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산단조성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인 갈사리 6개 마을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활동을 진행하여 이를 책으로 엮었다. 화력발전소, 표류하고 있는 산단사업, 여수화학단지, 광양 포스코를 마주하고 있는 갈사 지역을 영상에 담아 하동군민들과 실상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갈사리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그 곳을 재자연화해야 할 내재적 목표를 새기게 되었다. 함께 활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이들과 그 목표를 나눠가지게 된 것 또한 성과다.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한 발’을 내딛었다
글 | 이순경
작년 이맘때였다. 갈사만을 찾아온 수백마리의 흑두루미.
2023년 함께활동에 대한 고민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흑두루미들이 먹이활동을 안전하게 하고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먹이를 조달하기 위해 갈사리를 드나들던 우리들(생태해설사회와 하동참여자치연대 활동가 5~6인)은 갈사만 제방에 서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되지도 않을 산단 조성에 목매달며 지역민을 현혹하는 정치선동이 망령처럼 떠돌지 않는 하동, 어설프게 막아놓은 제방을 헐어내고 바다를 다시 되찾는 갈사만, 그 곳에 깃들 생명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작은변화탐험대’가 찾아왔다. 개별사업을 고민하는 친구들과 모여 함께사업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럽게 갈사만을 이야기하고 재자연화의 꿈을 내어놓아 보았다. 어떤 이는 함께 하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지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지역의 함께사업은 ‘갈도를 기록하다-하동주민생활사연구’로 정해졌다.
지역을 알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갈사리 6개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인터뷰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12명을 3명씩 4개조로 만들어 주민수가 많은 연막마을과 나팔마을에는 각각 1개조를 배치하고, 서근과 명선, 내도와 청도는 한데 묶어 각각 맡았다. 환경단체에 대해 금성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불편함이 느껴졌기에 최대한 동의를 구하고 활동을 시작하느라 3월부터 5월까지 시간을 많이 보냈다. 면장과 발전협의회장, 청년회장을 찾아가 먼저 사업 설명도 하고 협조요청을 했다. 답변이 오기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어 조별로 마을에 가서 무작정 마을회관을 방문하여 인사드리고 밥도 얻어먹고 시간을 보냈다.
개별활동을 하는 팀들을 체험프로그램으로 배치하여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었는데, 어르신들의 상황과 조건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해 여지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굳어버린 몸은 먼지의 요가활동을 따라오기 버거워했다. 먼지가 아주아주 간단하고 쉬운 동작으로 안내를 했는데도 말이다. 자화상 그리기 활동에서도 연필을 처음 잡아본 분이 많았고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제대로 그림다운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어떻게서든 뭐라도 그려보려고 애쓰시는 어머니들도 계셨는데, ‘이게 누구를 위한 거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우리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눈빛들이 조금 누그러졌고 그것이 느껴졌을 때 쯤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대동소이했다. ‘바닷일을 하며 사는 것의 고단함,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제철이 들어오고부터 보상과 안정적인 수입, 갈사산단도 잘 되어야 하는데’ 대략 이런 맥락이다. 일본에 수출하느라 국내에선 먹어보기도 어려웠다던 그 귀한 해태김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면서도 ‘지금 김 농사 다시 지으면 어떨까요’ 하는 질문에 머리를 가로 저으셨다. 어떤 분은 만약 계속 김 농사를 지어야했다면 이곳을 떠났을 거란 말씀까지 하셨다. 재자연화의 맥락은 어디서 찾아야할까 우리들은 난감했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깊은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자연화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면 내 활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는 섣불리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로 했다. 한 사람이라는 역사를 만나는 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인터뷰활동을 ‘지역을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계획한대로 활동해보자고 다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욕심이 컸다. 성급했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와 나눈 말 몇 마디로 갈사만의 재자연화를 공감할 수 있다면, 20년이라는 그 긴 세월동안 어정쩡하게 매립시늉만 하고 있는 갈사만이 계속 저 지경일 수 있었겠는가.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많이 필요하다. 넘어야 할 산이 그토록 많다는 뜻이겠지. 고작 동산 하나도 못 넘으면서 꿈꾸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9월에 마무리하기로 한 인터뷰활동이 10월까지 이어지면서 겨우 마무리되었다. 이제부터 정리 작업이 급했지만, 그 전에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음을 주민 분들에게 알리고 기념하는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1월에 책이 인쇄되어 나오면 금성면 복지회관에서 6개 마을 합동으로 잔치 비슷한 보고회를 가질 거였다. 그러나 마을에 드나들고 금성면을 알게 되면서 복지회관이 마을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차량운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6개 마을 어르신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 등이 거론되며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11월에 결과보고회를 가질 수 없다면 활동을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은 필요했고, 마침 숲길에서 예산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여 차량섭외하고 체험프로그램 기획도 하고 식당섭외도 하며 소풍을 계획했다. 10월 30일에 어르신 20여분을 악양 동정호로 모셔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두니 공방으로 가서 다육이화분 만들기 체험활동을 했다. 두니 공방의 자랑인 단풍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화분만들기를 하기 전, 우리 모임의 대표역할을 하고 계신 강수돌 샘이 갑자기 마을별 노래자랑을 유도하셨다. 박수치며 어머니들께 다가가 ‘자, 나팔 나팔 노래 노래 하나둘셋넷’하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 그렇게 돌고 돌고, 어느 순간 보니 어머니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띄며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하고 계신 거다. ‘사나흘에 한 번씩 요렇게 놀았음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더할 나위없이 즐거워하셨다.
그 뒤에 정리된 인터뷰 원고를 들고 마을에 찾아가 일일이 읽어드리며 검토를 받는데,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우리를 보는 눈빛과 말이. ‘아! 지금부터가 진짜 인터뷰 타이밍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을 분들이 마음을 완전히 여셨다는 느낌, 뭔가 통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웠다.
12월 15일, 드디어 책이 나왔다. 실물을 영접하고 보니 감개무량하면서도 부끄러웠다. 12월 22일에 나머지 분량의 책까지 와서 총 200권이 우리 앞에 있다. 연말과 연초에 마을회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하나씩 드릴 생각이다. 어떤 표정들이실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잘했다고 해 주시려나.
어쩌면 거대한 목적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지점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빗나간 방향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힘을 얻었다. 갈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곳에 사는 주민 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힘으로 우리는 갈사를 좀 더 오래 기웃거려 볼 것이다. 같이 꾸는 꿈이 될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내딛어 볼 거다. 이 걸음이 가능하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었던 ‘작은변화지원센터’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 지원사업명 2023 작은변화탐험대 지원사업 - 함께활동
2. 활동지역 하동
3. 활동가(단체)명 하동참여자치연대
4. 보고사업명 갈도를 기록하다-하동주민생활사연구
5. 활동평가
20년째 산단조성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인 갈사리 6개 마을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활동을 진행하여 이를 책으로 엮었다. 화력발전소, 표류하고 있는 산단사업, 여수화학단지, 광양 포스코를 마주하고 있는 갈사 지역을 영상에 담아 하동군민들과 실상을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갈사리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그 곳을 재자연화해야 할 내재적 목표를 새기게 되었다. 함께 활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이들과 그 목표를 나눠가지게 된 것 또한 성과다.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한 발’을 내딛었다
글 | 이순경
작년 이맘때였다. 갈사만을 찾아온 수백마리의 흑두루미.
2023년 함께활동에 대한 고민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흑두루미들이 먹이활동을 안전하게 하고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먹이를 조달하기 위해 갈사리를 드나들던 우리들(생태해설사회와 하동참여자치연대 활동가 5~6인)은 갈사만 제방에 서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되지도 않을 산단 조성에 목매달며 지역민을 현혹하는 정치선동이 망령처럼 떠돌지 않는 하동, 어설프게 막아놓은 제방을 헐어내고 바다를 다시 되찾는 갈사만, 그 곳에 깃들 생명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작은변화탐험대’가 찾아왔다. 개별사업을 고민하는 친구들과 모여 함께사업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럽게 갈사만을 이야기하고 재자연화의 꿈을 내어놓아 보았다. 어떤 이는 함께 하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지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지역의 함께사업은 ‘갈도를 기록하다-하동주민생활사연구’로 정해졌다.
지역을 알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갈사리 6개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인터뷰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12명을 3명씩 4개조로 만들어 주민수가 많은 연막마을과 나팔마을에는 각각 1개조를 배치하고, 서근과 명선, 내도와 청도는 한데 묶어 각각 맡았다. 환경단체에 대해 금성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불편함이 느껴졌기에 최대한 동의를 구하고 활동을 시작하느라 3월부터 5월까지 시간을 많이 보냈다. 면장과 발전협의회장, 청년회장을 찾아가 먼저 사업 설명도 하고 협조요청을 했다. 답변이 오기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어 조별로 마을에 가서 무작정 마을회관을 방문하여 인사드리고 밥도 얻어먹고 시간을 보냈다.
개별활동을 하는 팀들을 체험프로그램으로 배치하여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었는데, 어르신들의 상황과 조건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해 여지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굳어버린 몸은 먼지의 요가활동을 따라오기 버거워했다. 먼지가 아주아주 간단하고 쉬운 동작으로 안내를 했는데도 말이다. 자화상 그리기 활동에서도 연필을 처음 잡아본 분이 많았고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제대로 그림다운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어떻게서든 뭐라도 그려보려고 애쓰시는 어머니들도 계셨는데, ‘이게 누구를 위한 거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우리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눈빛들이 조금 누그러졌고 그것이 느껴졌을 때 쯤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대동소이했다. ‘바닷일을 하며 사는 것의 고단함,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제철이 들어오고부터 보상과 안정적인 수입, 갈사산단도 잘 되어야 하는데’ 대략 이런 맥락이다. 일본에 수출하느라 국내에선 먹어보기도 어려웠다던 그 귀한 해태김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면서도 ‘지금 김 농사 다시 지으면 어떨까요’ 하는 질문에 머리를 가로 저으셨다. 어떤 분은 만약 계속 김 농사를 지어야했다면 이곳을 떠났을 거란 말씀까지 하셨다. 재자연화의 맥락은 어디서 찾아야할까 우리들은 난감했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깊은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자연화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면 내 활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는 섣불리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로 했다. 한 사람이라는 역사를 만나는 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인터뷰활동을 ‘지역을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계획한대로 활동해보자고 다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욕심이 컸다. 성급했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와 나눈 말 몇 마디로 갈사만의 재자연화를 공감할 수 있다면, 20년이라는 그 긴 세월동안 어정쩡하게 매립시늉만 하고 있는 갈사만이 계속 저 지경일 수 있었겠는가.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많이 필요하다. 넘어야 할 산이 그토록 많다는 뜻이겠지. 고작 동산 하나도 못 넘으면서 꿈꾸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9월에 마무리하기로 한 인터뷰활동이 10월까지 이어지면서 겨우 마무리되었다. 이제부터 정리 작업이 급했지만, 그 전에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음을 주민 분들에게 알리고 기념하는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1월에 책이 인쇄되어 나오면 금성면 복지회관에서 6개 마을 합동으로 잔치 비슷한 보고회를 가질 거였다. 그러나 마을에 드나들고 금성면을 알게 되면서 복지회관이 마을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차량운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6개 마을 어르신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 등이 거론되며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11월에 결과보고회를 가질 수 없다면 활동을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은 필요했고, 마침 숲길에서 예산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여 차량섭외하고 체험프로그램 기획도 하고 식당섭외도 하며 소풍을 계획했다. 10월 30일에 어르신 20여분을 악양 동정호로 모셔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두니 공방으로 가서 다육이화분 만들기 체험활동을 했다. 두니 공방의 자랑인 단풍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화분만들기를 하기 전, 우리 모임의 대표역할을 하고 계신 강수돌 샘이 갑자기 마을별 노래자랑을 유도하셨다. 박수치며 어머니들께 다가가 ‘자, 나팔 나팔 노래 노래 하나둘셋넷’하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 그렇게 돌고 돌고, 어느 순간 보니 어머니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띄며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하고 계신 거다. ‘사나흘에 한 번씩 요렇게 놀았음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더할 나위없이 즐거워하셨다.
그 뒤에 정리된 인터뷰 원고를 들고 마을에 찾아가 일일이 읽어드리며 검토를 받는데,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우리를 보는 눈빛과 말이. ‘아! 지금부터가 진짜 인터뷰 타이밍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을 분들이 마음을 완전히 여셨다는 느낌, 뭔가 통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웠다.
12월 15일, 드디어 책이 나왔다. 실물을 영접하고 보니 감개무량하면서도 부끄러웠다. 12월 22일에 나머지 분량의 책까지 와서 총 200권이 우리 앞에 있다. 연말과 연초에 마을회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하나씩 드릴 생각이다. 어떤 표정들이실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잘했다고 해 주시려나.
어쩌면 거대한 목적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지점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빗나간 방향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힘을 얻었다. 갈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곳에 사는 주민 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힘으로 우리는 갈사를 좀 더 오래 기웃거려 볼 것이다. 같이 꾸는 꿈이 될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내딛어 볼 거다. 이 걸음이 가능하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었던 ‘작은변화지원센터’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