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의 ‘한걸음’들이 언젠가 산을 이룰 것 변화의 소리 ③ : 지역 ‘산들강’ 알리는 일에 나선 이영애 장학사 글 / 자야 
함양의 자연환경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이영애 장학사. 올해 함양교육지원청에서 환경 담당자가 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_김한범) 흔히들 말하는 이 지역 토박이는 아니다. 심지어 주민도 아니다. ‘함양 사람’이 볼 때 그는 주 5일 ‘여기’서 일하다 주말이면 가족이 기다리는 ‘저기’로 돌아가는 외지인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함양의 산과 들이, 그 높고 낮은 땅들 사이로 흐르는 강이, 그리고 산들강 주위에 뻗어 있는 수백 갈래의 길들이 궁금하여 직접 행장을 꾸려 두 발로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다녔다. 혼자서, 때로는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그러다 작년에는 함양의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생태환경특강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인 관심사를 ‘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아예 6월 한 달을 ‘함양환경교육주간’으로 선포하고 함양의 산들강에 관한 특강과 포럼을 준비하는 등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자신의 일터에서 가장 원하고 바라던 활동을 하게 되어 하루하루가 새롭다는 사람, 함양교육지원청 이영애 장학사를 만나본다. 일단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교사로 있을 때부터 환경모임을 해왔어요. 그러다 2018년에 장학사로 함양에 왔는데 초반에는 다른 일이 많아 엄두를 못 내다가 작년에 기회가 되어서 강좌를 연 거예요. 올해는 마침내 제가 환경 파트를 담당하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손을 댈 수 있게 되었지요.” 함양교육지원청의 환경 담당자로서 올해 그가 준비한 가장 큰 사업은 ‘궁금해, 함양 산들강’이다. 이는 작년에 ‘지리산의 숨비소리, 들리시나요?’란 제목으로 개최했던 생태환경특강과 일맥상통하나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이영애 장학사가 작년에 개최했던 생태환경특강의 한 장면. (사진제공_이영애 / 이하 동일) 예를 들어 ‘궁금해, 함양강’은 함양의 주요 하천인 임천과 위천을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 물길 따라 걸어 다니며 하천 생태계를 두루 살펴보는 장기프로젝트다. 최근 함양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궁금해, 함양산’ 역시 일 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여럿이 모여 산행을 하는데, 먼저 함양의 백두대간을 걷고 그다음엔 덕유산에 잇닿아 있는 산들과 지리산에 연결된 산들을 차례로 걷는다. 또 대봉산처럼 개발이란 명목 아래 통째로 파헤쳐진, 그리하여 원래 모습이 어떠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잃어버린 산’도 찾아가 그 실태를 꼼꼼히 들여다볼 예정이라 한다. “함양은 워낙 산이 많고 좋잖아요.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세 그루나 되고 강에도 여울마자 같은 멸종위기 어류들이 꽤 살아요. 그런데 정작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본래 모습이 훼손되고 망가져도 모르고 지나치기 예사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궁금해 시리즈를 기획했어요.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일단 ‘아는’ 데서 시작하자는 거지요.” ‘청도’가 키워준 감수성이 나의 힘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이영애 장학사의 오랜 관심과 애정의 뿌리를 파고들면 경북 청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가닿는다. ‘과수원집’ 8남매 중 막내딸로 자란 그이는 비슬산을 마주한 너른 사과밭을 놀이터 삼아 “개구지게” 쏘다녔고, 놀다 지치면 밭 너머에 흐르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땀을 식혔다. 이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그는 일찍이 산과 강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나아가 그 아름다움이 인공적인 기술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연이 지닌 색깔의 조화라 할까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산에 가득한 초록 나무들과 분홍 꽃들은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왜 내가 그림으로 그려서 색칠해 놓으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그게 늘 신기하고 감탄스러웠어요.” 노는 게 제일이었던 개구쟁이 꼬마는 어느새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아이로 성장한다. 작가들이 빚어낸 세계는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했으나 소녀 영애는 왠지 그에 끌렸다. 파괴된 환경에서 해괴망측한 생명체들이 출몰하는 미래 세계가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뛰어들어 헤엄치는 강물은 여전히 차고 맑았지만, 그의 머릿속엔 곧 오염돼 썩어갈 물에 대한 걱정과 슬픔이 차올랐다. “어릴 때부터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유별나긴 했던 것 같아요. 90년대 초에 교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입문했는데 그때도 아이들과 환경 조사를 다녔어요. 결혼하고 애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 빼고는 모임이든 공부든 환경과 관련해 뭐라도 조금씩 했었지요. 텃밭 가꾸는 것도 좋아해서 거제와 통영 등 가는 곳마다 채소를 직접 키워 먹었어요. 깨끗한 농산물을 먹는다는 만족감도 물론 컸지만, 생명이 싹터서 자라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가 감동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데도 텃밭만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1991년 10월에 ‘첫’ 제자들과 찍은 사진. 왼쪽 맨 뒤에서 웃고 있는 이가 이영애 교사다. 우리 모두의 삶이 건강하려면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이영애 교사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창원과 김해 같은 대도시 학교로 옮겨 다니면서다. 그 시절에 유독 몸이 아프고 병치레가 잦았다. 2014년에는 척추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하기도 했다. 그이가 ‘지리산행복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건 수술 후 웬만큼 몸이 회복되고부터다. 지리산권 5개 지역을 잇는 길을 몇 년에 걸쳐 걷고 또 걸었으니, 함양과의 인연은 어쩌면 그때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둘레길은 2015년부터 걸었고, 함양에 온 건 2018년 9월이에요. 와서 보니까 주변이 다 내가 걷던 길이더라고요. 함양에 있으면서 몸이 훨씬 건강해졌는데 첫째는 공기가 좋아서 그런 것 같고요, 둘째는 민원이 없다는 거.(웃음) 교감할 때는 민원전화에 엄청 시달렸거든요. 전화해서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고 모가지를 치겠다는 둥 욕을 해대는 이가 많았어요.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상담도 해야 했는데,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이영애 장학사의 말을 빌리면, 도시는 어른이나 아이나 “몸 아프고 마음 가난한” 이들이 많은 곳이다. 그 이유를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서 나온 결과이리라. 다만 그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환경’이 나빠지는 현실이 사람의 성장 과정과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시골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따지고 보면 오십 보 백 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시골 마을엔 정작 사람이 없어 ‘소멸’이 우려되지 않는가. 게다가 주어진 자연환경이 훌륭하다 해도 개발의 광풍은 시골을 피해가지 않는다. 아니, 도시와 비교해 작은 지역은 환경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시민 세력의 힘이 약하기에 오히려 더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제가 2019년에 마을교육공동체 일을 맡았는데 그게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 각 마을과 학교마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걸 보면 참 뿌듯하고 기쁘죠. 반면에 환경 관련해서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해 늘 아쉬웠어요. 함양이 아름답긴 하지만 오염되고 파헤쳐진 곳도 많거든요. 대봉산은 물론이고 오도재도 아름드리나무를 다 베어내고 단풍나무를 심었잖아요. 원래 오도재에는 꿩의 바람꽃, 괭이눈, 피나물 등 야생화가 많았는데 올해 봄에 갔더니 안 보여서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천년의 숲으로 유명한 상림도 과거와 비교해 수종이 많이 줄었다고 하고요. 하천 사정도 썩 좋진 않아요. 운봉 쪽 축사 오수가 그대로 함양 임천으로 흘러들고 있는데도 감시나 제재가 전혀 없어 그 피해가 심각하답니다.” 
함양이 지리산을 비롯해 아름다운 명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알고 보면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오염된 곳도 많다”고 이영애 장학사는 말한다. 바람이 분다, 작은 변화가 시작되다 주민들 스스로 자기 삶의 조건과 환경에 깨어 있지 않는 한 이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질 거라는 점은 불 보듯 훤하다. 이영애 장학사가 2년 연속 함양의 자연환경에 대한 강좌를 개설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문제가 있음을 알리면 몇 명이라도 관심을 가질 거라 믿었고, 그 소수의 작은 날갯짓이 더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바람이 되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함양교육지원청이 올해 들어 시작한 ‘동아리 지원 사업’을 통해 주민, 교직원, 학생들의 환경 동아리가 여럿 만들어진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수달아빠로 유명한 최상두 샘이 ‘환경사랑’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함양초에 계시는 문경희 샘은 교직원 환경 동아리를 꾸려서 상림에 대해 공부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겠다 하시고요. 또 학생들이 만든 환경 관련 동아리도 몇 개 된다고 하네요. 지금은 시작 단계라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런 모임이 있다는 자체가 지역의 미래고 희망 아닐까요? 이 동아리들이 주축이 되어 함양 지역 내 환경을 감시하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는 시민단체가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웃음)” 궁금해, 함양산을 진행하면서 전보다 산행을 자주 하는 건 사실이나 여전히 그이는 둘레길 마니아임을 고백한다. 정상 찍고 내려오면 끝나는 게 아닌, 계속 이어져 순환하는 것이 둘레길의 매력이라고. 더욱이 그 길 위에서는 작은 생명이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옆에 누가 있든 쉽게 친구가 된다.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하는 모든 존재에 몸과 마음이 열린다 할까. “참 신기한 게, 걸어만 다녀도 그 지역과 거기 사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환경 교육에는 걷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 강좌와 포럼에 참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 6월 행사에 많은 분이 오시면 좋겠습니다!(웃음)” 내 걸음에 충실하기, 주변 걸음들 살펴보기 한걸음이 수천, 수만 걸음이 되도록 꾸준히 내디딘 덕분에 남들은 모르는 둘레길의 속살까지 알게 된 이영애 장학사는, 이제 함양의 산들강으로 대상을 넓혀 또 다른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이유는 그럴 때라야 지속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이미 경험상 안다. 무수한 이들의 한걸음‘들’이 쌓이고 쌓여 언덕이 되고 큰 산을 이루면, 언젠가는 집단의 앎이 삶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다만 오늘 몫의 ‘내’ 걸음에 충실하고자 한다. 종종 가만히 멈춰서 ‘다른’ 이들의 걸음을 바라봐주고 살피려 한다. 아직 출발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손짓도 해보고, 너무 빨리 가는 이에게는 좀 쉬었다 가라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다. 비록 온전한 함양 사람은 아닐지라도 함양을 근거지로 한 그의 삶은 이렇게나 신나고 보람차다. 
둘레길을 걸으며 한 걸음씩 꾸준히 내딛는 것의 힘을 경험한 이영애 장학사는, 이제 함양의 산들강으로 대상을 넓혀 또 다른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
여럿의 ‘한걸음’들이 언젠가 산을 이룰 것
변화의 소리 ③ : 지역 ‘산들강’ 알리는 일에 나선 이영애 장학사
글 / 자야
함양의 자연환경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이영애 장학사. 올해 함양교육지원청에서 환경 담당자가 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_김한범)
흔히들 말하는 이 지역 토박이는 아니다. 심지어 주민도 아니다. ‘함양 사람’이 볼 때 그는 주 5일 ‘여기’서 일하다 주말이면 가족이 기다리는 ‘저기’로 돌아가는 외지인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함양의 산과 들이, 그 높고 낮은 땅들 사이로 흐르는 강이, 그리고 산들강 주위에 뻗어 있는 수백 갈래의 길들이 궁금하여 직접 행장을 꾸려 두 발로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다녔다. 혼자서, 때로는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그러다 작년에는 함양의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생태환경특강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인 관심사를 ‘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아예 6월 한 달을 ‘함양환경교육주간’으로 선포하고 함양의 산들강에 관한 특강과 포럼을 준비하는 등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자신의 일터에서 가장 원하고 바라던 활동을 하게 되어 하루하루가 새롭다는 사람, 함양교육지원청 이영애 장학사를 만나본다.
일단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교사로 있을 때부터 환경모임을 해왔어요. 그러다 2018년에 장학사로 함양에 왔는데 초반에는 다른 일이 많아 엄두를 못 내다가 작년에 기회가 되어서 강좌를 연 거예요. 올해는 마침내 제가 환경 파트를 담당하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손을 댈 수 있게 되었지요.”
함양교육지원청의 환경 담당자로서 올해 그가 준비한 가장 큰 사업은 ‘궁금해, 함양 산들강’이다. 이는 작년에 ‘지리산의 숨비소리, 들리시나요?’란 제목으로 개최했던 생태환경특강과 일맥상통하나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이영애 장학사가 작년에 개최했던 생태환경특강의 한 장면. (사진제공_이영애 / 이하 동일)
예를 들어 ‘궁금해, 함양강’은 함양의 주요 하천인 임천과 위천을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 물길 따라 걸어 다니며 하천 생태계를 두루 살펴보는 장기프로젝트다. 최근 함양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궁금해, 함양산’ 역시 일 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여럿이 모여 산행을 하는데, 먼저 함양의 백두대간을 걷고 그다음엔 덕유산에 잇닿아 있는 산들과 지리산에 연결된 산들을 차례로 걷는다. 또 대봉산처럼 개발이란 명목 아래 통째로 파헤쳐진, 그리하여 원래 모습이 어떠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잃어버린 산’도 찾아가 그 실태를 꼼꼼히 들여다볼 예정이라 한다.
“함양은 워낙 산이 많고 좋잖아요.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세 그루나 되고 강에도 여울마자 같은 멸종위기 어류들이 꽤 살아요. 그런데 정작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본래 모습이 훼손되고 망가져도 모르고 지나치기 예사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궁금해 시리즈를 기획했어요.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일단 ‘아는’ 데서 시작하자는 거지요.”
‘청도’가 키워준 감수성이 나의 힘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이영애 장학사의 오랜 관심과 애정의 뿌리를 파고들면 경북 청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가닿는다. ‘과수원집’ 8남매 중 막내딸로 자란 그이는 비슬산을 마주한 너른 사과밭을 놀이터 삼아 “개구지게” 쏘다녔고, 놀다 지치면 밭 너머에 흐르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땀을 식혔다. 이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그는 일찍이 산과 강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나아가 그 아름다움이 인공적인 기술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연이 지닌 색깔의 조화라 할까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산에 가득한 초록 나무들과 분홍 꽃들은 저렇게 잘 어울리는데 왜 내가 그림으로 그려서 색칠해 놓으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그게 늘 신기하고 감탄스러웠어요.”
노는 게 제일이었던 개구쟁이 꼬마는 어느새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아이로 성장한다. 작가들이 빚어낸 세계는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했으나 소녀 영애는 왠지 그에 끌렸다. 파괴된 환경에서 해괴망측한 생명체들이 출몰하는 미래 세계가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뛰어들어 헤엄치는 강물은 여전히 차고 맑았지만, 그의 머릿속엔 곧 오염돼 썩어갈 물에 대한 걱정과 슬픔이 차올랐다.
“어릴 때부터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유별나긴 했던 것 같아요. 90년대 초에 교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입문했는데 그때도 아이들과 환경 조사를 다녔어요. 결혼하고 애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 빼고는 모임이든 공부든 환경과 관련해 뭐라도 조금씩 했었지요. 텃밭 가꾸는 것도 좋아해서 거제와 통영 등 가는 곳마다 채소를 직접 키워 먹었어요. 깨끗한 농산물을 먹는다는 만족감도 물론 컸지만, 생명이 싹터서 자라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가 감동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데도 텃밭만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1991년 10월에 ‘첫’ 제자들과 찍은 사진. 왼쪽 맨 뒤에서 웃고 있는 이가 이영애 교사다.
우리 모두의 삶이 건강하려면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이영애 교사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창원과 김해 같은 대도시 학교로 옮겨 다니면서다. 그 시절에 유독 몸이 아프고 병치레가 잦았다. 2014년에는 척추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하기도 했다. 그이가 ‘지리산행복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건 수술 후 웬만큼 몸이 회복되고부터다. 지리산권 5개 지역을 잇는 길을 몇 년에 걸쳐 걷고 또 걸었으니, 함양과의 인연은 어쩌면 그때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둘레길은 2015년부터 걸었고, 함양에 온 건 2018년 9월이에요. 와서 보니까 주변이 다 내가 걷던 길이더라고요. 함양에 있으면서 몸이 훨씬 건강해졌는데 첫째는 공기가 좋아서 그런 것 같고요, 둘째는 민원이 없다는 거.(웃음) 교감할 때는 민원전화에 엄청 시달렸거든요. 전화해서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고 모가지를 치겠다는 둥 욕을 해대는 이가 많았어요.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상담도 해야 했는데,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이영애 장학사의 말을 빌리면, 도시는 어른이나 아이나 “몸 아프고 마음 가난한” 이들이 많은 곳이다. 그 이유를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서 나온 결과이리라. 다만 그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환경’이 나빠지는 현실이 사람의 성장 과정과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시골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따지고 보면 오십 보 백 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시골 마을엔 정작 사람이 없어 ‘소멸’이 우려되지 않는가. 게다가 주어진 자연환경이 훌륭하다 해도 개발의 광풍은 시골을 피해가지 않는다. 아니, 도시와 비교해 작은 지역은 환경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시민 세력의 힘이 약하기에 오히려 더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제가 2019년에 마을교육공동체 일을 맡았는데 그게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 각 마을과 학교마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걸 보면 참 뿌듯하고 기쁘죠. 반면에 환경 관련해서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해 늘 아쉬웠어요. 함양이 아름답긴 하지만 오염되고 파헤쳐진 곳도 많거든요. 대봉산은 물론이고 오도재도 아름드리나무를 다 베어내고 단풍나무를 심었잖아요. 원래 오도재에는 꿩의 바람꽃, 괭이눈, 피나물 등 야생화가 많았는데 올해 봄에 갔더니 안 보여서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천년의 숲으로 유명한 상림도 과거와 비교해 수종이 많이 줄었다고 하고요. 하천 사정도 썩 좋진 않아요. 운봉 쪽 축사 오수가 그대로 함양 임천으로 흘러들고 있는데도 감시나 제재가 전혀 없어 그 피해가 심각하답니다.”
함양이 지리산을 비롯해 아름다운 명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알고 보면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오염된 곳도 많다”고 이영애 장학사는 말한다.
바람이 분다, 작은 변화가 시작되다
주민들 스스로 자기 삶의 조건과 환경에 깨어 있지 않는 한 이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질 거라는 점은 불 보듯 훤하다. 이영애 장학사가 2년 연속 함양의 자연환경에 대한 강좌를 개설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문제가 있음을 알리면 몇 명이라도 관심을 가질 거라 믿었고, 그 소수의 작은 날갯짓이 더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바람이 되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함양교육지원청이 올해 들어 시작한 ‘동아리 지원 사업’을 통해 주민, 교직원, 학생들의 환경 동아리가 여럿 만들어진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수달아빠로 유명한 최상두 샘이 ‘환경사랑’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함양초에 계시는 문경희 샘은 교직원 환경 동아리를 꾸려서 상림에 대해 공부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겠다 하시고요. 또 학생들이 만든 환경 관련 동아리도 몇 개 된다고 하네요. 지금은 시작 단계라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런 모임이 있다는 자체가 지역의 미래고 희망 아닐까요? 이 동아리들이 주축이 되어 함양 지역 내 환경을 감시하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는 시민단체가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웃음)”
궁금해, 함양산을 진행하면서 전보다 산행을 자주 하는 건 사실이나 여전히 그이는 둘레길 마니아임을 고백한다. 정상 찍고 내려오면 끝나는 게 아닌, 계속 이어져 순환하는 것이 둘레길의 매력이라고. 더욱이 그 길 위에서는 작은 생명이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옆에 누가 있든 쉽게 친구가 된다.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하는 모든 존재에 몸과 마음이 열린다 할까.
“참 신기한 게, 걸어만 다녀도 그 지역과 거기 사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환경 교육에는 걷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 강좌와 포럼에 참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 6월 행사에 많은 분이 오시면 좋겠습니다!(웃음)”
내 걸음에 충실하기, 주변 걸음들 살펴보기
한걸음이 수천, 수만 걸음이 되도록 꾸준히 내디딘 덕분에 남들은 모르는 둘레길의 속살까지 알게 된 이영애 장학사는, 이제 함양의 산들강으로 대상을 넓혀 또 다른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이유는 그럴 때라야 지속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이미 경험상 안다. 무수한 이들의 한걸음‘들’이 쌓이고 쌓여 언덕이 되고 큰 산을 이루면, 언젠가는 집단의 앎이 삶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다만 오늘 몫의 ‘내’ 걸음에 충실하고자 한다. 종종 가만히 멈춰서 ‘다른’ 이들의 걸음을 바라봐주고 살피려 한다. 아직 출발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손짓도 해보고, 너무 빨리 가는 이에게는 좀 쉬었다 가라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다. 비록 온전한 함양 사람은 아닐지라도 함양을 근거지로 한 그의 삶은 이렇게나 신나고 보람차다.
둘레길을 걸으며 한 걸음씩 꾸준히 내딛는 것의 힘을 경험한 이영애 장학사는,
이제 함양의 산들강으로 대상을 넓혀 또 다른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