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산청][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 “함께평화 영화제에서 만나요.” - 함께평화 이성연 기림사업팀장

2022-08-01

 

 

“함께평화 영화제에서 만나요.”

함께평화 이성연 기림사업팀장

 

글과 그림 / 효림

 

 

산과 물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입니다. 옛 어른들은 인심이 후한 동네가 명당이라 했다지요. ‘소소한 사람들, 소소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다정한 이웃을 소개합니다. 

 

 

 

반가운 비가 내리는 초여름 밤, 따릉, 알림이 울린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카톡 단체 채팅방이다. 마침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함께평화’가 평화영화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터였다. 2020년에 소녀상을 세운 ‘산청군 평화비 건립위원회’가 ‘함께평화’라고 새롭게 이름을 달고 영화제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관을 섭외하고, 포스터를 만드는 데에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모임이 없는 날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밤마다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좋은 영화를 소개하자는 단출한 마음이었다. 평점이 좋은 영화, 개봉 시기를 놓쳐 영화관에서 미처 보지 못한 영화, 오래전 개봉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다시 봐도 좋을 영화 등 각자의 추천작들이 쏟아졌다. 이내 같이 보고, 나누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평화, 인권, 여성, 장애, 전쟁 등 키워드로 분류하는 방법을 누군가 제시하고, 이번 영화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냐는 본질적 질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던지자 영화 선정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여간 평화영화제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함께평화’ 기림사업팀장 이성연 씨를 만나러 신등면으로 향했다.

 

 

 

성연_ 1시에 온다고 해서 맞춰서 김치 볶고 지단 부쳤어요. 아직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나물 무치고 노각 좀 썰어놔야겠다, 했죠. 근데도 도착을 안 했나 싶더라고요. 그다음 또 깻잎 올려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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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 씨가 직접 준비한 김치말이 국수

 

 

 

 

식탁에는 시원한 육수에 담긴 국수와 정갈한 고명이 놓여있다. 노란 지단과 깻잎, 국수를 돌돌 말아 호로록 한 입 먹자, 쌉쌀한 깻잎 향이 잎 안에 퍼진다. 지각한 대가가 더욱 맛있는 식사라니! 민들레 모임에서 처음 만난 이성연 씨와는 평화영화제를 같이 준비하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매주 만나다 보니 모임 앞뒤로 듣게 되는 소소한 사생활에 더욱 궁금해졌다. 어떻게 산청에 오게 되었을까.

 

 

 

성연_ 결혼하면 언젠가는 시골에 가자, 그랬어요. 창원 귀농학교에서 애들이 어릴 때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중학생만 되도 안 가려고 한다고. 우리 큰애가 4학년 때였어요. 그때부터 땅을 알아보러 다녔죠. 6개월을 하동 악양에 다녔어요. 그다음 장수랑 진안에도 가고. 한번은 황매산에 가게 됐는데, 안개가 사악 피는 거예요. 너무 신비롭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자의 시선이었죠. 농사짓는 건 생각도 못 하고. 

 

 

 

황매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성연 씨 부부는 다시 6개월간 산 주변을 다녔다. 근처의 마을만 찾다가 우연히 산청의 차황면에 촌집 하나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땅을 구하러 다닌 지 1년을 훌쩍 넘겼을 때였다. 더 이상 귀농을 미룰 수 없어 차황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시작할 무렵, 제안이 들어왔다. 딸기 농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성연_ 큰애는 중학교 1학년, 작은애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딸기 하우스가 여기 신등면에 있어서 이쪽으로 또 이사를 왔죠. 이 동네에서도 계속 이사를 하다가 지금 이 집에 작년에 왔어요.

 

 

 

귀촌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이 있다. 땅과도 인연이라고.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도 넘게 걸리는 땅과의 만남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되돌아보는 계기이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그리는 중요한 과정이다. 어디에 살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 질문이 천천히 영글면 좋은 터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울 때쯤 성연 씨가 한 움큼 면을 더 얹는다. 냉큼 받아 두 번째 그릇을 시작하자 다정한 엄마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요즘 성연 씨의 가장 큰 화두는 군대에 간 두 아들이다.

 

 

 

성연_ 큰애가 군대에 있는데 작은애도 같은 곳에 배정받았어요. 큰애가 전화해서 작은애를 바꿔주는 데 너무 좋은 거예요. 원래 서로 연락도 잘 안 하던 애들이거든요. 며칠 전에 작은애 훈련병 수료식이었는데 큰애가 자기 동생 깍지를 끼고 가더라고요.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싸우기도 엄청나게 싸우는데 또 둘이 의지도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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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간 아들과의 애틋한 가족사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015년, 경남에선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연 씨의 아이들도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다녔다. 아이들 밥그릇 챙기자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는데,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를 주민소환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주민소환 운동은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끝나버렸지만, 성연 씨는 사람은 얻었다.

 

 

 

성연_ 거기서 현하 씨를 만났어요. 주민소환 끝나고 우리 책 읽기 모임 해보자,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민들레 읽기 모임을 시작했어요. 우리끼리는 그렇게 얘기해요, 홍준표가 이어준 인연이라고. 현재 산청에 있는 이런저런 활동들의 계기는 주민소환이에요. 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거니까.

 

 

 

산청 구석구석 작은 움직임들의 줄기를 따라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아는 이름과 모르는 이름들이 얽히고설켜 그물이 만들어진다.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니 커다란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지금 산청에 안착해 살 수 있는 것도 먼저 온 사람들의 이런 수고로움 덕분이다.

 

 

 

성연_ 차황에 살 때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학부모들 정도만 알았었거든요. 딸기 농사를 지을 때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같이 시작한 사람이 있어요. 난영 씨랑 은정 씨. 처음에는 서로 알아가느라고 세 집이 매일 술 마셨어요. 놀러 갈 때도 항상 같이 가고. 첫해에는 딸기 농사가 잘 안됐어요. 근데 두 번째 봄부터 쏟아지는 양이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버리는 게 더 많았어요. 일이 많을 때는 하루에 13시간씩 앉아서 포장만 해요, 밤늦게까지. 우리는 서로의 패턴을 아니까 각자 하우스에서 카톡 전화하면서 서로 막 얘기해요. 잠 오면 깨워주고. 이것만 지나면 좀 여유로우니까 우리 그때 여행 가자, 하면서 또 에너지 받아서 일해요. 이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힘든 농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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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함께평화 영화제

 

 

 

성연_ 지금 곳곳의 모임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하진 않아요. 딸기 특성상 바쁜 시기가 있을 때 책임을 맡으면 곤란해지니까요. 작년 이맘때쯤 소녀상 건립이 됐어요. 그 이후에 건립위원회의 역할이 소녀상 보존이 될지, 이것을 계기로 활동을 만들어내면 좋을지 등의 의견이 나왔나 봐요. 어느 날 계곡에 햇살이랑 놀러갔을 때 발 담그며 말하더라고요, 활동으로 녹여내고 싶은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지난 5월, ‘함께평화’는 여성 농민운동가로 활동한 임봉재 선생님을 모시는 강연으로, 행사 시작을 알렸다. 건립위 이후 ‘평화’라는 키워드로 삼삼오오 모인 구성원들은 이렇게 손발 척척 맞는 모임은 처음이라며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영화제 한정 객원 멤버로 참여해보니 바로 실감이 된다. 몸 둘 바를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유쾌하다.

 

 

‘함께평화 영화제’는 8월 13(토)-14(일)일 동안 신안면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열린다. 하루에도 수백 편의 영상물이 각종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시대에, 이미 개봉한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 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지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답으로 대신하면, ‘영화관이 곧 영화다’. 영화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과 동시에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는 예술방식이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 원체험을 이번 영화제에서 한번 즐겨보시길, 우리 이웃과 함께.

 

 

 

 

쓰고 그린 사람. 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7년째 거주 중.

생긴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관찰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