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워케이션 오기 바로 전날에 지리산 종주를 하였다. 대략 14번 정도 온 것 같은데 내 종주코스는 항상 같다. 화엄사 혹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 하산하여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매번 초입인 산내면을 지나쳐 갔지만 나는 이번에야 그 곳이 산내인줄 알게 되었다.
대학교 새내기 무렵 도법 스님을 따라 구례 하동 등지에서 한 달 정도 생명평화순례길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실상사라는 절을 처음 알게 된 것 그즈음 이다. 운동권 2세들이 많이 입학하는 학교와 학과를 다녔는데 체감상 삼분의 일은 대안학교 출신이었고 그 중 작은학교 출신들도 더러 있었다. 졸업 후 생활협동조합에서 직원으로 일했었는데 그 때 생협의 역사와 현황을 조사하다 인드라망 공동체에 대해서도 공부한 적이 있다.
여러 인연으로 이어져 온 덕에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다. 새삼 이 바닥의 비좁음을 체감한다. 동시에 이 정도 했으면 왠만한 사람이었으면 기억했을뻔한데 여즉 산내면이라는 지명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나란 인간의 무심함이란.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나를 돌아보고 사업평가 및 신규사업 계획 등을 구상할 계획이었지만 나의 일정은 여지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한는 각종 변수에 맞추어 돌아갔다.
일단 시작부터 계획에서 틀어졌는데 지리산 종주부터 시작하여 워케이션 마치고 합류할 지리산 답사까지 대략 지리산에 10일 정도 체류해야 하는 일정상 짐이 많아서 필히 택배를 부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출발 전날 업무 마감하고 오느라 우체국 마감시간을 넘겨버렸다.
단벌 신사로 10일을 보내느냐의 기로에서 과감히 겉옷과 속옷 총 4벌 세트, 책 5권, 노트북과 산에서 먹을 이틀치 식량과 버너와 반합 그리고 침낭까지 챙겨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나는 짐이 무거워서인지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아 하루 반나절이면 여유있게 마쳤을 코스를 해를 넘겨서야 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워케이션 첫날은 천왕봉 등정 및 하산으로만 하루 일정을 채웠다.
둘째날, 전날 해질녁에 하산을 하는 덕에 걸음을 좀 서둘렀는데 그 바람에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접질렸다. 쓰러질 때 스틱도 부러졌는데 스틱이 버텨준 하중 때문에 큰 부상을 면해서 제 발로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자기전 편의점 들러서 붙이는 파스와 뿌리는 파스를 양 발목에 덕지덕지 바르고 푹 자고 일어난 덕인지 생각보다 발목이 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예방 차원에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보건소를 들러 치료받고 이음에 가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정형외과는 진료할 수 없다는 보건의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단은 내가 내릴테니 필요한 조치만 해달라고 우겨서 겨우 테이프와 압박붕대 그리고 소염제와 진통제를 얻어내었다. 진료비는 1,100원. 새삼 공공의료의 힘을 느끼게 되면서 동시에 지방의료사각지대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기쁨 동시에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와 슬픔 등 칠정이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첫인사를 하러 이음으로 향하였다.
관계자와 첫 인사 및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개소한지 얼마되지 않은 들썩은 창밖으로 지리산 전체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엊그제 산에서 온갖 풍파를 맞으며 강행군을 했던 일들이 어느새 멀게만 느껴졌다.
오후에는 주말에 온 메일과 메신저를 보며 현안을 처리하였다. 대충 3시간 동안 백마흔다섯통 정도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중 백미는 마지막 통화였다. 실장님이 그만 두신다는 것. 올해 초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이 타이밍일 줄을 몰랐다. 아니 이제 일주일 합숙 교육 끝내고 숨 좀 돌리려 내려왔는데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요. 순간 멘탈이 출가했지만 간신히 부여잡고 다시 멘토없는 신세로 돌아간 처지를 앞으로 어떻게 이겨낼지 궁리하기로 했다.
퇴근 후 사방 백리에서 진료 받으러 원정 온다는 동네 한의원을 방문하였다. 말씨에서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넘치는 한의사님이 친히 나의 환부를 들여다보며 자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증상의 원인은 생활 습관과 자세에 있다는 말이었다.
요는 내가 실수로 발목을 접질린 게 아니라는 것. 증후는 그렇게 나타났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평소 발목과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은 방식의 근본없는 도법을 차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발바닥 바깥쪽 날로만 걷고 있었고, 발뒷꿈치와 발가락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발가락에 힘이 없었고 그 결과 사고가 난 것이다.
마치 기후 위기라는 증후에 대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고 살던대로 타인과 생태계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펑펑 써가며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넘어서려하는 대증요법과 요행을 바라는 현대인의 몽매함을 꾸짖는 일침이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순간 관통맨에 제보하여 이 의원님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주변인들이 걷는 것을 보면 언젠가 부상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MZ들의 연예인 침착맨이라면 이러한 정보를 재밌고 유익하게 소개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의 수익사업도 이런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든 이번을 계기로 침과 콜라보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몇 개 구상해보기로 했다.
망상이 끝나자 진료도 끝났고, 대화 마지막에는 민주시민양성의 관점에서 MBTI와 사주 등 성격유형 테스트가 인간의 주체성과 변화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다 의원님도 나도 배가 고파서 나머지는 담에 또 나누기로 하기로 했다.
룸메 아니 홈메와 첫 식사를 했다. 숙소 인근 식육식당에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19년 지리산 포럼에 처음 와서 맛보았던 그 맛을 잇지 못하고 매년 내려올 때마다 먹고 가는 집인데 홈메도 만족해하였다. 그리고 내 발목도 역시 만족하였다.
둘째날은 양방과 한방 그리고 식이요법을 아우르는 복합의료관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셋째날은 영화 곡성의 촬영지였던 곡성으로 갔다. 룸메 아니 홈메가 교육활동을 하는 분이었는데, 옛 동료가 숲높이 관련 프로그램을 곡성에 진행하고 있는데 남원까지 온 김에 오늘 한번 가보려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 날도 땡땡이를 칠 생각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었던 나는 워케이션의 취지를 맞게 업무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원래 기획 업무는 견문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에서 시작이기도 하다.
워크스테이 기간동안 기후정의운동의 아이템으로 꽤 괜찮을 걸 발견했다. 요새 김자인 빙의하여 암벽타다 고꾸라지는 2030이 많은데, 아름드리 나무를 타는 법을 배우고 오르는 활동을 스포츠화하여 이러한 유효 수효를 적절하게 타게팅하였다. 사람들은 나무타는 것을 배우고 놀면서 자연스레 이런 활동의 본래 취지를 알게하는 것이다.
나무를 타는 것을 배우는 것은 나무와 그 주변 식생들의 생장을 돕기 위한 방식의 가치지기를 하기 위함인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산림을 생태계 친화적으로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가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좁히고 동시에 근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주 적합하다고 느꼈다. 내년 파일럿 프로그램 한 꼭지로 시도해볼 것이다.
대망의 마지막 전날, 마지막 날은 오전에 회고하고 끝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인 만큼 심기일전하여 꼭 알차기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바로 숙소에 눌러앉았다.
숙소지기님이 게하와 공방과 책방 세 개 아이템을 한 개의 사업소에도 동시 운영하고 계셨는데 마침 오늘이 문을 여는 날이라지 뭔가. 당연히 가보지 않을 수 없지 하여 아침 먹고 책방 문열리기를 기다렸다 냉큼 방문하였다.
책방은 5평 남짓한 독채에 4-500권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주인장의 감성과 관심사가 묻어나는 캘리포니아주 전원주택 마당에 있는 나무 위 오두막 같은 느낌이었다. 서점이라기 보다는 나처첨 책을 읽기보다는 모으기 좋아하는 사람의 서가에 가까웠고 내 책방에 있는 책들이 눈에 띄어 기분이 좋았다.
서가를 엿봤을 때 관심사가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전직 환경단체 활동가셨다. 이십대 후반 일찍 결심하여 귀촌하였고 내려온지 1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그래 결국 이건가 싶었다. 맨날 말로 글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실제 일상에서의 도시에서의 활동가의 삶은 모순되고 비루하기 마련이고 이 간극에서 오는 자괴감과 불안은 활동가의 삶을 조금씩 갈아먹는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지리산 쌀롱에 참여하였다. 옥천과 부산의 지역 언론 활동에 대한 소개 시간이었는데 유의미한 성과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여의치 않다고 느꼈다. 여러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지향하는 로컬의 삶의 방식과 실제 대다수 지역민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일치하지 않은데서 발생하는 갈등을 목격하고 있다. 작은 것은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사박오일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온전히 그 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만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룸메 아니 홈메였던 오은비님과 활동지기였던 이음의 채지연님 덕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었다. 이 글을 보시는 다른 활동가님께 지리산 워케이션을 과감히 추천드리며 급하게 마무리한다. 끝.
글쓴 사람. 리해솔 (한국YMCA전국연맹)
이번 워케이션 오기 바로 전날에 지리산 종주를 하였다. 대략 14번 정도 온 것 같은데 내 종주코스는 항상 같다. 화엄사 혹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 하산하여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매번 초입인 산내면을 지나쳐 갔지만 나는 이번에야 그 곳이 산내인줄 알게 되었다.
대학교 새내기 무렵 도법 스님을 따라 구례 하동 등지에서 한 달 정도 생명평화순례길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실상사라는 절을 처음 알게 된 것 그즈음 이다. 운동권 2세들이 많이 입학하는 학교와 학과를 다녔는데 체감상 삼분의 일은 대안학교 출신이었고 그 중 작은학교 출신들도 더러 있었다. 졸업 후 생활협동조합에서 직원으로 일했었는데 그 때 생협의 역사와 현황을 조사하다 인드라망 공동체에 대해서도 공부한 적이 있다.
여러 인연으로 이어져 온 덕에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다. 새삼 이 바닥의 비좁음을 체감한다. 동시에 이 정도 했으면 왠만한 사람이었으면 기억했을뻔한데 여즉 산내면이라는 지명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나란 인간의 무심함이란.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나를 돌아보고 사업평가 및 신규사업 계획 등을 구상할 계획이었지만 나의 일정은 여지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한는 각종 변수에 맞추어 돌아갔다.
일단 시작부터 계획에서 틀어졌는데 지리산 종주부터 시작하여 워케이션 마치고 합류할 지리산 답사까지 대략 지리산에 10일 정도 체류해야 하는 일정상 짐이 많아서 필히 택배를 부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출발 전날 업무 마감하고 오느라 우체국 마감시간을 넘겨버렸다.
단벌 신사로 10일을 보내느냐의 기로에서 과감히 겉옷과 속옷 총 4벌 세트, 책 5권, 노트북과 산에서 먹을 이틀치 식량과 버너와 반합 그리고 침낭까지 챙겨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나는 짐이 무거워서인지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아 하루 반나절이면 여유있게 마쳤을 코스를 해를 넘겨서야 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워케이션 첫날은 천왕봉 등정 및 하산으로만 하루 일정을 채웠다.
둘째날, 전날 해질녁에 하산을 하는 덕에 걸음을 좀 서둘렀는데 그 바람에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접질렸다. 쓰러질 때 스틱도 부러졌는데 스틱이 버텨준 하중 때문에 큰 부상을 면해서 제 발로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자기전 편의점 들러서 붙이는 파스와 뿌리는 파스를 양 발목에 덕지덕지 바르고 푹 자고 일어난 덕인지 생각보다 발목이 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예방 차원에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보건소를 들러 치료받고 이음에 가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정형외과는 진료할 수 없다는 보건의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단은 내가 내릴테니 필요한 조치만 해달라고 우겨서 겨우 테이프와 압박붕대 그리고 소염제와 진통제를 얻어내었다. 진료비는 1,100원. 새삼 공공의료의 힘을 느끼게 되면서 동시에 지방의료사각지대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기쁨 동시에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와 슬픔 등 칠정이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첫인사를 하러 이음으로 향하였다.
관계자와 첫 인사 및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개소한지 얼마되지 않은 들썩은 창밖으로 지리산 전체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엊그제 산에서 온갖 풍파를 맞으며 강행군을 했던 일들이 어느새 멀게만 느껴졌다.
오후에는 주말에 온 메일과 메신저를 보며 현안을 처리하였다. 대충 3시간 동안 백마흔다섯통 정도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중 백미는 마지막 통화였다. 실장님이 그만 두신다는 것. 올해 초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이 타이밍일 줄을 몰랐다. 아니 이제 일주일 합숙 교육 끝내고 숨 좀 돌리려 내려왔는데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요. 순간 멘탈이 출가했지만 간신히 부여잡고 다시 멘토없는 신세로 돌아간 처지를 앞으로 어떻게 이겨낼지 궁리하기로 했다.
퇴근 후 사방 백리에서 진료 받으러 원정 온다는 동네 한의원을 방문하였다. 말씨에서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넘치는 한의사님이 친히 나의 환부를 들여다보며 자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증상의 원인은 생활 습관과 자세에 있다는 말이었다.
요는 내가 실수로 발목을 접질린 게 아니라는 것. 증후는 그렇게 나타났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평소 발목과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은 방식의 근본없는 도법을 차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발바닥 바깥쪽 날로만 걷고 있었고, 발뒷꿈치와 발가락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발가락에 힘이 없었고 그 결과 사고가 난 것이다.
마치 기후 위기라는 증후에 대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고 살던대로 타인과 생태계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펑펑 써가며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넘어서려하는 대증요법과 요행을 바라는 현대인의 몽매함을 꾸짖는 일침이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순간 관통맨에 제보하여 이 의원님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주변인들이 걷는 것을 보면 언젠가 부상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MZ들의 연예인 침착맨이라면 이러한 정보를 재밌고 유익하게 소개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의 수익사업도 이런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든 이번을 계기로 침과 콜라보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몇 개 구상해보기로 했다.
망상이 끝나자 진료도 끝났고, 대화 마지막에는 민주시민양성의 관점에서 MBTI와 사주 등 성격유형 테스트가 인간의 주체성과 변화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다 의원님도 나도 배가 고파서 나머지는 담에 또 나누기로 하기로 했다.
룸메 아니 홈메와 첫 식사를 했다. 숙소 인근 식육식당에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19년 지리산 포럼에 처음 와서 맛보았던 그 맛을 잇지 못하고 매년 내려올 때마다 먹고 가는 집인데 홈메도 만족해하였다. 그리고 내 발목도 역시 만족하였다.
둘째날은 양방과 한방 그리고 식이요법을 아우르는 복합의료관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셋째날은 영화 곡성의 촬영지였던 곡성으로 갔다. 룸메 아니 홈메가 교육활동을 하는 분이었는데, 옛 동료가 숲높이 관련 프로그램을 곡성에 진행하고 있는데 남원까지 온 김에 오늘 한번 가보려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 날도 땡땡이를 칠 생각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었던 나는 워케이션의 취지를 맞게 업무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원래 기획 업무는 견문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에서 시작이기도 하다.
워크스테이 기간동안 기후정의운동의 아이템으로 꽤 괜찮을 걸 발견했다. 요새 김자인 빙의하여 암벽타다 고꾸라지는 2030이 많은데, 아름드리 나무를 타는 법을 배우고 오르는 활동을 스포츠화하여 이러한 유효 수효를 적절하게 타게팅하였다. 사람들은 나무타는 것을 배우고 놀면서 자연스레 이런 활동의 본래 취지를 알게하는 것이다.
나무를 타는 것을 배우는 것은 나무와 그 주변 식생들의 생장을 돕기 위한 방식의 가치지기를 하기 위함인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산림을 생태계 친화적으로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가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좁히고 동시에 근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주 적합하다고 느꼈다. 내년 파일럿 프로그램 한 꼭지로 시도해볼 것이다.
대망의 마지막 전날, 마지막 날은 오전에 회고하고 끝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인 만큼 심기일전하여 꼭 알차기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바로 숙소에 눌러앉았다.
숙소지기님이 게하와 공방과 책방 세 개 아이템을 한 개의 사업소에도 동시 운영하고 계셨는데 마침 오늘이 문을 여는 날이라지 뭔가. 당연히 가보지 않을 수 없지 하여 아침 먹고 책방 문열리기를 기다렸다 냉큼 방문하였다.
책방은 5평 남짓한 독채에 4-500권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주인장의 감성과 관심사가 묻어나는 캘리포니아주 전원주택 마당에 있는 나무 위 오두막 같은 느낌이었다. 서점이라기 보다는 나처첨 책을 읽기보다는 모으기 좋아하는 사람의 서가에 가까웠고 내 책방에 있는 책들이 눈에 띄어 기분이 좋았다.
서가를 엿봤을 때 관심사가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전직 환경단체 활동가셨다. 이십대 후반 일찍 결심하여 귀촌하였고 내려온지 1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그래 결국 이건가 싶었다. 맨날 말로 글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실제 일상에서의 도시에서의 활동가의 삶은 모순되고 비루하기 마련이고 이 간극에서 오는 자괴감과 불안은 활동가의 삶을 조금씩 갈아먹는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지리산 쌀롱에 참여하였다. 옥천과 부산의 지역 언론 활동에 대한 소개 시간이었는데 유의미한 성과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여의치 않다고 느꼈다. 여러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지향하는 로컬의 삶의 방식과 실제 대다수 지역민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일치하지 않은데서 발생하는 갈등을 목격하고 있다. 작은 것은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사박오일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온전히 그 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만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룸메 아니 홈메였던 오은비님과 활동지기였던 이음의 채지연님 덕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었다. 이 글을 보시는 다른 활동가님께 지리산 워케이션을 과감히 추천드리며 급하게 마무리한다. 끝.
글쓴 사람. 리해솔 (한국YMCA전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