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작은변화탐험대/따로활동/함양] 치유공간 쉬미수미 - <마을 지도 그리기> 활동을 마치고

 

1. 지원사업명  2023 작은변화탐험대 지원사업 - 따로활동

 

2. 활동지역  함양

 

3. 활동가(단체)명  치유공간 쉬미수미

 

4. 활동주제명  마을 지도 그리기


 


 

 

 

마을 지도 그리기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

당시 모임의 대화 내용을 통해 우리 모임에서 어떻게 주제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를 우선 말한다.

 

 

스마트 폰이면 오로라를 찾아 아이슬란드로도 갈 수 있는데, 지도가 그것도 마을 지도가 필요할까요.

목적지가 정해지면 오로라를 아이슬란드보다 캐나다에서 보는 맛이 더 좋다면 그곳으로도 갈 수 있겠지요.

그러면 행정지도나 네이버 지도만 있어도 충분한데, 또 다른 형태의 지도가 왜 필요한가요. 길 모르면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좁은 고장에서.

지도는 길 찾기의 안내서이지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나요. 갈 곳이 정해지면 날아서라도 갈 수 있지만, 가야 할 곳이 정해지지 않으면 어디로 갈까요. 목표 지점이 막연하니 여러 사람이 간 곳을 따라가서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는 구경꾼 노릇이나 하겠지요.

그러니까 가야 할 분명한 이유를 지닌 목표 지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서겠다는 이들에게 유용한 지도를 만들자는 의견이네요.

그렇지요.      

 

 

그런 의논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먼저 찾아야 할 목표 지점이 아니라 가지 않아도 좋을, 그러니까 지도에 포함하지 않아도 좋을 곳들을 추렸다. 그것들은 돈을 쓰게 하거나 돈을 벌게 하는 것들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져서 여러 사람이 가 본 곳들을 제외하였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편안하게 쉬는 일과 생명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는 숨을 온전히 쉬는 일임을 알았고 그 쉼과 숨을 채워주는 안내 역할을 할 지도를 만들기로 하였다. 당연하지만 그 지도에는 편안한 쉼터의 구실을 할 장소와 그곳에서 생명(숨)을 깊게 명상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글을 첨부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지도 그리기”라는 밋밋한 이름을 버리고 ‘불편한 지도 만들기’로 모임의 이름을 부르기로 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목적지의 좌표를 찍지 않고 아주 간략하게 위치를 추정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설명을 한다. 사진을 될 수 있으면 최소화하고 각자가 본 것을 그린다. 그곳에 온 여행자 자신의 시각으로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그림에 붙이는 글은 한 사람이 쓴 글보다는 여러 사람이 서로 수정하여 보완하도록 한다. 이는 글쓴이의 과도한 주관적 감상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엄격한 규칙을 정하자 문제가 뒤따랐다. 지금부터는 그 문제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는가를 말한다. 

 

 

첫째 : 쉼터와 숨터 찾기의 어려움이었다. 이미 정자와 둘레길 등 경치 좋은 곳은 개인 블로거나 여행안내서 심지어는 군청의 홈페이지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새로운 장소를 목표 지점으로 삼기보다는 우선 장소 선정에서 ‘쉼과 숨’의 의미를 생각하고 휴식을 취하고 명상을 할 수 있는 곳을 정하기로 하였다. 찾은 곳은 읍내 거리에 놓여 있는 낡은 의자, 위천 강변의 벤치. 상림을 휘돌아 흐르는 곳곳에 방치된 잊혀진 정자 등을 택했다. 

 

둘째 : 불편한 지도지만 기본적인 길 찾기의 안내를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라도 지도에 여러 표식이 있어야만 했다. 사진을 배제했으니. 그림으로 그 풍경을 그려야 했다. 그러나 그림에는 다 초보들이라 그림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 그리기“를 먼저 배우기로 하였다. 부산에서 지도할 수 있는 강사를 섭외했고 지역의 숨은 화가를 물색했다. 그리고 초보적인 그림 그리기의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격주로 만나 가까운 곳을 답사하였고 영화를 보았다.  비어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부지런히 그렸다. 시간이 흐르자, 하나의 대상을 두고도 각기 다른 색과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 풍경을 대하는 각자의 주체적 태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그림들을 보고 그 장소를 찾는 이들 또한 나름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셋째 : 풍경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글쓰기의 어려움이었다. 처음 써보는 형태의 글쓰기는 모두를 당황하게 하여 글을 빼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지리산 이음‘의 과제를 받아들이기 이전부터 우리 모임은 나름의 내공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 활동이 도움이 되었다. 한 달에 두 번 우리 모임은 지리산 부근의 쉼터와 숨터를 찾아가서 여러 놀이를 하였다. 예를 들면 감성 카드를 뽑아서 그에 맞는 짧은 글쓰기를 한다든지 시집을 돌아가면서 읽고 감상을 말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의외로 그런 놀이 혹은 쉼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과 더불어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태도를 구축하지 않았나 한다. 그렇게 그림에 맞는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부딪친 문제는 이러한 결과물을 누가 취합하고 정리하는가, 그림과 글이 조화롭지 않은 것들을 최대한 수정 내지는 교정할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모임의 구성원 모두가 주부들이다 보니 한 개인이 전적으로 시간을 낼 수도 없었고 또 최종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한 개인에게 맡겨 둘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모임을 제안한 사람이 그 몫을 떠맡게 되어 전체가 만들어야 하는 지도라는 처음의 취지가 퇴색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참여자 각자가 얻은 소득도 적지 않은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쉼터와 숨터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함양이라는 곳에 숨어 있는 새로운 풍경들을 만났고 만나는 순간마다 경이감과 기쁨을 서로 공유하여 마을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충분한 휴식을 자연에서 누려야 한다는 점이고 생명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도 바로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자연환경을 더 이상 훼손하면 인간의 쉼과 숨이 망가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곧 마을과 주민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하나의 그물로 연결된 관계망 속에 있다는 자각이었다.

아쉬움은 출판 경비가 너무 비싸서 활동들을 정리한 책자를 만들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는 점이지만 이는 추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계획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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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나서야 한다, 지도에 없는 길로

 

 

글 | 최갑진

 

 

 

- 아래 글들은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단톡방과 밴드에 올린 것 중에 전체 주제에 부합하는 글을 모은 것입니다. 

 

- 우리의 중심 주제인 ‘지도 그리기’는 지금껏 관심을 받지 못한 함양에 있는 공간에 대한 소개이며 나아가 구성원들 스스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미래의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 그래서 충분한 휴식을 주는 풍경과 편안한 숨을 쉬며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자연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래의 글들은 그런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우리만이 아니라 모두의 공간이기에 “우리식의 불편한 지도”에 새겨 넣을 글들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당신도 찾아 나서기를 바라며.

 

 

 

<물음, 쉼, 숨, 지도>

 


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 순간

 

더 큰 질문이 따라 나온다

 

숨을 쉬고 있는가? 

 

생명을 단지 연장하려는 호흡 말고 

 

온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려는 

 

숨쉬기를, 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묻는다.

 

 

 

 

<쉼터를 걸어서 숨터를 찾는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몸짓도 없이 누구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기다리는 몸짓은 어떤 시늉을 말하는 것인가요. 묻는다면. 

 

1. 먼 산 바라보기, 흘러가는 바람에 머리칼 날리기,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 너무 초조해 보이니, 생략하자. 그러면 발끝으로 툭툭 흙덩이를 차고 손가락을 굽혀서 의자를 쓰다듬는 행위라고 말하자. 그런데 그런 몸짓조차 없다면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지요. 묻는다면.

 

2. 두 가지를 볼 수 있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서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아니면…

 

3. 멀리 흘러온 강물이 하류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깊어지듯 삶이 기다림이 되어 버린 사람들. 움직임도 없이 기다리는 일이 호흡이 되어 주변과 어울려 일체의 풍경 하나를 만드는 사람들이지.

 

4. 저 의자가 그러하듯.

 

 

 

 

 

<경계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리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며 넘어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까치발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신감이 저렇게 없을까, 하면서, 안타깝게 여긴다. 한 발만 내디디기면 될 것을.

 

그러나 경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한 발 내딛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혹은 주제 넘은 짓이라고 배운 사람들은, 다리 이쪽에서 망설이다 저쪽을 포기하고 만다. 사람살이에 숙명이란 게 있다고 믿으며.

 

그럴 때 돌북교 바로 옆으로 가라. 높다란 나무와 그 아래 정자가 그대를 편안하게 안아줄 테니. 가서는 무작정 기다려라. 흐르는 위천의 물이 흐르고 흘러 이윽고 멈출 때까지. 기다려라 서두르지 말고 그늘을 선물하는 느티나무가 마르고 말라서 오히려 그대에게 기대어 몸 버틸 그날까지. 

 

그러나 기다릴 수 없다면 신발을 다시 신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씻고는 발을 옮겨야 한다. 이곳 아닌 저곳으로, 세상을 매고 가듯 무거운 발을 내밀어야 한다.

 

 

 

 

 

<지도 밖으로>

 

 

지도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의 정보를 품고 있다. 품고, 그렇지 풀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는 형태. 등고선, 표지 등.

 

그것들을 풀기 위해서는 기호의 약속을 이해해야, 하는. 

 

우리는 기호의 약속 대신 말의 교류를 바란다. 어떤 풍경을 나는 나의 방식으로 말하고 그대는 그대의 방식으로 말하라. 우리의 지도에 여백이 넓게 펼쳐진 이유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오기 전에 나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라. 그리고 풍경을 거닐면서 완전하게 잊어버리고 그 여백에다 그대의 말을 채워라. 기억, 느낌, 다짐, 어떤 것들이라도 좋다. 말로 뱉어지는 것들. 또는 차마 말로는 나올 수 없는 마음까지를.

 

그렇게 나온 말 속에, 그대의 미련, 한탄, 아픔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편안함으로 숨을 쉴 때 우주의 에너지가 따뜻하게 몸을 데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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