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덕분에...” 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최연소 이장! 북천면 금촌마을 박나리 이장님을 소개합니다 글 / 팀 옥동 지난 5월, 세계·아시아·대한민국·경남도·하동군의 최고·최초·최다 기록을 모은 하동 기네스북이 발간됐다. 최연소 이장으로 등재된 88년생 박나리 이장님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뷰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웃음)” 시원하게 응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북천면 금촌마을의 박나리 이장님 하동 기네스북에 최연소 이장으로 이름을 올리다 저도 ‘뭐? 최연소? 설마 그 정도까지?’이랬는데 하동군에서 최연소 이장이라고 상장받으러 나오라고 하니 실감이 좀 났어요. 근데 정말 상장만 줬어요. 그래도 군청 행사이고 또 군민의 날이어서 기대가 좀 있었는데 사실 그게 좀 아쉬웠죠. 저는 상품권이라도 하나 줄 줄 알았거든요. (웃음) 전부 다 반대했어요. 나중에 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대단하다. 젊은데 이장 어떻게 하려고 했냐?” 저희 신랑도 처음에 반대했죠. 아빠도 이장하지 말라고 했죠. 힘들다고요. 왜냐하면 욕 듣는 자리인 거 아니까. “이장하면 맨날 욕 듣는다. 하지 마라.” 그랬는데 제가 “할 사람이 없단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단다.” 이러니까 그제야 “그럼 좀 도와드리라.” 하더라구요. 한 3년 전부터 이장 좀 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애들이 어려서 못 한다고 계속 거절했죠. 근데 이번에는 진짜 할 사람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셔서 “그럼 2년만 하겠습니다.” 하고 하게 됐어요. 이장 맡아주는 거 감사하다고 어르신들께 박수받으면서 선출됐죠. 올해 3월부터 했으니 몇 개월 안 됐어요. 처음 이장할 때 조건을 걸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안 도와주시면 안 하겠다고. 도와주시는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그래놓으니까 뭐 하자고 하면 안 도와줄 수 없는 거죠. 또 마을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거니까 어르신들이 다 잘 도와주세요. 아무 연고도 없는 하동 북천에서 광양의 직장까지 출퇴근. 그때는 지금과 달리 길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산길을 타고 넘어 다녀야 했는데‘그래도 한번 해 보자.’싶은 마음으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고. 
사진. '인심 좋은 마음의 고양 북천'이라고 쓰인 표지석 사실은 저희 아빠가 귀촌하시려고 집을 알아보시다가 “시골에 집이 하나 나왔는데 함 가 봐라.” 하셔서 갔더니 생각보다 직장과 멀지 않은 거예요. 제가 고향은 부산인데, 창원에서 신랑이랑 같이 직장 다니다가 직장이 광양으로 옮겨오게 됐었거든요. 길은 좀 험해도 시간상으로 40분 정도 잡고 직장 출퇴근이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맘먹고 출퇴근했어요. 귀촌 준비하던 아빠는 아직 부산에서 가게 하고 계세요. (웃음) 아빠가 알아보시던 집을 저희가 사서 살게 되면서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북천면 금촌마을에서 아이들 둘 낳으며 정착하게 된 거죠. 이제 7년 됐어요. 마을을 어떻게 만들고 싶냐 물으니, “거창한 건 없고, 그저 어르신들을 좀 더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라고 한다. 저희 금촌마을은 북천에서 인구가 제일 적어요. 북천 꽃축제 행사하는 곳과는 좀 떨어져 있고요. 연령대도 높죠. 저희집하고 또 한 집 빼고는 전부 65세 이상 되세요. 중년층이 아예 없어요. 마을에 할아버지도 몇 분 안 계시고 혼자 계신 할머니들이 많으시죠. 등록 가구 수는 46세대예요.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차편도 그래요. 버스도 있었는데 타는 사람 적다고 없어졌어요.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어하세요. 그래서 그것도 다시 만들어보려고 알아보는 중이죠. 어르신들이 연세가 많아지니까 점점 더 안 나가시게 되잖아요. 있던 버스가 없어지니 엄청 불편해들 하세요. 마을이 좀 외지고 인구수가 적다고 해도 마을에 버스는 필요한 거잖아요. 어르신들 차도 없는데. “금촌마을이 노후 돼서 공사할 곳이 많은데, 면에 내려온 예산은 정해 있어서 마을에 필요한 보수공사를 진행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고충도 털어놓는다. 임기 마칠 때까지 마을의 보수공사를 완료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마을 수도도 도시만큼 잘돼 있지 않거든요. 지하수를 끌어와서 써야 돼요. 이번 가뭄 때 식수도 모자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군청에 관정 신청을 했죠. 군청이며 면사무소며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몰라요. 마을이 너무 노후가 돼서 여기저기 계속 고장이 나니까 제가 안 다닐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저것 고쳐 달라고. 
사진. 파손된 상태인 도로 손발 척척,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남편 비료 나눠드리고 실어드리고 그런 거 제가 다 해요. 수로 막히고 그런 건 신랑 불러서 해달라 하고요. 둘이서 많이 하죠. 저희 마을이 많이 노후 돼서 도로가 막 파손되고 이런저런 공사할 게 많아요. 마을 공사 관련해서는 새마을 지도자로 되어있는 신랑이 대부분 책임져주고 있어요. 힘쓸 일이 많긴 한데 신랑이 시간 안 되면 어르신 찾아서 같이 해결하러 가자고 하면 잘 도와주세요. 그런 거 말고는 거의 서류적인 부분이 많죠. 지금 주로 하는 일은 공익직불제라고, 논밭 갖고 계신 분들이 신청하는 거 있거든요. 근데 공익직불제 그 정책이 계속 바뀌어요. 그러니까 “이거 했는데 이건 또 뭐야?” 이러시죠. 어르신들이 뭐 신청하고 그런 부분을 제일 힘들어하세요. 어르신들이 핸드폰을 잘 모르시니까 면사무소에 가서 신청해야 하는 거예요. 더군다나 차편도 마땅치 않으니까 나가는 거를 더 힘들어하시죠. 근데 이번에는 좀 편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막 뛰어다니고 그러니까. 이번에 제가 서류 다 받아와서 마을에서 싹 다해서 갖다 드리니까 “이장 덕분에 편하게 했다.” 말씀들 하세요. 어르신들이 연세가 드시니 농사일도 조금씩 줄어들고 그러니까 벌이도 점점 줄어들죠.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세요. 매달 통신료, TV 수신료 등 내면 경로회비가 얼마 남지 않거든요. 정말 적은 액수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실정인거죠. 저도 이장이 되기 전에는 그 내용을 잘 몰랐죠. 그냥 식사하시나 보다 했었어요. 이제라도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려고 해요. 말하기가 좀 힘든 부분이긴 한데… 좀 섭섭했어요 이번에 새길이 생기면서 큰 공터 휴게소가 생겼어요. 마을 수익사업으로 거기 자판기를 놓았는데 그걸 왜 하냐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계신 거예요. 저희 개인사업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서, 어르신들 맛있는 거 좀 드시라고 하는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섭섭하대요. 사실 그거 하려고 저희 신랑이랑 엄청 바빴거든요. 한 2주를 전화기 들고 살고, 군청에 서류하러 가고 또 부족한 서류 추가도 하고 정신없이 그랬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든든한 마을일꾼 젊은 부부, 웃음꽃 담당 아이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어요. 7살 5살 하정이 지훈이. 저희가 좀 젊은 사람들이고 애도 있고 그래선지 동네에서 관심을 많이 주세요. 마을에 저희 애들밖에 없거든요. “이장 덕분에 애들 구경한다.” 그 말씀 제일 많이 하시고 좋아하세요. 이장을 하면 이장 월급 조금 하고 농협에서 몇만 원 들어오거든요. 기름값 하면 사실 몇 푼 남진 않아요. 그래도 오며 가며 어르신들 드시고 싶으신 거 생각나면 과자 하나라도 사서 드리죠. 그러면 돈 함부로 쓴다고 어르신들이 억수루 싫어하세요. 손녀 돈 쓰는 거 같다고 엄청 싫어하세요. 근데 뭐라 하시면서도 잘 드신다 말예요. (웃음) 가면 다 드시고 없어요. (웃음) 
사진. 금촌마을의 웃음보따리 하정이와 지훈이 “이장, 차 한 번만 태워 줘.” “뭐 좀 갖다 놔 줘.” 어르신들 댁에 들리면 가끔 부탁들을 하세요. 갔다 오면 애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세요. 저는 안 받으니까. 애들은 금방 뛰가고 없으니까. 마을에서 하하하 호호호 웃을 일이 별로 없잖아요. 애들 뛰어다니는 거 보면서 웃고 그러시죠. “이장 덕분에 웃는다.” 맨날 그러시죠. 왜냐면 이제 손녀들도 다 커서 잘 안 오거든요. “우리 손녀들 얼굴 본 지도 오래됐다.” 이러시는데요. 어르신들 진짜 속 마음은 통닭이 아니라 회!! 마을에 어르신들 모시고 하는 어버이날 행사가 있어요. 근데 어르신들이 안 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마을은 출장뷔페 불러 크게 했다고도 하고, 인근 마을도 차 대절해서 멀리 가서 회 먹고 왔다고도 하고요. 안 하겠다고 말씀은 하셨어도 마을 사시는 한 분이 어르신들께 뭐 드시고 싶냐고 물으니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 마을은 배달이 안 되니까 통닭도 어르신들 드시기 힘든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포장해와 주셔서 저희가 같이 먹었어요. 근데 나중에 듣고 알고 보니까 아니었던 거예요. 회를 말하고 싶었는데 비싸니까 미안해서 말씀을 못 하시고 그냥 통닭이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거죠. 저희 마을은 딱히 찬조금 같은 게 들어올 데도 없고 그래서 마을 자금이 없어요. 행사할 때 찬조금도 들어와야 좀 풍족하고 그럴 텐데요. 마을 인원수도 적은데다 한창 일하고 돈 버는 중년층이 한 명도 없으니 자금이 항상 부족한 실정이긴 하죠. 조용하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금촌마을에 살게 되어 좋다. 시골에 들어오니 너무 좋은 거예요. 조용하니 너무 좋아요. 그래서 정착하게 됐지요. 저희 마을은 공기 좋고 물 좋고요. 전형적인 시골. 개발되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가게 하나 없으니까요. 진짜 조용하거든요. 좋아요. 별도 잘 보여요. 마을에 가로등이 없어요. 그러니 엄청 잘 보이죠. 밤하늘의 별, 저희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비 온 다음 날은 구름이며 뭐며 엄청 좋죠. 또 애들이 자연이랑 같이 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요즘 애들은 올챙이며 개구리며 이런 거 직접 볼 일이 없잖아요. 우리 애들 보면 그냥 막 뛰어다니면서 놀고 벌레도 다 만지고 잡고 그래요. 시골에 살면서 그렇게 노는 모습이 좋아요. 
사진. 호기심 많은 지훈이 그리고 황룡사라고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는데 새벽 5시, 아침 10시, 저녁 5시에 목탁 치며 염불을 하세요. 근데 그게 다 들려요. 처음에는 그냥 ‘들리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들으니 언제부턴가 심신 안정? 그런 게 되는 듯해요. 소음도 없으니까 엄청 또렷하게 들려요. 특히 새벽 5시는 더 조용하잖아요. 아무도 일 안 하는 시간이니까. 경운기 소리도 안 섞이고. 염불 소리 들리면 아, 5시구나! 마음이 평온해져요. 
사진. 황룡사 전경 “시골살기 어떤가요? 애 키우며 살기 괜찮을까요?” “엄마만 부지런하면 시골에서 살만합니다. 괜찮아요.” 저희 애가 하사랑 심리센터에서 상담도 지원받고 있는데 그거 하려면 매주 수요일은 제가 하루종일 운전은 해야 해요. 그래도 센터에서 아동 지원 발달도 체크 해주시고 심리상담도 놀이식으로 하고 좋은 얘기도 해주시고 한 번씩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하니까 아이가 재밌다고 좋아해요. 괜찮아요. 그런 것도 좋아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그런 걸 많이 알려주시고 지원해주세요. “어머니, 이런 거 괜찮아요,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애 둘 키우며 살다 보니, 시골에서 산다는 거 그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고 애들 키우기도 나쁘지 않아요. 운전만 한다면. 운전은 필수죠. 엄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요. 근데 도시 사람들이 시골살이를 고민할 때 제일 힘들어하는 게 배달 음식이 안 되는 거래요. 저도 생각도 못 했거든요. “배달 음식이 하나도 없잖아.” 친구들이 딱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코로나 때 우리 친구들이 시골에 사는 저를 제일 부러워했어요. 도시 아파트 사는 애들은 집안에서만 있었지만 우리는 마당까지 나와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걸 엄청 부러워하더라구요. 아이들 교육 문제, 여전한 고민이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 장점도 많다. 아이들이 북천 유치원, 적량의 호산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근데 북천까지 어린이집 차가 안 들어와서 제가 계속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니 정신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애 키우기가 좀 열악하다 할 수 있죠. 아이들 교육문제는 아직도 고민이 되죠.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나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또 반대로 생각해보니까, 한 학교에 외국인 선생님 한 분은 계시고 학생 수가 소수이니 외국어 문제도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 되더라구요. 그리고 유치원 보내고 나서 느낀 건데, 소수 인원으로 많은 활동을 진행하세요. 또 돈도 안 들어요. 어린이집 다닐 때도 대개 좋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도시락 한번을 안 싸가고 체험활동을 가도 돈도 따로 안 받고 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북천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가니까 더 좋은 거예요. 5살부터 7살까지 10명 되거든요. 매주 활동을 해요. 다양해요. 초등학교는 북천초등학교에 보내려고요. 주변 분을 보니 중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한다사중학교에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 생각했죠. 다만 학원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 애는 하고 싶은 게 억수루 많아요. 피아노도, 운동도 하고 싶어 하죠. 아직까진 교통편이 불편하니 제가 부지런히 다 데리고 다녀야 해서 좀 힘들긴 해요. 훗날, 최장 말뚝 이장으로 또 한 번 하동 기네스북에? 
사진. 말뚝 이장이라 불리우는 박나리 이장님 저희 마을 어르신들도 처음엔 좀 있다가 금방 갈 줄 알았대요. 그런데 애도 둘이나 낳고 이래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이장도 해보라는 소리도 하시는 거죠. 또 저를 보시는 분마다 말뚝 이장이라고 하세요. 그게 처음엔 무슨 말인가 몰랐거든요. 제가 아직 많이 어리니 오래 할 것 같다고, 이장 일 오래오래 하라고 그리 부르시는 거였어요. (웃음) 인구가 적어서 혜택을 잘 받지 못했던 금촌마을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대외적으로 좀 주목을 받고, 마을이 조금은 더 어르신들 지내기 편한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취재에 응하게 됐다는 박나리 이장님. 오늘도 하하호호 웃음 바람 실어 날리며 금촌마을에서의 하루를 부지런히 열어가고 있을 박나리 이장님. 그 바람이 이뤄지기를. |
“이장 덕분에...” 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최연소 이장!
북천면 금촌마을 박나리 이장님을 소개합니다
글 / 팀 옥동
지난 5월, 세계·아시아·대한민국·경남도·하동군의 최고·최초·최다 기록을 모은 하동 기네스북이 발간됐다. 최연소 이장으로 등재된 88년생 박나리 이장님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뷰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웃음)”
시원하게 응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북천면 금촌마을의 박나리 이장님
하동 기네스북에 최연소 이장으로 이름을 올리다
저도 ‘뭐? 최연소? 설마 그 정도까지?’이랬는데 하동군에서 최연소 이장이라고 상장받으러 나오라고 하니 실감이 좀 났어요. 근데 정말 상장만 줬어요. 그래도 군청 행사이고 또 군민의 날이어서 기대가 좀 있었는데 사실 그게 좀 아쉬웠죠. 저는 상품권이라도 하나 줄 줄 알았거든요. (웃음)
전부 다 반대했어요. 나중에 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대단하다. 젊은데 이장 어떻게 하려고 했냐?”
저희 신랑도 처음에 반대했죠. 아빠도 이장하지 말라고 했죠. 힘들다고요. 왜냐하면 욕 듣는 자리인 거 아니까. “이장하면 맨날 욕 듣는다. 하지 마라.” 그랬는데 제가 “할 사람이 없단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단다.” 이러니까 그제야 “그럼 좀 도와드리라.” 하더라구요.
한 3년 전부터 이장 좀 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애들이 어려서 못 한다고 계속 거절했죠. 근데 이번에는 진짜 할 사람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셔서 “그럼 2년만 하겠습니다.” 하고 하게 됐어요. 이장 맡아주는 거 감사하다고 어르신들께 박수받으면서 선출됐죠. 올해 3월부터 했으니 몇 개월 안 됐어요.
처음 이장할 때 조건을 걸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안 도와주시면 안 하겠다고. 도와주시는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그래놓으니까 뭐 하자고 하면 안 도와줄 수 없는 거죠. 또 마을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거니까 어르신들이 다 잘 도와주세요.
아무 연고도 없는 하동 북천에서 광양의 직장까지 출퇴근. 그때는 지금과 달리 길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산길을 타고 넘어 다녀야 했는데‘그래도 한번 해 보자.’싶은 마음으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고.
사진. '인심 좋은 마음의 고양 북천'이라고 쓰인 표지석
사실은 저희 아빠가 귀촌하시려고 집을 알아보시다가 “시골에 집이 하나 나왔는데 함 가 봐라.” 하셔서 갔더니 생각보다 직장과 멀지 않은 거예요. 제가 고향은 부산인데, 창원에서 신랑이랑 같이 직장 다니다가 직장이 광양으로 옮겨오게 됐었거든요. 길은 좀 험해도 시간상으로 40분 정도 잡고 직장 출퇴근이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맘먹고 출퇴근했어요.
귀촌 준비하던 아빠는 아직 부산에서 가게 하고 계세요. (웃음) 아빠가 알아보시던 집을 저희가 사서 살게 되면서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북천면 금촌마을에서 아이들 둘 낳으며 정착하게 된 거죠. 이제 7년 됐어요.
마을을 어떻게 만들고 싶냐 물으니, “거창한 건 없고, 그저 어르신들을 좀 더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라고 한다.
저희 금촌마을은 북천에서 인구가 제일 적어요. 북천 꽃축제 행사하는 곳과는 좀 떨어져 있고요. 연령대도 높죠. 저희집하고 또 한 집 빼고는 전부 65세 이상 되세요. 중년층이 아예 없어요. 마을에 할아버지도 몇 분 안 계시고 혼자 계신 할머니들이 많으시죠. 등록 가구 수는 46세대예요.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차편도 그래요. 버스도 있었는데 타는 사람 적다고 없어졌어요.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어하세요. 그래서 그것도 다시 만들어보려고 알아보는 중이죠. 어르신들이 연세가 많아지니까 점점 더 안 나가시게 되잖아요. 있던 버스가 없어지니 엄청 불편해들 하세요. 마을이 좀 외지고 인구수가 적다고 해도 마을에 버스는 필요한 거잖아요. 어르신들 차도 없는데.
“금촌마을이 노후 돼서 공사할 곳이 많은데, 면에 내려온 예산은 정해 있어서 마을에 필요한 보수공사를 진행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고충도 털어놓는다. 임기 마칠 때까지 마을의 보수공사를 완료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마을 수도도 도시만큼 잘돼 있지 않거든요. 지하수를 끌어와서 써야 돼요. 이번 가뭄 때 식수도 모자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군청에 관정 신청을 했죠. 군청이며 면사무소며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몰라요. 마을이 너무 노후가 돼서 여기저기 계속 고장이 나니까 제가 안 다닐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저것 고쳐 달라고.
사진. 파손된 상태인 도로
손발 척척,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남편
비료 나눠드리고 실어드리고 그런 거 제가 다 해요. 수로 막히고 그런 건 신랑 불러서 해달라 하고요. 둘이서 많이 하죠. 저희 마을이 많이 노후 돼서 도로가 막 파손되고 이런저런 공사할 게 많아요. 마을 공사 관련해서는 새마을 지도자로 되어있는 신랑이 대부분 책임져주고 있어요. 힘쓸 일이 많긴 한데 신랑이 시간 안 되면 어르신 찾아서 같이 해결하러 가자고 하면 잘 도와주세요. 그런 거 말고는 거의 서류적인 부분이 많죠.
지금 주로 하는 일은 공익직불제라고, 논밭 갖고 계신 분들이 신청하는 거 있거든요. 근데 공익직불제 그 정책이 계속 바뀌어요. 그러니까 “이거 했는데 이건 또 뭐야?” 이러시죠. 어르신들이 뭐 신청하고 그런 부분을 제일 힘들어하세요. 어르신들이 핸드폰을 잘 모르시니까 면사무소에 가서 신청해야 하는 거예요. 더군다나 차편도 마땅치 않으니까 나가는 거를 더 힘들어하시죠. 근데 이번에는 좀 편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막 뛰어다니고 그러니까. 이번에 제가 서류 다 받아와서 마을에서 싹 다해서 갖다 드리니까 “이장 덕분에 편하게 했다.” 말씀들 하세요.
어르신들이 연세가 드시니 농사일도 조금씩 줄어들고 그러니까 벌이도 점점 줄어들죠.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세요. 매달 통신료, TV 수신료 등 내면 경로회비가 얼마 남지 않거든요. 정말 적은 액수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실정인거죠. 저도 이장이 되기 전에는 그 내용을 잘 몰랐죠. 그냥 식사하시나 보다 했었어요. 이제라도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려고 해요.
말하기가 좀 힘든 부분이긴 한데… 좀 섭섭했어요
이번에 새길이 생기면서 큰 공터 휴게소가 생겼어요. 마을 수익사업으로 거기 자판기를 놓았는데 그걸 왜 하냐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계신 거예요. 저희 개인사업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서, 어르신들 맛있는 거 좀 드시라고 하는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섭섭하대요. 사실 그거 하려고 저희 신랑이랑 엄청 바빴거든요. 한 2주를 전화기 들고 살고, 군청에 서류하러 가고 또 부족한 서류 추가도 하고 정신없이 그랬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든든한 마을일꾼 젊은 부부, 웃음꽃 담당 아이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어요. 7살 5살 하정이 지훈이. 저희가 좀 젊은 사람들이고 애도 있고 그래선지 동네에서 관심을 많이 주세요. 마을에 저희 애들밖에 없거든요. “이장 덕분에 애들 구경한다.” 그 말씀 제일 많이 하시고 좋아하세요.
이장을 하면 이장 월급 조금 하고 농협에서 몇만 원 들어오거든요. 기름값 하면 사실 몇 푼 남진 않아요. 그래도 오며 가며 어르신들 드시고 싶으신 거 생각나면 과자 하나라도 사서 드리죠. 그러면 돈 함부로 쓴다고 어르신들이 억수루 싫어하세요. 손녀 돈 쓰는 거 같다고 엄청 싫어하세요. 근데 뭐라 하시면서도 잘 드신다 말예요. (웃음) 가면 다 드시고 없어요. (웃음)
사진. 금촌마을의 웃음보따리 하정이와 지훈이
“이장, 차 한 번만 태워 줘.” “뭐 좀 갖다 놔 줘.” 어르신들 댁에 들리면 가끔 부탁들을 하세요. 갔다 오면 애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세요. 저는 안 받으니까. 애들은 금방 뛰가고 없으니까. 마을에서 하하하 호호호 웃을 일이 별로 없잖아요. 애들 뛰어다니는 거 보면서 웃고 그러시죠. “이장 덕분에 웃는다.” 맨날 그러시죠. 왜냐면 이제 손녀들도 다 커서 잘 안 오거든요. “우리 손녀들 얼굴 본 지도 오래됐다.” 이러시는데요.
어르신들 진짜 속 마음은 통닭이 아니라 회!!
마을에 어르신들 모시고 하는 어버이날 행사가 있어요. 근데 어르신들이 안 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마을은 출장뷔페 불러 크게 했다고도 하고, 인근 마을도 차 대절해서 멀리 가서 회 먹고 왔다고도 하고요. 안 하겠다고 말씀은 하셨어도 마을 사시는 한 분이 어르신들께 뭐 드시고 싶냐고 물으니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 마을은 배달이 안 되니까 통닭도 어르신들 드시기 힘든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포장해와 주셔서 저희가 같이 먹었어요. 근데 나중에 듣고 알고 보니까 아니었던 거예요. 회를 말하고 싶었는데 비싸니까 미안해서 말씀을 못 하시고 그냥 통닭이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거죠.
저희 마을은 딱히 찬조금 같은 게 들어올 데도 없고 그래서 마을 자금이 없어요. 행사할 때 찬조금도 들어와야 좀 풍족하고 그럴 텐데요. 마을 인원수도 적은데다 한창 일하고 돈 버는 중년층이 한 명도 없으니 자금이 항상 부족한 실정이긴 하죠.
조용하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금촌마을에 살게 되어 좋다.
시골에 들어오니 너무 좋은 거예요. 조용하니 너무 좋아요. 그래서 정착하게 됐지요. 저희 마을은 공기 좋고 물 좋고요. 전형적인 시골. 개발되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가게 하나 없으니까요. 진짜 조용하거든요. 좋아요.
별도 잘 보여요. 마을에 가로등이 없어요. 그러니 엄청 잘 보이죠. 밤하늘의 별, 저희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비 온 다음 날은 구름이며 뭐며 엄청 좋죠. 또 애들이 자연이랑 같이 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요즘 애들은 올챙이며 개구리며 이런 거 직접 볼 일이 없잖아요. 우리 애들 보면 그냥 막 뛰어다니면서 놀고 벌레도 다 만지고 잡고 그래요. 시골에 살면서 그렇게 노는 모습이 좋아요.
사진. 호기심 많은 지훈이
그리고 황룡사라고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는데 새벽 5시, 아침 10시, 저녁 5시에 목탁 치며 염불을 하세요. 근데 그게 다 들려요. 처음에는 그냥 ‘들리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들으니 언제부턴가 심신 안정? 그런 게 되는 듯해요. 소음도 없으니까 엄청 또렷하게 들려요. 특히 새벽 5시는 더 조용하잖아요. 아무도 일 안 하는 시간이니까. 경운기 소리도 안 섞이고. 염불 소리 들리면 아, 5시구나! 마음이 평온해져요.
사진. 황룡사 전경
“시골살기 어떤가요? 애 키우며 살기 괜찮을까요?”
“엄마만 부지런하면 시골에서 살만합니다. 괜찮아요.”
저희 애가 하사랑 심리센터에서 상담도 지원받고 있는데 그거 하려면 매주 수요일은 제가 하루종일 운전은 해야 해요. 그래도 센터에서 아동 지원 발달도 체크 해주시고 심리상담도 놀이식으로 하고 좋은 얘기도 해주시고 한 번씩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하니까 아이가 재밌다고 좋아해요. 괜찮아요. 그런 것도 좋아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그런 걸 많이 알려주시고 지원해주세요. “어머니, 이런 거 괜찮아요,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애 둘 키우며 살다 보니, 시골에서 산다는 거 그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고 애들 키우기도 나쁘지 않아요. 운전만 한다면. 운전은 필수죠. 엄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요.
근데 도시 사람들이 시골살이를 고민할 때 제일 힘들어하는 게 배달 음식이 안 되는 거래요. 저도 생각도 못 했거든요. “배달 음식이 하나도 없잖아.” 친구들이 딱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코로나 때 우리 친구들이 시골에 사는 저를 제일 부러워했어요. 도시 아파트 사는 애들은 집안에서만 있었지만 우리는 마당까지 나와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걸 엄청 부러워하더라구요.
아이들 교육 문제, 여전한 고민이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
장점도 많다.
아이들이 북천 유치원, 적량의 호산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근데 북천까지 어린이집 차가 안 들어와서 제가 계속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니 정신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애 키우기가 좀 열악하다 할 수 있죠. 아이들 교육문제는 아직도 고민이 되죠.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나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또 반대로 생각해보니까, 한 학교에 외국인 선생님 한 분은 계시고 학생 수가 소수이니 외국어 문제도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 되더라구요.
그리고 유치원 보내고 나서 느낀 건데, 소수 인원으로 많은 활동을 진행하세요. 또 돈도 안 들어요. 어린이집 다닐 때도 대개 좋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도시락 한번을 안 싸가고 체험활동을 가도 돈도 따로 안 받고 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북천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가니까 더 좋은 거예요. 5살부터 7살까지 10명 되거든요. 매주 활동을 해요. 다양해요.
초등학교는 북천초등학교에 보내려고요. 주변 분을 보니 중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한다사중학교에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 생각했죠. 다만 학원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 애는 하고 싶은 게 억수루 많아요. 피아노도, 운동도 하고 싶어 하죠. 아직까진 교통편이 불편하니 제가 부지런히 다 데리고 다녀야 해서 좀 힘들긴 해요.
훗날, 최장 말뚝 이장으로 또 한 번 하동 기네스북에?
사진. 말뚝 이장이라 불리우는 박나리 이장님
저희 마을 어르신들도 처음엔 좀 있다가 금방 갈 줄 알았대요. 그런데 애도 둘이나 낳고 이래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이장도 해보라는 소리도 하시는 거죠. 또 저를 보시는 분마다 말뚝 이장이라고 하세요. 그게 처음엔 무슨 말인가 몰랐거든요. 제가 아직 많이 어리니 오래 할 것 같다고, 이장 일 오래오래 하라고 그리 부르시는 거였어요. (웃음)
인구가 적어서 혜택을 잘 받지 못했던 금촌마을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대외적으로 좀 주목을 받고, 마을이 조금은 더 어르신들 지내기 편한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취재에 응하게 됐다는 박나리 이장님. 오늘도 하하호호 웃음 바람 실어 날리며 금촌마을에서의 하루를 부지런히 열어가고 있을 박나리 이장님. 그 바람이 이뤄지기를.
글쓴 사람. 팀 옥동
간소하고 간결한 삶을 지향하는 하동의 옥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늙고 싶은 하동의 동이.
두 사람이 천천히 걷고 때론 달리며 자주 멈춰서서 발견하는 하동의 작고 깊은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