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통신

[2022 (봄) 지리산 워크스테이] #2-8 오래된 고민과 새로운 실마리

지리산이음
2022-06-28


이 글을 함께 읽는 지리산의, 청주의, 태백의, 서울의, 그리고 또 아직 만나지 못한 동료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그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산과 논과 새와 바람이 함께하는 산내에서는, 매일 날씨 생각을 하며 일어나고 날씨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 기억이 있어 한 번 여쭈어 봤습니다. 머물렀던 한 주 내내 서울과는 날씨가 반대여서, 동료들과의 메신저에 접속해서도 날씨 이야기부터 했던 것 같아요. 촉촉한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까지, 생각보다 더 다양한 날씨들을 겪었었지요.


솔직히 말할까요? 저는 아직 워크스테이를 하며 찍은 사진이며 영상도 다 갈무리를 못 했고, 싸들고 내려갔던 일거리도 아직 완수를 못해서 조금은 마음이 급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4박 5일을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컴컴한 밤중에 스탠드 하나를 켜고, 사과즙을 따라 놓은 컵을 하나 옆에 놓고, 어깨를 괜히 움츠리며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집에서 산내까지 백팩을 메고 다녀온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지만, 지난 주말 어깨 스트레칭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긴 했거든요. 아직 갈무리를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남은 것처럼, 어깨에도 흐릿한 뻐근함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저에게 이번 워크스테이는, 그동안 활동가로 살면서 고민했던 몇 가지 화두에 대해 찬찬히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였습니다. 화두라고 하니 거창하네요, 오랫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몇 가지 질문들이라고 할까요, 시원스럽게 해결되지 않은 미련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입 밖으로 내면 별 것 아니지만 어느 밤에 떠올리면 괜히 자려다가 말고 한 번씩 뒤척거리게 하는 그런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워크스테이의 베이스캠프인 들썩에서, 멋진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마을 속 어딘가를 걸으며 멍 때렸던 시간 속에서 작은 힌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워크스테이 공고를 처음 본 날, 같이 한 번 다녀오지 않겠냐는 저의 동료 소금의 말에, 저는 약간은 두려웠습니다. 4박 5일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동료들은 과연 우리의 빈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사실, 이 고민은 제가 이전부터 해 오던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저 자신의 존재감을 의식적으로 부풀리고, 저의 ‘유일무이함’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요청이든 “네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수락했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어떤 공동체에서나 ‘내가 없으면 잘못될 거야’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식은 제가 좋은 동료가 되는 걸 방해할 뿐 아니라, 저 자신의 가능성까지도 볼 수 없게 하는 오만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제가 빠져도 단체는 잘 돌아갑니다. 아니, 잘 돌아가야만 합니다. 저는 구성원의 부재가 심각한 결함이 되는 조직이 아닌, 저절로 서로의 부재를 보완하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사무실을 떠나면서, 그것을 직접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는 원래도 스마트 워크 / 리모트 워크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메신저나 줌, 자료 공유 클라우드 등 여러 가지 툴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각자의 오피스 아워가 조금씩 다를 수 있음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워크스테이를 떠나오는 것이 조금 더 수월했습니다. 동료들은 지리산을 마음껏 즐기고 오라며 오히려 환송을 해주었고, 대신에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공유를 더욱 자주 해 주었습니다. 마침 같은 시기에 야외에서 행사 부스를 열 계획이 있어, 서울과 산내의 날씨를 공유하고, 사진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들썩의 튼튼한 인터넷망과 편안한 공간, 그리고 최대한의 편리함을 위해 노력해 주신 지리산이음 식구들 덕분에 소통에도 막힘이 없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몸이 들썩에 있는 코워킹 오피스에 있다고 해서 저와 동료들의 연결이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의 거리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새로운 업무양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단체가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제가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자리도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안 될 거라는 오만함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앞으로 과몰입이 심해져 착각이 생길 때면, 내가 4박 5일을 지리산에 가 있었는데도 별 이상이 없었음을, 오히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모두에게 리프레쉬가 되었음을 계속 상기하는 게 도움이 되겠지요. 



#활동가라는 직업을 알리고, 서로 연결되고, 서로 응원하기 


저는 스스로를 활동가로 정의하기 시작한 명확한 순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럭저럭 한 8~9년 전에 무언가 공익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작당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가 나의 활동가 인생 시작이었나보다 생각할 뿐입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그때 즈음에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음에 대해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정책에 어느 정도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 직업에 대해, 어떻게 공감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활동가 브이로그를 찍어보기도 했고, 활동가 양성을 위한 이런저런 교육을 열어보기도 하며 지내왔습니다. 청소년 진로 상담에 활동가라는 직업군이 좀 더 비중있게 고려되고, 활동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 교육과정이나 대학 학과가 더 많아져서 공신력을 얻는다면, 모든 단체에서 골머리를 앓는 ‘후진 양성’에 대한 고민도 조금씩 덜어지지 않겠느냐고, 여러 가지 공상을 해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다채롭고 다양하고 다층적인 활동가의 삶에 대한 사례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워크스테이 참여를 통해 여러 장소와 여러 배경을 지닌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감사한 수확이었습니다. 


워크스테이 첫날 들썩에 둘러앉아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를 떠올려봅니다. 자유의 진행에 따라 서로를 소개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나눌 때에는, 어떻게든 얼굴과 이름을 익히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엔 코워킹 오피스에서 잠깐씩 안부만 물었던 것 같아요. 다같이 소통하기 위한 오픈채팅방에 초대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한 2분 정도의 성함을 잘못 받아적었더군요. 그렇게 둘째날 오전까지를 보내고 저녁, 들썩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과자와 음료와 술을 나누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참여하신 분들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단체 이름에 가려져 있던, 개개인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시민사회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변화 앞에서 어떻게 고군분투 하고 있는지를 듣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분노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에 대해 가볍고도 무거운 각자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주황색 불빛 아래 모여 앉은 사람들의 둥근 등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살짝 숙인 등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라는 들썩의 이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각자의 지역적 터전이 이미 있음에도, 들썩이 새로운 베이스캠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워크스테이 공고문에 적혀있던 그 문장들, 지리산 자락에 또 하나의 거점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그 마음들이 어쩌면 이렇게 의미를 찾는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한 문장으로 심플하게 묶이기는 앞으로도 아마 쉽지 않겠지만, 이미 이 경험을 통해 하나의 베이스캠프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되었고 서로를 계속해서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그 이후 매일 밤 가슴을 뜨끈하게 데웠습니다. 



#10년, 그 이상 건강하게 활동가로 살아가기


산내를 떠올리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아주 캄캄한 밤의 풍경입니다. 도시의 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두운 산 속의 밤은 너무 고요하고 낯설어서. 저는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걸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것을 말해보자고 할 때마다 저는 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서울에 도착한 금요일 밤에도 산내의 밤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제가 한 블록 간격으로 편의점이 2개나 있는, 어둠이라는 걸 모르는 동네에 살고 있기에 더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익숙한 범주 안에 들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일 텐데, 바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환대입니다. 워크스테이에 가기 전부터 가 있을 동안 내내, 본인이든 친구든 산내에서 산 적이 있거나 일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왜일까, 의문을 가진 채 내려와 보니 이 동네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썩은 물론, 마을카페 토닥에도, 지역가게 느티나무에도, 새로 생겼다는 편의점에도, 제가 묵었던 무검산방에도, 다른 활동가들이 묵은 여여재와 감꽃홍시에도, 공동체의 숨결이 올올이 살아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오리를 찾는다는 벽보에서 그것을 느끼기도 했고, 지역의 쓰레기 배출 문제를 고민하며 만든 우유팩 수거함에서 느끼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에게 환영받는 경험을 주고 싶어하는 듯한 모두의 손길에서도 느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밤에 여여재를 운영하는 바람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우리끼리 마무리할 수도 있었던 날에, 너무나 멋진 이야기들을 몰고 와 준 바람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차례차례 요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람이 인상깊게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했던 생각을 들려주었을 때, 무척이나 고요해지던 공기를 기억합니다. 약간은 자신 없는 와중에서도 선배들의 지지 아래 젊은 활동가로서 한없이 바쁘게 살았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터전에 집을 짓고 성인이 된 자녀와 소통하며 사람들에게 마음과 공간을 나누며 살고 있는 바람, 그런 바람이 해방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에, 순간 아득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글에 상세히 적을 수 없음을 양해해 주세요. 다만, 자신의 ‘해방’을 상상할 수 있는 누군가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동스러웠다는 것만 남겨두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저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질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활동가로서 오래 건강하게 잘 일할 수 있을까? 떠나고 싶지도 않고 떠나보내고 싶지도 않은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떠나지 않을까? 만약 떠나게 되더라도, 각자의 해방을 찾는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람과의 만남이, 산내 지역 공동체와의 만남이 이런 고민들에 약간의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제게 미래로 느껴지는 것들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다른 세대의 동료들이 있어 적어도 10년, 어쩌면 그 이상 활동가를 하더라도 나쁘지 않겠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의 품에 안겨 마음껏 떠들고 걸었던 시간들이, 이렇게 글로 남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다른 참여자분들에게는 어떤 기억들이 남아있는지도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더 많은 활동가들이,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이런 기회들을 놓치지 않길 바라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와 함께한 워크스테이 회고를 마칩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참가자들과 함께 보낸 저녁 시간


글쓴 사람. 혜민 (성북청년시민회)



인스타그램

소소한 일상 풍경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