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희영에게] 이곳에도 우리가 보냈던 그 시절을 지금 한창 사는 아이들이 있어.

2022-06-13

 

 

희영에게_ 세 번째 편지

 

글과 그림 / 효림

 

 

* 시골에 전혀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산청의 삶을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다소 친근한 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끔 너와 막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가 떠오르곤 해. 한 달에 한 번씩 제비뽑기로 자리를 바꾸는데도 세 번 연속 짝꿍이 됐을 때.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같이 듣던 노래들. 학원 땡땡이치고 어색하게 찍었던 스티커사진. 학교 뒷산을 넘어 너희 동네까지 걸어가서 먹었던 초원분식 떡볶이. 이 편지를 읽으면 너도 생각날까? 아니, 어쩌면 너는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겠지?

 

 

이곳에도 우리가 보냈던 그 시절을 지금 한창 사는 아이들이 있어. 나는 아이들을 보며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아이들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슬금슬금 피하고. 어딜 가나 봤더니 산청읍에 있는 ‘명왕성’이야. ‘청소년 자치 공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운영되고 있는 곳이야.

 

 

청소년 공간이라는 것이 생소하지? 도서관처럼 책도 있고, 만화방처럼 편안한 자리도 있고, 공연장처럼 무대도 있고, 카페처럼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친구 집처럼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고, 회의실처럼 책상과 칠판과 TV도 있고... ‘뭔가’를 하기에 적당한 것들이 죄다 있는 곳이라고 보면 돼. ‘뭔가’에는 시험공부나 독서를 비롯하여 연애, 수다, 편지쓰기, 영화 보기, 핸드폰 게임, 간식 먹기 등 우리도 했던 모든 것들이 들어가.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오늘의 기록은 명왕성 운영진 회의 현장이야. 중3~고2까지의 자원한 친구들이 운영진이 되어 살림 전반에 관해서 회의해. 이번 회의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 후원의 날 행사, 주말 근무 스케줄, 꿀알바 비용 책정(카페나 식당 리뷰를 하고 일정 비용을 받는 명왕성 특색사업) 등의 주요 안건은 어른인 김한범 코디네이터가 가져왔어. 소형 청소기 구입, 간판 설치, 공지사항 게시판 위치 변경 등의 건의 사항들이 그다음으로 이어졌지. 아이들은 아직은 의견을 내는 게 쑥스러웠는지 김한범 씨가 회의 방향을 정해주었어.

 

 

산청의 청소년 공간 설립이 ‘시즌 1’의 목표였다면, 자치에 방점을 찍을 ‘시즌 2’의 시점이 보이는 듯했어. 새로운 전환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현 운영진에게 권력 및 책임을 더 부과해 운영방식의 변화를 꾀하면 어떨까? 성인이 된 전 운영진을 영입해 구성원 변화에 활기를 더하는 건? 다른 지역의 청소년 공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진이 직접 탐방한다면? 혹은 명왕성을 후원하고 있는 지역 어른들의 모임에서 바깥의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청소년 공간에 대해 더 많은 사람(특히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어.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떡볶이를 해 먹거나, 편지를 쓰는 것 등 안전한 쉼터 너머를 상상하는 힘. 내 친구가 아닌 다른 이에게 말도 걸고, 작당모의 하여 일도 저지르고, 자치 문화도 만드는 것. 자신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는 것. 점으로 흩어져 각자가 오가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뭐라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뭐라도 같이 해야 공간에 대한 애정이 싹트지 않을까?

 

 

 

명왕성에 오는 아이들의 모습, 드로잉

명왕성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꺼운 존재가 되길

 

 

이번 편지에는 물음표가 많구나. 정리되지 않는 사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각자의 점에서 말이야. 마침 6월 말에 명왕성에선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리고, 지리산 이음에선 청소년 공간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다지? 그곳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지도 몰라.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