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변화기록원[함양][변화의 소리] “맨날 했던 거 말고 새로운 것 좀 합시다” - 공간 <쉬미수미> 대표 최갑진

2022-07-18

 

 

“맨날 했던 거 말고 새로운 것 좀 합시다”

변화의 소리 ④ : 지역민의 문화, 소통, 치유를 위한 공간 <쉬미수미> 대표 최갑진

 

글 / 자야

 

 

 

사진1 (1).jpg

지역 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쉬미수미> 대표 최갑진 씨.  

 

 

 

함양읍에 나와도 변변히 갈 만한 곳이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평범한 커피숍도 많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거나 뭔가를 같이 경험해보는 장소는 더더욱 드물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카페야 차고 넘친 지 오래고, 개인이나 모임에서 운영하는 작은 공간도 늘어났다. 이는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대부분은 기호나 취미가 같은 이들‘끼리’의 공간에 머물기에, 누구나 쉽게 드나들게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기호와 취미 이상의 것을 나누고 싶은 이들은 여전히 갈 곳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함양도서관 옆 건물에 들어선 <쉬미수미>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단일한 주제나 기호로 제한되지 않는 폭넓은 커뮤니티 공간이되 문화적 정체성이 강하다 할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첼로와 명상을 배운다. 때때로 미술사나 인도 고전 ‘바가와드기따’ 같은, 인문학을 주제로 한 공개강좌도 열린다. 이쯤 되면 <쉬미수미>가 지역에 하나씩은 있는 문화센터와도 다르고 기존의 단체나 동호회와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최갑진 대표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본다. 

 

 

 

 

술집과 밥집, 목욕탕 넘어서는 ‘소통’ 공간 필요해   

 

 

“오픈은 4, 5개월 전에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조용하게 있었죠. 사람들 오라 하고 프로그램 시작한 지는 한 2개월 됐어요. 지역에서 왜 굳이 돈 들여서 이런 걸 하느냐고들 묻는데,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지역’이에요. 이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니까 선택을 해야잖아요. 그렇다면 지역민의 욕구는 있는데 실현이 안 되는 것을 한번 해보자 싶었죠. 그게 문화를 매개로 만나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활동이었어요. 그걸 하자니 공간이 필요했던 거고.” 

 

 

 

사진2 (1).jpg

함양도서관 옆 건물 입구에 부착된 간판. 3층이 <쉬미수미>다.

 

 

 

부산이 고향인 최갑진 대표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2010년에 함양에 왔다. 표면적으로는 함양 서상고로 발령받은 게 계기였으나, 알고 보면 도시를 떠나 지리산 인근 시골에서 ‘삶다운’ 여생을 누리기로 마음먹은 게 먼저였다. 본인이 원해도 그 지역의 학교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게 규정인데 마침 “타이밍이 좋아서 가능했다”고 한다. 

 

 

학교 사택에서 생활하다가 일 년 후 병곡면에 집을 지어 자리를 잡은 그이는, 학교뿐 아니라 마을과 지역으로 서서히 관계를 넓혀가며 함양이라는 낯선 곳을 탐색해갔다. 퇴직하고 난 뒤에는 매인 데가 없으니 그만큼 움직임의 반경이 더 크고 넓어졌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다면 “이 지역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 들이 섞이는 문화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시골에 살면서 익숙한 생활이랄까 경험을 공유하는 게 전부더라고요. 그 외의 문화라는 건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자리야 뻔하잖아요. 밥집이나 술집, 아니면 목욕탕이지.(웃음) 게다가 거기서 어울리는 사람도 늘 끼리끼리고. 그러니 평생 같은 생각만 하고 같은 이야기만 하면서 살게 되는 거 아닐까요?” 

 

 

이런 현실이 아쉬워 한동안은 지역의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열심히 움직였으나 정치지형과 의식을 바꾸기 위한 활동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문화적 소양과 안목이 생기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뿌리 깊었다. 이것이 몇 년 전에 지인들과 뜻을 모아 <함양.문화.사람(이하 함문사)>이라는 단체를 만든 이유다.

 

 

 

 

“책과 음악, 영화 같은 것만 문화는 아니죠”

 

 

<함문사>가 만들어지면서 상림 잔디밭 무대에서는 종종 시낭송회가 열렸고, 가끔은 작가의 발자취를 좇는 문학기행 참가자 모집 공고가 지역 밴드에 올라왔다. 2019년에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자 ‘할 말은 많지만 부끄러바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쉬미수미>를 위해 먼저 <함문사>라는 주춧돌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쉬미수미로 넘어오면서 함문사보다 회원과 활동 폭이 더 넓어졌죠. 둘 다 문화를 내세우는데, 여기서 문화는 단지 문학, 미술, 음악 같은 예술 장르만이 아니라 자연유산과 인간관계까지 포함한, 삶을 가꾸는 모든 환경과 관계를 의미해요. 겉으로 보기엔 시 읽고 악기 연주하고 영화 보고 그런 것만 눈에 띄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와 타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활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삶을 건강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쉬미수미는 그러므로 결국 치유를 위한 공간이죠.”

 

 

 

사진3.jpeg

<쉬미수미>가 개설한 강습반 중 하나인 ‘화요명상반’에 참가한 사람들. 

 

 

 

치유의 핵심은 ‘쉼’과 ‘숨’에 있다.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하든 사람들의 숨이 편안해지고 그 가운데 온전한 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도 ‘쉬미수미’라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이 공간에서 진행 중인 첼로 강습과 시치유 및 요가명상 반을 통해 사람들은 내면의 평화와 기쁨을 경험한다. 이 외에도 각각의 리더들이 운영하는 보이차 마시기 모임, 카페 탐방 모임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고, 이 모든 강좌와 모임에는 월(년)회비를 내는 회원만이 아닌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운영위원이 전부 여섯 명인데 프로그램 짜는 것부터 강사 섭외 등 모든 것을 공동으로 맡아 합니다. 우리는 강좌나 모임을 만들 때 취지에만 맞으면 가능한 한 ‘새로운’ 걸 하자는 주의예요. 함양에서 악기 좀 다루는 이들은 전부 통기타 아니면 색소폰이잖아요. 여기서는 좀 다른 걸 해보자 해서 첼로를 하게 된 거죠. 카페 탐방도 새로운 곳에 가서 다양한 맛과 분위기를 느껴보자 해서 시작한 거고.” 

 

 

 

사진4.jpeg

<쉬미수미>에서는 강습 외에도 각 리더가 이끄는 다양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보이차 마시기 모임’을 위해 세팅된 테이블. 

 

 

 

다름을 경험해야 삶이 새로워져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거치며 삶이 성장한다고 보는 최갑진 대표는, 교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늘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던 탓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도시엔 그래도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자극이 존재하는 반면에 시골은 그렇지 못하다. 같은 군이어도 읍에서 멀리 떨어진 면에 사는 학생들은 방과 후에도 생활권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 게다가 읍에 나온들 마땅히 즐기고 누릴 게 없다.

 

 

“서상고와 제일고에서 각각 3년씩 있다가 퇴직했는데 시골엔 아이들이 뭘 하도록 자극하는 요소가 참 없습니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학습 면에서도 그래요. 인문계여도 대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고 설사 공부를 좀 잘한다 해도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기는 쉽지 않죠. 실업계는 취업에 필요한 과목 외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요.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대한 안목이나 소질을 키워줄 수 있는 체계도 아니고. 애들은 참 착하고 고운데 삶이 일찍부터 정체되고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할까요. 성적이나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은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어른으로서는 안타까운 면도 없진 않았죠.”

 

 

그는 다만 국어 시간에만이라도 아이들이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 수업 시작 전에 시 낭독하는 시간을 갖는가 하면, 단지 ‘함양 바깥’을 구경시킬 요량으로 박재삼문학제나 청소년백일장 같은 행사에 부지런히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전기, 전산 등에 밀려 국어 과목의 존재감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제일고에 있을 때는 아예 국어 수업을 교실이 아닌 도서관에서 했다고.

 

 

“무조건 책 하나씩 골라 자리에 앉게 하는 거죠. 읽든지 자든지 니들 마음인데 침만 흘리지 말라 하고.(웃음) 처음엔 다 엎드려 자더니 나중엔 그것도 지겨운지 다만 몇 줄이라도 읽더라고요.”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딴 데 가서 살아보라”고, 이 좁고 고정된 ‘지역성’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만나보라고 외치던 최 선생은, 이제 <쉬미수미>를 찾아오는 어른들에게도 역시나 “맨날 했던 거 하지 말고 새로운 것 좀 합시다”라며 옆구리 찌르고 등 떠미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면 그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열심히 판도 깔아준다. 

 

 

“조만간 쉬미수미에서 ‘에세이 쓰기’를 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글쓰기 반은 안 하냐고 말은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 하면 다 빼거든요? 내가 쓴 게 최고라 생각하고 자랑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더라고.(웃음) 그만큼 자기표현에 약해요. 또 표현을 해도 맨날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해요. 그래서 나는 글쓰기 할 때 이런 기법을 자주 씁니다. 그 사람이 분명히 끄집어낼 것 같은 주제나 단어는 아예 빼고 쓰게 하는 거예요. 그게 처음엔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단 해보면 다른 시각에서 자기의 감정이라든가 상처를 바라보게 되죠. 거기서 어떤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요.”

 

 

 

사진5.jpg

문화적 자극과 영감을 중요시하는 그는 종종 지역 사람들과 영화나 예술공연을 보러 다니며, 그 후에는 뒤풀이를 통해 소감을 나누고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다. 

 

 

 

즐거운 만남, 공감의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지역에 새로운 경험과 활력이 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열의가 강해서일까. 최갑진 대표는 누군가 전에 없던 일을 벌인다고 하면 기꺼이 그 현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특히 그 자리가 사람이 없어 쓸쓸할 것 같다거나 응원의 박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더더욱 마음을 낸다. 그리고 일단 참여하면 가만히 앉았다 오는 경우가 없다.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말하거나, 아니면 농담을 해서 좌중을 웃기기라도 한다. 그렇게 나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어렵게 마련된 그 자리를 빛내고 살리는 길임을 아는 까닭이다.

 

 

“나이 많은 어른으로서 도와주려고 가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주된 참가 동기는 즐기는 거죠. 그 시간에 내가 즐기고 행복감을 느끼는 게 첫째예요. 그다음은 어떤 주제를 놓고 다른 이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이고.” 

 

 

나 스스로 즐겁고 타인과 함께하여 더 만족스러운 그런 만남과 자리 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는 진정으로 바란다. <쉬미수미>와는 또 다른 개성과 색깔을 지닌 공간들이 읍면 곳곳에 문을 열고 사람들을 손짓하기를, 그 모든 곳을 찾아다니느라 너도나도 발걸음이 분주해지기를. 누구라도 고인 우물이 아닌, 날마다 새롭게 솟아나는 샘 같은 곳에서 살길 기대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최갑진 대표의 바람과 기대는 외면하고 무시할 수 없는, 곧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글쓴 사람. 자야

나에게 기록이란,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온 마음을 기울여 듣고 나를 앞세우지 않고 쓰는 것. 올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이런 나를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