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 통신

[2022 (봄) 지리산 워크스테이] #2-1 나를 토닥여준 산내에서의 시간

지리산이음
2022-06-28


소중하고 좋았던 때일수록 애석하게도 시간이 체감상 더 빠르게 지나간다. 나에게는 이번 워크스테이가 그랬다. 도시에서는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타 오늘 해야 할 업무를 헤아려보다 숨이 막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돌처럼 단단하고 늘 굳건히 자리해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고, 활동가를 지원하는 활동에 매료되어 현 소속 단체에 몸 담기 시작했지만 좀 지쳐갔던 것 같다. 활동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마치 바위가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혀 늘 긴장한 채로 지내게 되었다. 재택근무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워크스테이를 신청한 것은 도전이기도 했고 내 나름대로 숨을 쉬어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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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 앞을 흐르는 만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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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홍시 게스트하우스의 대문



산내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참 포근하다' 였다. 조용히 흐르는 만수천과 옅은 안갯 속에 가려진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르게 산내에 있는 동안 이 풍경에 의지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산내에 왔다고 결코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계획한 업무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쥐고 흔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천왕봉을 바라보거나 돌다리에 앉아 만수천의 유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출근길에 내가 묵었던 감꽃홍시게스트하우스에서 들썩까지 쭉 따라 걸으며 만수천에 대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산내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걱정 때문에 워크스테이 기간이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생각 외로 무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공간 들썩은 업무공간으로서 환경 자체도 너무 좋았는데, 앉아서 일을 할 때면 환대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카페 토닥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들썩으로 커피를 마시러 오는 활동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들썩을 떠올리면 잊을 수 없는 것이 식물이다. 공간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작은 정원을 볼 때면 식물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나가는 애정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종종 들썩 앞 화단에 심어놓은 라벤더와 장미, 달맞이 꽃과 같은 식물들을 종종 바라보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진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하는 공익활동가들이 들썩에 와서 살 듯이 지내보고 일해보면서 활력을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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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이 자라게 만들어놓은 들썩의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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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의 뜰에서 자라는 보랏빛 꽃



산내에 머물기를 잘했다, 생각한 이유 중 큰 지분은 함께 참여한 활동가들에게 있다. 여섯 시가 되면 각자 있던 곳에서 하나 둘씩 들썩으로 모여들어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냥’ 참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워크스테이를 지내면서 함께한다는 감각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평소에는 퇴근 후에도 그 날 일에 대해 곱씹고 업무에 대해 생각하느라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럴 새가 없었다. 함께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웃던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나는 너무 웃기면 눈물이 고이는 편인데, 워크스테이를 하는 4박 5일 간 계속 기쁨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면서 나를 심적으로 짓누르는 같던 바위를 조금 밀어낼 수 있었다.  



여덟 명의 활동가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따뜻하고 다정한 이들과 산내에서 보낸 시간들이 앞으로 내가 활동을 해나가는 데에 작고 단단한 힘이 될 거라 믿는다. 혜민, 소금, 닻별, 산, 울림, 미애쌤, 꾸베에게 정말 정말 고마웠다고 이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다 또 만날 수 있기를, 우연히 마주치면 어제 들썩에서 본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글쓴 사람. 그냥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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