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통신

[2022 (가을) 지리산 워크스테이] #11 워크스테이에서 만난 그대여

지리산이음
2022-12-06


호기심을 만나다


 10월은 행사의 계절... 철원으로 떠나는 도농교류워크샵, 마을텃밭축제, 운동회, 사무실이사 등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정들을 잘 마무리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을 워크스테이를 신청했다. 숙박비, 식비, 교통비 등의 경비를 지원받고 심지어 일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다니 오히려 돈을 내고서 가야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변화지원센터라는 이름처럼 워크스테이를 통해 일의 형태에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으신 건가, 지리산 산내면을 소개주고 싶은걸까, 활동가들의 교류를 원하시는 걸까라는 다양한 호기심 속에 내가 만날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은 어떨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남원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자연을 만나다


 하늘_산내에 도착해서 가장먼저 했던 것은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높은 건물없이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참 반가웠다. 하늘은 푸른색에서 거무스름한 어스름으로 깜깜한 밤이 되어갔고 한참을 별을 보러 서성였다. 생각보다 가로등이 많아서 가장 어둑한 길을 찾으러 다녔고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보러 간다고 계획했다가 못간 여름휴가의 한을 여기서 푸는구나’했다.     


 낙엽_일하다 산책하러 길을 나섰다. 한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데 낙엽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옆의 나무는 아직 나뭇잎을 지키고 있는데, 나무가 자신의 속도에 맞게 겨울날 준비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산_이쪽저쪽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입석마을 논두렁을 걷게 됐다. 평소에 빨리 걷는 편이기도 하고 건물이 없으니 정면만 바라보다가 문득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기세가 어찌나 위풍당당한지 가만히 멈춰 산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에 둘러싸인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작게 느껴졌다. 


들썩에 있던 공유자전거를 타고, 두발로 다니며 마음껏 산과, 나무, 계곡, 낙엽, 별, 달, 하늘 을 천천히 만나고 느꼈고 모든 생명들에게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사진 | 한 나무씩 떨어지는 낙엽


사진 | 입석마을에서 마주한 산들


사진 | 봉우리에서 나오는 산의 기운



사람과 생각을 만나다


 첫 만남_실상사에 계신 지인분을 통해 알게 된 분과 남원역에서 산내까지 함께 차를 타고 오며 꽤나 긴 대화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공동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외로움, 자본주의의 대안, 가족의 다른 형태에 관한 고민으로 공동체를 찾아보게 되셨다고 했다. 공동체가 미래의 대안이고, 정답은 아니어도 하나의 해답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계셨다. 이제까지 약 20년간 다양한 공동체를 다니셨다고하셔서 선생님이 생각하셨을 때 좋은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질문했다. 첫째. 모든 사람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와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셋째. 맡은 역할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평등해야 한다. 좋은 공동체는 찾을 수 있는게 아니라 그 속에서 아주 치열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만남들_하루 같은 숙소에 묵었던 분과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또 공동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엔 반대로 부정적인 관점이었다. 옛날에는 공동체를 추구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허무함을 느낀다고 하셨다.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포기하고 희생하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재정적인 문제도 크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날 다른 분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공동체에 살았지만 결국 변질된다고 했다. 기존의 질서와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 갔는데 결국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틀과 질서에 갇혔을 때 회의감과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느슨하면서도 함께 연결돼 나아갈 수 있는 공동체는 없을까? 첫째날은 긍정적, 둘째날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깊어져갔다. 세 번째 만남들_실상사에 계신 지인분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공동체에 유연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에 만들어졌던 규칙과 질서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에 따라 변화되고 확장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공동체의 틈과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오래된 구성원은 틈을 만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새로운 사람은 변화에 도전해야하지 않을까?



마을을 만나다


 나눔_마을에 있는 식당에 가면 꼭 제철과일을 하나씩 챙겨주셨다. 하루는 사과, 하루는 단감, 하루는 지인분이 주신 포도까지 받았다. 산내는 포도와 사과를 많이 키우고 감나무도 꽤 있는 것 같던데 푸짐한 인심에 집보다 과일을 잘 챙겨 먹었다. 


 인사_길을 걷다가 한 초등학생 아이가 인사를 해서 나한테 한 게 맞는지 두리번거리다 인사로 답했다. 한 아이의 인사를 받았을 뿐인데 마을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다시 일상을 만나며


 워크스테이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제 무엇을 먹고 뭘 했는지도 헷갈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일들 속에서 정신없이 지나가고 사라지는 풍경, 사람, 생각과 고민들이 많은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순간순간들이 일기처럼 펼쳐지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아주 집중도 있게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환경과 순간을 만날 수 있게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많은 단체의 활동가분들이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우리 단체에서 열심히 제안해보겠다.



글쓴 사람. 임농부 (사단법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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