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술로 연결을 꿈꾸다, 디디의 이야기
디디는 손끝에서 시작된 기술이 어떻게 삶의 태도를 바꾸고, 사람들을 연결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적정기술과 농촌 문화기획이라는 다소 낯선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놓은 디디의 삶은 깊고 따뜻했다.
디디의 삶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열정적으로 기술을 가르쳤지만, 그 과정에서 디디 자신을 돌보는 일은 소홀히 해왔다고 고백한다. “그때는 몰랐어요. 사회적 가치를 외치면서도 정작 제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요.”
돌아보면, 디디의 여정은 자신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도시에서의 실패와 성찰, 그리고 고향으로의 귀환은 디디를 한층 단단하고도 온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 디디는 기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술로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2024년 11월 9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디디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삶의 전환, 의성에서 시작되다
"저는 늦둥이 외동이에요. 아버지 쉰셋, 어머니 마흔넷에 저를 낳으셨어요. 부모님의 나이가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거리가 있음을 느꼈어요.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라게 된 거예요.“
디디는 다름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부모님은 항상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학창시절에도 그는 주변의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걷는 걸 선택했다. 세 번의 자퇴를 거쳐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디디는 이 시기부터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된다.
서울로 간 후, 디디는 철학을 공부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이 마음속에 깊이 남았어요. 서울에서 겪은 사회의 이면을 보면서, 내가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불평등을 몸소 느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디디는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왜 편의점에 자꾸 가는 걸까? 이 작은 행동 하나가 내 일상의 일부분처럼 되어버렸어요. 내가 무엇을 소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했어요."
이 질문을 풀기 위해 디디는 대안학교에서 적정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는 기술을 배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느끼게 됐다.
"용접을 배웠을 때, 그 철 구조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제서야 내가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게 됐어요. 그 순간, 내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아요.“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관계’라는 깨달음을 얻은 디디는, 기술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기술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가치와 돌봄
이후 디디는 서울에서 '여기공'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여성들에게 집수리 기술을 가르치며 큰 주목을 받았다. 2020년, 한겨레 1면에 '집 고치는 여성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겨레 1면에 우리가 소개되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루아침에 문의가 폭주했고, 여성들이 기술을 배워 자립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다는 걸 실감했어요. 누군가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망설였지만, 막상 공구를 잡고 배우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큰 성공 뒤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 내부의 갈등과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외면해 왔던 '돌봄'이라는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
"돌봄이라는 게 단순히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가르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돌봄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집을 고치고, 기술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됐어요."
그녀는 사업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계기로 삶을 재정비하게 된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무리하게 달려가기보다는,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기로 했다.
“결국 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제 삶의 기본적인 것들은 외면하고 있었어요.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생활력이란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시간과 여유를 포함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의성에서 찾은 새로운 가능성
그녀는 다시 고향 의성으로 돌아와, 지역과 연결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에서 함께 영화제를 기획하거나, 이주 여성들과 직조 기술을 나누는 등 그녀의 활동은 이제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다.
"생활력이란 결국 나 혼자 잘 사는 기술이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특히 그는 적정기술과 농촌 문화기획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변화를 위한 기획과 실행을 고민하고 있다.
"요즘 서울에서 시작한 고민을 농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유효할까, 농촌에 필요한 생활력은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의성에서 그녀는 보다 여유롭고 진솔한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과도한 책임감과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 하고 있는 일이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을 정리하거나 나를 돌보는 일에 내가 서투를 것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은 내가 '돌봄'에 대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하나씩 해보자고 생각하니 할 일들이 보이더라구요. 그러면서 '생활력'이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꾸준히 조금씩 나만의 '생활력'을 기르면 된다고 생각해요"
디디는 오늘도 생활기술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설거지가 귀찮지만, 설거지가 없다면 사회적 가치도 없다"는 그녀의 말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삶의 작은 실천들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글/사진 | 최학수
🎤 <지리산쌀롱>은 다른 지역에 사는 손님을 산내면으로 초대해 이야기 나누고 교류하는 자리입니다.
2024년의 <지리산쌀롱>은 브라이언임팩트의 임팩트그라운드 지원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
삶의 기술로 연결을 꿈꾸다, 디디의 이야기
디디는 손끝에서 시작된 기술이 어떻게 삶의 태도를 바꾸고, 사람들을 연결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적정기술과 농촌 문화기획이라는 다소 낯선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놓은 디디의 삶은 깊고 따뜻했다.
디디의 삶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열정적으로 기술을 가르쳤지만, 그 과정에서 디디 자신을 돌보는 일은 소홀히 해왔다고 고백한다. “그때는 몰랐어요. 사회적 가치를 외치면서도 정작 제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요.”
돌아보면, 디디의 여정은 자신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도시에서의 실패와 성찰, 그리고 고향으로의 귀환은 디디를 한층 단단하고도 온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 디디는 기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술로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2024년 11월 9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디디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삶의 전환, 의성에서 시작되다
디디는 다름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부모님은 항상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학창시절에도 그는 주변의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걷는 걸 선택했다. 세 번의 자퇴를 거쳐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디디는 이 시기부터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된다.
서울로 간 후, 디디는 철학을 공부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불평등을 몸소 느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디디는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질문을 풀기 위해 디디는 대안학교에서 적정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는 기술을 배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느끼게 됐다.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관계’라는 깨달음을 얻은 디디는, 기술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기술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가치와 돌봄
이후 디디는 서울에서 '여기공'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여성들에게 집수리 기술을 가르치며 큰 주목을 받았다. 2020년, 한겨레 1면에 '집 고치는 여성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큰 성공 뒤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 내부의 갈등과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외면해 왔던 '돌봄'이라는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사업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계기로 삶을 재정비하게 된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무리하게 달려가기보다는,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생활력이란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시간과 여유를 포함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의성에서 찾은 새로운 가능성
그녀는 다시 고향 의성으로 돌아와, 지역과 연결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에서 함께 영화제를 기획하거나, 이주 여성들과 직조 기술을 나누는 등 그녀의 활동은 이제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다.
특히 그는 적정기술과 농촌 문화기획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변화를 위한 기획과 실행을 고민하고 있다.
의성에서 그녀는 보다 여유롭고 진솔한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과도한 책임감과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디디는 오늘도 생활기술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설거지가 귀찮지만, 설거지가 없다면 사회적 가치도 없다"는 그녀의 말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삶의 작은 실천들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글/사진 | 최학수
🎤 <지리산쌀롱>은 다른 지역에 사는 손님을 산내면으로 초대해 이야기 나누고 교류하는 자리입니다.
2024년의 <지리산쌀롱>은 브라이언임팩트의 임팩트그라운드 지원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