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함양][변화의 소리] 그저 걷고 멈추고 바라보기만 해도 - 초등교사들의 동아리 <사랑해요, 대관림> 문경희 대표

2022-09-26

 

 

그저 걷고 멈추고 바라보기만 해도

초등교사들의 동아리 <사랑해요, 대관림> 문경희 대표

 

글 /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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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 대표적인 마을숲 상림. <사랑해요, 대관림> 동아리 회원들은 2년째 한 달에 두 번 상림을 걸으며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인공림, 천연기념물 154호, 천년의숲, 경남 명소. ‘상림’을 검색하면 최소한 이 정도는 기본으로 뜬다. 이에 더해 딸려 나오는, 연꽃과 꽃무릇과 단풍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은 하나같이 알록달록하거나 화사하다. 그러나 보통의 함양 주민들에게 상림은 별도의 설명이나 수사 없이도 충분히 좋은 ‘마을숲’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늘 오가는 산책로이자 운동코스고, 또 자연놀이터면서 살아 있는 생태학습장이라 할까.

 

 

숲이 마을 안에 있어 사람들은 그 이로움을 한껏 누린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포장된 상림을 보면, 마을에 둘러싸여 있는 게 과연 숲에도 좋은 일인지 되묻게 된다.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나무와 풀과 꽃에게, 새와 곤충들에게 최선인지를. 지역 초등교사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 <사랑해요, 대관림>은, 그런 점에서 자세히 알기도 전에 응원하고픈 모임이다. 함양초 교사이자 동아리 대표로 활동 중인 문경희 씨를 만나 상림을 향한 그들의 순정 어린 발걸음을 따라가본다.

 

 

 

 

상림, 천천히 ‘먼길’로 돌아야 보이는 곳

 

 

상림의 옛 이름을 빌린 동아리 <사랑해요, 대관림>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문경희 교사가 위림초에 다니고 있던 작년부터다. 위림초가 행복학교로서 ‘생태환경교육’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마침 그가 작년에 연구부장이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에 호응해주는 교사들이 있었기에 이런저런 시도가 가능했다고.

 

 

“2010년에 함양으로 귀촌해서 처음 근무한 학교가 위림초였어요. 바로 옆에 어마어마한 숲이 있어서 깜짝 놀랐죠. 그해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찾아가 보니 생태교육의 장으로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듬해에는 강사분을 모시고 상림의 나무와 곤충 들을 탐구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잠시 다른 학교로 갔다가 2016년에 다시 위림초에 오고 나서도 제가 맡은 반에서는 상림과 관련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고요. 그러다 작년에 학년군별로 상림을 중심에 둔 생태환경교육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예요. 교사 모임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죠. 행복학교 나눔 일환으로 위림초, 함양초 교사 여섯이 동아리를 구성했는데 한 명 더 늘어 지금은 일곱이에요. 올해 들어서는 함양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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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초 교사이자 동아리 대표인 문경희 씨. 

 

 

 

동아리 모임은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오는 절기별로 이루어져 왔다. 회원들은 ‘숲해설사’와 함께 상림을 천천히 걸으며 초본과 목본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보았고, 아이들에게도 뭔가를 애써서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끔 길잡이 역할을 하려 했다. 그때 위림초 아이들이 글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물을 들춰보면, 일 년 전 상림이 간직하고 있었을 어느 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다.

 

 

이런 방식의 활동과 수업은 긴 호흡과 느린 걸음,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인내심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누군가 정리해놓은 자료를 단기간에 암기하거나 마치 운동하듯 앞만 보며 빠르게 상림 몇 바퀴 도는 식은 명백하게 아니라는 얘기다. 문경희 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굳이 ‘먼길’을 돌아가기로 작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재길 선생님이라고, 상림을 오 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해온 분이 계세요. 그분 강의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나도 저렇게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역시나 쉽진 않더라고요. 아이들한텐 문제가 안 돼요. 조급증을 내거나 지루해하는 건 어른들이죠. 단기간에 뭔가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동아리 모임에 오시는 선생님이 포인트를 빨리빨리 가르쳐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게 되죠.(웃음)” 

 

 

 

 

관찰자의 시선에서 관계하는 마음으로

 

 

관찰도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는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생태계의 변화는 시간을 길게 두고 보면 눈에 잘 띄지만, 단기간에는 그 차이가 미미하여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처음 동아리 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정기적으로 숲해설사를 초청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올해는 두 명(최재길 선생님과 땅새 님)의 전문가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모임에 참여해 함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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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모임에는 두 명의 숲해설사가 번갈아 참여하며 관찰에 필요한 도움을 준다. (사진제공_문경희)

 

 

“상림에는 수종이 아주 다양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걸 구별해서 보는 것이 만만치 않죠. 예를 들면 졸참, 굴참, 상수리,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가 대부분인데 딱 봐서 한눈에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기까진 시간이 꽤 걸려요. 잎, 줄기, 열매까지 그 특징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니까요. 잘 구별하려면 오래, 자세히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러면 점점 보이는 게 많아지는데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몰라요.” 

 

 

지켜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시야가 열리고, 시야가 열릴수록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멈춰서 관찰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이때부터는 단지 보이는 게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하나를 봐도 깊이,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관찰이라는 다소 차가운 시선에 감정과 마음이 스며들면서 숲의 나무들을 마치 내 집 마당의 반려식물처럼 느끼게 되는 것도 이 즈음에 일어나는 특별한 변화라 할까.   

    

 

동아리 회원들도 그런 변화의 과정을 밟아왔다. 처음 몇 달은 ‘왜 계속 같은 나무들을 관찰하는지’ 지루해하던 사람들이 한두 계절을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기울이더라는 것. 그렇게 일 년을 보내면서 숲과 ‘관계’ 맺은 덕분에, 그들은 이제 자신이 체득한 감각을 바탕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졌다. 언제 가야 나도밤나무 꽃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지. 졸참나무 가지가 하늘을 무성하게 덮는 시기는 또 언제인지. 처서 무렵 가장 먼저 잎에 물이 드는 건 어떤 나무인지, 같은 이야기를.

 

 

“시골 할머니들은 따로 배운 적이 없어도 언제 무슨 꽃이 피고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하는지, 날씨에 따라 작물의 생장이 어떻게 바뀌는지 다 아시잖아요. 머리로 잠깐 배운 것은 금세 까먹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삶에 축적된 건 사라지지 않는 거 같아요. 우리도 상림을 관찰하는 활동을 통해 앎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게 뭔지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지요.” 

 

 

 

 

생태환경, ‘앎’과 ‘삶’이 만나는 교육이 절실하지만

 

 

애초에 <사랑해요, 대관림>이 만들어진 게 아이들의 생태환경교육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도 동아리 회원 다수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있다. 올해 들어 함양초로 옮겨온 문경희 씨도 그렇다. 5학년을 맡은 그는 아이들과 때때로 상림을 걷고 생태텃밭도 가꾼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수업’을 한다. 

 

 

면 단위 작은학교는 물론이고 읍내 다른 학교에 비해서도 학생 수가 월등히 많은 함양초는 5학년의 경우 한 반에 스무 명이 넘는다. 교사 한 명이 하루 수업을 다 제치고 인솔해서 나가기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인원이다. 학기 초에 그가 지리산둘레길 걷기를 다른 반에 제안했을 때 교사들이 하나같이 손사래 친 데는 아마도 그 이유가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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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으로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함양초 5학년 아이들의 모습. (사진제공_문경희)   

 

 

“막상 해보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는 걸 알 텐데요.(웃음) 5학년쯤 되면 알아서 잘 하거든요. 처음에만 힘들다고 엄살이지 좀 지나면 자기들끼리 어울려 잘 걸어갑니다. 또 둘레길은 정비된 길이라 위험할 게 하나도 없고요. 최근 기후위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환경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인데, 그럼에도 그것이 교과과정에 들어와 있지는 않아요. 개별 교사의 재량에 맡기는 수준이라 아무래도 한계가 있죠.”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체험학습이 교사가 다 짜놓은 판 위에서 아이는 말 그대로 ‘체험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문경희 씨는 제한된 여건에서 이루어지는 환경교육도 자칫 그렇게 될까 우려한다. 분리수거든 텃밭 가꾸기든 아니면 자연탐방이든 다만 일 년이라도 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몸과 마음을 써서 경험하는 게 필요한데, 행정상의 편의 혹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아이에게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교육으로는 앎과 삶이 통합되기 어렵고 그 결과는 이미 많은 어른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대개는 자기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만 받아들이잖아요. 상림만 봐도 해마다 축제 때면 소음이 엄청나고 작년에는 심지어 숲길에 전선을 연결해 밤에 불까지 밝혔는데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나갔다고 여기죠. 그러면서 다들 상림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웃음)” 

 

 

 

 

숲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법

 

 

어떤 대상을 오래 지켜보면 동화가 일어나고 궁극엔 대상과 하나가 되는 일치감이 든다고 한다. 진정으로 숲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그 경지에까지 이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다만 천천히, 고요히, 여러 번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걷다가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에 온 마음을 기울이면 된다. 긴 세월을 몸에 두르고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에, 잔잔한 잎의 흔들림에, 땅바닥에 어룽대는 빛의 무늬에, 그리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새들의 움직임에.

 

 

“상림처럼 오래된 나무가 많은 숲은 탄소 흡수량이 엄청나기에 이 하나만으로도 숲을 보존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에게 숲은 파괴와 소비를 멈추고 자연과 인간성과 내면의 신령스러움을 회복하라는 ‘정언’을 주는 곳이기도 해요. 큰 나무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가 얼마나 작은지 느껴지잖아요. 그걸 깊이 느끼다 보면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인간의 행위를 돌아보게 되지요.”    

 

 

<사랑해요, 대관림> 회원들은 그처럼 ‘쉬운’ 관찰만으로 숲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나무와 그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임을 깨달았다. 올해는 동아리 활동의 결과물로 ‘상림 나무 지도’를 펴낸다고 하니, 앞으로는 상림을 찾는 모든 이가 그걸 손에 들고 걸어보면 어떨까. 의식하지 않으면 저절로 빨라지고 어느샌가 소란스러워지는 마음에 어쩌면 그 지도가 죽비처럼 시시때때로 맑은 소리를 울려줄지도 모른다. 가만히 멈추어 스스로 회복하고 주변의 생명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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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단풍철에는 <사랑해요, 대관림> 동아리가 제작한 ‘상림 나무 지도’를 들고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나무들이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면서.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