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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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안내자, 봉사자를 돕는 봉사자들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햇살과 한나 인터뷰
글 / 정수진
2025년 8월의 끝. 산청에 계신 강영경님(이하 '햇살')과 송한나님(이하 '한나')을 내가 살고 있는 하동으로 초대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은 더 새까맣게 탄 것 같았는데 마당으로 들어오며 인사를 나누는 얼굴은 환하게 밝았다. 햇살과 한나는 수해가 일어난 7월 말부터 9월 말까지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의 일원으로 수해복구 활동을 지속했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그 동안의 이야기를 청했다.


자원봉사자와 피해 농가를 연결하는 봉사 안내자로 활동한 한나(왼쪽)와 햇살 (오른쪽)
폭우가 내렸다.
수진 폭우가 있었던 날 이야기가 궁금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한나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산청 청년 모임 ‘있다’ 친구들이 걱정되었어요. 양계농장은 토사가 쓸려 내려왔고 생강 밭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딸기농장을 하는 친구네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친구들이 함께 도움이 될 뭐라도 하기 시작했어요. 일주일 동안 매일 일하고 나니 친구들 농장은 급한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니 다른 곳의 피해가 보이기 시작했죠. 친구 부모님의 농장, 부모님의 친구 농장, 그 옆 농장 같은 곳들이요. ‘사람이 정말 많이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지?’ 생각하며 산청군 자원봉사센터를 알아보니 당시에는 정보가 없더라고요. 군에서 당장은 봉사자를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큰 규모의 다른 복구를 하는데 모든 인력이 투입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폭우로 피해를 입은 농장의 건물.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벽채가 훼손되었고 건물 내 집기들은 모두 침수되었다.
햇살 저는 폭우가 있었던 날 학교에 있었어요. (햇살은 간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 50명과 함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너무 긴장이 됐어요. 학교 앞 길이 완전히 끊어진 상황이라 정말 위험했거든요. 전기, 통신, 수도가 모두 끊겨 고립된 상황에서 아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방학이 시작되어 아이들을 무사히 집으로 보냈어요. 이후 학교 정리를 하고 상황이 어떤지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역을 둘러봤어요. 길은 반파되고 토사가 밀려온 도로 위를 달리니 온통 흙먼지였죠. 마치 전쟁터 같아 보였어요.
수진 햇살은 농사짓던 밭이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햇살 밭은 어쩌고요?
햇살 밭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학교에 있는데 딸(정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마. 너무 놀라지마. 생강 밭이 다 덮여 버렸어.”라고요. “사람이 안 다쳤으면 됐다”고 했어요. 어중간하게 남아 있었다면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농사는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저처럼 작은 밭을 가진 사람도 속이 상하는데 ‘나보다 훨씬 큰 일을 당했는데 얼마나 힘들고 속상할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어요. 25일부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농가에 가서 손을 보태기 시작했죠.

토사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햇살의 생강 밭. 햇살은 본인의 생강 밭을 뒤로하고 이웃의 농가에서 봉사했다.
수진 농사짓던 땅이 토사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나보다 더 피해가 큰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산청 곳곳을 둘러보셨던 거네요. 가까운 친구네 농장 일손을 도우며 인근 농장의 상황도 보였고요. 피해규모가 아주 크다는 걸 알게 된 거군요.
한나 당시 저는 ‘의료사협’의 요청으로 조합원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복구가 시급한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 많은 손이 필요했죠. 많은 봉사자를 모으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시스템’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보다는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신뢰와 관계를 쌓아 온 ‘의료사협’이 역할에 더 맞겠다는 의견이 모여 제안했고 7월 25일에 채팅방을 열었어요.
오픈 채팅방을 개설하고 나니 다음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봉사자를 모집하는 일 외에도 봉사할 농가 섭외를 위해 농가를 방문해 상황을 파악해야했고 멀리서 오는 봉사자를 위한 숙박시설도 마련해야했어요.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차량지원, 식사와 새참 준비도 필요했습니다. 봉사자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모집하기 위해 언론사에 알리는 일도 필요했고요. 그렇게 생기는 일들을 하다 보니 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어요.
마중물이 되어 준 사람들
수진 이런 일을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이웃’ 혹은 ‘동네 친구’라는 개인일 뿐이었고 피해 규모는 너무 컸으니까요.
한나 그 시기에 하동에 사는 김정준님과 정수진님이 산청으로 와 초기 봉사자를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해줬어요. 그리고 구례에서 윤주옥님과 청년들이 며칠간 봉사를 와주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죠. 정말 그 힘으로 시작했어요. 구례 분들이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건 이전 수해에서 겪었던 것이 깊이 박혀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민간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러지 않고서는 힘들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햇살 하동과 구례의 친구들이 초기에 진심으로 열심히 해주었죠. 그 힘으로 우리도 뭔가를 해 볼 용기가 생겼어요. 구례 수해가 났을 때 저는 봉사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그게 참 미안했다고 구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그분들도 그런 생각을 했대요. 전국에서 봉사를 오는 분들을 보며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요.

하동과 구례에서 온 이웃들이 수해복구의 초기에 함께 했다. 식사를 준비해 나누고 봉사현장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봉사 안내자의 하루 일과
수진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한나 새벽 6시에 시작해 10시까지 봉사하고 점심 식사 후 더위가 사그라지는 오후 3시부터 다시 시작해 6시까지 했어요. 하루에 두 번 봉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조직적으로 동원할 인력이 없어 아침에 일하고 오후에 다시 와서 일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주로 침수된 농가에 쓸려 들어온 토사와 상토, 훼손된 모종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침수된 집, 창고의 집기를 꺼내고 청소하는 일을 했어요.
봉사를 하는 날은 5시에 일어나 음료, 간식, 장갑과 장비를 챙겨서 농가로 가서 주차 안내, 농가와 봉사자 소개, 작업 설명을 하고 일을 시작해요. 작업 중 2번 쉬고 첫 번째 휴식 때는 ‘화목 한의원’에서 지원한 ‘생맥산’(기력을 보해주는 한방 음료)을, 두 번째 휴식 시간에는 ‘그늘과 언덕’(산청 주민모임)에서 지원하고 카페 ‘남다른 이유’에서 만들어 배달 해준 새참을 먹으며 쉬어요. 오전 일이 끝나면 봉사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남다른 이유’로 갔어요. ‘그늘과 언덕’, ‘의료사협’에 대해 소개하며 이야기 나누면 1시쯤 되는데요, 집에 가서 잠시 쉬고 오후 봉사를 했어요.
봉사를 가지 않는 날은 6시에 일어나 봉사가 잘 시작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요. 7시부터는 전화 업무를 시작하는데 주로 새참 배달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농가와 소통을 했고 각종 인터뷰와 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틈틈이 본업을 하기도 했고요. (한나는 ‘빈둥밴드’에서 피아노와 보컬을 맡고 있으며 피아노 레슨과 환경수업 강사, 마을 활동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주로 현장과 ‘남다른 이유’, 식당과 집을 오가며 이번 여름을 보낸 것 같아요.


침수된 딸기 하우스에 쓸려 들어온 토사와 상토, 훼손된 모종과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자들
한나 봉사가 지속되면서는 모든 현장에 안내자가 필수 배치되어 함께 머무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혼자 하다가 제가 매일 오전, 오후로 봉사를 가기는 어려워 현장 활동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햇살에게 현장 활동가 일을 제안했고 감사히도 역할을 해주셨죠. 종종 정인, 한범, 황재홍 국장(산청의료사협동조합 사무국장)이 하기도 했습니다. 봉사가 안정적으로 지속되자 산청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안전문제를 우려해 연락이 왔어요. 현장에서의 사고 대처와 봉사자의 보험 관련 조언과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자원봉사 종합보험은 봉사자가 안전환 환경 속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고 봉사 중 발생하는 각종 사고에 대해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1365’에서 제공하는 보험제도이다.)
햇살 봉사 안내자 제안을 받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봉사가 필요한 농가에 미리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농민과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숙사 일을 마치고 아침 퇴근길에 농가 두세 곳을 둘러보고 봉사 현장으로 가곤 했어요.
수진 봉사를 가게 되는 농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피해 농가가 너무 많고 규모가 커서 선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나 ‘의료사협’에서 피해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 연결된 농가가 많아요. 대부분의 농가는 ‘봉사’에 대한 경험이 없어 사전에 안내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의료사협’과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안내드렸어요. 멀리서 조건 없이 오는 개인 봉사자이고 일을 잘 못할 수도 있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 말을 듣고 대체로 이해하셨고 정말 감사하다고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농가도 있었어요. 농사일이 서툰 사람도 있고 날이 더워 휴식도 자주해야 했잖아요. 그런 게 좀 불편하셨던 농가도 있었죠.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드리는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 갈 때는 어려워도 두 번째 봉사하러 갈 때는 이해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농민들과 이런 접점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청에 살고 있지만 만날 일이 없는 분들이었거든요. 이번을 기회로 만나게 되고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수진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네요. 많은 봉사자들이 봉사하는 시간도 참 좋았지만 봉사 후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해주셨어요. 행위는 ‘봉사’였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산청이라는 지역 커뮤니티를 경험해본 자리였던 것 같기도 해요.
봉사자를 위한 숙소
수진 하루 이상 머물며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숙소도 마련되었다고 들었어요.
한나 구례에서 초기에 왔던 팀이 민영권(산청난개발대책위집행위원장)님 댁에서 사흘 묵었고 이후로는 햇살 집에서 지냈어요. 멀리서 오신 봉사자들이 씻고 쉴 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여러 날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봉사자 숙소를 마련하게 되었죠. 무료 숙박 봉사자를 구하고 ‘의료사협’의 지원으로 소정의 숙박비를 숙소에 전달했어요. (숙소를 이용한 봉사자는 누적 합산으로 약 70명이다.)
햇살 봉사가 한창이던 8월 초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거든요. 상을 치르느라 며칠 부산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 사이 봉사자들이 집에 묵었어요. 그 때부터 봉사자를 위한 숙박을 제공하게 되었죠. 집에 묵었던 봉사자들이 서로를 챙기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없는 집에 봉사자들이 묵으면서 떠나는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집에 대해 안내해줬어요. 냉장고에 메모를 붙여둔다던가 하면서요. 장례 동안 저는 친구네 빈집에서 지냈거든요. 뭐랄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이 되어있다고 느꼈다고 할까요. 평소에는 잘 못 느끼는 감정들이죠.


봉사자를 위한 숙소로 내어준 햇살의 집에 머물다 간 봉사자들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존재한다.
수진 햇살이 연결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저는 하동에 살면서 산청 친구들이 ‘남다른 이유’에서 음악회, 돌잔치, 생일 축하를 하며 정말 자주 모여 논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 그런데 이런 일이 닥치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여서 각자의 역할을 나눠 봉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봉사’라는 단어를 붙이기 무색하게 자기 일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 시간들이 이렇게 발현되는구나.’ 싶어 놀라웠어요. 지역에 다양한 모임이 있고 각자의 구호를 외치지만 행동까지 가는 조직이 잘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한나 맞아요. 개인적으로 활동을 할 때 중요한 점이 ‘반대를 중심에 놓지 말자.’거든요. ‘어떤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제 활동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오픈 채팅방에 들어와 계시는 분들이 300명이 넘었어요. 정말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오셨거든요. ‘김제동과 어깨동무’(청년 자원 활동 단체), ‘정토회’(불교 수행 공동체), 곡성의 ‘미실란’(생태 공동체를 지향하는 농업기업), 남원 ‘생명평화연대’(지리산의 생태, 문화, 역사, 환경 보호 단체), 서울 강동구 집수리 봉사팀, 곡성의 ‘이화서원’(인문 공동체),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함양의 ‘온배움터’(생태자립 교육기관),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경기도 구리의 ‘느티의료사협’, ‘대산농촌재단’ 등 많은 단체들이 방문하는 것을 보며 시민사회에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어떻게 알고 연결되었는지 모를 사람들과 단체들이 많이 다녀갔죠. 더 연결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국에서 찾아오는 개인 봉사자들
햇살 지리산권에 사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왔어요. 구례, 하동, 함양, 남원 산내에서 개인적 인연이 없는데도 오신 분들도 많아요. 지리산으로 이어져 있다는 연결감이 컸던 것 같아요. 초반에 지리산 이웃들과 시민사회 네트워크에서 다녀간 이후 여러 지역에서 개인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이 곳까지 봉사를 온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이죠. 진주, 사천, 창원, 마산, 부산, 거창, 광주, 벌교, 금산, 옥천, 대구, 서울, 세종……. 애 쓰는 개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굉장히 놀라웠고 감동이었어요. 나는 그렇게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보통 지인을 돕지 뉴스에서 소식을 듣고 모르는 사람을 도우러 오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수진 기억에 남는 봉사자들이 있으세요?
햇살 창원에서 혼자 시외 버스, 군내 버스를 갈아타고 농가까지 걸어서 온 청년, 부산에서 온 가족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 엄마와 초등 아들이 왔다가 이후에 아빠와 대학생 딸까지 온 가족이 봉사하러 여러 차례 왔어요. 봉사의 충족감, 기쁨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산청의 봉사자들도 아주 든든했죠. 김창수님과 몇몇 분들. 곽유영님은 몸이 좋지 않으신 ‘의료사협’ 조합원인데 “몸이 안 좋으니 못가요.”가 아니라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가는 게 보탬이 되지요.”하시며 아들과 종종 오셨어요. 산청 분들이 계셔서 참 고맙고 힘이 많이 됐죠. ‘그늘과 언덕’이 새참 봉사를 꾸준히 해주었고요. 권영란 작가도 글을 써서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어요. ‘경남도민일보’에 취재 요청하기도 했고요. 모두 소중한 자산이에요.


전국의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와 개인이 찾아와 함께 봉사했고 봉사를 마친 후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웃이라는 힘
수진 이렇게 아름답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매일 새벽부터 일하고 봉사자와 농가 양쪽을 챙겨야 하니까요. 가정도 있고 하고 있는 일도 있고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한나 재난을 겪어보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재난 문자 보내주는 행정이 아니라 이웃이었어요. 윗집 언니에게 안부 전화하고 옆집 사람에게 대피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이웃이죠. ‘상능마을’ 대피를 챙긴 것 역시 이웃이었고요. 평소에는 각자 살아가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재난이 왔을 때 이웃이 얼마나 소중해요. 지역에서 이웃을 만들어가는 활동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근처에 살긴 해도 만나지 않으면 결코 이웃이 되지 않으니까요. 놀라운 일을 연속해서 겪었어요. 체력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충족되는 시간이었어요.
햇살 재난을 아무리 잘 대비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옆에 있는 이웃과 친구들이 하는 것 같아요. 평소 지역에서 주민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산청에 산 지 16년이 되었는데 내가 모르던 이웃이 정말 많았어요. 지역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이웃의 존재를 더 많이 인식하면서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만남의 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목화장터’(2015년 주민들이 만든 산청의 지역장터)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 같아요. 판매자로 참여했던 농가에 봉사하러 많이 갔어요. 직접 도와드리고 나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아주 특별한 여름이었어요. 그렇지만 인생에 또 있으면 안 되는 여름이죠. 그 시간 덕분에 이웃들과 함께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그런 걸 잘 하기 위해 나를 더 잘 돌보고 체력도 키우고 싶어요. 이번에 쌓인 피로가 회복이 잘 안돼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다. 조금 더 붙잡고 이야기를 청하고 싶었지만 햇살은 기숙사로 출근을, 한나는 다음날 새벽에 있을 봉사를 준비해야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두 분을 배웅했다. 인터뷰의 끝무렵에 마지막 질문을 했다. 어떤 세상이 되기를 바라느냐고.
한나는 ‘어떤 곳이든 동네만의 문화가 살아 있고 개개인이 작은 행복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고, 햇살은 ‘서로 그늘이 되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지역공동체가 되기를 꿈꾸고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답했다.
이후 한나가 도맡아 해오던 봉사자 안내 역할을 9월 1일부터 산청 주민 김은영님이 이어 했으며 햇살이 늘 함께 했다. 7월 25일 시작했던 수해복구 봉사는 9월 13일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51일간 30개 농가에 44회 봉사했으며 전국에서 온 530명(누적 집계)의 봉사자가 함께했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봉사안내자, 봉사자를 돕는 봉사자들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햇살과 한나 인터뷰
글 / 정수진
2025년 8월의 끝. 산청에 계신 강영경님(이하 '햇살')과 송한나님(이하 '한나')을 내가 살고 있는 하동으로 초대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은 더 새까맣게 탄 것 같았는데 마당으로 들어오며 인사를 나누는 얼굴은 환하게 밝았다. 햇살과 한나는 수해가 일어난 7월 말부터 9월 말까지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의 일원으로 수해복구 활동을 지속했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그 동안의 이야기를 청했다.
자원봉사자와 피해 농가를 연결하는 봉사 안내자로 활동한 한나(왼쪽)와 햇살 (오른쪽)
폭우가 내렸다.
수진 폭우가 있었던 날 이야기가 궁금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한나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산청 청년 모임 ‘있다’ 친구들이 걱정되었어요. 양계농장은 토사가 쓸려 내려왔고 생강 밭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딸기농장을 하는 친구네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친구들이 함께 도움이 될 뭐라도 하기 시작했어요. 일주일 동안 매일 일하고 나니 친구들 농장은 급한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니 다른 곳의 피해가 보이기 시작했죠. 친구 부모님의 농장, 부모님의 친구 농장, 그 옆 농장 같은 곳들이요. ‘사람이 정말 많이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지?’ 생각하며 산청군 자원봉사센터를 알아보니 당시에는 정보가 없더라고요. 군에서 당장은 봉사자를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큰 규모의 다른 복구를 하는데 모든 인력이 투입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폭우로 피해를 입은 농장의 건물.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벽채가 훼손되었고 건물 내 집기들은 모두 침수되었다.
햇살 저는 폭우가 있었던 날 학교에 있었어요. (햇살은 간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 50명과 함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너무 긴장이 됐어요. 학교 앞 길이 완전히 끊어진 상황이라 정말 위험했거든요. 전기, 통신, 수도가 모두 끊겨 고립된 상황에서 아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방학이 시작되어 아이들을 무사히 집으로 보냈어요. 이후 학교 정리를 하고 상황이 어떤지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역을 둘러봤어요. 길은 반파되고 토사가 밀려온 도로 위를 달리니 온통 흙먼지였죠. 마치 전쟁터 같아 보였어요.
수진 햇살은 농사짓던 밭이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햇살 밭은 어쩌고요?
햇살 밭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학교에 있는데 딸(정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마. 너무 놀라지마. 생강 밭이 다 덮여 버렸어.”라고요. “사람이 안 다쳤으면 됐다”고 했어요. 어중간하게 남아 있었다면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해 농사는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저처럼 작은 밭을 가진 사람도 속이 상하는데 ‘나보다 훨씬 큰 일을 당했는데 얼마나 힘들고 속상할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어요. 25일부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농가에 가서 손을 보태기 시작했죠.
토사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햇살의 생강 밭. 햇살은 본인의 생강 밭을 뒤로하고 이웃의 농가에서 봉사했다.
수진 농사짓던 땅이 토사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나보다 더 피해가 큰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산청 곳곳을 둘러보셨던 거네요. 가까운 친구네 농장 일손을 도우며 인근 농장의 상황도 보였고요. 피해규모가 아주 크다는 걸 알게 된 거군요.
한나 당시 저는 ‘의료사협’의 요청으로 조합원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복구가 시급한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 많은 손이 필요했죠. 많은 봉사자를 모으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시스템’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보다는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신뢰와 관계를 쌓아 온 ‘의료사협’이 역할에 더 맞겠다는 의견이 모여 제안했고 7월 25일에 채팅방을 열었어요.
오픈 채팅방을 개설하고 나니 다음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봉사자를 모집하는 일 외에도 봉사할 농가 섭외를 위해 농가를 방문해 상황을 파악해야했고 멀리서 오는 봉사자를 위한 숙박시설도 마련해야했어요.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차량지원, 식사와 새참 준비도 필요했습니다. 봉사자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모집하기 위해 언론사에 알리는 일도 필요했고요. 그렇게 생기는 일들을 하다 보니 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어요.
마중물이 되어 준 사람들
수진 이런 일을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이웃’ 혹은 ‘동네 친구’라는 개인일 뿐이었고 피해 규모는 너무 컸으니까요.
한나 그 시기에 하동에 사는 김정준님과 정수진님이 산청으로 와 초기 봉사자를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해줬어요. 그리고 구례에서 윤주옥님과 청년들이 며칠간 봉사를 와주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죠. 정말 그 힘으로 시작했어요. 구례 분들이 그렇게 올 수 있었던 건 이전 수해에서 겪었던 것이 깊이 박혀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민간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러지 않고서는 힘들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햇살 하동과 구례의 친구들이 초기에 진심으로 열심히 해주었죠. 그 힘으로 우리도 뭔가를 해 볼 용기가 생겼어요. 구례 수해가 났을 때 저는 봉사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그게 참 미안했다고 구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그분들도 그런 생각을 했대요. 전국에서 봉사를 오는 분들을 보며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요.
하동과 구례에서 온 이웃들이 수해복구의 초기에 함께 했다. 식사를 준비해 나누고 봉사현장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봉사 안내자의 하루 일과
수진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한나 새벽 6시에 시작해 10시까지 봉사하고 점심 식사 후 더위가 사그라지는 오후 3시부터 다시 시작해 6시까지 했어요. 하루에 두 번 봉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조직적으로 동원할 인력이 없어 아침에 일하고 오후에 다시 와서 일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주로 침수된 농가에 쓸려 들어온 토사와 상토, 훼손된 모종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침수된 집, 창고의 집기를 꺼내고 청소하는 일을 했어요.
봉사를 하는 날은 5시에 일어나 음료, 간식, 장갑과 장비를 챙겨서 농가로 가서 주차 안내, 농가와 봉사자 소개, 작업 설명을 하고 일을 시작해요. 작업 중 2번 쉬고 첫 번째 휴식 때는 ‘화목 한의원’에서 지원한 ‘생맥산’(기력을 보해주는 한방 음료)을, 두 번째 휴식 시간에는 ‘그늘과 언덕’(산청 주민모임)에서 지원하고 카페 ‘남다른 이유’에서 만들어 배달 해준 새참을 먹으며 쉬어요. 오전 일이 끝나면 봉사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남다른 이유’로 갔어요. ‘그늘과 언덕’, ‘의료사협’에 대해 소개하며 이야기 나누면 1시쯤 되는데요, 집에 가서 잠시 쉬고 오후 봉사를 했어요.
봉사를 가지 않는 날은 6시에 일어나 봉사가 잘 시작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요. 7시부터는 전화 업무를 시작하는데 주로 새참 배달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농가와 소통을 했고 각종 인터뷰와 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틈틈이 본업을 하기도 했고요. (한나는 ‘빈둥밴드’에서 피아노와 보컬을 맡고 있으며 피아노 레슨과 환경수업 강사, 마을 활동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주로 현장과 ‘남다른 이유’, 식당과 집을 오가며 이번 여름을 보낸 것 같아요.
침수된 딸기 하우스에 쓸려 들어온 토사와 상토, 훼손된 모종과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자들
한나 봉사가 지속되면서는 모든 현장에 안내자가 필수 배치되어 함께 머무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혼자 하다가 제가 매일 오전, 오후로 봉사를 가기는 어려워 현장 활동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햇살에게 현장 활동가 일을 제안했고 감사히도 역할을 해주셨죠. 종종 정인, 한범, 황재홍 국장(산청의료사협동조합 사무국장)이 하기도 했습니다. 봉사가 안정적으로 지속되자 산청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안전문제를 우려해 연락이 왔어요. 현장에서의 사고 대처와 봉사자의 보험 관련 조언과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자원봉사 종합보험은 봉사자가 안전환 환경 속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고 봉사 중 발생하는 각종 사고에 대해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1365’에서 제공하는 보험제도이다.)
햇살 봉사 안내자 제안을 받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봉사가 필요한 농가에 미리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농민과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숙사 일을 마치고 아침 퇴근길에 농가 두세 곳을 둘러보고 봉사 현장으로 가곤 했어요.
수진 봉사를 가게 되는 농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피해 농가가 너무 많고 규모가 커서 선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나 ‘의료사협’에서 피해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 연결된 농가가 많아요. 대부분의 농가는 ‘봉사’에 대한 경험이 없어 사전에 안내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의료사협’과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안내드렸어요. 멀리서 조건 없이 오는 개인 봉사자이고 일을 잘 못할 수도 있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 말을 듣고 대체로 이해하셨고 정말 감사하다고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농가도 있었어요. 농사일이 서툰 사람도 있고 날이 더워 휴식도 자주해야 했잖아요. 그런 게 좀 불편하셨던 농가도 있었죠.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드리는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 갈 때는 어려워도 두 번째 봉사하러 갈 때는 이해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농민들과 이런 접점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청에 살고 있지만 만날 일이 없는 분들이었거든요. 이번을 기회로 만나게 되고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수진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네요. 많은 봉사자들이 봉사하는 시간도 참 좋았지만 봉사 후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해주셨어요. 행위는 ‘봉사’였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산청이라는 지역 커뮤니티를 경험해본 자리였던 것 같기도 해요.
봉사자를 위한 숙소
수진 하루 이상 머물며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숙소도 마련되었다고 들었어요.
한나 구례에서 초기에 왔던 팀이 민영권(산청난개발대책위집행위원장)님 댁에서 사흘 묵었고 이후로는 햇살 집에서 지냈어요. 멀리서 오신 봉사자들이 씻고 쉴 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여러 날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봉사자 숙소를 마련하게 되었죠. 무료 숙박 봉사자를 구하고 ‘의료사협’의 지원으로 소정의 숙박비를 숙소에 전달했어요. (숙소를 이용한 봉사자는 누적 합산으로 약 70명이다.)
햇살 봉사가 한창이던 8월 초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거든요. 상을 치르느라 며칠 부산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 사이 봉사자들이 집에 묵었어요. 그 때부터 봉사자를 위한 숙박을 제공하게 되었죠. 집에 묵었던 봉사자들이 서로를 챙기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없는 집에 봉사자들이 묵으면서 떠나는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집에 대해 안내해줬어요. 냉장고에 메모를 붙여둔다던가 하면서요. 장례 동안 저는 친구네 빈집에서 지냈거든요. 뭐랄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이 되어있다고 느꼈다고 할까요. 평소에는 잘 못 느끼는 감정들이죠.
봉사자를 위한 숙소로 내어준 햇살의 집에 머물다 간 봉사자들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존재한다.
수진 햇살이 연결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저는 하동에 살면서 산청 친구들이 ‘남다른 이유’에서 음악회, 돌잔치, 생일 축하를 하며 정말 자주 모여 논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 그런데 이런 일이 닥치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여서 각자의 역할을 나눠 봉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봉사’라는 단어를 붙이기 무색하게 자기 일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 시간들이 이렇게 발현되는구나.’ 싶어 놀라웠어요. 지역에 다양한 모임이 있고 각자의 구호를 외치지만 행동까지 가는 조직이 잘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한나 맞아요. 개인적으로 활동을 할 때 중요한 점이 ‘반대를 중심에 놓지 말자.’거든요. ‘어떤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제 활동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오픈 채팅방에 들어와 계시는 분들이 300명이 넘었어요. 정말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오셨거든요. ‘김제동과 어깨동무’(청년 자원 활동 단체), ‘정토회’(불교 수행 공동체), 곡성의 ‘미실란’(생태 공동체를 지향하는 농업기업), 남원 ‘생명평화연대’(지리산의 생태, 문화, 역사, 환경 보호 단체), 서울 강동구 집수리 봉사팀, 곡성의 ‘이화서원’(인문 공동체),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함양의 ‘온배움터’(생태자립 교육기관),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경기도 구리의 ‘느티의료사협’, ‘대산농촌재단’ 등 많은 단체들이 방문하는 것을 보며 시민사회에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어떻게 알고 연결되었는지 모를 사람들과 단체들이 많이 다녀갔죠. 더 연결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국에서 찾아오는 개인 봉사자들
햇살 지리산권에 사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왔어요. 구례, 하동, 함양, 남원 산내에서 개인적 인연이 없는데도 오신 분들도 많아요. 지리산으로 이어져 있다는 연결감이 컸던 것 같아요. 초반에 지리산 이웃들과 시민사회 네트워크에서 다녀간 이후 여러 지역에서 개인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이 곳까지 봉사를 온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이죠. 진주, 사천, 창원, 마산, 부산, 거창, 광주, 벌교, 금산, 옥천, 대구, 서울, 세종……. 애 쓰는 개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굉장히 놀라웠고 감동이었어요. 나는 그렇게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보통 지인을 돕지 뉴스에서 소식을 듣고 모르는 사람을 도우러 오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수진 기억에 남는 봉사자들이 있으세요?
햇살 창원에서 혼자 시외 버스, 군내 버스를 갈아타고 농가까지 걸어서 온 청년, 부산에서 온 가족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 엄마와 초등 아들이 왔다가 이후에 아빠와 대학생 딸까지 온 가족이 봉사하러 여러 차례 왔어요. 봉사의 충족감, 기쁨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산청의 봉사자들도 아주 든든했죠. 김창수님과 몇몇 분들. 곽유영님은 몸이 좋지 않으신 ‘의료사협’ 조합원인데 “몸이 안 좋으니 못가요.”가 아니라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가는 게 보탬이 되지요.”하시며 아들과 종종 오셨어요. 산청 분들이 계셔서 참 고맙고 힘이 많이 됐죠. ‘그늘과 언덕’이 새참 봉사를 꾸준히 해주었고요. 권영란 작가도 글을 써서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어요. ‘경남도민일보’에 취재 요청하기도 했고요. 모두 소중한 자산이에요.
전국의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와 개인이 찾아와 함께 봉사했고 봉사를 마친 후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웃이라는 힘
수진 이렇게 아름답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매일 새벽부터 일하고 봉사자와 농가 양쪽을 챙겨야 하니까요. 가정도 있고 하고 있는 일도 있고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한나 재난을 겪어보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재난 문자 보내주는 행정이 아니라 이웃이었어요. 윗집 언니에게 안부 전화하고 옆집 사람에게 대피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이웃이죠. ‘상능마을’ 대피를 챙긴 것 역시 이웃이었고요. 평소에는 각자 살아가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재난이 왔을 때 이웃이 얼마나 소중해요. 지역에서 이웃을 만들어가는 활동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근처에 살긴 해도 만나지 않으면 결코 이웃이 되지 않으니까요. 놀라운 일을 연속해서 겪었어요. 체력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충족되는 시간이었어요.
햇살 재난을 아무리 잘 대비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옆에 있는 이웃과 친구들이 하는 것 같아요. 평소 지역에서 주민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산청에 산 지 16년이 되었는데 내가 모르던 이웃이 정말 많았어요. 지역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이웃의 존재를 더 많이 인식하면서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만남의 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목화장터’(2015년 주민들이 만든 산청의 지역장터)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 같아요. 판매자로 참여했던 농가에 봉사하러 많이 갔어요. 직접 도와드리고 나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아주 특별한 여름이었어요. 그렇지만 인생에 또 있으면 안 되는 여름이죠. 그 시간 덕분에 이웃들과 함께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그런 걸 잘 하기 위해 나를 더 잘 돌보고 체력도 키우고 싶어요. 이번에 쌓인 피로가 회복이 잘 안돼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다. 조금 더 붙잡고 이야기를 청하고 싶었지만 햇살은 기숙사로 출근을, 한나는 다음날 새벽에 있을 봉사를 준비해야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두 분을 배웅했다. 인터뷰의 끝무렵에 마지막 질문을 했다. 어떤 세상이 되기를 바라느냐고.
한나는 ‘어떤 곳이든 동네만의 문화가 살아 있고 개개인이 작은 행복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고, 햇살은 ‘서로 그늘이 되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지역공동체가 되기를 꿈꾸고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답했다.
이후 한나가 도맡아 해오던 봉사자 안내 역할을 9월 1일부터 산청 주민 김은영님이 이어 했으며 햇살이 늘 함께 했다. 7월 25일 시작했던 수해복구 봉사는 9월 13일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51일간 30개 농가에 44회 봉사했으며 전국에서 온 530명(누적 집계)의 봉사자가 함께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