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누리의 책장, 12권

지리산이음
2025-04-09


※ 산청 카페 '남다른이유'의 <4월 누리의 책장>에서 소개한 책 12권입니다.




1)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맞아 난 강해져도 티내지 않는 / 식물성 힘을 갖게 될 거야 / 크게 자라 / 신령하게 될 거야」 (54쪽)


마을에서 시 읽기 모임을 하며 만난 시집입니다. 함께 만나서 1시간은 따로 읽고, 1시간은 같이 이야기 나누고 낭독했어요.
과거와 현재를, 삶과 죽음을 오가는 시어들이 컬러풀합니다.



2) 일기

「언제든 그 페이지로 돌아가려고 스티커를 붙여두었고 며칠째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기여한 모든 것.」 (62쪽)


소설가로도 참 좋아하는 황정은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내 잘못은 아니야! 나쁜 사람들은 따로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에 저는 이 문장을 생각해요.



3) 어느 날 네가 말했다, 나는 좀 다르다고.

「이제, 사랑해 마지않는 모든 이들과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비로소.」 (67쪽)


지역을 둘러싼 관계망이 촘촘할수록 다름을 드러내기는 어려워지고, 익명성이 있는 도시로 떠나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이 '지금 여기서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려면 이웃으로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이 책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4)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번역 욕망!" 맞아요. 약간 식욕 같아요. 내 안으로 넣는 거잖아요. 갖고 싶다는 소유욕.」 (235쪽)


모국어가 같은 사람들끼리도 내가 말하는 '순수'와 그가 말하는 '순수'가 다르고,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번역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다른 언어, 시의 맥락에서라면 얼마나 더 어려운 미션일까요? 그 어려운 작업에 기꺼이 도전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5)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

「단어 하나를 고를 때마다, 문장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질문을 던져 보자. '무엇이 더 쉬운가?', '무엇이 더 정확하면서도 쉬운가?'」 (40쪽)


지금 소속되어 있는 조직(지리산이음)에서는 홍보 업무를 맡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도록 사전 정보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항상 다짐하지만, 매번 처참하게 실패한답니다.



6) 기억하는 몸

「"책에서는 의자 다리가 어떻고 책상 다리가 어떤지는 묘사하지만, 재질이 어떻고 앉았을 때 얼마나 편한지는 별로 쓰여 있지 않아요."」 (131쪽)


시각의 세계에 사는 저로서는 소설을 읽으며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장애를 가진 열두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몸이 '나다움'을 만드는 방식을 조명합니다.



7)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기록자는 내일을 위한 기록의 보존을 넘어 '지금-여기'를 성찰하고 기록이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114쪽)


공부하듯 읽은 책이라 유독 밑줄이 많아서 머쓱하네요. 제가 잠시 머무른 문장이라고 생각해주시길!



8)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엄살원

「"당신이 나의 히말라야입니다. 당신이 나의 에베레스트입니다."」 (130쪽)


진짜 재밌는 책!!!!-이라는 도장을 찍고 싶어요! 3명의 호스트가 활동가 손님을 한 명씩 초대하고, 비건 만찬을 대접하며 그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자기소개에 '세계를 보는 시야를 상하좌우로 확장해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적었는데, 정말이지 이 책이 그렇습니다. 만듦새도 무척 아름답고요.



9) 활동가들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주변의 사람과 같이 나아가야 해요. 설득과 조직을 해내는 그 자질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57쪽)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면 베드로가 구마 현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최부제에게 "아무도 몰라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 텐데?"라고 말해요.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며 가장 깊숙한 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알아주고, 보상을 고민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10) 영화도둑일기

「해적이 아니면 시네필이 아니다. 이건 논란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웃음)」 (107쪽)


이 책의 물성에 주목해보세요!
빛 바랜 색감의 표지나, 해적판처럼 번진 느낌을 주는 까슬까슬한 내지가 책의 주제('영화도둑질')와 결합되면서 기분 좋은 일치감을 선물합니다.



11) 헤어질 결심 각본

「식사를 마친 해준, 착착 정리한다. 서래가 정리한 것들을 받아 합친다. 둘은 손발이 잘 맞는다.」 (41쪽)


희곡에는 텍스트를 읽으며 배우의 얼굴, 몸짓, 무대의 조명을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면, 영화를 바탕으로 한 각본집에는 오히려 영화를 보며 내 맘대로 상상해본 것들을 차곡차곡 접어 감독이 의도한 지문 안으로 수납해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상상이야, 언제든 다시 펼쳐볼 수 있구요!)



12) 윤희에게 시나리오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봐.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12쪽)


그러고 보니, 산내 청년모임에서 <윤희에게>를 첫 눈 오는 날 같이 보기로 해놓고 잊어버렸네요. 여름에라도 봐야겠어요.





김누리 | 지리산 자락의 남원시 산내면에서 일반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을 거치며 자랐고, 지리산이음에서 n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는 시야를 상하좌우로 확장해주는 책들을 좋아합니다.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지는 농촌살이를 그리면서 하루하루는 적당하게 사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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