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이사 왔습니다! 글 / 칩코 일주일 째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머릿속에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제일 급한 건 이거고, 다음에 저 일도 해야 하고... 구례는 벚꽃이 부른 상춘객들의 행렬로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내 머릿속도 딱 이 꼴이다 싶었다.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할 일 더미들. 이사 때문이었다. 이삿짐 나를 땐 내가 짐이 많았나 새삼스러웠는데, 막상 새집에서 생활하려고 보니 당장 밥 먹을 숟가락도 없는 상황이랄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사 때문에 바쁜 것은 아니었다. 이사가 끼어들 틈이 없던 일상이었는데, 이사 덕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었다. 애초에 구례에 집도 없으면서 이토록 일을 벌인 게 잘못이었다. 집은 좀 구하고 일을 한다 할걸. 안정적인 집에서 지내면서 일했으면 얼마나 편했으려나. 지난 이 년간은 구례 옆 동네인 남원시 산내면에서 지냈다. 이 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하면서 지리산권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런저런 재밌는 작당들을 하는데, 너도 같이 할래?”하는 물음마다 다 “네!”를 외친 최후였다. 내가 제안받은 작당들이 모두 구례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이사를 왔다. 아직 준비단계인 것들도 있는데, 봄부터 부지런히 활동을 시작해야 했던 작당은 ‘구례기후위기세포학교’(이후 ‘세포학교’)였다. 구례 공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을 하는 모임이다. 올해부터는 ‘생태텃밭’을 주요 키워드로 가져가기로 했다. 학생들과 텃밭을 가꾸는 수업을 하면서 토종 씨앗, 퍼머컬쳐, 비거니즘, 제로웨이스트 등의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수세미를 직접 길러서 플라스틱 수세미가 아닌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보는 식으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다. 
밭을 만드는 학부모님과 활동가들 청천초등학교, 토지초등학교, 용방초등학교에서 올해 첫 활동을 개시했다. ‘세포학교’ 활동가중 네 명이 나누어서 세 학교에 텃밭 강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활동가들이 서로 돕기도 하고, 학부모들의 지원도 받으면서 밭 모양을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수업에 사용될 작물들을 중심으로 식재 계획도 세웠다. 청천초등학교는 고작 14평짜리 밭에 무려 40여 개의 작물이 심어진다. 다른 학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세상엔 학생들에게 보여주고픈 예쁘고 다양한 종자가 왜 이리 많은 걸까! 욕심을 타협하지 못한 결과, 본격 씨앗 구하기에 매진해야 했다. 예로부터 시장에 가서도 씨앗으로 쓸 용이라고 하면 돈을 받지 않고 나눔 하는 법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시장에서 개량종 씨앗이나 장성한 모종을 구매할 수 있지만, 어쩐지 씨앗만큼은 나눔을 받고 싶었다. ‘세포학교’ 활동가들끼리 이미 있는 씨앗들을 펼쳐 보았다. 곡성, 합천, 순천, 진안, 남원 등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만도 양이 꽤 되었다. ‘세포학교’의 큰 뒷배인 은주 선생님은 마당을 엿보고 싶을 만큼 다양한 꽃씨들을 가지고 계셨다. 구례 봉서리 숲에서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지리산 게더링’ 친구들에게도 모종 한 움큼을 받고, 허브하면 농장 ‘배꼽노리’를 운영하는 미나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옆 동네 곡성의 토종씨드림에서는 학생들과 텃밭을 할 것이라니까 후원회원이 아닌데도 기꺼이 씨앗들을 나눔해 주시기도 했다. 
나눔받은 씨앗들을 정리한 보물상자! 
이사온 집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종들 이곳저곳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은 봉투에 고이 접어 종류별로 정리하고 나니 꼭 보물상자라도 가진 기분이다. 집에서는 학교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마당의 한 편을 잔뜩 차지하고 줄을 선 모종들을 보면 내가 책임질 생명들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럽다가도 가슴이 마구 흐뭇해지기도 했다. 내가 채종한 씨앗은 어쩐지 엉성할 것 같아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것들마저 귀여운 싹이 고개를 내민 것을 보면 어찌나 신기한지! 학생들도 각자 꽃씨를 맡아서 모종을 기르게 했는데 싹이 난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절로 그 조그만 싹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는 깜찍한 모종들을 응원만 하기엔 너무 바빴다. 무엇보다 모종들은 바리바리 챙겨야 하는 ‘이삿짐’이 돼버리기도 했다. 처음엔 당장 구례서 집이 없으니 봉서리 숲으로 갔다. 구례사람들은 한겨레 공원으로 더 많이 부르는 듯하다. 숲속의 ‘마고숲밭’을 공동경작하는 친구들이 숲에서 잘 지내라며 따뜻한 한마디씩 보태주기도 하고, 숲 아랫마을에 사는 수수는 샤워나 세탁을 하고 싶으면 당신의 집을 이용하라고 마음을 내주기도 했다. 같은 마을에 있는 ‘느긋한 쌀빵’ 사장님들도 내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2층 자리를 내어주시곤 했다. 산내 사는 상이, 하무, 탁구는 숲에 놀러 왔다 간 다음 날쯤이면 나 혼자 괜찮은지 안부 전화도 종종 걸어왔다. 집이 없어서 숲으로 간 건 맞지만, 내 신세를 스스로 가엽게 여기진 않았다. 다만 내 근황을 들은 엄마가 밤잠을 설치는 게 문제였다. 하루는 새벽에 우시면서 “제발 구례 읍내에 원룸을 구해줄 테니 안전한 곳에서 살면 안되겠니.”하시는 덕에 더 적극적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집을 구한다는 소문을 내니, 구례 분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 상글, 수수, 주옥쌤, 오여사, 주리쌤이 빈집 소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멀리 있어 집을 보러 못 가보던 차에 태연쌤이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집을 구하고는 여기저기 살림 나눔을 요청했다. 구례는 ‘당근마켓’ 뿐인가 싶던 차에, 주옥쌤이 ‘느긋한 쌀빵’ 자급자족 공동체 단톡방에 공지를 해주셔서 주방 살림들은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꼬리, 오늘, 차라, 상글, 동근, 아라, 주옥쌤, 형래쌤도 당신들 것들을 기꺼이 떼어서 나누어주셨다. 
학생들과 씨앗을 심는 중 아직은 새집에서 ‘산다’는 감각은 없다. 홀홀 날아다니는 풀씨처럼 그냥 이 집도 꼭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집들이를 하자고 친구들이 보채기도 하는데 참 새삼스럽다. 지난 이 년간 네 번 이사를 할 정도면 집들은 정말로 스쳐 지나간 게 맞기도 했으니. 그러나 마을버스에서 마주친 옆 동네 사시는 주리쌤의 다정한 환영 인사나, 현경쌤이 건네주신 구례 이사 축하 딸기 같은 것들을 받으면 내가 꼭 여기 진짜 살게 될 것도 같은 것이다. 낡아서 청소해봤자 티도 안 나는 부엌을 고생해서 청소해주는 꼬리나, 마당에 흙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내 말을 듣고 흙 다섯 포대를 퍼 와주는 상글, 동근을 보면 이 집에서 오래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지난 이 년간의 귀촌 생활도 신세 지기는 매한가지라, 부채감이 너무 무거워지면 이 말에 기대곤 했다. 신세를 진다는 건, 누군가가 선의를 베풀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말. 그가 반짝반짝 빛날 기회를 주는 일이라는 거다. 내게 호의를 건넨 사람들은 정말로 눈 부시게 빛이 났다. 자신들은 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인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 만들 만큼. 
시농제 중인 칩코와 학생들 
학생들이 적은 시농제 축문 오늘은 옥수수와 콩을 곧뿌림 했다. 모종을 내놓은 호박과 참외까지 싹이 올라왔다. 옥수수는 순천에서 온 것, 참외는 곡성에서 온 것. 이곳저곳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이 한 데에 모일 것을 생각하니, ‘나눔 텃밭’이 따로 없다. 가만 보면 내 집도 그렇다.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과 살림을 한 줌씩 보태서 지내는 새집 생활. 옥수수 싹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왔길래 궁금해서 살살 뽑아보았다. 웬걸, 뿌리는 싹의 세 배 정도 길이나 뻗어있다. 구례에서 내 뿌리는 얼마나 자라려나. 지금은 장대비 한 방이면 쓸려갈 것 같은데, 더 깊은 곳의 흙을 움켜쥐는 방법을 이웃들에게 배워가는 요즘. |
구례, 이사 왔습니다!
글 / 칩코
일주일 째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머릿속에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제일 급한 건 이거고, 다음에 저 일도 해야 하고... 구례는 벚꽃이 부른 상춘객들의 행렬로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내 머릿속도 딱 이 꼴이다 싶었다.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할 일 더미들. 이사 때문이었다. 이삿짐 나를 땐 내가 짐이 많았나 새삼스러웠는데, 막상 새집에서 생활하려고 보니 당장 밥 먹을 숟가락도 없는 상황이랄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사 때문에 바쁜 것은 아니었다. 이사가 끼어들 틈이 없던 일상이었는데, 이사 덕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었다. 애초에 구례에 집도 없으면서 이토록 일을 벌인 게 잘못이었다. 집은 좀 구하고 일을 한다 할걸. 안정적인 집에서 지내면서 일했으면 얼마나 편했으려나. 지난 이 년간은 구례 옆 동네인 남원시 산내면에서 지냈다. 이 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하면서 지리산권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런저런 재밌는 작당들을 하는데, 너도 같이 할래?”하는 물음마다 다 “네!”를 외친 최후였다.
내가 제안받은 작당들이 모두 구례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이사를 왔다. 아직 준비단계인 것들도 있는데, 봄부터 부지런히 활동을 시작해야 했던 작당은 ‘구례기후위기세포학교’(이후 ‘세포학교’)였다. 구례 공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을 하는 모임이다. 올해부터는 ‘생태텃밭’을 주요 키워드로 가져가기로 했다. 학생들과 텃밭을 가꾸는 수업을 하면서 토종 씨앗, 퍼머컬쳐, 비거니즘, 제로웨이스트 등의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수세미를 직접 길러서 플라스틱 수세미가 아닌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보는 식으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다.
밭을 만드는 학부모님과 활동가들
청천초등학교, 토지초등학교, 용방초등학교에서 올해 첫 활동을 개시했다. ‘세포학교’ 활동가중 네 명이 나누어서 세 학교에 텃밭 강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활동가들이 서로 돕기도 하고, 학부모들의 지원도 받으면서 밭 모양을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수업에 사용될 작물들을 중심으로 식재 계획도 세웠다. 청천초등학교는 고작 14평짜리 밭에 무려 40여 개의 작물이 심어진다. 다른 학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세상엔 학생들에게 보여주고픈 예쁘고 다양한 종자가 왜 이리 많은 걸까! 욕심을 타협하지 못한 결과, 본격 씨앗 구하기에 매진해야 했다.
예로부터 시장에 가서도 씨앗으로 쓸 용이라고 하면 돈을 받지 않고 나눔 하는 법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시장에서 개량종 씨앗이나 장성한 모종을 구매할 수 있지만, 어쩐지 씨앗만큼은 나눔을 받고 싶었다. ‘세포학교’ 활동가들끼리 이미 있는 씨앗들을 펼쳐 보았다. 곡성, 합천, 순천, 진안, 남원 등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만도 양이 꽤 되었다. ‘세포학교’의 큰 뒷배인 은주 선생님은 마당을 엿보고 싶을 만큼 다양한 꽃씨들을 가지고 계셨다. 구례 봉서리 숲에서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지리산 게더링’ 친구들에게도 모종 한 움큼을 받고, 허브하면 농장 ‘배꼽노리’를 운영하는 미나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옆 동네 곡성의 토종씨드림에서는 학생들과 텃밭을 할 것이라니까 후원회원이 아닌데도 기꺼이 씨앗들을 나눔해 주시기도 했다.
나눔받은 씨앗들을 정리한 보물상자!
이사온 집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종들
이곳저곳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은 봉투에 고이 접어 종류별로 정리하고 나니 꼭 보물상자라도 가진 기분이다. 집에서는 학교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마당의 한 편을 잔뜩 차지하고 줄을 선 모종들을 보면 내가 책임질 생명들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럽다가도 가슴이 마구 흐뭇해지기도 했다. 내가 채종한 씨앗은 어쩐지 엉성할 것 같아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것들마저 귀여운 싹이 고개를 내민 것을 보면 어찌나 신기한지! 학생들도 각자 꽃씨를 맡아서 모종을 기르게 했는데 싹이 난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절로 그 조그만 싹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는 깜찍한 모종들을 응원만 하기엔 너무 바빴다. 무엇보다 모종들은 바리바리 챙겨야 하는 ‘이삿짐’이 돼버리기도 했다. 처음엔 당장 구례서 집이 없으니 봉서리 숲으로 갔다. 구례사람들은 한겨레 공원으로 더 많이 부르는 듯하다. 숲속의 ‘마고숲밭’을 공동경작하는 친구들이 숲에서 잘 지내라며 따뜻한 한마디씩 보태주기도 하고, 숲 아랫마을에 사는 수수는 샤워나 세탁을 하고 싶으면 당신의 집을 이용하라고 마음을 내주기도 했다. 같은 마을에 있는 ‘느긋한 쌀빵’ 사장님들도 내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2층 자리를 내어주시곤 했다. 산내 사는 상이, 하무, 탁구는 숲에 놀러 왔다 간 다음 날쯤이면 나 혼자 괜찮은지 안부 전화도 종종 걸어왔다.
집이 없어서 숲으로 간 건 맞지만, 내 신세를 스스로 가엽게 여기진 않았다. 다만 내 근황을 들은 엄마가 밤잠을 설치는 게 문제였다. 하루는 새벽에 우시면서 “제발 구례 읍내에 원룸을 구해줄 테니 안전한 곳에서 살면 안되겠니.”하시는 덕에 더 적극적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집을 구한다는 소문을 내니, 구례 분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 상글, 수수, 주옥쌤, 오여사, 주리쌤이 빈집 소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멀리 있어 집을 보러 못 가보던 차에 태연쌤이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집을 구하고는 여기저기 살림 나눔을 요청했다. 구례는 ‘당근마켓’ 뿐인가 싶던 차에, 주옥쌤이 ‘느긋한 쌀빵’ 자급자족 공동체 단톡방에 공지를 해주셔서 주방 살림들은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꼬리, 오늘, 차라, 상글, 동근, 아라, 주옥쌤, 형래쌤도 당신들 것들을 기꺼이 떼어서 나누어주셨다.
학생들과 씨앗을 심는 중
아직은 새집에서 ‘산다’는 감각은 없다. 홀홀 날아다니는 풀씨처럼 그냥 이 집도 꼭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집들이를 하자고 친구들이 보채기도 하는데 참 새삼스럽다. 지난 이 년간 네 번 이사를 할 정도면 집들은 정말로 스쳐 지나간 게 맞기도 했으니. 그러나 마을버스에서 마주친 옆 동네 사시는 주리쌤의 다정한 환영 인사나, 현경쌤이 건네주신 구례 이사 축하 딸기 같은 것들을 받으면 내가 꼭 여기 진짜 살게 될 것도 같은 것이다. 낡아서 청소해봤자 티도 안 나는 부엌을 고생해서 청소해주는 꼬리나, 마당에 흙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내 말을 듣고 흙 다섯 포대를 퍼 와주는 상글, 동근을 보면 이 집에서 오래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지난 이 년간의 귀촌 생활도 신세 지기는 매한가지라, 부채감이 너무 무거워지면 이 말에 기대곤 했다. 신세를 진다는 건, 누군가가 선의를 베풀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말. 그가 반짝반짝 빛날 기회를 주는 일이라는 거다. 내게 호의를 건넨 사람들은 정말로 눈 부시게 빛이 났다. 자신들은 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인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 만들 만큼.
시농제 중인 칩코와 학생들
학생들이 적은 시농제 축문
오늘은 옥수수와 콩을 곧뿌림 했다. 모종을 내놓은 호박과 참외까지 싹이 올라왔다. 옥수수는 순천에서 온 것, 참외는 곡성에서 온 것. 이곳저곳에서 나눔 받은 씨앗들이 한 데에 모일 것을 생각하니, ‘나눔 텃밭’이 따로 없다. 가만 보면 내 집도 그렇다.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과 살림을 한 줌씩 보태서 지내는 새집 생활. 옥수수 싹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왔길래 궁금해서 살살 뽑아보았다. 웬걸, 뿌리는 싹의 세 배 정도 길이나 뻗어있다. 구례에서 내 뿌리는 얼마나 자라려나. 지금은 장대비 한 방이면 쓸려갈 것 같은데, 더 깊은 곳의 흙을 움켜쥐는 방법을 이웃들에게 배워가는 요즘.
글쓴 사람. 칩코
아침에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와 하나가 된 사람. 내가 내뱉은 숨을 지리산이 들이키는 바람에 지리산과도 하나가 됐다. 하나라고 저절로 조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요가 할 때 팔다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아직은 지리산과 따로 놀 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