오롯이 주의를 기울여 ‘관심’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비롯한다. 종일 그 작업을 하다 보면 섬광과 함께 ‘어떤 것’이 보이는 때가 온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때야말로 “아이들 속에 잠재된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보물들은 대체로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 그건 느긋함이나 꾸준함 같은 기질로 나타나고, 또는 유난히 예민한 감각이나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유머러스함 같은 성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이들끼리는 서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이런 점들을, 그러나 보통의 어른들은 잘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적이나 예술적 재능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들에만 눈길을 주는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6학년 아이들. 그는 일 년간 이 아이들 내면의 보물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교육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말들이 인재양성, 목표와 성취 이런 것들이잖아요. 문제는 어른들이 이미 답을 다 정해놓고 있다는 거예요. 인재는 이런 사람이야, 너의 목표는 이거야, 넌 이렇게 해야 해, 넌 그걸 고쳐야 해, 하면서요. 그 외 아이가 지닌 다양한 것들은 봐주질 않죠. 또 아이 스스로 뭔가를 하기까지 기다려주지도 않고요.”
‘답정너’를 강요하는 어른의 위치에서는 애를 써도 볼 수 없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와 시선에서 보려고 하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이들 내면의 보물이란 이런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국어와 수학 과목의 학습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독해와 작문에 능숙하지 못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들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견하기까지는, 관찰자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보물을 발견해낸다고 해서 아이가 당장 어떻게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설사 변화가 나타난들 그게 꼭 ‘어른들이 원하는’ 방향일지는 미지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지만, 윤 교사는 자신의 칭찬문자가 아이들이 뭔가를 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길 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무엇을 하거나 이루지 않아도 너 그대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은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칭찬문자를 보낸 초기에는 아이들이 그랬어요. 선생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제가 옆에서 계속 넌 그런 사람이야, 라고 해주니까 서서히 바뀌더라고요. 아, 나한테 이런 면이 있구나, 이런 사람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자기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죠. 또 저와의 관계에서 친밀해진 점도 분명 있고요. 저는 이 정도 변화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대로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죠”
아이든 어른이든 그가 사람을 만나고 관계할 때 가장 근원으로 삼는 관점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생의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기에 만난 ‘스승’이 그를 이와 같은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스승의 조건 없는 사랑과 한계 없는 포용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그는, 삶을 메웠던 고통 대신 기쁨과 평화가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면서 분명한 ‘앎’ 하나를 얻고야 만다. 행복의 씨앗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고 사랑하는 마음밭에서만 싹트고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마음공부와 명상을 통해 교육관의 전환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사진은 그가 꾸준히 다니는 ‘명상의집큰학교’ 전경.)
“스승님이 제 가슴에 심어준 씨앗을 나도 다른 이에게 퍼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사랑은 사랑으로 갚는 게 최선이잖아요. 직업이 교사니까 제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실천하면 좋겠다 싶었고, 그래서 칭찬문자도 시작한 거예요. 방법은 어느 교사의 실천 사례를 보고 빌려온 거지만 그 안에는 저만의 체험과 그로부터 얻은 정신이랄까 가치관이 녹아 있죠.”
칭찬문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작년에 윤상보 교사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담당하는 교사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원해서 맡은 건 아니었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서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라는 자기발견의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고. 아이가 자기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고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그에게는, 아닌 게 아니라 딱 맞춤한 자리로 보인다.
“담당교사로서 제가 하는 일은 아이들 스스로 다양한 창의 활동을 할 수 있게 판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방향 하나만 던져주면 나머지는 다 아이들이 알아서 하죠. 예를 들어 연극공연을 준비하면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서 대본 쓰고 연출하고 분장하고 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처음 시작할 땐 뭐 엉망진창이고.(웃음) 그런데 그걸 기다려주는 게 저의 일이에요. 어느 시점에 아이들에게 유익한 뭔가를 한 방울 떨궈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교사가 떨궈주는 유익함이 더도 말고 딱 ‘한 방울’이어야 한다는 것. 두세 방울만 돼도 아이들은 벌써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눈치를 보거나 흥미를 잃는다. 이 아슬아슬한 ‘밀당’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가는지를 보는 게 짜릿하다니, 천생 교사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
아이들과 함께하며 배우는 즐거움
청소년기에 한의사를 지망했다가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꿈을 접고 방향을 틀어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어느새 15년. 장난기 많고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놀기를 좋아하는 그는,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하고 무서운 ‘훈련소 교관’처럼 굴 때가 간혹 있었다. 아이의 잘못되거나 부족한 점을 “뜯어고치고 바꾸는” 것이 교사의 책무라 여긴 탓이다. 이런 인식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부터 그는 아이들에게 만만하고 친근한 교사이기를 자처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책에도 썼듯이 2019년부터 우리 학교 여학생들이 역도를 배우고 있어요. 제가 담당자라서 훈련 과정에 함께하는데, 초보자에겐 무척 힘든 스포츠예요. 무거운 걸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주고요. 그런데도 군소리 않고 훈련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는 미안한 마음에 물었어요. 힘들지 않냐고, 그냥 방과후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면 더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돌봄교실에서 편하게 있는 것도 좋지만 역도를 통해 도전하고 뭔가를 이루는 즐거움이 더 좋다는 거예요. 그때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어요. 충격이면서 또 감동이었죠. 이후로 종종 그 말을 되새기며 아이들이 그런 즐거움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답니다.”
올해 들어 한 학급의 담임이 아닌 과학전담이자 교무부장으로 일하게 된 윤상보 교사는 이제 저녁마다 눈시울 붉혀가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에 아이든 어른이든 그날 만나고 관계한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보물이 무엇일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지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휴대전화에 찍히는 글자는 없어도 그는 여전히 마음으로 칭찬문자를 전송하는 발신자다. 그러니 누구라도 안테나를 높이 세워 그가 보내는 메시지와 접속하기를. 가능하면 받은 만큼 또 다른 이에게 돌려주기를. 이렇듯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소통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어떨까. 윤 교사 덕분에 그런 학교와 세상을 꿈꿔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조금은 더 행복해진 기분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소통하는 학교와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것이 윤상보 교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