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통신

[2022 (봄) 지리산 워크스테이] #2-4 지금, 지리산 워크스테이 중입니다.

지리산이음
2022-06-28


첫 날, 들썩 앞에 의자를 놓고 앞을 바라보면 날이 좋은 어떤 날에는 천왕봉이 보인다고 자유가 말했다. 비가 오려는지 뿌연 저 산 너머가 천왕봉이라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천왕봉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지 나는 지리산 자락을 보고 있느니, 그걸로 충분하다. 


내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 한 바퀴, 숙소 바깥의자에 앉아 간단한 식사와 책읽기, 들썩에서 연구 보고서 작성, 일 끝나면 맛있는 저녁 후 산책, 약간의 독서 후 잠이다. 아주 단순하다.   


일과 생활이 분리 되지 않은 철암과 다르게 이곳은 철저히 일과 생활이 나눠졌다.  
내가 나만 살필 수 있는 이 시간이 오랜만이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공간을 옮기니 겪는 낯설음이 좋다.

   


산책 중에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석등



# 들썩, 내가 일하는 공간   


감꽃홍시에서 들썩까지 걸어오는 길은 안개 자욱할 날, 비가 내리는 날, 하늘이 맑을 날 그 안에 품어내는 공기는 다르다. 내가 지라산 자락에 있다 말하면 지인들은 지리산 천왕봉에 다녀갔느냐, 지리산 둘레길 걷느냐 물었다. 아니다. 나는 지리산 자락에서 워크스테이중!! 


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하는 중이다.


대신 근무시간 외에는 지리산 천왕봉 대신 지리산 자락인 산내면 길을 걸었다. 논길로, 고사리 밭으로, 강둑 따라 걸었다. 길이 없으면 돌아가고, 길이 있으면 가고 시간은 걸리더라도 걷고 나면 어느새 일 할 시간 ‘들썩’에 와 있다. 


맛있는 커피(차)와 인터넷과 프린터기가 있는 저 공간이 내 일터, 노트북을 켜면 일을 시작하고, 끄면 일이 끝난다. 점심시간, 메뉴 고민 없이 자유님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면 풍성한 점심으로 다 맛있다. 각자 일하다가 점심 먹을 때 나누는 소소한 생활 나눔은 같은 일터에서 근무하는 동료 같았다. 워크스테이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서로 챙김 받으니 유대감이 생긴다. 내가 모르던 시민활동가 현장이야기 듣는 것은 새롭다. 뜻있게 일하는 청년들의 삶,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 품안에 있는 마을, 산내 


산내에 도법 스님이 계신 실상사가 있으며, 귀농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어울려 사는지 궁금했다. 첫날 센터장님이 기관과 산내면을 소개해줬다. 약 2000명이 사는 이곳에 동아리만 100개가 넘는다. 저마다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관심, 모이는 시기도 다르다. 산내놀이단은 농한기 철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만든 극단으로 약장수보다 재미있는 공연을 한다고 한다. 마을에 걸린 ‘마고할매와 동물 4총사’ 현수막을 보니 워크스테이 전날이었다. 하루 전날 왔어야 했구나, 아쉽다. 


산내 보건소, 산내 주민센터, 산내 운동센터, 문화센터, 자율방범대, 품안 도서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다. 시간을 내어 품안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운영은 농한기 농번기에 따라 시간이 다르며, 바쁜 농사철인 지금은 오후에 문을 열고 밤 8시에 닫는다. 탄력적이다. 순회사서 선생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의 책은 학교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은 어른들 책을 중심으로 수서한다고 했다. 적은 도서구입비로 알찬 서가를 구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고가의 깊은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책들도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레이 올든버그 ‘제 3의 장소’가 보였다. 산내 마을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환대받는 곳 ‘제 3의 장소’가 많을 것 같았다.



# 내가 머무는 곳에 책이 있다 


들썩에는 아름다운재단에서 보내준 신간과, 누리님이 골라 놓은 책들이 놓여 있었다.  
감꽃홍시게스트하우스는 앉는 자리가 있는 곳에 책꽂이, 탁자위, 서랍장 안, 어디든지 책이 있었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지 못하더라도 어느 곳에 가든 책 제목을 눈으로 읽는 버릇이 있다. 책 제목이 익숙하면, 또 다른 곳에 그 책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반갑다. 많은 책들 속에서 익숙한 책 제목은 빼고 낯선 책 제목을 읽고, 저장한다. 


워크스테이 하는 동안 ‘찬장과 책장’ 문 여는 날 목요일, 이 날을 책방 나들이로 정했다.  
‘토닥’(마을책방)와 ‘찬장과 책장’(감꽃홍시)에서 책들을 봤다. 책들은 주인장들의 취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토닥’에서는 내가 관심이 덜 한 분야(정원, 음식)의 신간과 추천도서를 만날 수 있었다. 


‘찬장과 책장’에서는 유독 조원희작가 그림책이 많아서 조심스레 물었더니, 책방지기님이 조원희 작가를 좋아하신다고 이야기 하셨다. 책방지기님 덕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조원희작가 그림책 여러 권을 읽었다. 읽은 책들 중에서 철암도서관에 놓고 싶은 책은 메모했다. 


두 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씩만 샀다. 



# 워크스테이, 우리 도서관에서 하면 어떨까? 


태백산 자락에 있는 철암도서관, 이곳에서 워크 스테이를 한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책과 인터넷과 차는 드릴 수 있으리라. 도서관에서 하룻밤이 괜찮다면 주무시는 것도 좋다.
자유님처럼 친근한 모임 자리는 마련할 자신은 없지만, 차 한 잔과 소소한 대화는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워크스테이, 우리도 괜찮을 것 같다. 

 


글쓴 사람. 박미애 (철암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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