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 “계절 따라 살고 싶어요.” - 산청 시천면에 자리 잡은 해미와 우용

2022-05-31

 

 

“계절 따라 살고 싶어요.”

산청 시천면에 자리 잡은 해미와 우용 

 

글과 그림 / 효림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반가운 계절이다. 창문을 열고 차를 타기에도 가장 좋은 나날이다. 해미와 우용을 인터뷰하기 위해 산청 시천면으로 향했다. 따사로운 한낮의 햇살 아래 차를 세우고 선우를 부르니 해미가 살며시 문을 연다. “선우 방금 잠들었어요.” 선우는 잠자는 사이에도 쑥쑥 큰다는 세 살배기다.

 

 

두 번의 기록을 겨우 마친 새내기 활동가에게 누군가를 취재하기란 아직 긴장되는 일이다. 모임에서는 주로 빙긋이 웃던 해미와 우용이기에 혹시 인터뷰어가 말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근심이 앞섰다. 우용은 차 한잔하겠냐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다기를 만진다. 또로록, 쨍-. 물 따르는 소리와 다기 부딪히는 소리가 리듬을 만들어낸다. 달뜬 마음이 차분해지자 직접 만든 차를 따르며 우용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난 걱정은 어느새 멀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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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문이 열린 건넌방에서 선우가 자고 있다

 

 

 

우용_ 이 동네 이사 와서 어느 날 전화를 받았어요. 일감 필요하냐고. 곶감 만드는 일이었어요. 바로 여기 앞집에 사시는 분인데 밤에 찾아갔을 때 차를 내주셨어요. 근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직접 만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깊이가 있는 단맛이었어요.

 

해미_ 그래서 차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용_ 예전에 하동 여행한 적이 있었거든요. 원래는 차에 관심이 없었는데 숙소에서 다원에 데려다주셨어요. 거기 주인분이 무료로 차를 내려주면서 같이 얘기를 나눴어요. 돈도 안 내고 이렇게 먹어도 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요. 나중에 집에 가기 전에 차를 샀죠. 그때부터 차를 먹기 시작했어요.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던 해미와 우용은 하동의 기억이 좋아 그 후에도 몇 번 더 왔다고 한다. 그러다 이번엔 다른 데 가볼까, 눈을 돌렸을 때 찾은 곳이 산청 시천면의 한 숙소였다. 숙소 이름은 ‘마리의 부엌’.

 

 

해미_ 마리의 부엌이 좋아서 다음 해에 가고, 그다음 해도 또 가고, 임신하고도 갔어요. 예전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하면서 시골에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마리의 부엌 주인분의 삶을 듣고 와 닿는 게 많았어요. 시골에 살면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시간이 많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고요. 코로나 전에는 일 년에 8~10개월 일하고 두 달 동안 해외에서 지냈다고도 해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새롭게 알게 됐죠. 막연하게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산청 갔다 올 때마다 우용이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천에 1년 살고 나서야 이분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용은 서울에서 7년을 내리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했다. 그 일을 좋아해서 해미는 귀촌하자고 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우용은 해미보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더 많다. 2년 전 가을에 귀촌한 부부는 그동안 지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몸소 배웠다.

 

 

해미_ 시골 사람들이 진짜 부지런해요. 11월부터 1월까지는 곶감을 해요(시천은 곶감으로 유명하다). 감 따고 말려 판매까지 설 전에 끝나요. 그리고 2주 쉰 다음 봄을 준비해요. 고로쇠하고, 고사리하고, 두릅하고, 죽순하고, 꿀하고(‘꿀한다’는 표현이 어법에는 맞지 않으나 지역민들은 양봉에서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이렇게 부른다). 

 

우용_ 여름 되면 관광객이 많으니까(시천은 계곡으로도 유명하다) 여름 장사하고, 가을 되면 작물들 수확하고, 버섯도 따고. 여기는 동네 전체가 하나의 회사나 마찬가지예요. 각자가 뭐 하는지 다 알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전화해서 일 도와주고, 서로 고용하고.

 

해미_ 저희는 여기 어르신들이 되게 존경스러워요. 

 

우용_ 에너지도 좋고요. 도시에서 직장 다닐 때는 똑같은 일만 하잖아요. 여기는 1년 동안 하는 일이 여러 가지예요. 계절에 맞춰 일해요. 그런 모습을 롤 모델로 삼으려고요.

 

해미_ 1년 사니까 그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용_ 처음 1년 동안은 도시의 생활방식으로 살았거든요. 차 타고 나가서 돌아다니고 소비하고. 선우 핑계도 있고요. 해보고 싶은 일은 잔뜩 있는데 잘 안되니까 도피했던 거죠. 그런데 이제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여요.

 

 

 

“선우와 노는 이 시간이 나중에는 큰 추억이 되겠죠.”

 

 

요즘 우용은 목공을 배우고 있다. 총 6단계가 있는데 단계마다 가구 하나씩 만든다. 목공은 가구를 만드는 소목과 한옥을 짓는 대목으로 나뉜다. 나중에는 대목까지 배워 세 식구가 함께 살 집도 짓고 싶단다. 해미는 여러 향을 맡아서 데이터 만드는 일을 한다. 대학 교수님과의 연을 이어오다 최근 재택근무 할 수 있는 일감을 마련했다. 해미가 데이터를 만들 때 우용은 선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해미_ 귀촌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아빠랑 아기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우용_ 선우와 놀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예요. 아기의 성장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하루 단위로 바뀌어요. 조금 지나면 주 단위로 바뀌고. 적응할 만하다 싶으면 또 새롭게 변해요. 아이가 울면 부모들은 본인이 뭘 잘못 했나 이렇게 생각하죠.

 

해미_ 그런데 애는 그냥 크고 있어서 몸이 좀 불편하고 아픈 것일 수도 있거든요. 나중에 저도 그걸 알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물건을 던지고 짜증 내면 또 힘들어요. 아직은 아이랑 저를 분리하는 게 잘 안 돼요.

 

우용_ 올해는 제가 아기를 훨씬 많이 봐요. 

 

 

해미는 선우를 집에서 낳았다.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을 공부했고, 해미는 둘라로 일했다. 둘라는 비의료인으로 산모와 아기가 편안한 환경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해미와 우용은 출산과 양육이 마을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방식을 기꺼이 따랐다. 집에서 태어난 선우에게 이제는 온 마을이 놀이터다.

 

 

우용_ 아이를 키워보니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어떤 보상 같은 게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기니 행복의 스펙트럼이 확 넓어져요. 물론 감당해야 할 고통도 늘어나고. 근데 인생을 길게 본다면 이 순간의 고통도 겪을 만해요. 다 키우면 행복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까.

 

해미_ 우리에게는 출산이 매우 크고 행복한 이벤트였어요. 둘째를 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돼요.

 

우용_ 출산까지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육아에 대해서는 생각을 별로 안 했어요. 출산이든 입양이든 그건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육아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얘기해요. 

 

해미_ 출산은 몇 시간이면 끝나잖아요. 육아는 계속되는 거고.

 

 

이토록 생생한 아빠의 육아 경험은 처음이다. 아무도 비밀로 숨기지 않았지만, 모두가 비밀이라고 하니 비밀인 줄만 알았던, 하지만 알고 보니 보물이었다는, 오래된 우화를 들은 기분이다. 그 뒤로도 ‘아빠의 출산’이라는 주제로 새로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한가득 나눴다. 지면에 모두 옮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뉘엿뉘엿 한 꺼풀 해가 꺾이자 선우가 잠에서 깼다. 문득, 손님이 찾아와 두런두런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선잠을 깨어보니 방바닥에는 햇빛이 길게 누워있던, ‘오후만 있던 일요일’ 같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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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드로잉

 

 

 

낮잠을 자고 일어난 선우는 한층 해사해 보인다. 개 덕구까지 가족은 오후 산책을 나섰다. 해미와 우용, 선우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좋지만,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가족이다.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