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게 목표예요." 남원시농민회 방극완 사무국장 인터뷰 글 / 수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979년 4월 16일생으로 남원에서 나고 자라서 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아이의 아빠이고 감히 농민운동가라고 얘기하긴 그렇지만 농업에 대해서 되게 관심이 많아 남원시농민회 사무국장 일을 맡은 방극완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남원시농민회에 관해서도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남원시농민회는 올해로 33년 된 조직인데요. 87년 6월 항쟁 이후에 그때 당시에 노동조합들을 많이 결성이 돼 있었는데, 농민회는 보통 89년부터 조직을 하기 시작해서 90년대에 많이 결성되기 시작한 조직이 지금 남원시 농민회 산하 5개의 지회가 있습니다. 남원시농민회 사무국장을 오래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로 9년 차인데 십 년을 안 채우고 올해 12월 30일에 그만두는 게 목표입니다. 사람이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데 요즘 어느 시민단체건 인력 문제로 안 힘든 곳이 없다고 봐요. 인력 돌려막기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함께 활동할 사람이 부족해요. 남원시작은변화포럼에 남원시농민회가 가입되어 있는데 어떤 단체인가요? 남원의 긍정적인 변화를 바라는 단체의 장들이 모여있는 조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뭐냐고 한다면 불특정한 다수의 행복이 추구되는 것으로 저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급진적 변화가 아닌 낮은 단계의 합일점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견해차가 좀 있어요. 처음에는 공통 변화의 관점을 가지고 공통의 주제를 잡아내는 것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보다 참여단체가 줄어 현재 16개 정도의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데 느슨한 연대 차원에서 서로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주요 활동으로는 시정감시를 위한 의회모니터링, 산악열차 반대, 최초춘향영정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 그리고 무분별한 대규모 태양광사업 견제, 섬진강댐 수해 대책위 등을 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농사나 시민사회 활동이나 뭐나 혼자보다는 같이 힘을 모으고 그 가치를 이루다 보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봐요. 남원시작은변화포럼에서 요즘 이슈로 생각하고 있는 건? 선거죠. 특히 남원시장 후보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정책 협약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당가면 술이며 음식값이며 모두 다 올랐어요. 유일하게 안 오른 게 뭔지 아세요? 바로 공깃밥이에요. 늘 천 원이죠." 남원시농민회 차원에서 생각하는 작은 변화는 어떤 건가요? 남원 같은 경우는 도농복합도시다 보니까, 농촌 지역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농민회에서 어떠한 사업들을 진행하면 예를 들면, 수세 폐지 운동이라든지. 의료보험 개혁 운동이라든지. 이런 사업들을 진행했을 때 지역에서 굉장히 많이 호응해주었었는데 언제부턴가 농민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바뀌고 있다는 거죠. 그냥 본인들은 나서지 않아도 동조하지 않아도 혜택은 같이 볼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많은 것같아 씁쓸해요.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비단 농민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시민사회단체가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일 거예요. 옛날에는 농민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힘들어도 보람도 느끼고 이런 게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거든요. 예를 들면, 농민수당이 올해로 삼 년 차 지급이 될 텐데 사람들은 도 행정에서 주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농민회가 주도해서 농민수당을 만든 건데 혜택은 똑같이 보지만 노력은 농민회가 제일 앞에서 고생했고 처음에 일 년 차째는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후로 이 년 차 받을 때는 당연히 받는 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작은변화포럼에 가입한 거는 어찌 됐든 연대가 필요하고 뭔가 변화를 만들 거면 한 개 단체 갖고는 좀 힘들다는 느낌이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은변화포럼에 가입하고 작년에 집행위원장도 맡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극완 님을 사월의 인물로 선정했던 이유는 남원에서 4·16 세월호 추모 행사를 8년째 계속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팔 년 전 생일이었어요. 제가 4월 16일에 태어났으니까요. 저녁에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로 해서 만났는데 배가 침몰했느니 어쩌니 하더라구요. 제가 TV를 안 보고 핸드폰으로만 대충 내용을 봤는데 전원 구조됐다고 뜨더라고요. 박근혜 정권 때였으니까. 정부에 대한 믿음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오늘은 술 먹으면 안 될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너는 TV도 안 보냐면서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하더라구요. 다 구조됐잖아 했더니 오보였다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엔 되게 막막했어요. 앞으로 내 생일은 많은 분이 기억하겠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슬퍼하겠구나, 그리고 나는 생일이라고 마냥 기뻐할 수 없겠구나. 어쩌면 4월 16일에 태어난 게 이런 걸 하라는 숙명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원시 도통동사무소 근처 세월호 광장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리본 광장이라고도 부르고 했었던 곳을 거점으로 처음에는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의 염원을 모아 세월호 집회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거의 매일 집회하다가 구조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세월호 집회를 쭉 진행했어요.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 유가족 간담회에도 같이 참가하고 행진도 함께하고 서명운동도 같이했어요. 이제는 구조 안 한 것에 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진상 규명될 때까지 세월호 추모제를 했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첫 추모제 때는 제가 아이가 하나였는데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둘째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상 규명이 될 줄 알았고,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권이 나서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뭔가를 바꾼다는 게 쉽진 않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광주분들이 세월호 10년 상주 모임을 만들었는데 솔직히 10년은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8주기예요. 그분들은 5.18이란 큰일을 겪으면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 아픔을 씻어내는 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느꼈고 촛불정권이라고 문재인 정권에서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걸 솔직히 믿었는데 이렇게 무능할 수가 없구나!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4월 16일이 제 생일인데요. 세월호 사고 이후 진상 규명될 때까지 세월호 집회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렇게 길게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본인의 개인적인 삶에서의 소망하는 작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내일 결과 발표를 하는데 농업마이스터 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아버지때부터 쭉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업으로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열심히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복숭아만큼은 전문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농사지어서 다른 사람들이 배우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이나 이루고자 하는 게 있다면? 앞으론 일을 조금 더 줄이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길 바라요. 저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렇게 일 많이 안 해도 세상이, 우리 지역사회가 잘 돌아가면 좋겠어요.그리고 이루고 싶은 것은 훌륭한 어른 되는 거예요. 지역에 훌륭한 어른들이 많으면 지역사회가 절대 병들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런 훌륭한 어른이 돼 있지 않을까 기대해봐요. "하루 일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오늘 열심히 살았다." |
"저는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게 목표예요."
남원시농민회 방극완 사무국장 인터뷰
글 / 수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979년 4월 16일생으로 남원에서 나고 자라서 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아이의 아빠이고 감히 농민운동가라고 얘기하긴 그렇지만 농업에 대해서 되게 관심이 많아 남원시농민회 사무국장 일을 맡은 방극완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남원시농민회에 관해서도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남원시농민회는 올해로 33년 된 조직인데요. 87년 6월 항쟁 이후에 그때 당시에 노동조합들을 많이 결성이 돼 있었는데, 농민회는 보통 89년부터 조직을 하기 시작해서 90년대에 많이 결성되기 시작한 조직이 지금 남원시 농민회 산하 5개의 지회가 있습니다.
남원시농민회 사무국장을 오래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로 9년 차인데 십 년을 안 채우고 올해 12월 30일에 그만두는 게 목표입니다. 사람이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데 요즘 어느 시민단체건 인력 문제로 안 힘든 곳이 없다고 봐요. 인력 돌려막기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함께 활동할 사람이 부족해요.
남원시작은변화포럼에 남원시농민회가 가입되어 있는데 어떤 단체인가요?
남원의 긍정적인 변화를 바라는 단체의 장들이 모여있는 조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뭐냐고 한다면 불특정한 다수의 행복이 추구되는 것으로 저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급진적 변화가 아닌 낮은 단계의 합일점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견해차가 좀 있어요. 처음에는 공통 변화의 관점을 가지고 공통의 주제를 잡아내는 것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보다 참여단체가 줄어 현재 16개 정도의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데 느슨한 연대 차원에서 서로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주요 활동으로는 시정감시를 위한 의회모니터링, 산악열차 반대, 최초춘향영정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 그리고 무분별한 대규모 태양광사업 견제, 섬진강댐 수해 대책위 등을 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농사나 시민사회 활동이나 뭐나 혼자보다는 같이 힘을 모으고 그 가치를 이루다 보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봐요.
남원시작은변화포럼에서 요즘 이슈로 생각하고 있는 건?
선거죠. 특히 남원시장 후보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정책 협약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당가면 술이며 음식값이며 모두 다 올랐어요.
유일하게 안 오른 게 뭔지 아세요?
바로 공깃밥이에요. 늘 천 원이죠."
남원시농민회 차원에서 생각하는 작은 변화는 어떤 건가요?
남원 같은 경우는 도농복합도시다 보니까, 농촌 지역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농민회에서 어떠한 사업들을 진행하면 예를 들면, 수세 폐지 운동이라든지. 의료보험 개혁 운동이라든지. 이런 사업들을 진행했을 때 지역에서 굉장히 많이 호응해주었었는데 언제부턴가 농민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바뀌고 있다는 거죠. 그냥 본인들은 나서지 않아도 동조하지 않아도 혜택은 같이 볼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많은 것같아 씁쓸해요.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비단 농민회만의 문제가 아니고 시민사회단체가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일 거예요.
옛날에는 농민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힘들어도 보람도 느끼고 이런 게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거든요. 예를 들면, 농민수당이 올해로 삼 년 차 지급이 될 텐데 사람들은 도 행정에서 주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농민회가 주도해서 농민수당을 만든 건데 혜택은 똑같이 보지만 노력은 농민회가 제일 앞에서 고생했고 처음에 일 년 차째는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후로 이 년 차 받을 때는 당연히 받는 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작은변화포럼에 가입한 거는 어찌 됐든 연대가 필요하고 뭔가 변화를 만들 거면 한 개 단체 갖고는 좀 힘들다는 느낌이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은변화포럼에 가입하고 작년에 집행위원장도 맡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극완 님을 사월의 인물로 선정했던 이유는 남원에서 4·16 세월호 추모 행사를 8년째 계속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팔 년 전 생일이었어요. 제가 4월 16일에 태어났으니까요. 저녁에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로 해서 만났는데 배가 침몰했느니 어쩌니 하더라구요. 제가 TV를 안 보고 핸드폰으로만 대충 내용을 봤는데 전원 구조됐다고 뜨더라고요. 박근혜 정권 때였으니까. 정부에 대한 믿음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오늘은 술 먹으면 안 될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너는 TV도 안 보냐면서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하더라구요.
다 구조됐잖아 했더니 오보였다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엔 되게 막막했어요. 앞으로 내 생일은 많은 분이 기억하겠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슬퍼하겠구나, 그리고 나는 생일이라고 마냥 기뻐할 수 없겠구나. 어쩌면 4월 16일에 태어난 게 이런 걸 하라는 숙명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원시 도통동사무소 근처 세월호 광장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리본 광장이라고도 부르고 했었던 곳을 거점으로 처음에는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의 염원을 모아 세월호 집회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거의 매일 집회하다가 구조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세월호 집회를 쭉 진행했어요.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 유가족 간담회에도 같이 참가하고 행진도 함께하고 서명운동도 같이했어요. 이제는 구조 안 한 것에 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진상 규명될 때까지 세월호 추모제를 했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첫 추모제 때는 제가 아이가 하나였는데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둘째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상 규명이 될 줄 알았고,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권이 나서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뭔가를 바꾼다는 게 쉽진 않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광주분들이 세월호 10년 상주 모임을 만들었는데 솔직히 10년은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8주기예요.
그분들은 5.18이란 큰일을 겪으면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 아픔을 씻어내는 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느꼈고 촛불정권이라고 문재인 정권에서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걸 솔직히 믿었는데 이렇게 무능할 수가 없구나!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4월 16일이 제 생일인데요.
세월호 사고 이후 진상 규명될 때까지
세월호 집회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렇게 길게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본인의 개인적인 삶에서의 소망하는 작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내일 결과 발표를 하는데 농업마이스터 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아버지때부터 쭉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업으로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열심히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복숭아만큼은 전문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농사지어서 다른 사람들이 배우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이나 이루고자 하는 게 있다면?
앞으론 일을 조금 더 줄이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길 바라요. 저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렇게 일 많이 안 해도 세상이, 우리 지역사회가 잘 돌아가면 좋겠어요.그리고 이루고 싶은 것은 훌륭한 어른 되는 거예요. 지역에 훌륭한 어른들이 많으면 지역사회가 절대 병들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런 훌륭한 어른이 돼 있지 않을까 기대해봐요.
"하루 일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오늘 열심히 살았다."
글쓴 사람. 수수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들을 좋아합니다.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수수처럼 작지만 가치있는 일들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