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하필 워크스테이 출발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날 그 횡단보도에서 넘어진 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부주의를 탓했다.
지리산에 가면 찬란하게 물든 단풍 가득한 둘레길을 걸을 생각에 등산화 수선까지 해둔 상태였다.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안내 사항을 아주 충실히 따르며 치료에 매진했고, 일정을 조정해 지리산으로 향했다. 물론 발은 쉽게 낫지 않았기에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피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발도, 마음도 무거웠다. 해야 할 일들은 다 싸 짊어지고 내려온 데다, 발이 불편하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출발 전까지도 워크스테이를 지원할 당시와는 다르게 감흥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몸이 불편하면 다 고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리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 맑은 새벽 공기를 마신 것만으로도 온몸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워크스테이로 이곳에 온 이유는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선 알람이 울려야만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6시 30분이면 눈이 떠졌다. 맑은 공기를 몸에 더 아주 많이 넣으라는 신호인가 싶어 심호흡도 많이 했다.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 듯 걸어가는 출근길. 도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쓰고, 퇴근할 때까지 벗지 않아 답답했는데 여기서는 마스크가 주머니에서 나올 일이 없었다. 출근길에서 느끼는 상쾌함에 자연이 주는, 지리산이 주는 이 풍경, 공기, 바람 이 모든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지리산 워크스테이 덕분에 200년 만에 온다는 개기월식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아니였다면 아마 바깥에 나가기는커녕 창문조차 열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에서는 하늘의 틈새를 찾아야 하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숙소 덕분에 개기월식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불빛 없는 산간 마을에서 오롯이 떠 있는 달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연 워크와 스테이를 얼마나 잘 보냈을까.
첫날 저녁, 실패다. 아. 실패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명확했다.
사실 워크스테이에서 나름 시도하려 한 것은 '퇴근 후에는 일하지 않겠다'였다.
그러나 숙소로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잔업을 했다. 오늘 마감을 해야 한다거나 분초를 다투는 일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들썩에서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고 온 터라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켰고, 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노트북을 닫았다. 인터넷망이 구축된 사회에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어 지리산에 올 수 있었지만, 그 장점은 공간 범위뿐 아니라 시간 범위도 해당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어디서나 일할 수 있지만 언제라도 일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워크스테이에서는 일과 쉼의 경계를 만들고 싶었다. 워크스테이 둘째 날, 어제의 잔업을 떠올리며 들썩에서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로그아웃에 충실해지려 했다. 그렇게 셋째 날, 넷째 날도 잘 쉬기 위해,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주말에 계획했던 둘레길을 걷지 못하고, 들썩 코앞에 있는 실상사 산책도 할 수 없었지만 이 곳 산내는 내게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도착한 첫 날 점심에 우연히 들썩과 3분 거리에 한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이것은 나에게 치료를 받으라는 계시 아닌가. 한의원에서 전기 치료를 받고, 침도 맞는 동안 소소한 지역 주민의 일상을 엿보는 경험까지 하니 이곳 산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수 년째 병환 중인 할아버지를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할머니, 깨 농사가 잘 안돼어 속상해하는 할머니, 시골 차편이 좋지 않아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이곳에 오가시는 할머니들. 자식들도, 한의원에서도 몸이 아프니 나가서 일하지 마시라고 한다는데 굳이 나가시는 이유가 '나가서 뭐라도 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한의원 선생님이 놓는 침의 효과는 일상을 나누는 말 한마디의 힘이 더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비단 이곳만 그럴까. 지금 우리에게도 일상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응원하는 말이 더더욱 필요한 때 일지도 모른다. 동료 활동가들에게 응원하는 말들을 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운동을 한다면서 시민의 일상을 깊게 고민한 적은 있었던가 하는 생각들로 그날 퇴근길은 참 멀게 느껴졌다.
일주일간의 워크스테이. 지난 한 주 내내 온전히 이곳에서 일했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덕분에 공식적으로 어디서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시도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들 것이고, 상상의 씨앗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년엔 한 달 살기처럼 한 달간의 워크스테이로 확대해 시행해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또 오고 싶습니다!!!)
글쓴 사람. 도라지 (녹색연합)
사진 | 새들과 함께한 출근길
사진 | 산내 주민들의 아지트 산내식당에서의 한 끼
사진 | 람천이 보이는 산내한의원
사진 | 숙소에서 바라본 개기월식
사진 | 집 앞에서 바라본 지리산
아뿔싸!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하필 워크스테이 출발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날 그 횡단보도에서 넘어진 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부주의를 탓했다.
지리산에 가면 찬란하게 물든 단풍 가득한 둘레길을 걸을 생각에 등산화 수선까지 해둔 상태였다.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안내 사항을 아주 충실히 따르며 치료에 매진했고, 일정을 조정해 지리산으로 향했다. 물론 발은 쉽게 낫지 않았기에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피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발도, 마음도 무거웠다. 해야 할 일들은 다 싸 짊어지고 내려온 데다, 발이 불편하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출발 전까지도 워크스테이를 지원할 당시와는 다르게 감흥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몸이 불편하면 다 고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리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 맑은 새벽 공기를 마신 것만으로도 온몸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워크스테이로 이곳에 온 이유는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선 알람이 울려야만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6시 30분이면 눈이 떠졌다. 맑은 공기를 몸에 더 아주 많이 넣으라는 신호인가 싶어 심호흡도 많이 했다.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 듯 걸어가는 출근길. 도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쓰고, 퇴근할 때까지 벗지 않아 답답했는데 여기서는 마스크가 주머니에서 나올 일이 없었다. 출근길에서 느끼는 상쾌함에 자연이 주는, 지리산이 주는 이 풍경, 공기, 바람 이 모든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지리산 워크스테이 덕분에 200년 만에 온다는 개기월식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아니였다면 아마 바깥에 나가기는커녕 창문조차 열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에서는 하늘의 틈새를 찾아야 하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숙소 덕분에 개기월식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불빛 없는 산간 마을에서 오롯이 떠 있는 달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연 워크와 스테이를 얼마나 잘 보냈을까.
첫날 저녁, 실패다. 아. 실패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명확했다.
사실 워크스테이에서 나름 시도하려 한 것은 '퇴근 후에는 일하지 않겠다'였다.
그러나 숙소로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잔업을 했다. 오늘 마감을 해야 한다거나 분초를 다투는 일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들썩에서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고 온 터라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켰고, 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노트북을 닫았다. 인터넷망이 구축된 사회에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어 지리산에 올 수 있었지만, 그 장점은 공간 범위뿐 아니라 시간 범위도 해당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어디서나 일할 수 있지만 언제라도 일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워크스테이에서는 일과 쉼의 경계를 만들고 싶었다. 워크스테이 둘째 날, 어제의 잔업을 떠올리며 들썩에서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로그아웃에 충실해지려 했다. 그렇게 셋째 날, 넷째 날도 잘 쉬기 위해,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주말에 계획했던 둘레길을 걷지 못하고, 들썩 코앞에 있는 실상사 산책도 할 수 없었지만 이 곳 산내는 내게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도착한 첫 날 점심에 우연히 들썩과 3분 거리에 한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이것은 나에게 치료를 받으라는 계시 아닌가. 한의원에서 전기 치료를 받고, 침도 맞는 동안 소소한 지역 주민의 일상을 엿보는 경험까지 하니 이곳 산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수 년째 병환 중인 할아버지를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할머니, 깨 농사가 잘 안돼어 속상해하는 할머니, 시골 차편이 좋지 않아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이곳에 오가시는 할머니들. 자식들도, 한의원에서도 몸이 아프니 나가서 일하지 마시라고 한다는데 굳이 나가시는 이유가 '나가서 뭐라도 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한의원 선생님이 놓는 침의 효과는 일상을 나누는 말 한마디의 힘이 더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비단 이곳만 그럴까. 지금 우리에게도 일상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응원하는 말이 더더욱 필요한 때 일지도 모른다. 동료 활동가들에게 응원하는 말들을 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운동을 한다면서 시민의 일상을 깊게 고민한 적은 있었던가 하는 생각들로 그날 퇴근길은 참 멀게 느껴졌다.
일주일간의 워크스테이. 지난 한 주 내내 온전히 이곳에서 일했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덕분에 공식적으로 어디서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시도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들 것이고, 상상의 씨앗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년엔 한 달 살기처럼 한 달간의 워크스테이로 확대해 시행해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또 오고 싶습니다!!!)
글쓴 사람. 도라지 (녹색연합)
사진 | 새들과 함께한 출근길
사진 | 산내 주민들의 아지트 산내식당에서의 한 끼
사진 | 람천이 보이는 산내한의원
사진 | 숙소에서 바라본 개기월식
사진 | 집 앞에서 바라본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