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총체적 모순의 집결지라고 느껴졌어요. 그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 12월 3일 내란의 밤이었죠.
단순히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출구 없는 자본주의가 벌인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설악산 자락에서 지리산을 찾아온 채효정 선생님. 그는 “12월 3일의 문제는 한 명의 대통령을 바꾼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며 “무엇을 바꿔야 하고 어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거대한 담론과 고민, 2024년 12월 20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채효정 선생님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구조적 위기와 농업의 현실
사회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개인의 생존의 방식을 고민하던 채효정 선생님은 도시를 떠나 인제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한 농사가 블루베리였다. 처음에는 이상적인 계획처럼 보였다.
"블루베리는 넉 달만 농사지으면 된다고 했어요. 나무니까 계속 심을 필요도 없고, 따고 관리만 하면 된대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블루베리는 생소한 작물이었고, 이를 추천하던 지역 주민들조차도 처음 키워보는 상황이었다. "저에게 블루베리를 추천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교육받으러 가서 다 손들고 질문하는 걸 보고 이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결국 모두가 새로 시작했던 블루베리 마을을 무너뜨린 것은 인제의 기후였다.
"5월까지 눈이 오는 인제에서는 꽃샘추위가 변수였어요. 블루베리는 겨울은 견뎠지만, 봄에는 얼어 죽었어요. 50일 동안 쉬지 않고 비가 온 적도 있어요. 블루베리는 물기에 취약한데, 건조할 틈이 없었죠. 수확량이 줄고 병충해가 퍼졌어요. 농민들이 평생 겪어온 일이지만, 이제 강도와 빈도가 훨씬 심해졌어요."
농민들은 블루베리로 안착하자마자 다시 작물을 바꿔야 했다. 농민은 시장 논리에 따라 소득을 안겨주는 작물을 유행에 따라서 부지런히 옮겨왔다.
"블루베리에서 아로니아로, 또 다른 작물로 전환하겠죠. 하지만 문제는 농업이 아니라 구조예요. 지원 정책은 대농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이런 지원 속에 작은 농가는 버틸 수 없어요. 택배비 지원도 사라졌어요. 1년 내내 출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소농은 불가능하죠."
농촌의 풍경도 변했다.
"논이 귀한 인제에서 논을 밭으로 전환했어요. 이유는 간단했죠. 블루베리 값이 쌀보다 높았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결국 그 자리를 인삼과 파프리카 시설 농가가 자리 잡았어요."
이러한 농촌의 변화를 대학가 매장의 흐름과 비교할 수도 있다. 대만 카스테라, 벌꿀 아이스크림, 탕후루가 유행을 타고 사라지듯, 농민들도 작물을 끊임없이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가 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이상한 풍경이 보인다.
“예전과 다르게 최근의 대학에는 신설 학과들이 많이 생겨요. 융복합 학과 이름을 바꿔가며 생기고 합치고 그래요.”
채효정 선생님은 이게 박근혜 정부 때 나왔던 창조 경제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창조적 파괴죠. 계속 혁신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거를 만들어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갈아치우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게 다 빚인 거예요. 농민들은 한 번 망할 때마다 또 빚이 생기고 또 생겨요.”
그리고 이젠 시설비가 막대하게 드는 스마트팜을 제안한다. 블루베리를 갈아치우고 스마트팜을 설치하라고. 여기에서 실패하면 농민은 땅을 두고 떠나야 한다.
“농촌이 가난해진 건 WTO, FTA 체결하면서 농촌이 망가지고 기반이 붕괴된 건데 이게 마치 농민이 작물을 빨리 바꾸지 못해서 된 것처럼, 농민이 무능력해서 된 것처럼 책임을 교묘하게 전가하는 거죠.”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한국 사회의 변화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 시스템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도입되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87년 민주화 체제가 완전한 사회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90년대 들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등의 조치가 진행되었어요. 이게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이에요." 채효정 선생님의 설명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정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대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대량 해고를 단행했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했다.
"IMF 이후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대대적으로 시행했고, 비정규직을 확대했죠.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렸어요."
금융 시장이 개방되면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고, 이에 따라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가,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공공부문 축소, 노동조합 약화, 금융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시장 중심의 경제 구조를 만들었고, 이러한 흐름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의 규범과 가치 체계를 바꿨다.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판단하게 만들었고, 공공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국가가 책임지던 영역이 하나둘씩 시장으로 넘어갔어요. 교육, 의료, 교통, 주거까지도 이제는 개인이 돈을 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죠."
대학은 취업률을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학과를 신설하고 폐지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기업은 정규직보다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선호하며 고용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또한, 공공 인프라조차 민영화되면서 교통과 에너지도 시장 논리에 맡겨졌고, 필수 서비스가 점차 소수 기업들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부채 경제가 일상화되었다. 기업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꿨고, 개인은 집을 사거나 교육을 받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대학도 일종의 투자로 여겨지고 있어요. 학생들은 빚을 내서라도 학위를 따야 하고, 학과도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길러낼 수 있도록 재편되었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면서,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개별적인 생존 전략을 강요받았고,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가족, 지역 사회, 노동조합 등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되었으며,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지역에서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각자도생이에요. 농촌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면서도, 결국 경쟁해야 하는 구조에 내몰렸어요.“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 그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국가들은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미국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영국에서는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가 확대되었다. 남미 여러 국가에서는 빈부격차 심화와 함께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졌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국가가 맡았던 역할들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만 강조받으며 점점 더 불안한 삶을 살게 되었다.

저항과 돌봄, 새로운 길을 찾아서
현재 한국 사회는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불안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으며, 복지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국가가 사회를 보호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항만이 아니라 돌봄도 함께해야 해요. 돌봄 없이 저항만 해서는 지속할 수 없어요. 돌봄이 곧 저항이 되고, 저항이 곧 돌봄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연대하여 공공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작은 단위에서부터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인제에서 채효정 선생님은 ‘자치와 자급’이라는 독서모임이 꾸려져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작은 실천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연대하여 공공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작은 단위에서부터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미국 블랙팬더당은 국가가 제공하지 않는 필수 서비스를 직접 조직했다. 빈곤층 아이들에게 무료 아침 급식을 제공하고, 공공 백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교 등교길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다'는 원칙 아래 공동체가 스스로 돌봄과 저항을 결합한 사례였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 농민과 원주민 공동체가 모여 자율적 자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교육, 의료, 경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시장 논리와 무관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험했다.
인제에서 채효정 선생님이 이끄는 ‘자치와 자급’ 모임도 이런 흐름과 닿아 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 공동의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를 돌보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지역 단위의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변화를 맞이할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더 이상 국가에만 기대지 않고, 지역에서부터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의 틀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저항과 돌봄이 결합된 새로운 사회 모델이 가능할까?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사진 | 최학수
설악산 자락에서 지리산을 찾아온 채효정 선생님. 그는 “12월 3일의 문제는 한 명의 대통령을 바꾼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며 “무엇을 바꿔야 하고 어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거대한 담론과 고민, 2024년 12월 20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채효정 선생님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구조적 위기와 농업의 현실
사회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개인의 생존의 방식을 고민하던 채효정 선생님은 도시를 떠나 인제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한 농사가 블루베리였다. 처음에는 이상적인 계획처럼 보였다.
결국 모두가 새로 시작했던 블루베리 마을을 무너뜨린 것은 인제의 기후였다.
농민들은 블루베리로 안착하자마자 다시 작물을 바꿔야 했다. 농민은 시장 논리에 따라 소득을 안겨주는 작물을 유행에 따라서 부지런히 옮겨왔다.
농촌의 풍경도 변했다.
이러한 농촌의 변화를 대학가 매장의 흐름과 비교할 수도 있다. 대만 카스테라, 벌꿀 아이스크림, 탕후루가 유행을 타고 사라지듯, 농민들도 작물을 끊임없이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가 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이상한 풍경이 보인다.
채효정 선생님은 이게 박근혜 정부 때 나왔던 창조 경제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젠 시설비가 막대하게 드는 스마트팜을 제안한다. 블루베리를 갈아치우고 스마트팜을 설치하라고. 여기에서 실패하면 농민은 땅을 두고 떠나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한국 사회의 변화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 시스템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도입되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87년 민주화 체제가 완전한 사회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90년대 들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등의 조치가 진행되었어요. 이게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이에요." 채효정 선생님의 설명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정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대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대량 해고를 단행했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했다.
금융 시장이 개방되면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고, 이에 따라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가,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공공부문 축소, 노동조합 약화, 금융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시장 중심의 경제 구조를 만들었고, 이러한 흐름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의 규범과 가치 체계를 바꿨다.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판단하게 만들었고, 공공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대학은 취업률을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학과를 신설하고 폐지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기업은 정규직보다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선호하며 고용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또한, 공공 인프라조차 민영화되면서 교통과 에너지도 시장 논리에 맡겨졌고, 필수 서비스가 점차 소수 기업들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부채 경제가 일상화되었다. 기업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꿨고, 개인은 집을 사거나 교육을 받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면서,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개별적인 생존 전략을 강요받았고,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가족, 지역 사회, 노동조합 등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되었으며,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 그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국가들은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미국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영국에서는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가 확대되었다. 남미 여러 국가에서는 빈부격차 심화와 함께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졌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국가가 맡았던 역할들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만 강조받으며 점점 더 불안한 삶을 살게 되었다.
저항과 돌봄, 새로운 길을 찾아서
현재 한국 사회는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불안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으며, 복지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국가가 사회를 보호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연대하여 공공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작은 단위에서부터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인제에서 채효정 선생님은 ‘자치와 자급’이라는 독서모임이 꾸려져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연대하여 공공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작은 단위에서부터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미국 블랙팬더당은 국가가 제공하지 않는 필수 서비스를 직접 조직했다. 빈곤층 아이들에게 무료 아침 급식을 제공하고, 공공 백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교 등교길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다'는 원칙 아래 공동체가 스스로 돌봄과 저항을 결합한 사례였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 농민과 원주민 공동체가 모여 자율적 자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교육, 의료, 경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시장 논리와 무관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험했다.
인제에서 채효정 선생님이 이끄는 ‘자치와 자급’ 모임도 이런 흐름과 닿아 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 공동의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를 돌보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지역 단위의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변화를 맞이할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더 이상 국가에만 기대지 않고, 지역에서부터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저항과 돌봄이 결합된 새로운 사회 모델이 가능할까?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사진 | 최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