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토닥[기록] 8/29(금) 제19회 지리산쌀롱 "찾아가는 읍면자치 설명회" /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

2025-11-04


지난 8월 29일 저녁 7시,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찾아가는 읍·면자치 설명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이 각 지역을 돌며 진행하고 있는 순회 설명회 기회를 지리산쌀롱으로 연결하며 실현됐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하승수 대표 및 산내 주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우리 면의 문제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읍·면 단위의 자치가 실제로 가능한가’를 주제로 70여 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됐다.


찾아가는 읍면자치 설명회가 열린 토닥 (이하 사진들은 공익법률센터 농본 제공)


“산내면 일, 왜 산내에서 못 정하나”


하 대표는 먼저 현재 행정구조가 농촌 면 단위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짚었다. 남원시는 ‘도농복합도시’다. 시내 동(洞) 지역과 면 지역이 1995년 통합되면서 행정은 ‘남원시’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지만, 실제 생활권과 관심사는 완전히 다르다. 산내면 사람들의 일상 행정 민원은 시청을 통해 처리되지만, 생활권은 오히려 함양이 더 가깝고 남원 시내를 일부러 찾아갈 일은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예산과 행정의 우선순위가 인구가 많은 동 지역으로 쏠리고, 면 지역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 불균형은 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원시 전체 예산은 약 1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하 대표는 “남원시 인구가 7만5천 명 정도이고 산내면 인구가 약 2천 명 수준이라면,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산내면에 200억 원이 넘는 몫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산내 면사무소에서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5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마저도 급한 응급복구나 긴급 정비에 쓰는 소규모 재량 예산 성격일 뿐, 면민이 모여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하다’고 계획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건 그냥 행정 편의 문제가 아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읍·면 자치가 단지 ‘마을 발전 예산을 조금 더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주장으로 진행됐다.

하 대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지금 정부는 겉으로는 ‘수도권 집중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실제 정책은 수도권에 더 많은 자원과 인프라를 몰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예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그 전력 공급 계획을 들었다.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서 필요한 전기를 충당하겠다고 전북·전남 쪽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끌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 고압 송전선로가 깔리고, 농촌 지역은 송전탑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기는 농촌에서 만들고 수도권에서 씁니다. 이 구조 자체가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만약 ‘전기를 생산한 곳에서 쓰자’는 원칙(지산지소)이 지켜진다면, 공장과 일자리도 그 지역에 생기고, 사람들도 수도권만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결국 “수도권 집중을 풀지 못하면 지역 인구 유출은 멈추지 않고, 인구가 빠지면 면 단위의 생활 기반은 더 무너지고, 그러면 행정은 ‘면을 합치자’는 방식으로 더 큰 단위로 묶으려 한다. 이건 악순환”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면과 면을 행정적으로 통합하는 논의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그는 “그렇게 되면 산내면은 더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출산과 삶의 질 문제와도 이어진다. 하 대표는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고, 그 다음이 부산·인천 같은 대도시입니다. 상대적으로 농촌 지역, 즉 군 단위 지역의 출산율이 더 높습니다. 수도권 집중이 주거비와 경쟁을 높여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결국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촌에서 계속 살고 싶은 사람,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 아이 키우는 사람 모두가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그 지역이 자기 결정권을 갖는 게 전제”라고 말했다. 




“면장도 우리가 뽑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은 원래 읍·면이 ‘자치단체’였다. 하 대표에 따르면 1949년 지방자치가 시작될 때 농촌의 기본 단위는 군이 아니라 읍·면이었다. 면장도 주민이 직접 뽑았다. 실제로 산내면에서도 1960년 선거로 면장과 면의원을 직접 선출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제도가 중단되면서 읍·면 자치권은 사라졌고, 예산과 재산(‘면유 재산’)도 군 단위로 흡수됐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하 대표는 “지금은 면장이 주민이 아니라 시(또는 군)가 임명하는 구조다. 결국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은 면 주민들의 위임을 받아 일하기보다, 자신들의 인사권을 쥔 윗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면 면의 현안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내면의 하천, 산내면의 축사 문제, 산내면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문제를 산내에서 합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붙여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자치권입니다.” 


또한 그는 “이건 단지 행정의 효율 문제가 아니고, 지역의 자존감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충남 홍성 홍동면 사례를 들며 “축사 악취 때문에 결국 동네를 떠나는 주민도 실제로 있다. 그런데 주민총회에서 수년째 1순위로 ‘악취 문제 해결’을 올려도, 면 단위에는 그걸 규제할 권한이 없어서 해결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지역은 “살기 좋아지는 곳”이 아니라 “참다가 떠나는 곳”이 된다는 것이다. 




“읍·면 자치는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다시 연결하는 일”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은 올해 3월, 농촌 문제에 관심 있는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출범했다. 목표 시한은 2030년. “2030년까지 읍·면 자치를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풀뿌리 공동행동’이라 부르는 데에도 사연이 있다. 이름을 정할 때 “풀뿌리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평생 풀만 뽑고 살았는데 왜 또 풀뿌리냐”는 농민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건 우리가 뽑히는(뽑아버리는) 풀이 아니라, 땅에 붙어 있는 풀뿌리로서 우리가 주체가 되겠다는 뜻”으로 설득했고 결국 ‘풀뿌리’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지금처럼 산내, 고창, 홍천 등 실제 읍·면 단위 지역을 직접 돌며 설명회를 연다. 하 대표는 “서울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서 ‘농촌을 위해 이런 운동을 합시다’라고 하면 안 된다. 읍·면에서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읍·면 주민들에게 “우리가 직접 계획을 짜고(계획권), 돈을 쓰고(재정권), 우리 대표를 뽑고(조직권), 우리 규칙을 만들자(입법권)”는 요구를 구체적으로 던지고, 각 지역의 고민과 언어로 이 요구를 다시 다듬어 가겠다는 구상이다. 




“산내면의 일은 산내면에서”


설명회는 “산내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지역 질문으로 돌아왔다. 하 대표는 “이 자리는 시작일 뿐”이라며 “면민이 직접 우선순위를 논의하고, ‘우리 면에서 당장 바꿔야 할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더 자주 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그는 홍동면 주민총회 경험을 들려줬다. 


“70넘은 어르신이 ‘태어나서 이렇게 공적인 문제를 놓고 다른 마을 사람들과 같이 얘기해 본 건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리가 계속 쌓이면, ‘우리는 여기 살아도 된다’는 자부심이 깊숙이 생깁니다” 


그는 “서울이 좋은 곳이어서 사람들이 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권력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구조를 깰 수 있는 가장 밑단이 읍·면 자치”라며 “산내면의 문제를 산내면에서 결정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조건을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 | 최학수 (주간함양)

사진 | 공익법률센터 농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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