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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변화기록원[함양][이 사람] “세상도, 변화도 아이들 손에 달렸죠” - 환경교육특구 담당 장학사 노정우

2022-04-25

 

 

“세상도, 변화도 아이들 손에 달렸죠”

환경교육특구 담당 장학사 노정우 

 

글 /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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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마을활력공간 빈둥>에서 만난 노정우 장학사. 

 

 

 

구수한 말투에 친근한 인상. 그는 자신이 외양만큼은 “백 퍼센트 함양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고 자란 고향 진주의 흔적이 아직은 몸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기에 엄밀히 말하면 백 퍼센트는 좀 ‘오버’다. 그러나 1993년에 서상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고 나서 30여 년을 줄곧 이 지역에 붙박여 살았으니 그를 함양 사람이라 한대도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서상초를 시작으로 함양초, 안의초, 수동초 등 여러 학교를 거친 뒤 2019년에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로 부임한 그는, 올해 ‘환경교육특구’ 업무를 추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역에서 생태환경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은 전부 끌어들여 촘촘한 그물망을 엮어가는 그의 움직임을 보면, 작년에 행복교육지구 담당자였던 그를 향해 마을학교 교사들이 왜 “우리의 든든한 빽”이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다. 맡은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통해 관계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는 사람, 노정우 장학사를 만나본다.

 

 

 

 

 

초보입니다만, 배우면서 합니다 

 

 

“저는 솔직히 환경에 대한 인식이나 실천 수준이 높진 않아요. 누가 커피 사준다고 하면 일회용 컵도 받고 회식 가서 고기도 잘 먹습니다.(웃음) 그래도 마음 한편엔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환경교육특구 사업을 계기로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뜻있는 분들과 함께 뭐라도 만들어보려 해요.” 

 

 

경남교육청이 3년 전부터 힘을 실어온 ‘환경교육특구’는 환경교육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생태시민을 양성한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함양교육지원청이 올해 이 사업을 받아안은 배경이자 동력은 다름 아닌 노정우 장학사로, 그는 스스로를 낮춰 “환경 초보”라 일컫지만 실은 교육지원청 내에서 환경 이슈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년 전에 그는 이영애 장학사와 공동으로 함양교육지원청의 첫 환경강의인 ‘지리산의 숨비소리’를 기획했으며, 작년에도 ‘궁금해? 함양 산들강!’이라는 환경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전 과정에 함께했다. 담당자였던 이영애 장학사 곁에서 필요할 땐 머리를 보태고 급하면 손발도 척척 내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는 말이다. (환경 강좌 및 프로젝트 내용은 이영애 전前 장학사의 인터뷰 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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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교육특구 사업 중 하나인 ‘생태환경배움터’에 모인 사람들. 책을 읽고 토론하며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모임이다.
 (사진제공_노정우, 이하동일)

 

 

 

여러모로 쿵짝이 잘 맞았던 이 장학사가 작년 하반기에 학교로 돌아가면서 둘이 같이 고민해온 환경교육특구는 자연스럽게 노정우 장학사의 몫이 되었다. 이후 그는 생태환경에 관심이 있거나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서너 차례 모임을 마련했고, 교직원과 학부모, 마을학교 교사와 현장에서 움직이는 생태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참여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환경을 놓고 얘기해도 강조하는 내용이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든 걸 일 년 안에 다 할 수는 없잖아요. 제 역할은 현재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안과 그걸 추진할 사람을 학교 교육에 연결시키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 지역의 상림이나 엄천강에서 생태 관련 활동을 오래 해온 분들이 방과후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게끔 길을 열어준다거나, 토종씨앗을 연구하는 모임이 학교 수업을 맡을 수 있게 지원해주는 식으로요.” 

 

 

 

‘변화’의 씨앗은 바로 ‘아이들’

 

 

노정우 장학사가 작성한 ‘2023 함양환경교육특구 운영 계획’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그 무게중심은 단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태환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원하는 데 있다. 함양의 산 · 들 · 강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는 ‘생태탐사수업’이라든지, 일 년간 농부가 되어 작물을 심고 가꿔보는 ‘텃밭수업’, 기후위기나 환경을 주제로 한 ‘연극수업’ 등이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업이다. ‘생태선도학교’와 ‘찾아가는 생태환경교육’을 도입하고 교사와 학생의 자발적인 ‘환경동아리’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이 환경 이슈를 이해하고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열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 관점에서는 뭘 하든 제일 중요한 게 아이들 교육이거든요. 환경은 뭐 말할 것도 없죠. 솔직히 어른들은 잘 안 변하잖아요?(웃음) 반면에 아이들은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식이 금세 달라지니까. 아이들이 변하면 그들이 살아갈 세상도 바뀌겠지요.” 

 

 

알고 보면 ‘변화’는 노정우라는 사람의 삶을 관통해온 핵심어였다. 어릴 때부터 교사를 꿈꾼 그는 교대 졸업 후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했다. 학교와 교육, 더 나아가서는 학교와 교육을 통해 상상하고 그려갈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였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 심장이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그 시절. 청년 노정우의 열정과 투지는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지역 전체로 뻗어 나갔고, 이는 그이 자신과 주변의 변화로 돌아와 그가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곤 했다. 

 

 

“스물다섯에 서상초에 와서 막 시작한 게 연극이에요. 마음 맞는 전교조 샘들하고 서너 달 연습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와, 이게 너무 재밌고 무엇보다 내가 변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뭘 하든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소극적이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연극을 했더니 역시나 놀랄 만큼 변하는 겁니다. 그걸 보고 뻑 가서(웃음) 그때부터 극단 만들고 어린이 연극캠프 열고 어린이연극페스티벌 하고, 완전히 연극에 빠져 살았어요. 5월 5일에 상림에서 하는 어린이날 행사도 우리가 시작한 거예요. 96년인가에 처음 했는데 그때만 해도 여기 아이들은 어린이날이라 해도 진짜 갈 데가 없었거든요. 그날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이 즐겁게 놀았으면 해서 일을 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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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절 연극에 매료된 그는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어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사진은 극단 광대 23회 정기공연 ‘연리목 이야기’에 배우로 참여해 공연하는 모습(맨 왼쪽). 

 

 

 

그와 몇몇 교사가 주축이 되어 만든 극단 <문화모임 광대>는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며 해마다 공연을 올린다. 어린이가 주도하고 즐기는 연극을 모토로 시작했던 ‘어린이연극페스티벌’은 이미 함양을 넘어 경남 전체를 아우를 만큼 규모가 커졌다. 코로나로 중단된 몇 년을 제외하고 계속되어온 어린이날 행사 역시 지역의 대표적인 어린이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글로는 네댓 줄에 불과하지만 이런 밭을 일구고 열매를 거둬들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는 이를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후배 교사들의 공으로 돌리면서도 초기부터 꽤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길 잊지 않는다. 

 

 

“아이를 위한 문화라는 게 아예 없던 때였는데 다들 참 열심히 했어요.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지역사회가 조금씩 변해가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던 것 같아요. 그게 좋아서 함양을 못 떠났다는 거 아입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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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도한 수동초등학교 아이들이 ‘전국어린이연극경연대회’에서 공연하는 모습. 이날 수동초는 은상을 수상했다.

 

 

 

‘관’만으로는 안돼, 아이들 중심에 놓고 주‘민’과 손잡아야   

 

 

아이의 몸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과 적절한 수면 같은 것이 충족되어야 하듯, 마음의 성장도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노정우 장학사는 그에 꼭 필요한 것으로 스스로 ‘해보는’ 주도성을 꼽는다. 연극과 놀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기질이 있음을 발견한 그는, 따라서 어른의 역할이란 각자 안에 잠재된 그 기질이 활짝 꽃피어나도록 다만 옆에서 봐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라 믿고 있다. 

 

 

장학사로 전직한 첫해에 <청소년문화기획단>을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운영해본 경험은 그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019년의 일이다. 군청의 요청으로 그해 열리는 ‘다볕골청소년한마음축제’를 맡은 그는 먼저 축제를 제 손으로 만들어갈 청소년을 모집했고, 그 결과 고등학생 15명이 청소년문화기획단을 구성해 그 안에서 축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논의, 결정, 실행했다.

 

 

“제가 아이디어를 보태고 행정상 지원한 건 있지만 기획부터 홍보에 공연팀 섭외에 당일 사회와 질서유지까지 전부 아이들이 했어요. 알아서 해보라고 맡기니까 오히려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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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화기획단>이 만들고 운영한 ‘제23회 다볕골청소년한마음축제’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문화기획단은 이듬해에 발생한 코로나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마음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로서 제 몫을 해냈다. 나아가 ‘함양문화놀이장날’ 같은 지역 행사에 결합하여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이는 물론 노정우 장학사가 뒤에 버티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또 다른 ‘학교 밖 어른들’의 세심한 살핌과 돌봄이 뒷받침되었기에 청소년문화기획단이 제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뭐든지 관이 혼자 해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청소년 관련 사업을 하려면 ‘빈둥(협동조합)’처럼 평소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꾸준히 뭔가 해온 주민들과 연계점을 찾고 그들을 지원할 방도를 찾아야 해요.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죠. 그래야 일도 잘되고 지역도 활성화하지 않겠어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항상 묻지요”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은 장학사 하면 학교 대청소하고 마룻바닥에 초 칠하던 ‘안 좋은’ 기억을 먼저 떠올리기 예사다. 그이 자신도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이기에 한때는 평교사로 퇴직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면 장학사 5년 차인 지금은 어떨까. 그에게 장학사란 어떤 자리고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 걸까. 

 

 

“권위라고는 ‘일도 없는’ 자리죠.(웃음) 교육을 위해 다양한 사람과 계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그렇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사업을 실행하고 예산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니까 그걸 어떻게 잘 활용할지, 잘 돌아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그 고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나 자신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일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가 교사로 첫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초심’과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이삼십 대의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그때 품었던 이상도 이미 조금은 빛이 바랬겠지만, 그는 여전히 첫 마음이 품었던 고귀한 것 쪽으로 향해 있다고 할까. 

 

 

누군가 노정우 장학사를 신뢰하고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있다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그러하기에 올해 그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흩뿌리는 씨앗이 아이들 마음밭에서 어떻게 자라날지, 지역에서 어떤 나무로 커갈지 벌써 궁금해진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