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말하는 ‘기본값’을 바꾸는 사람들
<함께평화> 햇살
글 / 푸른
사진 / 함께평화

제2회 함께평화영화제 <수라> 감독과의 대화
<함께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탄생 배경을 들려주세요.
산청 주민들이 모여서 산청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이 2020년 8월 14일이었고, 이듬해인 2021년 8월 14일에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과정을 백서로 만들어서 배포하는 행사를 했어요. 아시겠지만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에요. 이 일을 맡아온 <산청군평화비건립위원회>라는 단체가 해산총회를 하면서 이 소중한 모임을 어떻게든 이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게 돼요. 기존 단체를 유지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건립위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모임을 만들자는 결론이 났죠. 그래서 저희 <함께평화>가 만들어지고, 2021년 11월에 창립하게 되었어요.
<함께평화>는 3년 된 햇병아리 단체이지만, 그 전신인 <산청군평화비건립위원회>의 이야기까지 더하면 그 역사가 짧지만은 않네요.
산청에도 소녀상을 세우자는 얘기를 처음 들었던 건 2017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인 산청에서 꿈도 야무지다 생각했었어요. 2019년 여름쯤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단체의 창립 준비모임이 있었죠. 제가 그 모임에 가게 됐는데, 그 자리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후로도 소녀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열정적이고 ‘진심’인 거예요. 그리고 진보연합에서 제안하긴 했지만, 정치적 틀을 떠나 훨씬 더 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마음을 모으는 모습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놀랍고 감동적이었어요. 어르신들, 종교인들, 활동이 뜸했던 농민회 회원분들 등을 다 만날 수 있었죠. 기적을 이뤄가는 것 같았어요.
한편, 산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인 2019년 1월에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 좋지 않더라고요. 제가 산청에 오기 전에는 부산의 여성단체에서 거의 20년간 활동을 해왔는데 수요집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그게 새삼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복동 할머니는 저희 엄마랑 연세도 비슷하시고 고향도 같은 양산이셔요. 저희 엄마도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17살에 결혼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엄마일 수도 있었던 일, 너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니 마음이 더 먹먹했죠. 할머니가 그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라고요. 그게 마치 제게 남겨주신 씨앗 같았어요. 그래서 건립위를 이어받을 새로운 단체를 누가 꾸려갈까 의논하던 시점에 ‘지금이라도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생겼죠. 그래서 자원했어요.

산청 평화의 소녀상
햇살 님에겐 무척 특별한 단체일 수밖에 없었네요. 그럼 지금의 구성원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요? <함께평화>를 꾸려가는 구성원들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공동대표가 두 분 계시는데요, 이성락 대표님은 건립위에서부터 함께해오셨고, 건립위 상임대표이셨던 농민운동가 임봉재 선생님께서 지금의 임미루 대표님을 추천해 주셨고요. 제가 자원해서 사무국장이 되었고, 누구와 더 같이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성연과 푸른을 떠올렸죠. 성연(기림사업팀장)은 농민회 여성회원 타로모임에서 만나서 많이 알게된 사이였는데, 그때 저력을 보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에서 오래 일했던 경력도 있고요. 푸른(교육사업팀장)과는 일단 만나서 관심 키워드 세 가지를 얘기했는데 저랑 두 가지나 겹쳤어요. ‘평화’와 ‘교육’. 푸른은 나머지 하나가 ‘어린이’였고, 저는 ‘여성’이었죠.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같이하자고 제안했어요. 춘기 씨(보존사업팀장)는 꼭 필요한 역할이어서 대표님이 직접 스카웃했고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당시 반신반의했어요. 지역에서 수평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수직적인 구조와 언어, 문화를 많이 경험했고, 거기에 질려 있었는데 제가 사랑하는 ‘평화’를 위한 활동도 그렇게 하게 될까 봐 아주 오래 고민했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함께평화>를 함께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에요! 근데 ‘함께평화’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거예요?
‘산청 평화의소녀상 보존위원회’ 같은 이름이 될 뻔했는데, 그럼 형식에 치우쳐 일만 하거나, 그마저도 소녀상 관리에만 그칠 것 같았어요. 역사와 현재를 연결해 무언가 살아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함께평화>로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됐죠.

사람책 '이영자 할머니의 소녀시대'
살아있는 활동이라!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함께평화>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함께평화>가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할까요? 엄청 거창하고 거대한 이름처럼 느껴지거든요.
‘평화’는 매우 넓은 의미를 안고 있죠. 그 폭넓고 다양한 ‘평화’ 문제들 중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활동할 ‘평화’의 범위를 딱 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과거 문제와 현재의 문제에도 모두 열어두고, 사회에서 필요한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 필요한 평화, 내면의 평화까지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범위는 모두 열려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게 모두 연결되어 있고요. 사실 아직 운영위나 회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의 정의’ 같은 것에 대해 공유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좀 열려있고, 서로가 생각하는 ‘평화’들을 확인해 가는 단계죠.
<함께평화>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연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매년 1월에 정기총회가 열리고요. 봄에는 산청 할머니들(산청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 분 계셨다.)의 묘소 정비와 평화 기행을 해요. 5월에는 상반기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요. 교육은 사람책 형식으로 주로 진행했고, 외부 강사를 모시고 평화감수성 워크숍을 열기도 했어요. 8월에는 기림 주간에 기림행사와 '함께평화영화제'를 열어요. 영화제는 올해로 2회째인데 점점 성장하고 주목받는 것 같아요. 추석 무렵에는 벌초하고, 10월에 하반기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요. 연간 계획에 있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여러 단체와 연대 활동을 해요. 4.16 추모행사도 함께하고, 지금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폐기 반대운동이나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같은 것들을 함께하고 있어요.
와, 우리 알차게 굴러가고 있네요. 각자 생업이 있는 6명이 모여서 이렇게 단체를 계속 운영해 나가는 일이 녹록지 않을 텐데요. 그런 것에 부담이나 두려움은 없나요?
물론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운영위 아닌 회원분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해야지요. ‘함께평화영화제’ 준비팀은 운영위원과 회원, 비회원이 골고루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 체계를 더 넓혀가야죠. 단체 운영에 정답은 없지만 막연하게라도 긍정하고 있어요. 잘되지 않을까요? 하하. 일단 저는 계속해야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재밌잖아요.

평화감수성워크숍'멈칫'
‘재미’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함께평화를 통해서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뭐에요?
일단은 산청의 학교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방문해서 역사와 의미를 들어보고, 둘러앉아 평화 이야기도 나누고, 영상도 함께 보고 그럴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소녀상 탐방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들에게 이걸 전달하고, 또 연결해 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제도 계속 알콩달콩 재미있게 만들어 나가고 싶고요. 이다음에 <함께평화>가 더 커진다면 다른 인권 문제들도 더 관심을 두고 싶어요. 쉽지는 않지만 꿈꾸지 않으면 되는 건 없으니까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빨리 뭐라도 더 하고 싶어지는 대화네요. 우리 단체에 관해서 얘기 나누다보니 사심이 가득해져요. 산청에서 지금 <함께평화>는 어떤 의미로 인식되고 있을까요?
뭔가 알차고 따뜻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체계적이고 따뜻하다는 평가도 들어본 적 있고요. 환대받는 느낌이 든다고도 많이들 말씀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우리 지역에서 교육이나 회의 같은 자리에서 모둠별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든지, 꽃과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환대하는 그런 문화는 별로 없었죠. 늘 하던 방식대로, 틀에 박힌 진행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환대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낯선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마주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실제로 시도하고 겪어보니,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스러워했잖아요. 영화제도 ‘믿고 보는 영화제’라는 평가도 듣고요. 따뜻하고, 알차고, 환대하는 곳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요.

함께평화 운영위 회의중 (※두 사람 빠짐)
맞아요. 우리가 ‘기본값’을 바꿔놓은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하하. 그럼 <함께평화>의 그런 좋은 에너지와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함께평화>라는 저희 단체 이름.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할머니들이 남겨주신 말씀과 과제들이요.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들이 저희의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그런 게 없으면 우린 사실 흔들릴 수도 있는 거죠. 어디로 가야 할지. 그런데 다양한 걸 담아내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 힘의 원천은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할머니들인 것 같아요.
글 쓴 사람. 푸른
#어린이 #평화 #교육 #농촌에 주로 마음을 두고 산청에 살아가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 재미난 꿈을 꾼다. 직장도 직업도 없지만 하는 일은 꽤 많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

평화를 말하는 ‘기본값’을 바꾸는 사람들
<함께평화> 햇살
글 / 푸른
사진 / 함께평화
제2회 함께평화영화제 <수라> 감독과의 대화
<함께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탄생 배경을 들려주세요.
산청 주민들이 모여서 산청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이 2020년 8월 14일이었고, 이듬해인 2021년 8월 14일에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과정을 백서로 만들어서 배포하는 행사를 했어요. 아시겠지만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에요. 이 일을 맡아온 <산청군평화비건립위원회>라는 단체가 해산총회를 하면서 이 소중한 모임을 어떻게든 이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게 돼요. 기존 단체를 유지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건립위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모임을 만들자는 결론이 났죠. 그래서 저희 <함께평화>가 만들어지고, 2021년 11월에 창립하게 되었어요.
<함께평화>는 3년 된 햇병아리 단체이지만, 그 전신인 <산청군평화비건립위원회>의 이야기까지 더하면 그 역사가 짧지만은 않네요.
산청에도 소녀상을 세우자는 얘기를 처음 들었던 건 2017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인 산청에서 꿈도 야무지다 생각했었어요. 2019년 여름쯤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단체의 창립 준비모임이 있었죠. 제가 그 모임에 가게 됐는데, 그 자리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후로도 소녀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열정적이고 ‘진심’인 거예요. 그리고 진보연합에서 제안하긴 했지만, 정치적 틀을 떠나 훨씬 더 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마음을 모으는 모습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놀랍고 감동적이었어요. 어르신들, 종교인들, 활동이 뜸했던 농민회 회원분들 등을 다 만날 수 있었죠. 기적을 이뤄가는 것 같았어요.
한편, 산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인 2019년 1월에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저는 마음이 너무 좋지 않더라고요. 제가 산청에 오기 전에는 부산의 여성단체에서 거의 20년간 활동을 해왔는데 수요집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그게 새삼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복동 할머니는 저희 엄마랑 연세도 비슷하시고 고향도 같은 양산이셔요. 저희 엄마도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17살에 결혼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엄마일 수도 있었던 일, 너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니 마음이 더 먹먹했죠. 할머니가 그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라고요. 그게 마치 제게 남겨주신 씨앗 같았어요. 그래서 건립위를 이어받을 새로운 단체를 누가 꾸려갈까 의논하던 시점에 ‘지금이라도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생겼죠. 그래서 자원했어요.
산청 평화의 소녀상
햇살 님에겐 무척 특별한 단체일 수밖에 없었네요. 그럼 지금의 구성원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요? <함께평화>를 꾸려가는 구성원들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공동대표가 두 분 계시는데요, 이성락 대표님은 건립위에서부터 함께해오셨고, 건립위 상임대표이셨던 농민운동가 임봉재 선생님께서 지금의 임미루 대표님을 추천해 주셨고요. 제가 자원해서 사무국장이 되었고, 누구와 더 같이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성연과 푸른을 떠올렸죠. 성연(기림사업팀장)은 농민회 여성회원 타로모임에서 만나서 많이 알게된 사이였는데, 그때 저력을 보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에서 오래 일했던 경력도 있고요. 푸른(교육사업팀장)과는 일단 만나서 관심 키워드 세 가지를 얘기했는데 저랑 두 가지나 겹쳤어요. ‘평화’와 ‘교육’. 푸른은 나머지 하나가 ‘어린이’였고, 저는 ‘여성’이었죠.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같이하자고 제안했어요. 춘기 씨(보존사업팀장)는 꼭 필요한 역할이어서 대표님이 직접 스카웃했고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당시 반신반의했어요. 지역에서 수평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수직적인 구조와 언어, 문화를 많이 경험했고, 거기에 질려 있었는데 제가 사랑하는 ‘평화’를 위한 활동도 그렇게 하게 될까 봐 아주 오래 고민했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함께평화>를 함께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에요! 근데 ‘함께평화’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거예요?
‘산청 평화의소녀상 보존위원회’ 같은 이름이 될 뻔했는데, 그럼 형식에 치우쳐 일만 하거나, 그마저도 소녀상 관리에만 그칠 것 같았어요. 역사와 현재를 연결해 무언가 살아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함께평화>로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됐죠.
사람책 '이영자 할머니의 소녀시대'
살아있는 활동이라!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함께평화>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함께평화>가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할까요? 엄청 거창하고 거대한 이름처럼 느껴지거든요.
‘평화’는 매우 넓은 의미를 안고 있죠. 그 폭넓고 다양한 ‘평화’ 문제들 중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활동할 ‘평화’의 범위를 딱 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과거 문제와 현재의 문제에도 모두 열어두고, 사회에서 필요한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 필요한 평화, 내면의 평화까지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범위는 모두 열려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게 모두 연결되어 있고요. 사실 아직 운영위나 회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의 정의’ 같은 것에 대해 공유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좀 열려있고, 서로가 생각하는 ‘평화’들을 확인해 가는 단계죠.
<함께평화>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연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매년 1월에 정기총회가 열리고요. 봄에는 산청 할머니들(산청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 분 계셨다.)의 묘소 정비와 평화 기행을 해요. 5월에는 상반기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요. 교육은 사람책 형식으로 주로 진행했고, 외부 강사를 모시고 평화감수성 워크숍을 열기도 했어요. 8월에는 기림 주간에 기림행사와 '함께평화영화제'를 열어요. 영화제는 올해로 2회째인데 점점 성장하고 주목받는 것 같아요. 추석 무렵에는 벌초하고, 10월에 하반기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요. 연간 계획에 있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여러 단체와 연대 활동을 해요. 4.16 추모행사도 함께하고, 지금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폐기 반대운동이나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같은 것들을 함께하고 있어요.
와, 우리 알차게 굴러가고 있네요. 각자 생업이 있는 6명이 모여서 이렇게 단체를 계속 운영해 나가는 일이 녹록지 않을 텐데요. 그런 것에 부담이나 두려움은 없나요?
물론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운영위 아닌 회원분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해야지요. ‘함께평화영화제’ 준비팀은 운영위원과 회원, 비회원이 골고루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 체계를 더 넓혀가야죠. 단체 운영에 정답은 없지만 막연하게라도 긍정하고 있어요. 잘되지 않을까요? 하하. 일단 저는 계속해야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재밌잖아요.
평화감수성워크숍'멈칫'
‘재미’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함께평화를 통해서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뭐에요?
일단은 산청의 학교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방문해서 역사와 의미를 들어보고, 둘러앉아 평화 이야기도 나누고, 영상도 함께 보고 그럴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소녀상 탐방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들에게 이걸 전달하고, 또 연결해 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제도 계속 알콩달콩 재미있게 만들어 나가고 싶고요. 이다음에 <함께평화>가 더 커진다면 다른 인권 문제들도 더 관심을 두고 싶어요. 쉽지는 않지만 꿈꾸지 않으면 되는 건 없으니까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빨리 뭐라도 더 하고 싶어지는 대화네요. 우리 단체에 관해서 얘기 나누다보니 사심이 가득해져요. 산청에서 지금 <함께평화>는 어떤 의미로 인식되고 있을까요?
뭔가 알차고 따뜻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체계적이고 따뜻하다는 평가도 들어본 적 있고요. 환대받는 느낌이 든다고도 많이들 말씀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우리 지역에서 교육이나 회의 같은 자리에서 모둠별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든지, 꽃과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환대하는 그런 문화는 별로 없었죠. 늘 하던 방식대로, 틀에 박힌 진행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환대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낯선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마주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실제로 시도하고 겪어보니,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스러워했잖아요. 영화제도 ‘믿고 보는 영화제’라는 평가도 듣고요. 따뜻하고, 알차고, 환대하는 곳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요.
함께평화 운영위 회의중 (※두 사람 빠짐)
맞아요. 우리가 ‘기본값’을 바꿔놓은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하하. 그럼 <함께평화>의 그런 좋은 에너지와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함께평화>라는 저희 단체 이름.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할머니들이 남겨주신 말씀과 과제들이요.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들이 저희의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그런 게 없으면 우린 사실 흔들릴 수도 있는 거죠. 어디로 가야 할지. 그런데 다양한 걸 담아내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 힘의 원천은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할머니들인 것 같아요.
글 쓴 사람. 푸른
#어린이 #평화 #교육 #농촌에 주로 마음을 두고 산청에 살아가며 하루에도 수십 가지 재미난 꿈을 꾼다. 직장도 직업도 없지만 하는 일은 꽤 많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