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가리는 '소셜'한 청년이 지역에서 사는 법 우리 동네 청년들 ② : <주간 함양> 기자 최학수 글 / 자야 
함양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현재 <주간함양> 기자로 일하고 있는 최학수 씨. 간혹 ‘지역신문’을 읽을 때 내가 이곳 주민임을 실감한다.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더라도 도서관이나 터미널 같은 데서 눈에 띄면 꼭 펼쳐보게 된다. 게다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구인광고까지 꼼꼼하게 훑는다. 이런 점이야말로 아는 지명, 아는 인물, 아는 가게가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신문이 갖는 묘한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보는 독자도 이런데,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콘텐츠를 발굴하고 생산해내는 사람은 어떨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이나 역할 같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역에 대한 마음이 남보다 조금쯤은 더 각별하지 않을까. 함양의 대표적인 언론사 중 한 곳인 <주간함양> 기자로 일하고 있는 최학수 씨의 말이 어쩌면 그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문사에서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양 지역을 기반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한 것 같아요. 전에는 보이지 않던 커뮤니티와 활동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지역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일을 통해 지역을 만나는 ‘새로운’ 기분 최학수 씨가 <주간함양>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경주에 있는 한 대학을 휴학 없이 4년 만에 졸업하고 10개월 쉬다가 군대에 다녀오니 어느덧 나이 스물여섯. “더 이상은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 도시에 가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셈 치고 학원에 다닐 계획을 세웠다. 대학 시절에 단편영화를 찍고 그 이후에도 줄곧 ‘영상’ 작업을 해오면서 “이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부모님 의견은 다르더라고요. 도시에 나가면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들잖아요. 뭘 하든 초반에는 돈을 좀 벌어놔야 그다음이 수월하니 당분간은 지역에 남아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또 어머니는 워낙 ‘밥’을 중시하는 분이어서 타지에서 자취하다 군대에 다녀온 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셨어요. ‘잃어버린 6년’을 다 보상하겠다는 마음으로.(웃음)” 그는 ‘내가 원하는 일이 이 지역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닌 채 군청 홈페이지 일자리 사이트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주간함양>과 인연이 닿았고, 결국 그곳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그가 전부터 디자인과 영상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디자인과 영상 작업을 해온 최학수는 신문사에서도 본인의 장점과 소질을 살려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_최학수/ 이하동일) “저는 뉴미디어 분야를 담당하고 있어요. 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에요. 취재기사는 문화와 관련한 쪽을 맡아 쓰고, 또 가끔은 만평도 그립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일이 좀 많긴 해요. 유일하게 힘든 게 그거예요. 첫 직장이라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나의 쓸모를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장부터 봇짐 늘어놓듯 다 보여줬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요, 하면서.(웃음) 그래도 즐겁고 재밌어요. 영상 만들고 디자인하고 사람 만나고 글 쓰고, 이런 게 어떻게 보면 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니까.” 재미없고 슬픈 시절을 지나 마주한 세상 최학수 씨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함양으로 이사 와 초중고를 다녔다. 그에게 청소년 시절은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우들과 관계도 원만했지만, 본인만 아는 내면의 결핍감 혹은 공허함이 컸다는데. “안의고 다닐 때 역사동아리와 미술동아리를 직접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또 선도부장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저 자신은 되게 비주체적으로 살았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 안에 갇혀 있었죠. 고등학교 3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고 슬픈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고교 졸업과 함께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그에게 학과 수업은 “이런 게 공부인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취미 삼아 시작한 국궁 역시 매력이 대단하여 나중에 동아리 회장까지 할 정도로 그에 빠져 지냈다. 물론 과도기는 있었다. 대학 들어가고 처음 일 년은 넘치게 주어진 자유가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세간의 시선이 의식되어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가 어려웠다는 것. 당시에 그는 옷 하나를 골라도 ‘요즘 대학생이 입는 옷’을 먼저 검색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간혹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 근사한 데로 밥 먹으러 가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건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입고 싶은 옷 입고 음식이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옮길 때면 자꾸 눈치가 보였다. 이와 같은 심리에 균열이 생긴 건 2학년 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면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는 여정이었는데 같은 조 조장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스물아홉 살 먹은 형이었는데 외모가 출중한 것도, 말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에서 깊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그것에 대해 주저함이나 남 눈치 보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요. 그런 것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죠. 그 형을 만나면서 뭐든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옷도 삶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면 된다는 걸 배운 거죠.”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국토대장정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인생 내 맘대로라지만 ‘설 자리’ 고민돼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각은 그의 삶에 자유를 선사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다만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할 때마다 내면의 소리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할까. 그래서 그는 한때 고려했던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을 접었고, 군대 가기 전 일 년간 해보고 싶던 영상 작업에 마음껏 몰두했다. 전역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3개월간 생활한 것도, 그 시기에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해주는 대신 방 하나를 얻는 조건으로 지냈어요. 제주는 청년들이 워낙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까 제 또래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늘 있었죠. 한번은 ‘위드살롱’이라는 플랫폼에서 호스트가 되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적도 있고요.” 그래서 물어보았다. 요즘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지. 각자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다양한 고민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고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주거, 일자리, 결혼 등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많지만 그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설 자리’인 거 같아요. 우리는 부모와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잖아요. 그분들이 언제 집을 장만했고 어떤 직장에 다녔으며 자식들 교육은 어느 정도로 시켜줬는지. 또 가족들이 한 달에 외식은 얼마나 했고 고기를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그런 거요. 부모 세대가 지켜온 자리와 비교하면 답이 안 나오니까 거기서 느끼는 박탈감과 두려움이 큰 거죠. 나의 능력과 현재 사회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내 자식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니까요. 청년 세대가 윗세대와 비교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본인의 설 자리가 없거나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자기 하나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 누구는 ‘성취’라 하고, 또 누구는 ‘북해도’라 하고.(웃음) 저는 ‘깊은’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제주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한때(오른쪽 맨 아래가 최학수). 그는 청년들이 모여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학수 기자는 현재 직업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만큼 다른 청년에 비해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크지는 않은 듯하다. 내 인생 ‘내 맘’대로니 삶의 행로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타입이 아니어서 이후에 ‘설’ 자리보다는 지금 ‘선’ 자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깊은 대화에 행복해하면서. 지금 ‘선’ 자리에서 내 ‘역할’을 다한다면 최근에 그가 취재하며 설렘을 느꼈던 건 <청년레지던시플랫폼 서하다움>에서 개최한 ‘청년들의 다이닝 모임’과 <(주)숲속언니들>이 주관하는 ‘함양 청년마을 사업설명회’에 참여했을 때다. 전자는 도시와 시골의 다양한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며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다면, 후자는 타지 청년들이 함양이라는 시공간을 알차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둘 다 “전에 없던 시도”이기에 더 크게 박수 쳐주고 싶었다고. “제주에 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청년들이 다 비슷한 거 같아도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나 취향도 다 달라요. 같은 사람이라 해도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하느냐에 따라 날마다 느낌이 다르고요. 저는 그렇게 다른 청년들이 모여서 서로의 인생을 ‘찍먹’해 보는 게 되게 좋고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서하다움에서 하는 ‘한주살이’나 ‘3주살이’ 같은 프로그램이라든지 숲속언니들이 하는 청년마을 사업에 끌리는 거겠죠. 청년들이 한 공간에서 뭔가를 함께 겪고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더구나 그런 일이 함양에서 벌어진다는 게 ‘지역 청년’으로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전에는 한 번도 내가 지역 청년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새 변했나 봐요.(웃음)” 그가 언제까지 ‘지역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내 것이라 느끼며 여기에 발붙이고 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최학수 기자’라는 지금의 자리와 위치는 꽤 만족스럽다. 지역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사람과 커뮤니티 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지닌 선한 영향력이 더 널리 더 많은 이에게 미칠 수 있도록 매개가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보람되고 즐겁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장은 그 일에 충실할 예정이나, 훗날 여건이 되면 “함양이든 다른 어디서든 카페와 책방과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공간을 마련하여 내 맘대로 운영해보고픈 로망이 있”기는 하다. 이름은 ‘학수네 방’ 혹은 ‘학수네 집’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술 마시고 춤추는 대신 책 읽고 차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어울리는, 일종의 ‘조용한’ 클럽이라 할까. 그곳 주인장이 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엮어가는 그를 상상해보면, 지역 언론사 기자로 일하는 그의 현재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둘 다 낯만 가려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본인 말로는 “낯을 가린다”지만, 그런 면이 아주 없지야 않겠지만, 청년 최학수는 매우 “소셜”한 사람인 게 틀림없다. 앞으로 그가 지역에서 내디딜 걸음들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5월에 열린 ‘함양군수후보초청토론회’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최학수 기자(오른쪽). 그는 지역 언론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지금’을 사는 최선의 길임을 알고 있다. |
낯 가리는 '소셜'한 청년이 지역에서 사는 법
우리 동네 청년들 ② : <주간 함양> 기자 최학수
글 / 자야
함양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현재 <주간함양> 기자로 일하고 있는 최학수 씨.
간혹 ‘지역신문’을 읽을 때 내가 이곳 주민임을 실감한다.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더라도 도서관이나 터미널 같은 데서 눈에 띄면 꼭 펼쳐보게 된다. 게다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구인광고까지 꼼꼼하게 훑는다. 이런 점이야말로 아는 지명, 아는 인물, 아는 가게가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신문이 갖는 묘한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보는 독자도 이런데,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콘텐츠를 발굴하고 생산해내는 사람은 어떨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이나 역할 같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역에 대한 마음이 남보다 조금쯤은 더 각별하지 않을까. 함양의 대표적인 언론사 중 한 곳인 <주간함양> 기자로 일하고 있는 최학수 씨의 말이 어쩌면 그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문사에서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양 지역을 기반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한 것 같아요. 전에는 보이지 않던 커뮤니티와 활동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지역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일을 통해 지역을 만나는 ‘새로운’ 기분
최학수 씨가 <주간함양>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경주에 있는 한 대학을 휴학 없이 4년 만에 졸업하고 10개월 쉬다가 군대에 다녀오니 어느덧 나이 스물여섯. “더 이상은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 도시에 가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셈 치고 학원에 다닐 계획을 세웠다. 대학 시절에 단편영화를 찍고 그 이후에도 줄곧 ‘영상’ 작업을 해오면서 “이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부모님 의견은 다르더라고요. 도시에 나가면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들잖아요. 뭘 하든 초반에는 돈을 좀 벌어놔야 그다음이 수월하니 당분간은 지역에 남아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또 어머니는 워낙 ‘밥’을 중시하는 분이어서 타지에서 자취하다 군대에 다녀온 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셨어요. ‘잃어버린 6년’을 다 보상하겠다는 마음으로.(웃음)”
그는 ‘내가 원하는 일이 이 지역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닌 채 군청 홈페이지 일자리 사이트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주간함양>과 인연이 닿았고, 결국 그곳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그가 전부터 디자인과 영상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디자인과 영상 작업을 해온 최학수는 신문사에서도 본인의 장점과 소질을 살려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_최학수/ 이하동일)
“저는 뉴미디어 분야를 담당하고 있어요. 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에요. 취재기사는 문화와 관련한 쪽을 맡아 쓰고, 또 가끔은 만평도 그립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일이 좀 많긴 해요. 유일하게 힘든 게 그거예요. 첫 직장이라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나의 쓸모를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장부터 봇짐 늘어놓듯 다 보여줬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요, 하면서.(웃음) 그래도 즐겁고 재밌어요. 영상 만들고 디자인하고 사람 만나고 글 쓰고, 이런 게 어떻게 보면 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니까.”
재미없고 슬픈 시절을 지나 마주한 세상
최학수 씨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함양으로 이사 와 초중고를 다녔다. 그에게 청소년 시절은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우들과 관계도 원만했지만, 본인만 아는 내면의 결핍감 혹은 공허함이 컸다는데.
“안의고 다닐 때 역사동아리와 미술동아리를 직접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또 선도부장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저 자신은 되게 비주체적으로 살았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 안에 갇혀 있었죠. 고등학교 3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고 슬픈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고교 졸업과 함께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그에게 학과 수업은 “이런 게 공부인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취미 삼아 시작한 국궁 역시 매력이 대단하여 나중에 동아리 회장까지 할 정도로 그에 빠져 지냈다. 물론 과도기는 있었다. 대학 들어가고 처음 일 년은 넘치게 주어진 자유가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세간의 시선이 의식되어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가 어려웠다는 것.
당시에 그는 옷 하나를 골라도 ‘요즘 대학생이 입는 옷’을 먼저 검색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간혹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 근사한 데로 밥 먹으러 가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건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입고 싶은 옷 입고 음식이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옮길 때면 자꾸 눈치가 보였다. 이와 같은 심리에 균열이 생긴 건 2학년 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면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는 여정이었는데 같은 조 조장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스물아홉 살 먹은 형이었는데 외모가 출중한 것도, 말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에서 깊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그것에 대해 주저함이나 남 눈치 보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요. 그런 것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죠. 그 형을 만나면서 뭐든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옷도 삶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면 된다는 걸 배운 거죠.”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국토대장정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인생 내 맘대로라지만 ‘설 자리’ 고민돼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각은 그의 삶에 자유를 선사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다만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할 때마다 내면의 소리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할까. 그래서 그는 한때 고려했던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을 접었고, 군대 가기 전 일 년간 해보고 싶던 영상 작업에 마음껏 몰두했다. 전역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3개월간 생활한 것도, 그 시기에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해주는 대신 방 하나를 얻는 조건으로 지냈어요. 제주는 청년들이 워낙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까 제 또래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늘 있었죠. 한번은 ‘위드살롱’이라는 플랫폼에서 호스트가 되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적도 있고요.”
그래서 물어보았다. 요즘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지. 각자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다양한 고민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고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주거, 일자리, 결혼 등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많지만 그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설 자리’인 거 같아요. 우리는 부모와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잖아요. 그분들이 언제 집을 장만했고 어떤 직장에 다녔으며 자식들 교육은 어느 정도로 시켜줬는지. 또 가족들이 한 달에 외식은 얼마나 했고 고기를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그런 거요. 부모 세대가 지켜온 자리와 비교하면 답이 안 나오니까 거기서 느끼는 박탈감과 두려움이 큰 거죠. 나의 능력과 현재 사회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내 자식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니까요. 청년 세대가 윗세대와 비교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본인의 설 자리가 없거나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자기 하나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 누구는 ‘성취’라 하고, 또 누구는 ‘북해도’라 하고.(웃음) 저는 ‘깊은’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제주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한때(오른쪽 맨 아래가 최학수).
그는 청년들이 모여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학수 기자는 현재 직업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만큼 다른 청년에 비해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크지는 않은 듯하다. 내 인생 ‘내 맘’대로니 삶의 행로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타입이 아니어서 이후에 ‘설’ 자리보다는 지금 ‘선’ 자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깊은 대화에 행복해하면서.
지금 ‘선’ 자리에서 내 ‘역할’을 다한다면
최근에 그가 취재하며 설렘을 느꼈던 건 <청년레지던시플랫폼 서하다움>에서 개최한 ‘청년들의 다이닝 모임’과 <(주)숲속언니들>이 주관하는 ‘함양 청년마을 사업설명회’에 참여했을 때다. 전자는 도시와 시골의 다양한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며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다면, 후자는 타지 청년들이 함양이라는 시공간을 알차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둘 다 “전에 없던 시도”이기에 더 크게 박수 쳐주고 싶었다고.
“제주에 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청년들이 다 비슷한 거 같아도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나 취향도 다 달라요. 같은 사람이라 해도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하느냐에 따라 날마다 느낌이 다르고요. 저는 그렇게 다른 청년들이 모여서 서로의 인생을 ‘찍먹’해 보는 게 되게 좋고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서하다움에서 하는 ‘한주살이’나 ‘3주살이’ 같은 프로그램이라든지 숲속언니들이 하는 청년마을 사업에 끌리는 거겠죠. 청년들이 한 공간에서 뭔가를 함께 겪고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더구나 그런 일이 함양에서 벌어진다는 게 ‘지역 청년’으로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전에는 한 번도 내가 지역 청년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새 변했나 봐요.(웃음)”
그가 언제까지 ‘지역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내 것이라 느끼며 여기에 발붙이고 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최학수 기자’라는 지금의 자리와 위치는 꽤 만족스럽다. 지역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사람과 커뮤니티 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지닌 선한 영향력이 더 널리 더 많은 이에게 미칠 수 있도록 매개가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보람되고 즐겁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장은 그 일에 충실할 예정이나, 훗날 여건이 되면 “함양이든 다른 어디서든 카페와 책방과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공간을 마련하여 내 맘대로 운영해보고픈 로망이 있”기는 하다. 이름은 ‘학수네 방’ 혹은 ‘학수네 집’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술 마시고 춤추는 대신 책 읽고 차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어울리는, 일종의 ‘조용한’ 클럽이라 할까.
그곳 주인장이 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엮어가는 그를 상상해보면, 지역 언론사 기자로 일하는 그의 현재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둘 다 낯만 가려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본인 말로는 “낯을 가린다”지만, 그런 면이 아주 없지야 않겠지만, 청년 최학수는 매우 “소셜”한 사람인 게 틀림없다. 앞으로 그가 지역에서 내디딜 걸음들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5월에 열린 ‘함양군수후보초청토론회’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최학수 기자(오른쪽).
그는 지역 언론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지금’을 사는 최선의 길임을 알고 있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