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통신

[2022 (봄) 지리산 워크스테이] #1-3 배두리 참가자 후기_밤하늘 가득 채운 별

지리산이음
2022-06-07


평소처럼 업무 메일을 확인하던 중 평소 받아보던 지리산 이음 뉴스레터의 ‘비영리활동가 지리산 워크스테이 지원’ 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비영리활동가 거점오피스 만들기 프로젝트로 사무실을 떠나 지리산에서 4박5일간 워크스테이를 통해 일을 해보는 경험이고, 이에 50만원을 지원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분들의 생활이 내심 부러웠지만 나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에 선뜻 도전할 수 없었고,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조차 일과 생활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재택근무 제안에도 꿋꿋하게 사무실로 출근을 했었다. 게다가 듀얼 모니터 없이 작은 노트북 화면 하나로 일을 해야 된다니 생각만으로도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한 요즘 공간이라는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면서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 기회를 통해 재택근무를 넘어 리모트 워크가 과연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표님께 바로 통보(?)를 했고,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솔직한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냈고, 최종 선발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그날부터 지리산에 가서 무엇을 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사무업무를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면서 최대한 일을 끝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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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함양 터미널로 가는 버스표



2022. 05. 23(월)


드디어 D-DAY. 


2019년 유럽 배낭여행 이후 처음으로 꺼낸 배낭을 메고 9시 10분 함양 터미널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수원 터미널로 향했다. 함양 터미널에서 실상사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길은 높은 산을 제외하면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친절한 버스기사님 덕분에 실상사에 무사히 내려 4박 5일간 나의 집이 될 여여재를 향해 걸었다.


배낭이 무거워서 일까? 마을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차 가지고 올걸...’이라는 생각만 수 백번 하면서 숙소를 향해 걸었다.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맘에 들었다.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집 밖을 나서도 산이 보이고, 산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았다. 


대충 짐을 숙소 안에 던져두고 O.T가 진행될 예정인 ‘작은 변화 베이스캠프 들썩’ 공유 오피스로 향했다. 사진으로만 본 들썩을 실제로 보니 더욱 반가웠고, 예상보다 더 좋은 곳이었다.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참가자 분과 인사를 나눴고, 여여재에 묵는다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폭풍 수다를 떨었다.


O.T 시간이 다가오자 참가자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어색한 인사와 함께 O.T를 시작됐다.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 3가지를 적고 그 단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자유님을 따라 작은변화지원센터를 둘러보았고, 센터장님께서 들려주는 산내 마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빨간머리 앤의 애번리 마을이 떠올랐고, 작지만 알찬,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산내는 매력적인 동네로 다가왔다.


O.T를 끝내고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한 후 각자 숙소로 흩어졌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바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홀려 쌍안경을 챙겨 밖으로 나갔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관찰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사장님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러 공통점들을 알게 되면서 세상은 참 좁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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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여여재의 열린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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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까만집' 식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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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



2022. 05. 24(화)


업무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 공유 오피스로 향했다.


지리산이 보이는 사무실, 널찍한 나무 테이블 위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날이 더워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맑은 공기는 좋았지만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보니 차가 지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소음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조용한 환경 속에 집중하면서 일을 했고, 점심 먹고 이래저래 지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지리산에 오기 전 네이버 지도를 열심히 보면서 퇴근 후 마을 이곳저곳 돌아다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고, 차가 없으니 생각보다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공유 오피스 → 숙소 라니...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자유님께서 뱀사골을 가자고 제안을 주셨고, 산책하는 강아지처럼 신나는 마음으로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뱀사골은 산책하기에 길이 잘 되어 있었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곡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여름이면 하루 종일 놀던 송추 계곡을 떠올리게 했다. 자연 경관도 인상적이었지만 인간의 편리를 위해 설치한 데크가 원래 자리 잡고 있던 나무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곤충들의 대이동은 궁금증을 불러왔지만 끝까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뱀사골을 둘러본 후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치킨과 맥주를 사서 들썩에서 치맥을 즐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11시가 되었고, 걸어서 숙소를 향하는 길에 본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게 얼마만 인지, 고등학교 때 천체관측 동아리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북두칠성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무서웠지만 밤하늘 가득 채운 별을 보며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그날 밤 하늘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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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계곡의 바위에 걸터앉은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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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둘러가게 만들어진 데크 손잡이



2022. 05. 25(수)


아침 7시 자유님과 지리산 둘레길을 오르기로 약속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취소를 하고, 여유롭게 공유 오피스에 도착했다.


참가자들끼리 서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각자 업무를 했고, 리모트 워크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회계업무는 무리일 것 같지만.


자차가 있는 희승쌤 덕분에 운봉읍에 가서 냉면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저녁은 자유님이 소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족스럽고 즐거운 지리산 워크 스테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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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평상에 누워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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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에 비친 새



2022. 05. 26(목)


어쩌면 지리산 워크 스테이 업무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함양에서 지내고 계신 대표님과 실상사에서 만나 수달 조사를 하기로 했다. 수달 조사 생각에 설렜지만 어제보다 나빠진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코로나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지만 검사 결과는 너무나도 양성이었다. 


실상사에 도착한 대표님을 만나 몸 상태를 말씀드렸고, 다른 참가자분들에게 피해를 주기 전 코로나 신속 항원검사를 실시했고, 공식적으로 양성이라는 확진을 받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 격리를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부모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나의 지리산 워크 스테이는 끝까지 하지 못하고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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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친 논과 주위를 둘러싼 산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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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마을 풍경



지리산 워크 스테이 후기를 일기 형식으로 풀어봤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기대했던 수달 조사를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분들도 만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리모트 워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원치 않게 격리 기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 기회를 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 감사드립니다.




글쓴 사람. 배두리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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