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탐구하는 삶, 정진이 글 / 팀 옥동 하동 악양 식물 공방 ‘탐구생활’의 정진이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주간지 기자로 오랜 시간 일했다. 즐겁고 의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몸이 많이 상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마감 노동자의 삶을 마감하고 훌쩍 환경단체로 들어갔다. 지금은 하동에서 주로 쓸모와 무쓸모의 관계를 탐구하며 지낸다.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특별한 것도 없는 삶인데 괜히 인터뷰한다고 했나보다 걱정하길래 ‘우리 각자의 삶은 다 특별하다’라고 지극히 진부한 말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정진이의 삶도 역시 특별했다. 마감 노동자의 삶을 마감하다. 팀 옥동: 하동으로 내려오기 전 정진이가 궁금해요. 정진이: 국문과를 나와 잡지사 기자로 7년 일했어요. 주간지 기자로서 일주일에 하루도 못쉬었죠. 맨날 마감에 치여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까지 술마시고 집에 잠깐 들어와 씻고 다시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몸이 많이 상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귀촌에 대한 갈망이 생겼나 봐요. 속초라는 소도시 출신이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고요. 살긴 사는것 같은데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잡지사를 그만두면서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1년을 그냥 마음 편히 놀았어요. 팀 옥동: 너무 조금 놀았네요. 더 놀았어야죠. (웃음) 정진이: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그렇게 마냥 신나게 놀다가 불쑥 환경단체에 들어갔죠. 지금은 거의 활동을 안 하는 단체인데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단체예요. 이슈 파이팅을 하는 단체는 아니었고 환경에 있어서 원리주의자들이 모여있는 단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똘끼가 맘에 들더라구요. 거기서 3년 정도 일했는데 별나고 또 재밌게 사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죠. 돈을 많이 못벌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러다가 그 단체와의 인연으로 리사이클링 가게인 ‘되살림가게’에서 일했고 또 거기서의 인연으로 어린이·환경·생태 책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와 일을 하게 되었어요. 동·식물 도감의 편집자였죠. 팀 옥동: 도감 편집자의 일이 궁금해요. 정진이: 원고를 쓸 때 사실 도감은 전문서적이라 편집자가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돼요. 물론 학자들이 쓴 글을 수정 보완해서 내놓는 것이긴 한데 편집자도 모르면 안 되니까 맨날 공부하러 다녔어요. 근데 그 일이 너무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 배운 것들도 참 많았죠. 원래 동물, 식물, 곤충 이런 세계를 좋아했는데 알고 나니 더 좋아졌죠. 그 일이 제가 하동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에요. 팀 옥동: 마음 저변에 자연, 생태, 환경...이런 것들에 대한 끌림이 항상 있었나봐요. 마음이 가르키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또는 성큼 걸어간 자취가 보여요. 맥락이 보인다는 거죠. 정진이: 그런가요? 지향하는 삶을 가능하면 일과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죠. 
정진이는 하동 악양에서 식물 공방 ‘탐구생활’을 운영한다 하동에 계속 살아도 될까 팀 옥동: 어쩌다 하동에 왔나요? 정진이: 친구가 하동에 내려와서 구름마(하동 악양에 있는 지리산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구름마에서 그림책을 만들껀데 편집자가 필요하다 해서 하동에 오게 됐어요. 저도 그때 일을 그만둔 상태라 결정해서 내려오는데 2주도 안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절 하동으로 이끈 친구는 얼마 안있다 거제로 가버렸어요. 팀 옥동: 진이씨를 하동에 꽂아 놓고 또 다른 멋진 곳으로 튀었네요. 정진이: 정말 그렇네요. (웃음) 팀 옥동: 결국 친구만 믿고 무작정 내려온 건데 친구는 떠나고 그 이후 어려움이 좀 있었겠어요. 정진이: 처음엔 친구네 집에 머무르면 되고 바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해서 어려움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친구가 하동을 떠났으니 살 집을 구해야 했어요. 처음엔 그냥 도시 스타일로 부동산엘 갔죠. 그런데 집이 없어요. 매매도 없고 전세, 월세 다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화개 쪽에 있는 집을 구했죠. 서울 전세집 뺀 돈으로 여유 있게 집을 얻을 줄 알았는데...아니었어요. 돈을 더 보탰어요. 팀 옥동: 귀촌했을 때 정착금이라던가 청년지원 같은 건 없었나요? 정진이: 제가 왔을 때 서른여덟인가 그랬는데 청년으로서 지원금 받는 커트라인에 걸려 전혀 받질 못했죠. 또 1인 가족은 정착지원 자체가 없어요. 팀 옥동: 하동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는 청년들에게 계속 들어오라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지역에 내려오면 월세로 살 집조차 구하기 쉽지 않죠. 정진이: 지역에서 말로만 청년들 와라 와라 하지 말고요. 농촌에 빈집들 많잖아요. 뭐 새로 짓고 이런 거 하지 말고요. 군에서 먼저 빈집 현황 파악을 하고 집주인과 잘 협의해서 청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빌려주는 집들을 잘 추려서... 물론 어렵겠지만요. 근데 그런 거 하라고 공무원들 있는 거잖아요. 그런 정보들을 군 홈페이지나 이런 곳에 올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려왔는데 살 집이 없으면 정말 막막하거든요. 팀 옥동: 혼자 내려오셨잖아요. 정진이: 주변에서는 귀촌했다고 하면 제가 나이도 있으니 당연히 결혼을 했다고 생각해요. 혼자 왔다고 하면 굉장히 놀라시구요. 여자라서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니 당연하고요. 팀 옥동: 여성 1인 가구는 농촌 지역에서 그렇게 환영받질 못한답니다. (웃음) 하동에 산지 이제 5년차라고 했죠? 하동은 정진이에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요. 정진이: 하동에 아주 내려오기 전 서울과 하동 생활을 반반씩 할 때, 출간을 준비하던 책이 있었어요. 결국 나오지는 못했지만, 편집자로서 작가님과 함께 하동답사를 했거든요. 화개부터 악양, 청암면, 옥종면 등 꽤 여러 구간을 하루 종일 걸었어요. 그때 하동의 아름다움을 본 것 같아요. 특히 섬진강을 따라 걸었던 길은 정말 아름다워서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또 걷고 싶다.’ 아직 하동 곳곳 안 가본 곳이 많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딱히 어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살다보면 아름다운 환경이 전부는 아니게 되잖아요. 부딪히는 사람들, 일할 때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 그치만 그런게 없는 삶은 없고, 아직은 하동의 자연이 그런 것들을 상쇄해 주고 있어요. 손발 쓰는 일을 시작하다. 팀 옥동: 기대했던 귀촌에 대한 환상과 현실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나요? 정진이: 하동 와서 구름마에서 바로 일을 시작 했는데요. 생활 자체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하는 패턴이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고요. 땅도 없어 텃밭 농사도 못 했죠.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힘들었어요. 내가 이럴려고 여기왔나...이럴 거면 그냥 서울에서 살지..뭐 하러 여기 왔지? 팀 옥동: 장소만 옮겼을 뿐이네요. 정진이: 네, 그것때문에 자주 자괴감에 빠졌죠. 머리 쓰는 일 그만하고 손발 놀리며 살고 싶은데 여기 와서도 그걸 못하고 사니까...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나 고민하다 구름마를 그만뒀죠. 그리고 ‘탐구생활’이라는 식물 공방을 시작했어요. 
작업 중인 정진이 팀 옥동: 드디어 손발 쓰는 일을 시작하셨네요. 가드닝은 전문적으로 배우셨나요? 정진이: 아뇨. 배우지 않았어요. 키워보면서 알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고요. 요즘에는 관련 책도 많고 유튜브에도 정말 좋은 정보들이 많으니까요. 사실 ‘공방에서 돈을 벌 수 있겠다’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어요. 이런 형태의 공방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제가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도 꽤 오래 했고 또 하동 내려와서 몇년 간은 도시랑 똑같은 일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근데 이제 몇 년은 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아...’ 라며 안심도 시키고... 팀 옥동: 그럼요. 괜찮습니다. 정진이: 네, 현실적인 고민은 잠시 접어두었어요. 팀 옥동: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탐구생활’이 있는 이 공간은 진이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정진이: 이런 말 하면 좀 웃긴데요. 약간 좀 수행한다 생각하는 그런 거 있어요. (웃음) 남들 보기엔 한가하고 평화롭고 유유자적하는 줄 알아요. 근데 아니에요. 저래보여도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제가 아직 어설프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궁리 하고. 식물별로 다 특성이 있으니까요. 그거에 맞게 바꿔줘야 하고 그런 걸 고민하고 화분에는 어떻게 심으면 예쁠까 또 죽는 애들은 왜 죽을까? 왜 시들할까? 책도 보고 풀도 뽑고...종일 쉬지 않고 일해요. 집에 가면 잡생각이 많아지는데 여기 있을 때만큼은 여기 일만 생각하며 대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손발 움직이며 일만 해요. 팀 옥동: 시골 생활이 그래요. 안 하려 하면 안할 수 있는데 한 번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또 할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재밌어지기도 하고... 정진이: 그래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안하겠다고 하면 안해. 새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근데 또 내가 하겠다고 하면 또 할 일이 많고요. 몸을 좀 움직이면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데가 시골인 것 같아요. 팀 옥동: 공방에는 어떤 손님들이 오나요? 정진이: 가져다 놓은 식물들을 좋아해 주시는 손님들도 있는데 일반 꽃집에 있는 그런 식물들은 없으니 여긴 그런 거 없네 하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꾸몄으니 그건 어쩔 수 없죠. 다만 여기서 제가 안 하기로 한 것들 지키면서 하는 거죠. 팀 옥동: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하나요? 정진이: 버려진 것들을 가능하면 재활용하려 해요. 포장 박스나 충전재도 그렇구요. 다른 것들도 버려진 것들 주워다 뭐 만들까 하다 보면 창조적인 뭐가 나오기도 하고...서울 살 때도 분리배출 하는 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뭘 주워왔어요. 멀쩡한 게 너무 많이 버려져요.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 리더가 되다. 팀 옥동: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 리더예요. 정진이: 제가 제일 한가해서 리더가 된 것 같아요. (웃음) 하동 온지 5년정도 됐지만, 친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많은 사람을 사귀질 못했어요. 구름마에 있는 사람들이 제 인맥의 전부예요. 그거 이외의 다른 모임은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조금 설렜어요. 
하동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 멤버들이 질경이를 활용한 상처치료 연고를 만들기 위해 질경이를 채취하고 있다. 팀 옥동: 리더로서 고민이 많죠? 정진이: 일단 모임 멤버들이 너무 바빠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끌고 가서 될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간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면 돼요. 그리고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캠페인을 벌일까 고민이 있어요.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쓰레기를 마구 만들어내는 도시형 삶 때문에 나온 거잖아요. 그런데 농촌지역은 일단 기본적으로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아요. 먹거리도 거의 자급자족 하니 쓰레기가 많이 안 나오죠. 사실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타고난 제로웨이스터예요. 멀칭 비닐같은 농업 폐기물이나 분리수거 안하는 것, 쓰레기 태우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이런 지역적 특수성을 어떻게 제로웨이스트와 연결시키느냐가 고민거리죠. 
하동 악양의 두니공방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하동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팀은 질경이 연고를 직접 만들어 나눔행사를 했다. 팀 옥동: 농촌에서 먹거리도 사실 남는 게 많잖아요. 농사지은 것들이 다 못 먹어서 그냥 버려지기도 하고...면사무소 이런데 공유냉장고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소릴 들었어요. 정진이: 내거 남는거 갖다놓을 수 있고 다른 거 가져다 먹으면 좋은데. 나누고 싶어 하는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그렇게 조직화하다 보면 문제와 갈등이 생기고 흐지부지돼요. 결과적으로 보면 저는 관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들이 먼저 있으면 지속이 잘 되는데 그 목적으로 만나서 그걸 하면 이게 의무나 일처럼 굴러가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에 지치고 시들해지고.. 내 삶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무슨 공동체 이런 거 만들지 말고요. 일단 아는 사람끼리 모여 느슨하게 조금씩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
쓸모를 탐구하는 삶, 정진이
글 / 팀 옥동
하동 악양 식물 공방 ‘탐구생활’의 정진이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주간지 기자로 오랜 시간 일했다. 즐겁고 의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몸이 많이 상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마감 노동자의 삶을 마감하고 훌쩍 환경단체로 들어갔다. 지금은 하동에서 주로 쓸모와 무쓸모의 관계를 탐구하며 지낸다.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특별한 것도 없는 삶인데 괜히 인터뷰한다고 했나보다 걱정하길래 ‘우리 각자의 삶은 다 특별하다’라고 지극히 진부한 말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정진이의 삶도 역시 특별했다.
마감 노동자의 삶을 마감하다.
팀 옥동: 하동으로 내려오기 전 정진이가 궁금해요.
정진이: 국문과를 나와 잡지사 기자로 7년 일했어요. 주간지 기자로서 일주일에 하루도 못쉬었죠. 맨날 마감에 치여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까지 술마시고 집에 잠깐 들어와 씻고 다시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몸이 많이 상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귀촌에 대한 갈망이 생겼나 봐요. 속초라는 소도시 출신이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고요. 살긴 사는것 같은데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잡지사를 그만두면서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1년을 그냥 마음 편히 놀았어요.
팀 옥동: 너무 조금 놀았네요. 더 놀았어야죠. (웃음)
정진이: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그렇게 마냥 신나게 놀다가 불쑥 환경단체에 들어갔죠. 지금은 거의 활동을 안 하는 단체인데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단체예요. 이슈 파이팅을 하는 단체는 아니었고 환경에 있어서 원리주의자들이 모여있는 단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똘끼가 맘에 들더라구요. 거기서 3년 정도 일했는데 별나고 또 재밌게 사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죠. 돈을 많이 못벌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러다가 그 단체와의 인연으로 리사이클링 가게인 ‘되살림가게’에서 일했고 또 거기서의 인연으로 어린이·환경·생태 책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와 일을 하게 되었어요. 동·식물 도감의 편집자였죠.
팀 옥동: 도감 편집자의 일이 궁금해요.
정진이: 원고를 쓸 때 사실 도감은 전문서적이라 편집자가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돼요. 물론 학자들이 쓴 글을 수정 보완해서 내놓는 것이긴 한데 편집자도 모르면 안 되니까 맨날 공부하러 다녔어요. 근데 그 일이 너무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 배운 것들도 참 많았죠. 원래 동물, 식물, 곤충 이런 세계를 좋아했는데 알고 나니 더 좋아졌죠. 그 일이 제가 하동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에요.
팀 옥동: 마음 저변에 자연, 생태, 환경...이런 것들에 대한 끌림이 항상 있었나봐요. 마음이 가르키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또는 성큼 걸어간 자취가 보여요. 맥락이 보인다는 거죠.
정진이: 그런가요? 지향하는 삶을 가능하면 일과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죠.
정진이는 하동 악양에서 식물 공방 ‘탐구생활’을 운영한다
하동에 계속 살아도 될까
팀 옥동: 어쩌다 하동에 왔나요?
정진이: 친구가 하동에 내려와서 구름마(하동 악양에 있는 지리산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구름마에서 그림책을 만들껀데 편집자가 필요하다 해서 하동에 오게 됐어요. 저도 그때 일을 그만둔 상태라 결정해서 내려오는데 2주도 안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절 하동으로 이끈 친구는 얼마 안있다 거제로 가버렸어요.
팀 옥동: 진이씨를 하동에 꽂아 놓고 또 다른 멋진 곳으로 튀었네요.
정진이: 정말 그렇네요. (웃음)
팀 옥동: 결국 친구만 믿고 무작정 내려온 건데 친구는 떠나고 그 이후 어려움이 좀 있었겠어요.
정진이: 처음엔 친구네 집에 머무르면 되고 바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해서 어려움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친구가 하동을 떠났으니 살 집을 구해야 했어요. 처음엔 그냥 도시 스타일로 부동산엘 갔죠. 그런데 집이 없어요. 매매도 없고 전세, 월세 다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화개 쪽에 있는 집을 구했죠. 서울 전세집 뺀 돈으로 여유 있게 집을 얻을 줄 알았는데...아니었어요. 돈을 더 보탰어요.
팀 옥동: 귀촌했을 때 정착금이라던가 청년지원 같은 건 없었나요?
정진이: 제가 왔을 때 서른여덟인가 그랬는데 청년으로서 지원금 받는 커트라인에 걸려 전혀 받질 못했죠. 또 1인 가족은 정착지원 자체가 없어요.
팀 옥동: 하동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는 청년들에게 계속 들어오라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지역에 내려오면 월세로 살 집조차 구하기 쉽지 않죠.
정진이: 지역에서 말로만 청년들 와라 와라 하지 말고요. 농촌에 빈집들 많잖아요. 뭐 새로 짓고 이런 거 하지 말고요. 군에서 먼저 빈집 현황 파악을 하고 집주인과 잘 협의해서 청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빌려주는 집들을 잘 추려서... 물론 어렵겠지만요. 근데 그런 거 하라고 공무원들 있는 거잖아요. 그런 정보들을 군 홈페이지나 이런 곳에 올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려왔는데 살 집이 없으면 정말 막막하거든요.
팀 옥동: 혼자 내려오셨잖아요.
정진이: 주변에서는 귀촌했다고 하면 제가 나이도 있으니 당연히 결혼을 했다고 생각해요. 혼자 왔다고 하면 굉장히 놀라시구요. 여자라서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니 당연하고요.
팀 옥동: 여성 1인 가구는 농촌 지역에서 그렇게 환영받질 못한답니다. (웃음) 하동에 산지 이제 5년차라고 했죠? 하동은 정진이에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요.
정진이: 하동에 아주 내려오기 전 서울과 하동 생활을 반반씩 할 때, 출간을 준비하던 책이 있었어요. 결국 나오지는 못했지만, 편집자로서 작가님과 함께 하동답사를 했거든요. 화개부터 악양, 청암면, 옥종면 등 꽤 여러 구간을 하루 종일 걸었어요. 그때 하동의 아름다움을 본 것 같아요. 특히 섬진강을 따라 걸었던 길은 정말 아름다워서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또 걷고 싶다.’ 아직 하동 곳곳 안 가본 곳이 많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딱히 어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살다보면 아름다운 환경이 전부는 아니게 되잖아요. 부딪히는 사람들, 일할 때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 그치만 그런게 없는 삶은 없고, 아직은 하동의 자연이 그런 것들을 상쇄해 주고 있어요.
손발 쓰는 일을 시작하다.
팀 옥동: 기대했던 귀촌에 대한 환상과 현실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나요?
정진이: 하동 와서 구름마에서 바로 일을 시작 했는데요. 생활 자체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하는 패턴이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고요. 땅도 없어 텃밭 농사도 못 했죠.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힘들었어요. 내가 이럴려고 여기왔나...이럴 거면 그냥 서울에서 살지..뭐 하러 여기 왔지?
팀 옥동: 장소만 옮겼을 뿐이네요.
정진이: 네, 그것때문에 자주 자괴감에 빠졌죠. 머리 쓰는 일 그만하고 손발 놀리며 살고 싶은데 여기 와서도 그걸 못하고 사니까...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나 고민하다 구름마를 그만뒀죠. 그리고 ‘탐구생활’이라는 식물 공방을 시작했어요.
작업 중인 정진이
팀 옥동: 드디어 손발 쓰는 일을 시작하셨네요. 가드닝은 전문적으로 배우셨나요?
정진이: 아뇨. 배우지 않았어요. 키워보면서 알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고요. 요즘에는 관련 책도 많고 유튜브에도 정말 좋은 정보들이 많으니까요. 사실 ‘공방에서 돈을 벌 수 있겠다’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어요. 이런 형태의 공방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제가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도 꽤 오래 했고 또 하동 내려와서 몇년 간은 도시랑 똑같은 일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근데 이제 몇 년은 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아...’ 라며 안심도 시키고...
팀 옥동: 그럼요. 괜찮습니다.
정진이: 네, 현실적인 고민은 잠시 접어두었어요.
팀 옥동: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탐구생활’이 있는 이 공간은 진이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정진이: 이런 말 하면 좀 웃긴데요. 약간 좀 수행한다 생각하는 그런 거 있어요. (웃음) 남들 보기엔 한가하고 평화롭고 유유자적하는 줄 알아요. 근데 아니에요. 저래보여도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제가 아직 어설프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궁리 하고. 식물별로 다 특성이 있으니까요. 그거에 맞게 바꿔줘야 하고 그런 걸 고민하고 화분에는 어떻게 심으면 예쁠까 또 죽는 애들은 왜 죽을까? 왜 시들할까? 책도 보고 풀도 뽑고...종일 쉬지 않고 일해요. 집에 가면 잡생각이 많아지는데 여기 있을 때만큼은 여기 일만 생각하며 대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손발 움직이며 일만 해요.
팀 옥동: 시골 생활이 그래요. 안 하려 하면 안할 수 있는데 한 번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또 할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재밌어지기도 하고...
정진이: 그래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안하겠다고 하면 안해. 새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근데 또 내가 하겠다고 하면 또 할 일이 많고요. 몸을 좀 움직이면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데가 시골인 것 같아요.
팀 옥동: 공방에는 어떤 손님들이 오나요?
정진이: 가져다 놓은 식물들을 좋아해 주시는 손님들도 있는데 일반 꽃집에 있는 그런 식물들은 없으니 여긴 그런 거 없네 하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꾸몄으니 그건 어쩔 수 없죠. 다만 여기서 제가 안 하기로 한 것들 지키면서 하는 거죠.
팀 옥동: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하나요?
정진이: 버려진 것들을 가능하면 재활용하려 해요. 포장 박스나 충전재도 그렇구요. 다른 것들도 버려진 것들 주워다 뭐 만들까 하다 보면 창조적인 뭐가 나오기도 하고...서울 살 때도 분리배출 하는 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뭘 주워왔어요. 멀쩡한 게 너무 많이 버려져요.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 리더가 되다.
팀 옥동: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 리더예요.
정진이: 제가 제일 한가해서 리더가 된 것 같아요. (웃음) 하동 온지 5년정도 됐지만, 친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많은 사람을 사귀질 못했어요. 구름마에 있는 사람들이 제 인맥의 전부예요. 그거 이외의 다른 모임은 하동 제로웨이스트 모임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조금 설렜어요.
하동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 멤버들이 질경이를 활용한 상처치료 연고를 만들기 위해 질경이를 채취하고 있다.
팀 옥동: 리더로서 고민이 많죠?
정진이: 일단 모임 멤버들이 너무 바빠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끌고 가서 될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간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하면 돼요. 그리고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캠페인을 벌일까 고민이 있어요.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쓰레기를 마구 만들어내는 도시형 삶 때문에 나온 거잖아요. 그런데 농촌지역은 일단 기본적으로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아요. 먹거리도 거의 자급자족 하니 쓰레기가 많이 안 나오죠. 사실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타고난 제로웨이스터예요. 멀칭 비닐같은 농업 폐기물이나 분리수거 안하는 것, 쓰레기 태우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이런 지역적 특수성을 어떻게 제로웨이스트와 연결시키느냐가 고민거리죠.
하동 악양의 두니공방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하동제로웨이스트 모임 ‘이궁’팀은 질경이 연고를 직접 만들어 나눔행사를 했다.
팀 옥동: 농촌에서 먹거리도 사실 남는 게 많잖아요. 농사지은 것들이 다 못 먹어서 그냥 버려지기도 하고...면사무소 이런데 공유냉장고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소릴 들었어요.
정진이: 내거 남는거 갖다놓을 수 있고 다른 거 가져다 먹으면 좋은데. 나누고 싶어 하는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그렇게 조직화하다 보면 문제와 갈등이 생기고 흐지부지돼요. 결과적으로 보면 저는 관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들이 먼저 있으면 지속이 잘 되는데 그 목적으로 만나서 그걸 하면 이게 의무나 일처럼 굴러가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에 지치고 시들해지고.. 내 삶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무슨 공동체 이런 거 만들지 말고요. 일단 아는 사람끼리 모여 느슨하게 조금씩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