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기서 ‘잘’ 살고 있다는 청년들의 외침
청년스타트업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
글 / 정진이
사진 / 다른파도
하동에서 디자인과 IT기술을 공급하고 있는 20대 청년 기업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를 만났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지역에 이런 회사가 필요한 걸까?
대표님은 어떻게 하동에 오게 되었어요?
고향이 하동이고, 서울에서 게임 개발 프로그래머로 6년 정도 일했어요. 그러다 게임 업계에 회의감을 느껴서 일을 그만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죠. 치앙마이에 가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려고 했어요. 준비 중에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하동에 대피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지 3년 됐네요. 치앙마이에 가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배운 프로그래밍 기술이 조금 더 필요한 곳에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곳은 신흥 도시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 기술이 필요한 곳인 것 같았거든요. 자연도 좋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동도 그런 곳이더라고요. 그런데 심지어 말까지 잘 통하니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하동에 와서 처음부터 <다른파도>를 시작한 건 아니었잖아요?
일단 하동에 왔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제가 하던 일을 외주로 계속할지 다른 일을 할지 고민했거든요. 다른 일이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마침 코로나 때문에, 최참판댁에 빈 상가가 나왔어요. 그래서 일단 계약부터 해 놓고 뭘 할지 생각을 좀 해봤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빵이나 디저트를 좋아했거든요. 커피도 좋아했고. 그때 하동에서 아쉬웠던 게 디저트 카페였거든요. 한창 도넛이 유행하던 참이었고, 특산물을 이용해서 도넛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었죠. 그렇게 <달달하동>을 만들었어요.
시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유행하는 시기였지만 하동에는 확진자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관광객들도 꽤 오는 편이었고, 디지털마케팅 분야는 제가 잘 알기도 했기 때문에 홍보도 잘 됐어요. 그 이후에 하동에 카페도 많이 생기고 시즌도 많이 타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하동읍에 <반달곰상회>라는 빵집을 차렸어요. 매장이 두 개가 생기고 어떻게 연결해서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다른파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청년궁리>라는 모임에서 알게 된 경민 님이(다른파도 권경민 이사) <달달하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경민 님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트북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하동에 왔을 때 프로그래머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 일을 접었어요. 그런데 경민님은 자기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서 ‘하동에서 나를 쓸 만한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저도 자극을 받아서 제 전공을 살려서 카페 운영과 결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지금의 회사를 구상하게 된 것 같아요. 21년 9월쯤부터 준비해서 22년 1월에 법인을 만들었어요.
<다른파도>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지역에 필요한 디자인과 IT기술을 공급하고 다닌다.’고 말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농업인들의 상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해서 판매하는 것까지 도와드려요. <달달하동>과 <반달곰상회>를 하면서 회사를 시작했거든요. 병행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그걸 정리하는 데 일 년이 걸린 것 같아요. 하동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회사에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일단은 당장 수요가 있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디자인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필요한 곳이 많더라고요. 농산물의 원물부터 가공품, 패키지, 스마트스토어 개설, 상세 페이지 만들기, 마케팅까지 저희가 하는 일이에요. 경민 님이 디자인 작업을 마치면 마케팅부터는 제 일이죠. 지금까지는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진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저희가 하는 작업을 보고 일을 맡겨주시는 업체들이 많고, 지역 축협이나 청년 농업인들도 일을 의뢰하시고요.
청년마을만들기 사업을 작년부터 하고 있죠? <다른파도>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법인을 급하게 만든 건 ‘청년마을만들기(이하 청년마을)’ 사업 때문이기도 해요. 지역에서 남들이 안하는 일,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일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지역에 내려오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한다든지, 제가 했던 카페처럼 특산물을 활용한 사업을 해야 한다고 길을 정해놓은 것 같았어요. 저는 그것보다는 디자인이나 IT 기술을 공급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건데,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 아닌지를 논의해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청년마을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는 공공성을 띤 일을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청년마을 사업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지방은 소멸하고 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지금으로서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위에서 ‘이건 이렇게 해 봐라, 저건 저렇게 해 봐라’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는 청년들의 방식을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청년들이 지역에 들어와서 활기를 띠게 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업이에요. 최근에 했던 ‘체력 없는 체육대회’도 그 일환이죠. 보통은 마을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어르신들 주축으로 진행되고 청년들이 낄 자리가 별로 없거든요. 우리는 그 빈틈을 파고들어서 ‘우리도 사실은 체육대회 하고 싶었다!’고 외치는 거예요.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디자인 요소들을 넣어서 힙하고 재밌게 해보는 거죠. 게임 편성도 좀 남다르게, 농촌이지만 다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기에 체력 없는 청년들도 웃고 떠들 수 있는 자리. 이렇게 틀을 조금 비틀고 깨면서 지역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어요. 그날 마을 어르신들도 많이 참여하셨거든요. ‘어? 우리 동네에 디자인하는 청년이 있다고? 기획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요. 마을 분들도 저희가 말로 설명해봤자 안 들으시거든요. 그런데 그날 ‘마을에 이렇게 청년들이 와서 노니까 북적북적하니 좋네.’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드리는 거죠.
<다른파도>의 수익 사업과 청년마을 사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보람이 있나요?
만약에 청년마을 사업을 안 했으면 ‘지역에 우리 사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명분이 부족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 사업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이나 지자체에 우리가 하는 일, 디자인이나 IT기술의 공급이 왜 필요한지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보여줄 수 있었고, 공감을 많이 얻었고, 인정받을 수 있어서 큰 힘이 됐어요. 또 이 활동을 통해서 지역민들이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많이 알게 되셨고요. 저희가 영리법인이지만 사회적 책임 또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이 사업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파도>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어요?
대안주의적인 마인드셋이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하동에서 청년들은 일할 데가 없다’라거나 ‘디자인 같은 건 지역에서 중요하지 않다’라는 고정관념에 맞서서 ‘아니다! 우리는 할 일 많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동에 섬진강과 지리산이 있다는 건 알지만 바다가 있다는 건 잘 모르거든요. 다르다는 건 특이한 걸 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들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는 것, 아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태도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물방울처럼 모이고 모이면 큰 파도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파도>가 하는 활동이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하는 일들이 이 지역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라는 생각을 해요. 아직 검증된 건 아니잖아요? 이 주장을 검증해 내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좀 중요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이걸로 많은 질문에 대답을 얻을 수가 있거든요. ‘하동에 오면 뭐 먹고 살아?’, ‘할 일은 있어?’, ‘먹고 살 만 해?’ 같은 질문들 말이죠. 사업적으로는 수요가 많아요. 그런데 지역의 업체들은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도 모르고, 해야 할지도 몰라요. 지자체도 별로 다르지 않아요. 결국에는 도시에 있는 업체들에 일을 맡깁니다. 지역 안에서 선순환이 안 돼요. 저희가 공공사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지역으로 한 번 내려온 사업이 결국 중앙으로 올라가서 실행되는 순환을 깨 보고 싶은 거죠. 그렇게 하려면 저희는 도시에 있는 업체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지역에 있는 업체로서 뭘 해줄 수 있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고민의 과정에서 유의미한 답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하고, 현장과 가까이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4월에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 <빅페리컴즈>를 런칭했어요. 어떤 의미에서 시작했나요?
서러움에서 시작이 됐어요. 디자인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눈에 보이는 걸 말로 설명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뭘 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돈이 되든 안 되든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여기에 살을 붙여나가다 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지역에 디자인을 공급하는 일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디자이너가 결과물을 직접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목표였어요. 두 번째는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소비자. 생산자와 디자이너, 소비자가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 이거 완전 화개장터잖아.’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는 화개장터 앞 섬진강에 배가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전라도와 경상도 어디서든 올 수 있었고요. 거기에 착안해서 이름을 ‘BIG FERRY COMES’라고 지었죠.
2023년 남은 기간의 계획과 내년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올해 사업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결과물이 뭔지 예고편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파는 농산물을 이슈화하고 싶어서 펀딩을 받아볼까 해요. 협업하는 업체들과 서울이나 부산에서 작게라도 팝업 스토어를 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내년에는 청년마을 사업이 끝나거든요. 사업 액수가 커서 저희 지지기반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사업이 끝난 이후에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지역에 있는 업체들과 같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실행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매거진을 발행하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자체는 생활권이 아니라 지리적인 행정 범위로 묶여 있잖아요. 반면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동의해요. 지역 간의 경계를 많이 허물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변화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방식인 것 같아서 이런 노력을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매거진이 또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겠죠. 욕심이라면, 지리산권에 있는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저희와 같이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다른파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역의 경험을 디자인하고, 기술로 연결하는 로컬 스타트업’이라고 회사를 소개한다. 이강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것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지역에 이 회사가 꼭 필요한 이유. 지역에서 사람들과 몸소 부대끼며 알고,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지 않으면 모르는 정서가 이들의 디자인과, 기술에 ‘연결’되어 있다.
글 쓴 사람. 정진이
하동으로 귀촌한지 6년. 악양 <마을공방 두니>에서 <탐구생활>이라는 식물공방을 운영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기록활동가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하동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
우리 여기서 ‘잘’ 살고 있다는 청년들의 외침
청년스타트업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
글 / 정진이
사진 / 다른파도
하동에서 디자인과 IT기술을 공급하고 있는 20대 청년 기업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를 만났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지역에 이런 회사가 필요한 걸까?
대표님은 어떻게 하동에 오게 되었어요?
고향이 하동이고, 서울에서 게임 개발 프로그래머로 6년 정도 일했어요. 그러다 게임 업계에 회의감을 느껴서 일을 그만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죠. 치앙마이에 가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려고 했어요. 준비 중에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하동에 대피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지 3년 됐네요. 치앙마이에 가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배운 프로그래밍 기술이 조금 더 필요한 곳에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곳은 신흥 도시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 기술이 필요한 곳인 것 같았거든요. 자연도 좋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동도 그런 곳이더라고요. 그런데 심지어 말까지 잘 통하니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하동에 와서 처음부터 <다른파도>를 시작한 건 아니었잖아요?
일단 하동에 왔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제가 하던 일을 외주로 계속할지 다른 일을 할지 고민했거든요. 다른 일이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마침 코로나 때문에, 최참판댁에 빈 상가가 나왔어요. 그래서 일단 계약부터 해 놓고 뭘 할지 생각을 좀 해봤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빵이나 디저트를 좋아했거든요. 커피도 좋아했고. 그때 하동에서 아쉬웠던 게 디저트 카페였거든요. 한창 도넛이 유행하던 참이었고, 특산물을 이용해서 도넛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었죠. 그렇게 <달달하동>을 만들었어요.
시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유행하는 시기였지만 하동에는 확진자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관광객들도 꽤 오는 편이었고, 디지털마케팅 분야는 제가 잘 알기도 했기 때문에 홍보도 잘 됐어요. 그 이후에 하동에 카페도 많이 생기고 시즌도 많이 타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하동읍에 <반달곰상회>라는 빵집을 차렸어요. 매장이 두 개가 생기고 어떻게 연결해서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다른파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청년궁리>라는 모임에서 알게 된 경민 님이(다른파도 권경민 이사) <달달하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경민 님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트북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하동에 왔을 때 프로그래머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 일을 접었어요. 그런데 경민님은 자기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서 ‘하동에서 나를 쓸 만한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저도 자극을 받아서 제 전공을 살려서 카페 운영과 결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지금의 회사를 구상하게 된 것 같아요. 21년 9월쯤부터 준비해서 22년 1월에 법인을 만들었어요.
<다른파도>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지역에 필요한 디자인과 IT기술을 공급하고 다닌다.’고 말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농업인들의 상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해서 판매하는 것까지 도와드려요. <달달하동>과 <반달곰상회>를 하면서 회사를 시작했거든요. 병행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그걸 정리하는 데 일 년이 걸린 것 같아요. 하동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회사에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일단은 당장 수요가 있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디자인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필요한 곳이 많더라고요. 농산물의 원물부터 가공품, 패키지, 스마트스토어 개설, 상세 페이지 만들기, 마케팅까지 저희가 하는 일이에요. 경민 님이 디자인 작업을 마치면 마케팅부터는 제 일이죠. 지금까지는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진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저희가 하는 작업을 보고 일을 맡겨주시는 업체들이 많고, 지역 축협이나 청년 농업인들도 일을 의뢰하시고요.
청년마을만들기 사업을 작년부터 하고 있죠? <다른파도>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법인을 급하게 만든 건 ‘청년마을만들기(이하 청년마을)’ 사업 때문이기도 해요. 지역에서 남들이 안하는 일,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일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지역에 내려오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한다든지, 제가 했던 카페처럼 특산물을 활용한 사업을 해야 한다고 길을 정해놓은 것 같았어요. 저는 그것보다는 디자인이나 IT 기술을 공급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건데,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 아닌지를 논의해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청년마을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는 공공성을 띤 일을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청년마을 사업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지방은 소멸하고 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지금으로서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위에서 ‘이건 이렇게 해 봐라, 저건 저렇게 해 봐라’가 아니라 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는 청년들의 방식을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청년들이 지역에 들어와서 활기를 띠게 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업이에요. 최근에 했던 ‘체력 없는 체육대회’도 그 일환이죠. 보통은 마을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어르신들 주축으로 진행되고 청년들이 낄 자리가 별로 없거든요. 우리는 그 빈틈을 파고들어서 ‘우리도 사실은 체육대회 하고 싶었다!’고 외치는 거예요.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디자인 요소들을 넣어서 힙하고 재밌게 해보는 거죠. 게임 편성도 좀 남다르게, 농촌이지만 다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기에 체력 없는 청년들도 웃고 떠들 수 있는 자리. 이렇게 틀을 조금 비틀고 깨면서 지역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어요. 그날 마을 어르신들도 많이 참여하셨거든요. ‘어? 우리 동네에 디자인하는 청년이 있다고? 기획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요. 마을 분들도 저희가 말로 설명해봤자 안 들으시거든요. 그런데 그날 ‘마을에 이렇게 청년들이 와서 노니까 북적북적하니 좋네.’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드리는 거죠.
<다른파도>의 수익 사업과 청년마을 사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보람이 있나요?
만약에 청년마을 사업을 안 했으면 ‘지역에 우리 사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명분이 부족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 사업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이나 지자체에 우리가 하는 일, 디자인이나 IT기술의 공급이 왜 필요한지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보여줄 수 있었고, 공감을 많이 얻었고, 인정받을 수 있어서 큰 힘이 됐어요. 또 이 활동을 통해서 지역민들이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많이 알게 되셨고요. 저희가 영리법인이지만 사회적 책임 또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이 사업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파도>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어요?
대안주의적인 마인드셋이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하동에서 청년들은 일할 데가 없다’라거나 ‘디자인 같은 건 지역에서 중요하지 않다’라는 고정관념에 맞서서 ‘아니다! 우리는 할 일 많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동에 섬진강과 지리산이 있다는 건 알지만 바다가 있다는 건 잘 모르거든요. 다르다는 건 특이한 걸 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들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는 것, 아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태도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물방울처럼 모이고 모이면 큰 파도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파도>가 하는 활동이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하는 일들이 이 지역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라는 생각을 해요. 아직 검증된 건 아니잖아요? 이 주장을 검증해 내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좀 중요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이걸로 많은 질문에 대답을 얻을 수가 있거든요. ‘하동에 오면 뭐 먹고 살아?’, ‘할 일은 있어?’, ‘먹고 살 만 해?’ 같은 질문들 말이죠. 사업적으로는 수요가 많아요. 그런데 지역의 업체들은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도 모르고, 해야 할지도 몰라요. 지자체도 별로 다르지 않아요. 결국에는 도시에 있는 업체들에 일을 맡깁니다. 지역 안에서 선순환이 안 돼요. 저희가 공공사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지역으로 한 번 내려온 사업이 결국 중앙으로 올라가서 실행되는 순환을 깨 보고 싶은 거죠. 그렇게 하려면 저희는 도시에 있는 업체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지역에 있는 업체로서 뭘 해줄 수 있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고민의 과정에서 유의미한 답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하고, 현장과 가까이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4월에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 <빅페리컴즈>를 런칭했어요. 어떤 의미에서 시작했나요?
서러움에서 시작이 됐어요. 디자인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눈에 보이는 걸 말로 설명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뭘 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돈이 되든 안 되든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여기에 살을 붙여나가다 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지역에 디자인을 공급하는 일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디자이너가 결과물을 직접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목표였어요. 두 번째는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소비자. 생산자와 디자이너, 소비자가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 이거 완전 화개장터잖아.’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는 화개장터 앞 섬진강에 배가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전라도와 경상도 어디서든 올 수 있었고요. 거기에 착안해서 이름을 ‘BIG FERRY COMES’라고 지었죠.
2023년 남은 기간의 계획과 내년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올해 사업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결과물이 뭔지 예고편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파는 농산물을 이슈화하고 싶어서 펀딩을 받아볼까 해요. 협업하는 업체들과 서울이나 부산에서 작게라도 팝업 스토어를 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내년에는 청년마을 사업이 끝나거든요. 사업 액수가 커서 저희 지지기반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사업이 끝난 이후에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지역에 있는 업체들과 같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실행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매거진을 발행하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자체는 생활권이 아니라 지리적인 행정 범위로 묶여 있잖아요. 반면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동의해요. 지역 간의 경계를 많이 허물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변화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방식인 것 같아서 이런 노력을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매거진이 또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겠죠. 욕심이라면, 지리산권에 있는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저희와 같이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다른파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역의 경험을 디자인하고, 기술로 연결하는 로컬 스타트업’이라고 회사를 소개한다. 이강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것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지역에 이 회사가 꼭 필요한 이유. 지역에서 사람들과 몸소 부대끼며 알고,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지 않으면 모르는 정서가 이들의 디자인과, 기술에 ‘연결’되어 있다.
글 쓴 사람. 정진이
하동으로 귀촌한지 6년. 악양 <마을공방 두니>에서 <탐구생활>이라는 식물공방을 운영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기록활동가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하동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역 밀착형 유기농 매거진
< Asak! 아삭 >
Coming Soon 2024.01
Goal!
🎯 우리가 아는 지리산권을 말하기
🎯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 만들기
🎯 활동의 연결지점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