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5일, 남원시 산내면 문화공간 ‘토닥’에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북토크 참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열여섯 번째 ‘지리산쌀롱’이 열린 이날, 초대된 손님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였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 강 작가는 “교사의 습성을 못 버리고 퀴즈부터 준비해왔다”며 청소년과 가난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부터 참석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축제’, ‘비행’, ‘자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강 작가는 “지금은 ‘청소년 할인’, ‘청소년 정책’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도 검색어로 뜨지만, 여전히 미소 짓는 청소년, 행복한 학생 같은 말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느냐”며, 그 단어가 지닌 무게를 짚었다.
이어 가난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칼럼에서 인용했다며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자녀가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지 않으며,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린다. 무엇일까요?” 칼럼 속 이 문장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묘사였다.
그는 이 설명을 뒤집으면 이른바 '부자'의 특징이 된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자녀 책임을 부모가 진다고 생각하고, 좋은 집엔 좋은 물건이 없고, 문제가 생기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 말을 통해 강 작가는, 한국 사회가 가난을 도덕적 결핍이나 개인 책임의 문제로 치환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드러냈다.

문제를 마주한 순간
2000년, 강지나 작가는 처음으로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경기도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구석으로 갔어요.” 그는 ‘우리 집은 왜 학원비를 못 대줄까’라며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꼈던 본인의 어릴 적 감정과, 실제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가난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출석하지 않는 학생을 찾아 가정방문을 간 날, 그는 충격적인 현실을 맞닥뜨렸다. 학생의 할머니는 학생의 아버지가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자를 볼모 삼아 협박하고 있었다. 심지어, 혼인관계가 아닌 성인 남성도 집 안에 함께 있었다.
“애들이 과연 밥은 먹고 있을까, 저 아저씨가 때리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교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당시는 신고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시기였다. 경찰도 “접촉하지 말라”고만 했고, 교사로서 개입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청소를 시키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요. 한 명씩 이름을 불러야 해요. 자발성이 없고, 정의나 공공성 같은 단어가 통하지 않던 곳이었죠.”
그는 가난이 단지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자라나는 영혼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걸 체감하며 교직을 그만두려는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의 권유로 학교 사회복지 제도를 알게 되고, 그 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난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문제 청소년’이라는 시선 뒤에 있는 삶
강지나 작가는 교직 초기에 가난한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마주한 여러 사례를 통해, 가난이 단지 결핍이 아니라 고립이고 단절이며 무기력한 문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사례는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힌 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무단결석이 잦았고, 흡연과 가출을 반복했다. 어느 날은 법원에 가야 한다며 조퇴를 요청하기도 했다. “중3짜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법원에 가냐”며 강 작가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말이 어눌하고,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친구였어요.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문제 상황으로 더 번지곤 했죠.” 강 작가는 이런 행동의 배경에 ‘돌봄의 부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일상적인 생활 관리나 훈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익히지 못했고, 문제 상황에서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도 부족했던 것이다.
그는 이 아이를 통해 교사로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숫자보다 이야기를 봐야 한다. 가출 몇 번, 흡연 몇 번이라는 숫자보다 그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안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들어야 했다.” 이는 그가 이후 질적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한 마을 전체가 형성한 ‘무기력한 문화’ 속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을 극복하고 싶어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아이들의 삶을 다르게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질적 연구로 바라본 가난의 얼굴
강지나 작가는 교직 현장에서 겪은 무력감을 딛고, 보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깊이 몰입하게 된 것이 바로 ‘질적 연구’였다. 단순히 숫자나 통계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개인의 서사, 삶의 맥락, 목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학교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마치 양호 선생님처럼, 학교에 상근으로 존재하는 사회복지사 제도가 곧 도입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죠.”
그는 당시만 해도 제도 통과가 가까워 보였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무산되었고, 비정규직 위주의 파편화된 현장만 남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지도 교수의 조언을 따라 방향을 전환했다. ‘논문이나 써라’는 말에 따라 연구자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문화기술지’라는 질적 연구 기법을 통해, 단순 인터뷰를 넘어서 현장과 일상, 반복된 관찰을 통해 청소년들의 삶을 서술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현장 연구를 위해 강 작가는 두 곳의 지역아동센터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해갔다.
“교사와 학생처럼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료나 이웃처럼 곁에 머물며 관계를 만들었어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6년에 박사학위논문이 완성됐다. 제목은 『빈곤대물림 가족 청소년의 대응기제』였다. 논문이 학계에 제출된 이후, 이를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책이 바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다.
책에 담긴 청소년들은 교사로서 직접 지도한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건 연구 윤리에 어긋나거든요. 직접 교육하는 학생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대부분은 지역아동센터, 복지기관, 교육복지사 등을 통해 소개받은 청소년들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깊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냐고들 물어보세요. 그런데 저는 이 청소년들이 저에게 말을 해준 게 아니라, 그 복지사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신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책은 제가 혼자 쓴 게 아니라, 함께 쓴 겁니다.” 강 작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늘 복지사들과 인터뷰 내용을 리뷰하고, 글을 쓰면 검토를 함께 했다고 한다. 강연에서 강 작가는 질적 연구가 단지 책의 형식일 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언론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주류의 이야기예요.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놓으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삼아야 해요.”
책에 담긴 8명의 청소년들은 초기 박사논문에서 다룬 23명 중 추가 인터뷰에 응한 6명에 새로운 사례 2명을 더해 선정됐다. 단순히 인터뷰에 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나누고 싶다고 먼저 말해온 이들이었다.
책 속 인물들, 10년의 시간을 걷다
강지나 작가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 기록한 8명의 청소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변두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극복 서사’가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 탈가정 청소년, 교정시설 경험자, 정규 교육을 포기하거나 간신히 버텨낸 이들까지. 그들이 어떻게 삶을 감당했고, 어떤 좌절과 변화를 겪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강 작가는 가장 먼저 영성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성이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종교적 이유로 가출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겠다며 전국을 떠돌았다. 남겨진 영성이와 여동생은 무허가 건물에서 방치되듯 살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영성이는 부모의 재결합을 감사하게 여겼고, “아이를 낳아 손주를 안겨주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강 작가는 이 말이 단순히 가족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정상 가족’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결과라고 짚었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기본값에서 멀어질수록, 그 거리만큼 박탈감이 커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그것을 꿈이자 보상으로 삼는다.
다음은 ‘수정이’의 이야기다. 수정이는 가난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했다. 이름 있는 직업도 가졌지만, 직업의 안정성과 장기적인 비전은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가족에게 “1년 정도 직업 훈련을 하며 준비할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은 반대했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걸 위해 누가 치료비를 내냐”는 반응이었다.
강 작가는 “지금의 제도는 가난한 청년들이 ‘대안’에 도달하는 것까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 대안조차 실행에 옮기기엔 또 다른 계층적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자녀가 어학연수를 가거나 인턴을 하겠다고 해도 기꺼이 지원하지만, 빈곤 가정에서는 ‘지금 당장의 생계’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우빈이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다. 학폭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그는, 아침마다 형과 단둘이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살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에게 불려갔고, 의외로 그 교사는 그에게 인생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빈이는 “그런 어른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강 작가는 이 사례를 통해, 학교가 학력 경쟁에만 몰두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정서적 보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우는 겉보기엔 무기력하고 침묵이 많은 아이였다. “말이 없다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꾸 혼났어요.” 하지만 연우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깊은 사색을 하던 아이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파주의 갈대밭까지 가서 새를 보고 돌아오는 시간을 혼자만의 위안으로 삼았다. “우리 부모는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왜 맨날 싸울까?”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살아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소개된 인물들은 학교 시스템에서 완전히 이탈해 중학교 자퇴, 탈가정, 가출, 교정시설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흔히 ‘낙오자’나 ‘범죄자’로 취급되기 쉽지만, 강 작가는 그들의 삶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석이는 교정시설에서 강 작가와 처음 만났다. 어릴 때 어머니는 가정을 떠났고, 아버지와의 대화도 쉽지 않았다. 지능이 다소 낮고, 언어 표현이 서툴렀으며, 24살이 될 때까지 교도소를 반복해서 들락거렸다. 그러나 28살의 현석이는 달라져 있었다. 배달 업무 중 팀장 역할을 맡으며 책임감을 발휘했고, 거부했던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오빠는 남들이 다 다닌 고등학교를 안 나왔다고?”라는 여자친구의 말이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현석이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강 작가는 사회가 이들을 오래오래 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혜주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중학교 자퇴 후, 가출을 반복했고, 20대 초반에는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시기를 겪었다. 사람들의 눈빛에 민감해, 학원에서도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머리를 자르다 멈춰버릴 정도였다. 애착 결핍이 심해 늘 동거남과 함께 지냈고, 강 작가나 사회복지사가 보기에는 착취당하는 관계였지만, 혜주 자신은 “룸메 없으면 하루 한 마디도 못 해요”라며 관계를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29살이 되자, 혜주는 스스로 공간을 꾸미고, 집안 청소도 잘 하고 있었으며, 취미로 낚시를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은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 소희였다. 소희는 조부모 세대부터 가난했던, ‘빈곤 대물림’의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똘똘'했고,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을 잘 조직해나갔다. 얼굴을 드러내고 나선 북토크에도 당당히 이름을 밝히며 명함까지 돌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달리, 여전히 그는 깊은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했고, 불안, 알코올 문제를 겪고 있었다.
“왜 이 아이들은 직업을 가져도, 제도의 도움을 받아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까?” 강 작가는 그 질문에 ‘빈곤문화론’이 아닌, 구조화된 주변화의 결과로서의 빈곤을 강조했다.
소희와 혜주는 자주 실패했고, 반복적으로 자퇴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은 “넌 왜 그렇게 끈기가 없냐”고 탓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본인이 그런 사람인 줄 알고서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상담과 스스로 성찰을 통해 ‘내 잘못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실패했을 때, 그것이 그 사람의 인성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의 구조, 가족과 학교, 사회에 대하여
“아이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아이가 ‘안 됐다’고 여기고 넘어가는 순간, 그 문제는 반복돼요.”
그는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며, 우리 사회가 가난과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가족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는 가족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출생부터 교육, 결혼, 병치레, 죽음까지도 가족이 모두 책임지도록 돼 있는 현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조차도 정상 가족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가족 기본값은 ‘1인 가구’입니다. 그런데 정책은 여전히 ‘부모 + 자녀’의 정상가족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특히 빈곤층은 그 정상가족의 외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부재하거나, 돌봄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가족 자체가 해체된 가정에서는 ‘기본값’ 자체가 주는 배제의 메시지가 훨씬 크게 작동한다. 그 배제는 아이들에게 “나는 잘못된 환경에 태어났다”는 내면화된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학교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강 작가는 중산층 이상의 가족들이 교육을 통해 계급 재생산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며, 학교는 그 계급 사다리의 주요 통로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제 시험 능력 격차는 1.7배지만, 실제 합격률은 20배 차이가 납니다.”
그는 이러한 격차가 가족의 자본력과 학교의 구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봤다. 강남, 특목고, 입시 코디, 사교육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소수 계층의 사다리를 지키는 데 동원되고 있으며, 중산층 이상은 이를 통해 계급을 고착화한다. 빈곤층 청소년들이 그 사다리에 올라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강 작가는 이 사회 구조가 갈수록 점점 더 정교하게, 가난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학교에서는 돈을 한 푼도 걷지 않아요. 교복, 동아리비, 반티까지 다 지원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이 티가 안 나요. 그런데 그게 ‘가난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가난은 더 정교하게 은폐되고, 더 고립된 형태로 개인 안에 축적된다.
노동시장 역시 구조적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중심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주변부 노동시장에 머물며 다시 올라가기 어렵다. 수정이 사례처럼, ‘졸업 이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음에도 빈곤 청년은 중간에 ‘준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스템에 실패한 이들은 혜주나 현석이처럼 사회의 바깥,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한 번 바깥으로 밀려나면 다시 돌아오기는 더 어렵다.
도시로 일하러 나가면 서울에는 살 수 없어 경기도 외곽으로 빠지고, 통근 시간은 3시간에 달한다. 주거 빈곤과 시간 빈곤이 동시에 작동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들어요. 그러니까 관계를 끊어요.” 그는 요즘 청년들이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에게 의지하며 외로움을 버텨낸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면 돈이다.' 이것이 지금 빈곤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빈곤 청소년들이 타인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감추려 할 때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더욱 놓치게 된다. 이들을 타자화하며 등장한 말이 ‘패딩 거지’, ‘개근 거지’ 같은 빈곤 혐오 표현이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방식이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이렇게 가족, 교육, 노동, 사회문화는 복합적으로 가난을 만들어낸다.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이며, 관계에서 밀려난 상태이고, 미래에 대한 권리를 빼앗긴 상태다.

그래서 빈곤은 누구의 책임인가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믿지만, 그 복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복지를 ‘이용하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복지를 만드는 사람들, 즉 정책 입안자나 공무원들 중 일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도를 너무 잘 알아요. 다 빼먹어요.’ 반면, 실제로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들, 예컨대 노인분들은 ‘복지 제도가 너무 복잡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해요.”
복지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부정 수급’에 대한 강박을 가진다. 그들은 수혜 대상자가 제도를 악용할 것이라는 불신 속에서 기준을 복잡하게 만들고, 증빙을 과도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는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노령연금 하나를 신청하려 해도 서류를 여러 장 떼야 해요.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죠.” 강 작가는 빈곤층에게는 제도가 너무 선별적이고 시혜적이며, 동시에 너무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비판했다. 복지를 받기 위해 자신을 ‘가난하다’고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모욕적인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빈곤한 청소년들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복지의 모순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청소년 결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복지 카드를 제공하지만, 이 카드는 모든 식당에서 사용할 수 없다. 복지 카드 가맹 식당은 따로 정해져 있으며, ‘복지카드 환영’이라는 문구가 붙은 식당에서만 쓸 수 있다. “그걸 보면 애들은, 자기가 ‘복지 대상자’인 걸 들킬까 봐 그 식당을 가지 않아요.”
결국 아이들은 편의점으로 향한다. 값싸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편의점은 김밥천국보다 매력적인 식사처가 된다. “김밥천국이 망하고 있어요. 2천 원짜리 밥이 이제 없어요. 요즘 애들은 편의점에서 한 끼 해결해요.”
이 현상은 빈곤층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중산층 이상 청소년들도 복지 구조의 왜곡된 결과로 고립되고 있다.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합니다. 학원에 보내야 하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복지 체계의 결핍이 사실은 사회 전체의 고립과 불행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을 예로 들었다. “‘이제부터는 연애 금지, 취미 금지, 닥치고 공부야’라고 말했어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지금의 행복을 유예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는 “지체된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빈곤을 구조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결국 사회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중산층 이상 가정도 아이와의 시간을 잃고, 아이들은 공부 외의 삶을 잃는다. 반대로 빈곤층은 복지 제도 안으로 진입조차 어려운 구조 안에서 고립된다. 그렇게 구조는 모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아마르티아 센이라는 학자는 벌써 1980년대에 빈곤을 ‘삶의 불평등을 만드는 기제 전체’라고 정의했어요. 단순히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 발휘를 가로막는 모든 것이 빈곤이라는 거죠.”
그는 유럽의 사례도 들었다. 유럽 사회에서는 ‘빈곤층’이라는 표현 대신 ‘사회적 배제층’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했다. 어떤 제도나 집단, 삶의 조건에서 배제된 사람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해야 할 ‘빈곤’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인식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북유럽에서는 학교 게시판에 ‘가족은 다양하다’는 캠페인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해요. 부부와 자녀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라, 1인 가구, 조손가정, 동성 커플, 공동체 구성 등 모든 형태를 인정하는 거죠.” 한국 사회는 아직 ‘정상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가족들을 타자화한다. 강 작가는 이 구조가 특히 빈곤층 청소년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정상 가족'이 아닌 것 자체가 상처가 됩니다. 나는 왜 우리 가족은 이렇지? 왜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지? 그렇게 자책하게 만들어요.”
강 작가는 다시 소희와 혜주의 사례를 꺼냈다.
“소희는 사회복지사가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혜주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혼자 있지 못한다고 했어요. 그건 그들의 성격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에요.”
그들은 어린 시절에 너무도 많은 것들을 놓친 아이들이었다. 학대를 견디고, 방임을 버티고, 사회적 시선과 낙인을 넘어 살아온 사람들은,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점에도 여전히 예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한 번 이들을 도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계속, 아주 오래도록 기회와 돌봄이 필요해요.”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를 위하여
강지나 작가는 이날 북토크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책 속 한 구절을 읽어내려갔다. “혜주는 ‘이제 늙어서 뭐 어쩌겠어요. 그냥 해봐야죠’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 우리는 지지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강 작가가 기록한 이들은 ‘10년의 시간’을 통해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혜주는 여전히 취약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려 하고 있었다. 현석이는 반복되던 구속의 고리를 끊고, 비로소 ‘책임을 지는 삶’의 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연우는 더 이상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었고, 소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시간, 기회, 제도, 감정적 자원들이 함께 작용했을 때 가능한 변화였다. 그래서 강 작가는 교사로서, 연구자로서, 작가로서,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변화는 제도나 시스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관계에서 시작돼요. 누군가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믿어주는 것.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요? 어떻게 하면 진짜로 품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곧 이 책을 읽은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청소년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글/사진 | 최학수 (주간함양)
📌 이 프로그램은 브라이언임팩트의 임팩트그라운드 지원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
2025년 4월 25일, 남원시 산내면 문화공간 ‘토닥’에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북토크 참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열여섯 번째 ‘지리산쌀롱’이 열린 이날, 초대된 손님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였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 강 작가는 “교사의 습성을 못 버리고 퀴즈부터 준비해왔다”며 청소년과 가난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부터 참석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축제’, ‘비행’, ‘자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강 작가는 “지금은 ‘청소년 할인’, ‘청소년 정책’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도 검색어로 뜨지만, 여전히 미소 짓는 청소년, 행복한 학생 같은 말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느냐”며, 그 단어가 지닌 무게를 짚었다.
이어 가난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칼럼에서 인용했다며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자녀가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지 않으며,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린다. 무엇일까요?” 칼럼 속 이 문장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묘사였다.
그는 이 설명을 뒤집으면 이른바 '부자'의 특징이 된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자녀 책임을 부모가 진다고 생각하고, 좋은 집엔 좋은 물건이 없고, 문제가 생기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 말을 통해 강 작가는, 한국 사회가 가난을 도덕적 결핍이나 개인 책임의 문제로 치환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드러냈다.
문제를 마주한 순간
2000년, 강지나 작가는 처음으로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경기도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구석으로 갔어요.” 그는 ‘우리 집은 왜 학원비를 못 대줄까’라며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꼈던 본인의 어릴 적 감정과, 실제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가난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출석하지 않는 학생을 찾아 가정방문을 간 날, 그는 충격적인 현실을 맞닥뜨렸다. 학생의 할머니는 학생의 아버지가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자를 볼모 삼아 협박하고 있었다. 심지어, 혼인관계가 아닌 성인 남성도 집 안에 함께 있었다.
당시는 신고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시기였다. 경찰도 “접촉하지 말라”고만 했고, 교사로서 개입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는 가난이 단지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자라나는 영혼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걸 체감하며 교직을 그만두려는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의 권유로 학교 사회복지 제도를 알게 되고, 그 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난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문제 청소년’이라는 시선 뒤에 있는 삶
강지나 작가는 교직 초기에 가난한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마주한 여러 사례를 통해, 가난이 단지 결핍이 아니라 고립이고 단절이며 무기력한 문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사례는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힌 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무단결석이 잦았고, 흡연과 가출을 반복했다. 어느 날은 법원에 가야 한다며 조퇴를 요청하기도 했다. “중3짜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법원에 가냐”며 강 작가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말이 어눌하고,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친구였어요.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문제 상황으로 더 번지곤 했죠.” 강 작가는 이런 행동의 배경에 ‘돌봄의 부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일상적인 생활 관리나 훈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익히지 못했고, 문제 상황에서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도 부족했던 것이다.
그는 이 아이를 통해 교사로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숫자보다 이야기를 봐야 한다. 가출 몇 번, 흡연 몇 번이라는 숫자보다 그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안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들어야 했다.” 이는 그가 이후 질적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한 마을 전체가 형성한 ‘무기력한 문화’ 속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을 극복하고 싶어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아이들의 삶을 다르게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질적 연구로 바라본 가난의 얼굴
강지나 작가는 교직 현장에서 겪은 무력감을 딛고, 보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깊이 몰입하게 된 것이 바로 ‘질적 연구’였다. 단순히 숫자나 통계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개인의 서사, 삶의 맥락, 목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제도 통과가 가까워 보였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무산되었고, 비정규직 위주의 파편화된 현장만 남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지도 교수의 조언을 따라 방향을 전환했다. ‘논문이나 써라’는 말에 따라 연구자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문화기술지’라는 질적 연구 기법을 통해, 단순 인터뷰를 넘어서 현장과 일상, 반복된 관찰을 통해 청소년들의 삶을 서술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현장 연구를 위해 강 작가는 두 곳의 지역아동센터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해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6년에 박사학위논문이 완성됐다. 제목은 『빈곤대물림 가족 청소년의 대응기제』였다. 논문이 학계에 제출된 이후, 이를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책이 바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다.
책에 담긴 청소년들은 교사로서 직접 지도한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건 연구 윤리에 어긋나거든요. 직접 교육하는 학생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대부분은 지역아동센터, 복지기관, 교육복지사 등을 통해 소개받은 청소년들이었다.
“책은 제가 혼자 쓴 게 아니라, 함께 쓴 겁니다.” 강 작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늘 복지사들과 인터뷰 내용을 리뷰하고, 글을 쓰면 검토를 함께 했다고 한다. 강연에서 강 작가는 질적 연구가 단지 책의 형식일 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책에 담긴 8명의 청소년들은 초기 박사논문에서 다룬 23명 중 추가 인터뷰에 응한 6명에 새로운 사례 2명을 더해 선정됐다. 단순히 인터뷰에 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나누고 싶다고 먼저 말해온 이들이었다.
책 속 인물들, 10년의 시간을 걷다
강지나 작가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 기록한 8명의 청소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변두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극복 서사’가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 탈가정 청소년, 교정시설 경험자, 정규 교육을 포기하거나 간신히 버텨낸 이들까지. 그들이 어떻게 삶을 감당했고, 어떤 좌절과 변화를 겪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강 작가는 가장 먼저 영성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성이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종교적 이유로 가출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겠다며 전국을 떠돌았다. 남겨진 영성이와 여동생은 무허가 건물에서 방치되듯 살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영성이는 부모의 재결합을 감사하게 여겼고, “아이를 낳아 손주를 안겨주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강 작가는 이 말이 단순히 가족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정상 가족’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결과라고 짚었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기본값에서 멀어질수록, 그 거리만큼 박탈감이 커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그것을 꿈이자 보상으로 삼는다.
다음은 ‘수정이’의 이야기다. 수정이는 가난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했다. 이름 있는 직업도 가졌지만, 직업의 안정성과 장기적인 비전은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가족에게 “1년 정도 직업 훈련을 하며 준비할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은 반대했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걸 위해 누가 치료비를 내냐”는 반응이었다.
강 작가는 “지금의 제도는 가난한 청년들이 ‘대안’에 도달하는 것까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 대안조차 실행에 옮기기엔 또 다른 계층적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자녀가 어학연수를 가거나 인턴을 하겠다고 해도 기꺼이 지원하지만, 빈곤 가정에서는 ‘지금 당장의 생계’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우빈이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다. 학폭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그는, 아침마다 형과 단둘이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살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에게 불려갔고, 의외로 그 교사는 그에게 인생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빈이는 “그런 어른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강 작가는 이 사례를 통해, 학교가 학력 경쟁에만 몰두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정서적 보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우는 겉보기엔 무기력하고 침묵이 많은 아이였다. “말이 없다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꾸 혼났어요.” 하지만 연우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깊은 사색을 하던 아이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파주의 갈대밭까지 가서 새를 보고 돌아오는 시간을 혼자만의 위안으로 삼았다. “우리 부모는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왜 맨날 싸울까?”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살아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소개된 인물들은 학교 시스템에서 완전히 이탈해 중학교 자퇴, 탈가정, 가출, 교정시설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흔히 ‘낙오자’나 ‘범죄자’로 취급되기 쉽지만, 강 작가는 그들의 삶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석이는 교정시설에서 강 작가와 처음 만났다. 어릴 때 어머니는 가정을 떠났고, 아버지와의 대화도 쉽지 않았다. 지능이 다소 낮고, 언어 표현이 서툴렀으며, 24살이 될 때까지 교도소를 반복해서 들락거렸다. 그러나 28살의 현석이는 달라져 있었다. 배달 업무 중 팀장 역할을 맡으며 책임감을 발휘했고, 거부했던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오빠는 남들이 다 다닌 고등학교를 안 나왔다고?”라는 여자친구의 말이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현석이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강 작가는 사회가 이들을 오래오래 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혜주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중학교 자퇴 후, 가출을 반복했고, 20대 초반에는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시기를 겪었다. 사람들의 눈빛에 민감해, 학원에서도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머리를 자르다 멈춰버릴 정도였다. 애착 결핍이 심해 늘 동거남과 함께 지냈고, 강 작가나 사회복지사가 보기에는 착취당하는 관계였지만, 혜주 자신은 “룸메 없으면 하루 한 마디도 못 해요”라며 관계를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29살이 되자, 혜주는 스스로 공간을 꾸미고, 집안 청소도 잘 하고 있었으며, 취미로 낚시를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은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 소희였다. 소희는 조부모 세대부터 가난했던, ‘빈곤 대물림’의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똘똘'했고,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을 잘 조직해나갔다. 얼굴을 드러내고 나선 북토크에도 당당히 이름을 밝히며 명함까지 돌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달리, 여전히 그는 깊은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했고, 불안, 알코올 문제를 겪고 있었다.
“왜 이 아이들은 직업을 가져도, 제도의 도움을 받아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까?” 강 작가는 그 질문에 ‘빈곤문화론’이 아닌, 구조화된 주변화의 결과로서의 빈곤을 강조했다.
소희와 혜주는 자주 실패했고, 반복적으로 자퇴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은 “넌 왜 그렇게 끈기가 없냐”고 탓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본인이 그런 사람인 줄 알고서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상담과 스스로 성찰을 통해 ‘내 잘못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의 구조, 가족과 학교, 사회에 대하여
그는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며, 우리 사회가 가난과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가족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는 가족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출생부터 교육, 결혼, 병치레, 죽음까지도 가족이 모두 책임지도록 돼 있는 현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조차도 정상 가족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빈곤층은 그 정상가족의 외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부재하거나, 돌봄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가족 자체가 해체된 가정에서는 ‘기본값’ 자체가 주는 배제의 메시지가 훨씬 크게 작동한다. 그 배제는 아이들에게 “나는 잘못된 환경에 태어났다”는 내면화된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학교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강 작가는 중산층 이상의 가족들이 교육을 통해 계급 재생산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며, 학교는 그 계급 사다리의 주요 통로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격차가 가족의 자본력과 학교의 구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봤다. 강남, 특목고, 입시 코디, 사교육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소수 계층의 사다리를 지키는 데 동원되고 있으며, 중산층 이상은 이를 통해 계급을 고착화한다. 빈곤층 청소년들이 그 사다리에 올라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강 작가는 이 사회 구조가 갈수록 점점 더 정교하게, 가난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가난은 더 정교하게 은폐되고, 더 고립된 형태로 개인 안에 축적된다.
노동시장 역시 구조적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중심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주변부 노동시장에 머물며 다시 올라가기 어렵다. 수정이 사례처럼, ‘졸업 이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음에도 빈곤 청년은 중간에 ‘준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스템에 실패한 이들은 혜주나 현석이처럼 사회의 바깥,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한 번 바깥으로 밀려나면 다시 돌아오기는 더 어렵다.
도시로 일하러 나가면 서울에는 살 수 없어 경기도 외곽으로 빠지고, 통근 시간은 3시간에 달한다. 주거 빈곤과 시간 빈곤이 동시에 작동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들어요. 그러니까 관계를 끊어요.” 그는 요즘 청년들이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에게 의지하며 외로움을 버텨낸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면 돈이다.' 이것이 지금 빈곤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빈곤 청소년들이 타인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감추려 할 때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더욱 놓치게 된다. 이들을 타자화하며 등장한 말이 ‘패딩 거지’, ‘개근 거지’ 같은 빈곤 혐오 표현이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방식이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이렇게 가족, 교육, 노동, 사회문화는 복합적으로 가난을 만들어낸다.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이며, 관계에서 밀려난 상태이고, 미래에 대한 권리를 빼앗긴 상태다.
그래서 빈곤은 누구의 책임인가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믿지만, 그 복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복지를 ‘이용하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복지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부정 수급’에 대한 강박을 가진다. 그들은 수혜 대상자가 제도를 악용할 것이라는 불신 속에서 기준을 복잡하게 만들고, 증빙을 과도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는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노령연금 하나를 신청하려 해도 서류를 여러 장 떼야 해요.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죠.” 강 작가는 빈곤층에게는 제도가 너무 선별적이고 시혜적이며, 동시에 너무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비판했다. 복지를 받기 위해 자신을 ‘가난하다’고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모욕적인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빈곤한 청소년들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복지의 모순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청소년 결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복지 카드를 제공하지만, 이 카드는 모든 식당에서 사용할 수 없다. 복지 카드 가맹 식당은 따로 정해져 있으며, ‘복지카드 환영’이라는 문구가 붙은 식당에서만 쓸 수 있다. “그걸 보면 애들은, 자기가 ‘복지 대상자’인 걸 들킬까 봐 그 식당을 가지 않아요.”
결국 아이들은 편의점으로 향한다. 값싸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편의점은 김밥천국보다 매력적인 식사처가 된다. “김밥천국이 망하고 있어요. 2천 원짜리 밥이 이제 없어요. 요즘 애들은 편의점에서 한 끼 해결해요.”
이 현상은 빈곤층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중산층 이상 청소년들도 복지 구조의 왜곡된 결과로 고립되고 있다.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합니다. 학원에 보내야 하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복지 체계의 결핍이 사실은 사회 전체의 고립과 불행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을 예로 들었다. “‘이제부터는 연애 금지, 취미 금지, 닥치고 공부야’라고 말했어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지금의 행복을 유예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는 “지체된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빈곤을 구조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결국 사회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중산층 이상 가정도 아이와의 시간을 잃고, 아이들은 공부 외의 삶을 잃는다. 반대로 빈곤층은 복지 제도 안으로 진입조차 어려운 구조 안에서 고립된다. 그렇게 구조는 모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그는 유럽의 사례도 들었다. 유럽 사회에서는 ‘빈곤층’이라는 표현 대신 ‘사회적 배제층’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했다. 어떤 제도나 집단, 삶의 조건에서 배제된 사람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해야 할 ‘빈곤’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인식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북유럽에서는 학교 게시판에 ‘가족은 다양하다’는 캠페인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해요. 부부와 자녀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라, 1인 가구, 조손가정, 동성 커플, 공동체 구성 등 모든 형태를 인정하는 거죠.” 한국 사회는 아직 ‘정상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가족들을 타자화한다. 강 작가는 이 구조가 특히 빈곤층 청소년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정상 가족'이 아닌 것 자체가 상처가 됩니다. 나는 왜 우리 가족은 이렇지? 왜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지? 그렇게 자책하게 만들어요.”
강 작가는 다시 소희와 혜주의 사례를 꺼냈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너무도 많은 것들을 놓친 아이들이었다. 학대를 견디고, 방임을 버티고, 사회적 시선과 낙인을 넘어 살아온 사람들은,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점에도 여전히 예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를 위하여
강지나 작가는 이날 북토크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책 속 한 구절을 읽어내려갔다. “혜주는 ‘이제 늙어서 뭐 어쩌겠어요. 그냥 해봐야죠’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 우리는 지지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강 작가가 기록한 이들은 ‘10년의 시간’을 통해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혜주는 여전히 취약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려 하고 있었다. 현석이는 반복되던 구속의 고리를 끊고, 비로소 ‘책임을 지는 삶’의 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연우는 더 이상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었고, 소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시간, 기회, 제도, 감정적 자원들이 함께 작용했을 때 가능한 변화였다. 그래서 강 작가는 교사로서, 연구자로서, 작가로서,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요? 어떻게 하면 진짜로 품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곧 이 책을 읽은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청소년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글/사진 | 최학수 (주간함양)
📌 이 프로그램은 브라이언임팩트의 임팩트그라운드 지원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