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재미있는 건 다 해봐야죠" 우리 동네 청년들 ① : 정주하는 노마드, 김지은 글 / 자야 
함양에 산 지 14개월 된 김지은 씨.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통해 지역에 서서히 뿌리내리는 중이다. 목소리가 차지고 발음이 또렷하다.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된다. 몇 마디 나누어 보면 명랑한 대학생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첫인상’이다. 두세 번 더 만나면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선해 보이는 얼굴 안에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타인의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담아내는 열린 귀를 갖고 있다는 것.
이 정도가 김지은,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왔다. 전에 뭘 했다더라, 지금 무슨 모임을 한다더라, 올해 들어 어떤 공모사업에 선정됐다더라, 같은 소문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으로 반응해도 그만일 내용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김지은이라니 호기심이 동했다. 인터뷰를 핑계로 그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할까. 함양, 얼결에 땅 사고 집 얻어 들어온 곳 “이름은 김지은 맞고요, 나이는 올해로 마흔이에요. 함양에서는 45세까지가 청년인 거 아시죠?(웃음) 태어난 곳은 부산이지만 대구에서도 좀 살았고 중학교 때부터 죽 서울에서 지내다가 작년 2월에 짝꿍인 남편과 함양으로 이사 왔어요.” 한 2년 전만 해도 함양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다. 원래 마음을 둔 지역은 하동 악양이었다. 평사리 너른 들이 좋아서 자주 다니다 보니 집 하나 얻어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는데 맞춤한 곳을 찾지 못해 지리산 인근으로 눈을 돌렸다고. 그때부터 산청, 함양 등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나 ‘그래 여기야’ 할 만한 데가 쉽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땅이 하나 있는데 보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부동산 사장과 동행해 함양군 백전면 깊숙한 동네로 들어갔다. “땅에 대해서는 1도 몰랐지만” 어쨌든 주변 풍광은 근사했고, 그에 반해버린 부부는 바로 계약을 하고 만다. “그때 생각은, 나중에 여기 게스트하우스 짓고 느긋하게 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저도 짝꿍도 여행사에서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그런 삶에 관심이 많거든요. 또 둘 다 인도 라다크에 빠져 있어서 집도 그런 느낌으로 짓자고 결정을 봤어요. 그러다가 아예 라다크 가서 일 년 정도 살다 오면 좋겠다 싶어 떠날 준비까지 한 거예요. 봉사활동 하는 틈틈이 건축일도 배우자 해서 라다크에 계신 스님이랑 엔지오와도 얘기를 다 끝낸 상태였는데….” 
지은 씨 부부가 게스트하우스 짓고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어 했던 함양 백전면 구산리 땅. (사진제공 김지은/ 이하 동일) 하필이면 그때 코로나가 세계를 덮쳤다. 라다크행은 무산되었고 집은 이미 처분된 상태라 머물 곳이 없었다. 부부는 지은 씨 어머니 집에 임시로 짐을 부린 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걸었다. 여름 한 철 동안은 고성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봐주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정처 없이 떠돈 그 시간은 분명 행복했지만, 엄마 집에 돌아오고 나니 앞날이 막막했다. 내 자리가 아닌 공간에 발 뻗고 있는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도 견디기 힘들었다. “빨리 엄마 집을 떠나야지 하던 차에 어쩌다가 함양군 행복주택에 관한 공고를 보게 된 거예요.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죠. 우린 무조건 여기로 가야 해!(웃음)” 라다크는 못 갔어도 여기서 재미나게 당시 결혼 일 년 차 신혼부부였던 그들은 행복주택아파트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거처 말고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었지만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함양에 땅이 있으니 내려가 살면서 뭐라도 시작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 하루하루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은 씨는 이삿짐을 풀자마자 군청으로 공공근로를 다녔고, 남편 역시 아르바이트로 바빴다. 사는 곳이 읍이다 보니 백전면까지 오고 가며 그 땅을 활용하거나 관리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들은 땅을 부동산에 내놓는다. ‘라다크풍’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짓겠다는 꿈도 잠시 뒤로 미룬다. 대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며 재미를 추구하기로 선택한 것. 천성이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지은 씨는 이런저런 작은 강좌나 배움의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러자 거기서 만난 이들과 연결되며 또 다른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봄에 ‘지리산둘레길 마을문화예술활동’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나무 도마 만들던 사람들과 하게 된 게 희곡 읽는 모임이에요. 작년까진 셋이서 했는데 올해는 다섯으로 늘었죠.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청년마을 사업’도 수제맥주 만들기에 참여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때 만난 한 친구가 ‘언니, 이런 거 같이 해볼래요?’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서 열연 중인 김지은 씨.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희곡 읽기 모임을 만들어 함양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지은 씨는 예고를 나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대화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연극 부심’을 드러내다 만들어진 게 희곡 읽기 모임 <북적북적>이다. 이것이 생활에 잔잔한 기쁨과 활력을 불어넣는 동아리 활동이라면, 행정안전부 지원을 받아 추진 중인 청년마을 사업은 말 그대로 ‘사업’이다. 청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창업 기회를 주고 지역 내 주거 및 활동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를 지닌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예산 규모도 크다. 사람에 따라서는 중압감을 적잖이 느낄 법도 한데 그는 어떨까? “열심히 준비해서 응모하고도 처음엔 감이 잘 안 왔어요. 일 년 예산이 2억이라는 걸 알고도 음, 2억을 주는구나, 뭐 그 정도?(웃음) 얼마 전에 선정업체 발표 나고 진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그제야 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되는 게 혼자가 아니니까요. 여섯 명이 마음 맞춰 재미있게 하면 잘 될 거라 생각해요.” 할매와 청년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면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을 맡은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에는 나이와 살아온 내력과 해온 일이 다 다른 여섯 명의 개성 강한 ‘언니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귀농 귀촌해 들어왔지만 연차가 달라 지역에 새로 정착하려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오래 살아온 선주민들의 정서는 어떠한지 잘 아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얼개를 짜고 내용을 채워 만든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군마다 도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달살이’ 이런 거 진짜 많이 하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참가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 이 지역을 알아가고 지역민과 관계를 만들어가기보다 그냥 그 시간에 관광 잘하고 떠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시골 할머니랑 도시 청년을 직접 연결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어요. 둘이 짝이 되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자는 거죠. 일손 돕고 말동무도 해주는 청년이 곁에 생기면 할머니가 든든할 거 아녜요. 또 청년은 농사나 음식에 대한 할머니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 좋고요. 특히 우리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기록하고 그것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작업에 힘을 쏟으려 해요. 그게 콘텐츠가 되면 나중에 음식을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창업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으로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를 시작한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 청년마을 사업팀 내에서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지은 씨는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안녕, 할매’ 프로그램을 알림으로써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함양에서 2주간 “할매들과 교류하”며 그분들의 손맛이 담긴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다. 5월에 모집해서 6월 중순부터 시작할 예정이라 요즘 ‘언니들’은 전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누구는 할머니들 만나러 다니고, 누구는 참가자들 숙소로 쓸 건물 공사가 잘 마무리되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온·오프라인 인맥을 총동원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도 물론 챙겨야 할 일이다. 청년마을 사업은 3년 기한이지만 일 년 단위로 평가해서 다음 해의 지원 여부가 결정되기에 그에 따른 부담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터다. “그렇다고 그걸 너무 의식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가 잘해서 지자체인 함양군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그래서 3년이 아니라 그 후에도 뭔가 일이 계속되어 함양이 살기 괜찮은 지역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어디서 어떻게 살든 즐겁고 자유롭게 공부만 하다가 중3 때 돌연 연극으로 진로를 틀며 생애 처음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다는 김지은은,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배우가 아닌 여행자로 세계를 쏘다니면서 자기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열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십 년 후. 뜨거운 김이 빠져나간 마음자리엔 느릿느릿 노닥거리며 살고 싶다는 낯선 욕망이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시골행을 택했지만 정착한 곳은 애초에 원하던 지역이 아닌 함양이고, 여기서 그는 노닥거리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활발하게 머리를 쓰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게 바로 삶인 듯.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가운데서도 그가 생에서 포기할 수 없고 놓치기 싫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 “즐거움이요. 어디서 뭘 하든 즐거우면 좋겠어요. 하나 더 바란다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거고요. 또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최소한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어요. 스마트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런 거 묻지 않고 혼자 해내는.(웃음) 그러면 삶이 계속 재밌고 유쾌하지 않을까요?” 
라다크 여행 중 찍은 사진. 노마드가 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갈망하는 만큼, 김지은 씨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하루하루 수고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일상 또한 사랑한다. 바쁘긴 하지만 즐거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지은 씨가 요즘 자기 삶에 매기는 만족지수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 활동이 일단락되는 11월쯤에는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꼭 라다크가 아니어도 괜찮다. 신발 끈을 느슨히 하고 서너 달 길 위를 쏘다니다 돌아오면 내가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던 자리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올 테니까. 하찮아 보이는 일상에 사실은 생의 비밀과 보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이 큰 기쁨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에겐 정주해 살아가는 지금 하루하루가 충분히 감사하다. *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 https://blog.naver.com/thanks_halmae : https://instagram.com/thanks_halmae |
"세상에 재미있는 건 다 해봐야죠"
우리 동네 청년들 ① : 정주하는 노마드, 김지은
글 / 자야
함양에 산 지 14개월 된 김지은 씨.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통해 지역에 서서히 뿌리내리는 중이다.
목소리가 차지고 발음이 또렷하다.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된다. 몇 마디 나누어 보면 명랑한 대학생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첫인상’이다. 두세 번 더 만나면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선해 보이는 얼굴 안에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타인의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담아내는 열린 귀를 갖고 있다는 것.
이 정도가 김지은,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왔다. 전에 뭘 했다더라, 지금 무슨 모임을 한다더라, 올해 들어 어떤 공모사업에 선정됐다더라, 같은 소문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으로 반응해도 그만일 내용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김지은이라니 호기심이 동했다. 인터뷰를 핑계로 그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할까.
함양, 얼결에 땅 사고 집 얻어 들어온 곳
“이름은 김지은 맞고요, 나이는 올해로 마흔이에요. 함양에서는 45세까지가 청년인 거 아시죠?(웃음) 태어난 곳은 부산이지만 대구에서도 좀 살았고 중학교 때부터 죽 서울에서 지내다가 작년 2월에 짝꿍인 남편과 함양으로 이사 왔어요.”
한 2년 전만 해도 함양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다. 원래 마음을 둔 지역은 하동 악양이었다. 평사리 너른 들이 좋아서 자주 다니다 보니 집 하나 얻어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는데 맞춤한 곳을 찾지 못해 지리산 인근으로 눈을 돌렸다고. 그때부터 산청, 함양 등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나 ‘그래 여기야’ 할 만한 데가 쉽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땅이 하나 있는데 보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부동산 사장과 동행해 함양군 백전면 깊숙한 동네로 들어갔다. “땅에 대해서는 1도 몰랐지만” 어쨌든 주변 풍광은 근사했고, 그에 반해버린 부부는 바로 계약을 하고 만다.
“그때 생각은, 나중에 여기 게스트하우스 짓고 느긋하게 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저도 짝꿍도 여행사에서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그런 삶에 관심이 많거든요. 또 둘 다 인도 라다크에 빠져 있어서 집도 그런 느낌으로 짓자고 결정을 봤어요. 그러다가 아예 라다크 가서 일 년 정도 살다 오면 좋겠다 싶어 떠날 준비까지 한 거예요. 봉사활동 하는 틈틈이 건축일도 배우자 해서 라다크에 계신 스님이랑 엔지오와도 얘기를 다 끝낸 상태였는데….”
지은 씨 부부가 게스트하우스 짓고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어 했던 함양 백전면 구산리 땅. (사진제공 김지은/ 이하 동일)
하필이면 그때 코로나가 세계를 덮쳤다. 라다크행은 무산되었고 집은 이미 처분된 상태라 머물 곳이 없었다. 부부는 지은 씨 어머니 집에 임시로 짐을 부린 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걸었다. 여름 한 철 동안은 고성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봐주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정처 없이 떠돈 그 시간은 분명 행복했지만, 엄마 집에 돌아오고 나니 앞날이 막막했다. 내 자리가 아닌 공간에 발 뻗고 있는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도 견디기 힘들었다.
“빨리 엄마 집을 떠나야지 하던 차에 어쩌다가 함양군 행복주택에 관한 공고를 보게 된 거예요.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죠. 우린 무조건 여기로 가야 해!(웃음)”
라다크는 못 갔어도 여기서 재미나게
당시 결혼 일 년 차 신혼부부였던 그들은 행복주택아파트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거처 말고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었지만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함양에 땅이 있으니 내려가 살면서 뭐라도 시작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 하루하루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은 씨는 이삿짐을 풀자마자 군청으로 공공근로를 다녔고, 남편 역시 아르바이트로 바빴다. 사는 곳이 읍이다 보니 백전면까지 오고 가며 그 땅을 활용하거나 관리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들은 땅을 부동산에 내놓는다. ‘라다크풍’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짓겠다는 꿈도 잠시 뒤로 미룬다. 대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며 재미를 추구하기로 선택한 것. 천성이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지은 씨는 이런저런 작은 강좌나 배움의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러자 거기서 만난 이들과 연결되며 또 다른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봄에 ‘지리산둘레길 마을문화예술활동’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나무 도마 만들던 사람들과 하게 된 게 희곡 읽는 모임이에요. 작년까진 셋이서 했는데 올해는 다섯으로 늘었죠.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청년마을 사업’도 수제맥주 만들기에 참여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때 만난 한 친구가 ‘언니, 이런 거 같이 해볼래요?’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서 열연 중인 김지은 씨.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희곡 읽기 모임을 만들어 함양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지은 씨는 예고를 나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대화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연극 부심’을 드러내다 만들어진 게 희곡 읽기 모임 <북적북적>이다. 이것이 생활에 잔잔한 기쁨과 활력을 불어넣는 동아리 활동이라면, 행정안전부 지원을 받아 추진 중인 청년마을 사업은 말 그대로 ‘사업’이다. 청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창업 기회를 주고 지역 내 주거 및 활동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를 지닌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예산 규모도 크다. 사람에 따라서는 중압감을 적잖이 느낄 법도 한데 그는 어떨까?
“열심히 준비해서 응모하고도 처음엔 감이 잘 안 왔어요. 일 년 예산이 2억이라는 걸 알고도 음, 2억을 주는구나, 뭐 그 정도?(웃음) 얼마 전에 선정업체 발표 나고 진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그제야 좀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되는 게 혼자가 아니니까요. 여섯 명이 마음 맞춰 재미있게 하면 잘 될 거라 생각해요.”
할매와 청년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면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을 맡은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에는 나이와 살아온 내력과 해온 일이 다 다른 여섯 명의 개성 강한 ‘언니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귀농 귀촌해 들어왔지만 연차가 달라 지역에 새로 정착하려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오래 살아온 선주민들의 정서는 어떠한지 잘 아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얼개를 짜고 내용을 채워 만든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군마다 도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달살이’ 이런 거 진짜 많이 하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참가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 이 지역을 알아가고 지역민과 관계를 만들어가기보다 그냥 그 시간에 관광 잘하고 떠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시골 할머니랑 도시 청년을 직접 연결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어요. 둘이 짝이 되어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자는 거죠. 일손 돕고 말동무도 해주는 청년이 곁에 생기면 할머니가 든든할 거 아녜요. 또 청년은 농사나 음식에 대한 할머니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 좋고요. 특히 우리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기록하고 그것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작업에 힘을 쏟으려 해요. 그게 콘텐츠가 되면 나중에 음식을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창업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으로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를 시작한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
청년마을 사업팀 내에서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지은 씨는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안녕, 할매’ 프로그램을 알림으로써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함양에서 2주간 “할매들과 교류하”며 그분들의 손맛이 담긴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다.
5월에 모집해서 6월 중순부터 시작할 예정이라 요즘 ‘언니들’은 전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누구는 할머니들 만나러 다니고, 누구는 참가자들 숙소로 쓸 건물 공사가 잘 마무리되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온·오프라인 인맥을 총동원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도 물론 챙겨야 할 일이다. 청년마을 사업은 3년 기한이지만 일 년 단위로 평가해서 다음 해의 지원 여부가 결정되기에 그에 따른 부담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터다.
“그렇다고 그걸 너무 의식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가 잘해서 지자체인 함양군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그래서 3년이 아니라 그 후에도 뭔가 일이 계속되어 함양이 살기 괜찮은 지역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어디서 어떻게 살든 즐겁고 자유롭게
공부만 하다가 중3 때 돌연 연극으로 진로를 틀며 생애 처음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다는 김지은은,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배우가 아닌 여행자로 세계를 쏘다니면서 자기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열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십 년 후. 뜨거운 김이 빠져나간 마음자리엔 느릿느릿 노닥거리며 살고 싶다는 낯선 욕망이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시골행을 택했지만 정착한 곳은 애초에 원하던 지역이 아닌 함양이고, 여기서 그는 노닥거리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활발하게 머리를 쓰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게 바로 삶인 듯.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가운데서도 그가 생에서 포기할 수 없고 놓치기 싫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
“즐거움이요. 어디서 뭘 하든 즐거우면 좋겠어요. 하나 더 바란다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거고요. 또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최소한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어요. 스마트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런 거 묻지 않고 혼자 해내는.(웃음) 그러면 삶이 계속 재밌고 유쾌하지 않을까요?”
라다크 여행 중 찍은 사진. 노마드가 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갈망하는 만큼, 김지은 씨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하루하루 수고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일상 또한 사랑한다.
바쁘긴 하지만 즐거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지은 씨가 요즘 자기 삶에 매기는 만족지수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 활동이 일단락되는 11월쯤에는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꼭 라다크가 아니어도 괜찮다. 신발 끈을 느슨히 하고 서너 달 길 위를 쏘다니다 돌아오면 내가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던 자리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올 테니까. 하찮아 보이는 일상에 사실은 생의 비밀과 보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이 큰 기쁨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에겐 정주해 살아가는 지금 하루하루가 충분히 감사하다.
* 함양군 청년마을 사업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 https://blog.naver.com/thanks_halmae
: https://instagram.com/thanks_halmae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