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희영에게] 산청에 사는 청년들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어.

2022-05-16

 

 

희영에게_ 두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푸르른 날들이 계속되는구나. 지난 2년간 움츠러들었기 때문일까? 요새는 나도 사람들도 다들 들뜬 것 같아. 팬데믹 이후의 경기가 심상치 않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한창이라지만, 싱그러운 오월의 기운에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봐. 산청에 사는 청년들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어. 

 

 

몇 년 전부터 지역에 사는 청년들과 인사는 하고 지냈었거든. 그런데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 따로 모이기가 어려웠어. 다들 직업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으니.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던 우리들이었는데, 만남에 물꼬를 튼 사람이 ‘재영’이야. 재영은 닭을 키우고 계란을 파는 농부야. 목공에 관심이 많고, 손재주도 좋아. 산청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지만 벌써 이곳에 내려온 지도 십여 년이 지났지. 아마 재영이 산청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청년들이 많지 않았을 거야. 삶을 같이 나눌 친구가 없으니 한편으로는 조금 외롭기도 했을 테고. 

 

 

재영은 재작년부터 자기 집 옆에 창고를 짓더니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어. 바로 ‘나무 놀이터’야. 딸기를 짓는 동엽, 찬양과 군대를 앞둔 영인, 내 짝꿍 안군이 합류했어. 그해 여름, 다섯은 (안군 표현에 의하면) ‘동화 같은’ 시간을 보냈나 봐. 마당에 개와 고양이가 있고, 아이들은 뛰놀고, 청년들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주변은 온통 푸르른...

 

 

작년에는 서울에서 숙곰·승민 부부와 해미·우용 부부가 산청에 내려왔어.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머나먼 산청 땅에 희망과 용기만 가지고 불쑥 찾아온 두 부부가 우리는 마냥 신기했지. 어색한 만남에 재영의 ‘나무 놀이터’가 구심점이 됐어. 알고 보니 승민은 농부를 꿈꾸고, 우용은 목공을 배웠다지? 비슷한 또래의 우리들은 금세 친해졌어. 각자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초대하기도 하고. 일부러 모임을 만든 게 아니라 더 자연스러웠어. 서로의 마음이 맞는 날,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식사가 이렇게 충만한 거구나,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지.

 

 

거기에는 숙곰·승민의 역할이 커. 인천 ‘우리 동네 사람들’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다 온 이들은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그 관계가 어떻게 풍요로워지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줬거든. 오래 머물 줄 알았던 이 부부가 홍성으로 이사 가는 날, 이삿짐센터도 부르지 않고 다 같이 2톤 트럭 두 대에 살림살이를 싣고 날랐어. 봄이 오면 고사리 캐러 꼭 놀러 오리라, 다짐하던 이들이 정말로 산청에 왔으니, 우리가 안 모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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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부터 숙곰, 효림, 해미, 선우, 우용, 푸른, 종혁, 안군, 승민, 찬양, 재영

 

 

 

오랜만의 만남이 무색하게 우리는 금세 떠들썩해졌어. 각자의 근황을 얘기하는데, 어쩜 다들 사는 모습들이 이리 다양할까. 올해 집을 짓겠다는 포부를 가진 안군의 토목공사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내수공업 맥주제조업자 찬양의 맥주 맛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으니 술집 하나 차리라는 흥겨운 성화, 농사지으러 홍성으로 갔으나 잠시 가업을 잇기로 한 숙곰·승민 부부, 육아를 남편에게 맡기고 2박 3일 놀다 온 해미의 소식으로 이어졌어. 

 

 

건축자재비가 많이 올랐다는 푸념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훌쩍 넘어갔다가 곧 앞둔 지방선거에 산청의 미래를 걱정하다 청년지원정책과 귀농·귀촌 정책으로 꽤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했지. 푸른과 종혁이 뒤늦게 오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7월에 태어날 아기로 넘어갔어. 입덧과 몸 상태, 임신에 대한 여자와 남자의 태도, 엄마와 아빠의 입장차이, 아이를 낳는 방식, 연령에 따른 육아 방법 등 청년세대의 고민거리가 거의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또래’라는 큰 공통점 때문에 우리는 청년세대로 분류되고 우리 또한 청년을 찾아 헤매지만, 사실 비슷하지 않은 것도 많아. 나는 녹두가 숙주가 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농사에 무지한 사람이고, 미혼인 누군가는 결혼생활에 대한 토로에 관심이 없을 테고, 병원과 조산원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집을 짓는다는 게 아직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겠지.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이야기하는 주제보다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었어. 

 

 

나는 여전히 녹두나 숙주에 큰 관심은 없지만, 녹두를 정성껏 키워 숙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 그 사람의 눈이 궁금해. 딸기나 계란이나 맥주의 유통과정은 모르겠지만, 고충을 말하는 그 사람 삶의 태도를 경청해. 갓난아기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지만, 피곤이 역력한 얼굴에서도 행복이 묻어난다는 걸 발견해. 어느새 ‘혐오’가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그 시장성을 알아챈 사람들이 ‘차이’를 내세워 수많은 혐오로 갈라치기 하는 시대에, 이 작은 모임에서 나눈 서로에 대한 존중이 새삼 귀하게 느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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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모아 건배하는 그림

 

 

 

모임 이름도, 목적도, 구성원도, 모이는 횟수도, 어느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정체가 대체 무엇이냐 물으면 단번에 대답하기 힘든 이 모임은, 당분간 이렇게 지속될 것 같아. 사실, 모임의 정체성이나 방향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본 적도 없어. 아니, 우리 중 누구도 그것에 궁금하지 않아. 놀이터에 나가면 그날 모인 친구들과 그저 재밌게 놀던 때처럼, 우리도 그저 만나는 게 좋거든. 맛있는 걸 먹거나, 멋진 경치를 보거나, 좋은 사람을 만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잖아. 오늘따라 네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  

 

 

다음에 또 다른 소식 가지고 올게, 그때까지 건강하렴.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