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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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와 수해농민을 위한 식사준비, “밥 먹고 합시다.”
하동 이웃이자 국제구호개발 NGO 활동가 김정준 인터뷰
글 / 정수진
고개 너머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수진. 산청에 수해가 났다는 소식 들었죠? 산청 친구가 하루 종일 수해 복구 하느라 아이들을 챙길 여력도 저녁밥을 차릴 여유도 없다는데 우리가 뭘 좀 해볼 수는 없을까요?” 반갑고도 기다려온 연락이었다. 이번 여름 폭우로 산청에 큰 피해가 있다는 소식, 그 곳에 사는 친구들의 농장에도 크고 작은 피해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였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출발할 마음으로 일상을 대기하듯 지내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다음날부터 6일간 저녁 식사를 준비해 산청으로 가 봉사자들과 함께 먹었다. 30인분으로 시작했던 첫날의 식사준비가 마지막 날에는 70인분이 되었다. 식사 준비를 함께 한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기록했다. 매일 함께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려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내와 남편이 아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하동에 사는 이웃입니다.

하동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두 사람.
수진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정준 김정준(이하 ‘정준’)이라고 합니다. 하동에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하동에서 민박과 작은 잼 가게도 하고 농사도 짓고 있지만 본업은 국제구호개발 NGO 활동가입니다. 아내와 함께 설립한 NGO ‘Happy All Beings'(이하 '해피올빙즈')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고 주로 인도와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현지에서는 모두 저를 ’JJ‘라고 부릅니다.
수진 저희는 주로 인도와 네팔에서 활동을 해왔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번 산청 식사준비가 우리 단체의 첫 국내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정준 그렇죠. 예전에도 국내에 여러 자연재해가 있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돕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한국에 머무는 중이었고 산청이 가까워 처음부터 관심이 갔죠. 비가 많이 올 때는 우리 동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어요.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렸고 피해가 굉장히 심각했잖아요. 뉴스나 산청 지인을 통해서 듣는 피해 소식이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재앙 수준의 재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지금 여기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내가 산청에 친구들이 많아 남 일 같지 않았어요.
수진 맞아요. 친구들이 수해 당사자라고 하니 받아들이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었죠. 소식이 궁금한데 자꾸 전화하기도 그렇고 발을 동동 구르며 며칠을 지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하동 이웃 민주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산청 친구가 하루 종일 수해 복구를 하느라 하원 하는 아이들을 챙길 여력도, 저녁밥을 차릴 여유도 없다는데 우리가 아이라도 봐주고 반찬이라도 해줄까요?”라고요.
정준 이야기를 듣고는 ‘재난 현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필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면 충분히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돈, 시간, 여력이 안 되더라도 ‘열 명 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아이 돌봄도 말 그대로 ‘봐주는 것’ 정도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 번 해보자!’ 했죠.
수진 마침 ‘해피올빙즈’의 대표(정준)와 사무국장(수진)이 한자리에 있었고 (하하하) 산청, 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인과 서와가 집에 왔죠. 두 사람도 수해 현장에서 손을 보태던 상황이라 현장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한 끼 식사를 마련하는 게 도움은 될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었어요.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양파를 내어줬어요. 하하. 산처럼 많이 다듬어 주어 며칠 동안 잘 사용했었죠.
정준 일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어요. 일 할 사람과 현장을 아는 사람이 한 자리에 있다보니 논의가 빨랐고 식사 장소도 산청 신안면에 있는 카페 ‘남다른 이유’가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어주었어요. 걱정되는 건 크게 없었어요. 아, 이름도 지었습니다. ‘밥 먹고 합시다.’로요. 밥 냄새 맡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누가 밥 해준다면 좋고 이야기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봐요, 밥에는.

‘남다른 이유’가 내어 준 공간에서 봉사자와 수해 농민을 위한 식사를 차렸다.
밥 먹고 합시다.
수진 식사 준비 방식이나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도 이야기해주세요.
정준 방식은 간단했어요. 집에서 요리를 해서 가져가되 식사의 수준은 ‘일품요리’로 간단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힘이 덜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하고 바로 준비를 시작해요. 재료 다듬어 국을 끓이고 요리 하나 만들고 늦은 점심 먹으면 오후 3시쯤 되었어요. 샤워하고 음식 챙겨 ‘남다른 이유’로 갔죠. 잠시 쉬었다가 밥 앉히고 음식 차리면 봉사자들이 와서 함께 저녁식사 했습니다. 남은 음식이 농가에 전달될 수 있도록 나눠 담고, 뒷정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날 사용할 재료 장을 보는 것까지가 하루 일과였어요.
수진 첫 날 메뉴는 카레였죠. 집에서 카레를 만들어 큰 전기밥솥에 담아 차에 싣고 하동에서 산청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가던 순간이 떠올라요. 누가 올지, 몇 명이 올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을 한 거라 첫 날은 조금 긴장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안 오시면 어떻게 하지...?’ 하고요.


간단한 일품요리로 준비한 매일의 식사.
정준 첫 날 서른 명 정도 오셨는데 피해 농가의 농민들, 지역 주민들, 수해 복구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좀 어색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소식을 듣고 오셨는데 ‘올까말까’ 망설였던 느낌을 받았어요.
첫날 상황을 SNS에 알렸더니 몇몇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어요. ‘산청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도움을 줘야할 지 고민하던 차에 마음을 보탠다.’, ‘할 수 있는 게 뭘까 궁금해 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고맙다.’하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밥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힘이 되었죠. 돈이 들어와서 힘이 되었다기보다는 ‘우리 활동을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있구나.’ 응원을 받아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후원을 해주신 분들과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들에게 현장의 상황을 잘 전하고 보태준 마음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진 하루가 다르게 식사하러 오는 사람이 늘었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어요. 식사하러 와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요.
정준 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이 안 되었어요. 하하하.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혹시나 음식이 모자랄까봐. ‘남는 건 괜찮은데 모자라면 낭패다.’ 그 생각에 밥을 할 때 자꾸만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는 50인분 밥솥을 가득 채워 했어요.
첫째 날 식사를 하고 난 후로는 어색했던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밑반찬, 후식이나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많이 계셨어요. 점점 식탁이 풍성해졌죠.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식사 인원도 늘었습니다.
따로 요청을 드린 게 아닌데 산청 이웃분이 오셔서 아이를 봐 주시기도 했어요. 딸기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었는데 바로 옆 하우스까지 물이 들어와 크게 놀랐다 하시며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도와야할지 난감해하다가 여기서 밥 하는 것을 보며 본인도 뭔가를 해야겠다며 오신 분이 계셨어요. 하원한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초기에 요청받았던 ‘아이 돌봄’은 실제로 수요가 많지 않아서 식사 준비만 했다.)

이웃 꼬마가 쿠키를 만들어 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광주와 함양의 빵집에서 보내준 빵을 함께 나누어 먹고 수해 농가에 전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보태는 사람들
수진 식사를 함께 하며 정말 다양한 분들과 함께 했죠. 산청에서 식사를 같이 한 사람들도 그렇고 준비를 함께 한 사람들도 그렇고요.
정준 각지에서 오신 수해 복구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어요. 낮에는 토사가 가득한 농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저녁엔 식사하러 ‘남다른 이유’로 오셨어요. 지역 주민들도 오셨고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도시락으로 음식을 싸서 가신 분들도 계셨어요.
음식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처음 시작은 ‘해피올빙즈’가 했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어요. 하동에 사는 승일과 민주가 매일 와서 식재료 준비를 도와줬고 공영주님(하동 적량면 문화복지센터 총괄이사)도 오셔서 재료 준비를 도와주셨어요. 감자 썰고 양파 썰고요. 50인분 이상을 매일 준비 하다 보니 감자만 썰어도 수십 개를 씻고 깎고 잘라야 해요. 그런 일들이 손이 많이 가는데 식재료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데 큰 도움 주신 분도 계시고요. 손맛 좋은 하동의 김옥랑님, 합천의 박미영님(하루)이 밑반찬을 늘 해주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수진 공영주님이 오셔서 서툰 칼질을 하시던 순간이 재미있었어요. 아마도 살면서 요리를 거의 안하셨을 것 같은 ‘아저씨’가 서툴지만 열심히 재료를 다듬어주셨거든요. 조금 재밌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이유로 만나서 같이 요리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식사 준비를 하면서 저희 집에는 또 다른 봉사의 장이 열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산청에 직접 가서 손을 보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 같았거든요. 식사 준비를 하는 저희가 그 분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분들께도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산청의 ‘정인’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산청에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소통 역할은 정인이 해주었어요. 덕분에 저희는 밥만 하고요. ‘산청 쪽은 정인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믿는 구석이랄까요. 식사를 하는 장소와 시간을 계속해서 안내하고 식사량을 가늠할 수 있도록 식사 인원을 확인하는 일을 정인에게 맡겼어요. 이게 꽤 번다한 일이었을 텐데 정인의 도움이 컸죠.


식사준비를 함께 한 하동의 이웃들
인상적인 순간
수진 식사를 함께 하며 인상적인 순간이나 사람들이 있었나요?
정준 그 때 오신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특별했던 분들은 노부부요. 할아버지는 팔을 다치셨고 집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저녁 먹으러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 한켠에서 조용히 식사하셨는데 돌아가시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시는 노부부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소식 듣고 식사하러 오신 분도 계시지만 밥 못 먹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난 속에서 챙겨지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들며 안타까웠어요. 수많은 독거노인, 현재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노부부가 분명 어딘가에 계실 텐데 싶었어요. 그 커플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수진 저도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는 순간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밥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았는데 어느 날 산청의 김현주(달아)님이 “이제부터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역할을 찾아 봉사하기 시작하신 거예요. 부엌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 앞에서 사람들이 먹고 가져오는 빈 그릇을 모두 받아 설거지하고 정리를 다 해주셨어요. 다음 날이 되니 자기만의 요령으로 일을 더 수월하게 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감동이었죠. ‘주인된 자세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하고 배우는 순간이었어요.
일상화된 재난에서 이웃의 역할
정준 식사를 함께 하는 와중에 ‘경남산청의료사회적협동조합’, ‘그늘과 언덕’이 중심이 되어 산청 수해복구를 지원하는 오픈 채팅 방이 열렸고 이후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자원 봉사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해요.
봉사자들이 식사하러 많이 오셨는데 그런 걸 보며 일상화된 재난의 시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나 큰 단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죠. 그건 그것대로 하되 재난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사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방식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 입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고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집을 같이 치우고, 밥해서 같이 나누어 먹고, 아이를 잠깐이라도 돌봐주는 일 말고는 또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서로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위안과 위로도 주고받고요. 다음 재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요. 그 말은 다음 재난은 나, 우리 집, 우리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일상화된 재난’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이번엔 산청이었지만 그 비구름이 하동에 멈췄으면 하동에 재난이 나는 거죠. 아무리 예방이 잘 되어도 자연재해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것인지를 우리끼리 잘 찾아야 해요.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부상조와 두레 같은 것들. 그것 말고는 달리 해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요. 현대 사회에 맞게 변형해 적용해내는 운영의 묘를 잘 살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수진 저도 공감해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재난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당장 스위치를 눌러 지구 온도를 낮출 수도 없고 게임하듯이 침엽수는 뽑아내고 그 자리에 활엽수를 꽂을 수도 없잖아요. 지금의 삶터를 버리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를 갈 수도 없고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서로를 돕는 일’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함께 돕고, 함께 나누는 것.
수진 그런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궁금했어요. ‘동력은 뭘까?’하고요. 정준님의 동력은 뭐였어요?
정준 생각해보면 옆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는 게 자연스럽죠. 안 도와주는 게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자기 생업도 있고 잘 몰랐을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못 돕는 거죠. ‘내가 지금 이거 안 하면 뭐 하겠나?’ 이런 생각 했어요. 안 하고 있으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것 같아요. 복잡하게 생각 할 것도 없이 사람이 밥은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밥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듣고 가볍게 시작했어요. 너무 잘 하려고 하기보다는 가볍게 ‘열 명 오면, 열 명 밥 한다.’ ‘밥 잘못 되면 진밥 먹는 거지.’ 이렇게 가볍게 했어요. 그래야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진 앞으로의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는 더 효율적으로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우리나라도 이제 재난의 현장이 되었네요. 인도나 네팔까지 멀리 안 가도 여기서 할 일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엔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질적으로는 ‘밥 차’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반찬을 많이 해서 배달을 하러 다녀도 좋을 것 같고요. 사람들을 식사 장소로 모으기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밥을 함께 먹으며 사람들이 만나고 모여 안부 묻는 자체가 참 좋았어요. 그렇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까지 손이 닿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는 음식을 싸서 농가로 배달해준 ‘종혁’님이 있어 참 고마웠어요. 그런 역할이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동 수해
수진 하동에도 피해가 꽤 있었어요. 거기도 다녀오셨죠.
정준 네. 산청 식사지원을 끝내고 하동 옥종에도 피해가 있다고 전해 듣고 두 농가에 봉사하러 다녀왔어요. 피해의 정도는 산청과 거의 비슷하지만 규모가 적다보니 덜 알려진 것 같기도 해요. ‘하동시민행동’에서 복구 봉사를 하고 있어 참여했어요. 가서는 산청에서 우리가 밥 해줬던 봉사자들이 했던 일을 했어요. 딸기하우스 가서 토사 치우는 일을 계속 했죠. 농민들이 너무 고마워 하셨어요. 옥종 농장주 어르신이 “팔십 평생 살며 이런 사람들 처음 본다. 어찌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가. 놀랍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겠다. 나는 한 번도 봉사라는 걸 해 본적이 없는데 인생을 헛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당신들 따라다니며 휴지라도 줍겠다. 우째 이런 사람들이 다 있노...’ 이런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이야기 들으면서 이 또한 세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하나가 생기는 것 같은, 작은 촛불 하나가 탁, 켜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동 옥종의 수해복구 현장. ‘하동시민행동’과 함께 했습니다.
6일간 300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준비했다. 보람이 있었다기보다는 재미가 있었다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정말 그랬다. 매일 매일 체력이 조금씩 고갈되는 느낌이었지만 마음은 매일 매일 조금씩 채워지는 나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밥’이 필요했다기보다도 안부를 나눌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흙과 땀투성이가 되어 저녁을 먹으러 돌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빛났던 것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피올빙즈’의 ‘밥먹고 합시다.’프로젝트에 모인 후원금은 식재료 구입에 주로 사용했고 남은 후원금은 하동 옥종면 수해 피해 농가 100가구에 전기 주전자 1대씩 총 100대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봉사자와 수해농민을 위한 식사준비, “밥 먹고 합시다.”
하동 이웃이자 국제구호개발 NGO 활동가 김정준 인터뷰
글 / 정수진
고개 너머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수진. 산청에 수해가 났다는 소식 들었죠? 산청 친구가 하루 종일 수해 복구 하느라 아이들을 챙길 여력도 저녁밥을 차릴 여유도 없다는데 우리가 뭘 좀 해볼 수는 없을까요?” 반갑고도 기다려온 연락이었다. 이번 여름 폭우로 산청에 큰 피해가 있다는 소식, 그 곳에 사는 친구들의 농장에도 크고 작은 피해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였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출발할 마음으로 일상을 대기하듯 지내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다음날부터 6일간 저녁 식사를 준비해 산청으로 가 봉사자들과 함께 먹었다. 30인분으로 시작했던 첫날의 식사준비가 마지막 날에는 70인분이 되었다. 식사 준비를 함께 한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기록했다. 매일 함께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려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내와 남편이 아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하동에 사는 이웃입니다.
하동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두 사람.
수진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정준 김정준(이하 ‘정준’)이라고 합니다. 하동에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습니다. 하동에서 민박과 작은 잼 가게도 하고 농사도 짓고 있지만 본업은 국제구호개발 NGO 활동가입니다. 아내와 함께 설립한 NGO ‘Happy All Beings'(이하 '해피올빙즈')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고 주로 인도와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현지에서는 모두 저를 ’JJ‘라고 부릅니다.
수진 저희는 주로 인도와 네팔에서 활동을 해왔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번 산청 식사준비가 우리 단체의 첫 국내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정준 그렇죠. 예전에도 국내에 여러 자연재해가 있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돕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한국에 머무는 중이었고 산청이 가까워 처음부터 관심이 갔죠. 비가 많이 올 때는 우리 동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어요.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렸고 피해가 굉장히 심각했잖아요. 뉴스나 산청 지인을 통해서 듣는 피해 소식이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재앙 수준의 재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지금 여기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내가 산청에 친구들이 많아 남 일 같지 않았어요.
수진 맞아요. 친구들이 수해 당사자라고 하니 받아들이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었죠. 소식이 궁금한데 자꾸 전화하기도 그렇고 발을 동동 구르며 며칠을 지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하동 이웃 민주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산청 친구가 하루 종일 수해 복구를 하느라 하원 하는 아이들을 챙길 여력도, 저녁밥을 차릴 여유도 없다는데 우리가 아이라도 봐주고 반찬이라도 해줄까요?”라고요.
정준 이야기를 듣고는 ‘재난 현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필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면 충분히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돈, 시간, 여력이 안 되더라도 ‘열 명 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아이 돌봄도 말 그대로 ‘봐주는 것’ 정도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 번 해보자!’ 했죠.
수진 마침 ‘해피올빙즈’의 대표(정준)와 사무국장(수진)이 한자리에 있었고 (하하하) 산청, 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인과 서와가 집에 왔죠. 두 사람도 수해 현장에서 손을 보태던 상황이라 현장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한 끼 식사를 마련하는 게 도움은 될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었어요.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양파를 내어줬어요. 하하. 산처럼 많이 다듬어 주어 며칠 동안 잘 사용했었죠.
정준 일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어요. 일 할 사람과 현장을 아는 사람이 한 자리에 있다보니 논의가 빨랐고 식사 장소도 산청 신안면에 있는 카페 ‘남다른 이유’가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어주었어요. 걱정되는 건 크게 없었어요. 아, 이름도 지었습니다. ‘밥 먹고 합시다.’로요. 밥 냄새 맡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누가 밥 해준다면 좋고 이야기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봐요, 밥에는.
‘남다른 이유’가 내어 준 공간에서 봉사자와 수해 농민을 위한 식사를 차렸다.
밥 먹고 합시다.
수진 식사 준비 방식이나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도 이야기해주세요.
정준 방식은 간단했어요. 집에서 요리를 해서 가져가되 식사의 수준은 ‘일품요리’로 간단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힘이 덜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하고 바로 준비를 시작해요. 재료 다듬어 국을 끓이고 요리 하나 만들고 늦은 점심 먹으면 오후 3시쯤 되었어요. 샤워하고 음식 챙겨 ‘남다른 이유’로 갔죠. 잠시 쉬었다가 밥 앉히고 음식 차리면 봉사자들이 와서 함께 저녁식사 했습니다. 남은 음식이 농가에 전달될 수 있도록 나눠 담고, 뒷정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날 사용할 재료 장을 보는 것까지가 하루 일과였어요.
수진 첫 날 메뉴는 카레였죠. 집에서 카레를 만들어 큰 전기밥솥에 담아 차에 싣고 하동에서 산청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가던 순간이 떠올라요. 누가 올지, 몇 명이 올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을 한 거라 첫 날은 조금 긴장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안 오시면 어떻게 하지...?’ 하고요.
간단한 일품요리로 준비한 매일의 식사.
정준 첫 날 서른 명 정도 오셨는데 피해 농가의 농민들, 지역 주민들, 수해 복구 봉사자들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좀 어색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소식을 듣고 오셨는데 ‘올까말까’ 망설였던 느낌을 받았어요.
첫날 상황을 SNS에 알렸더니 몇몇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어요. ‘산청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도움을 줘야할 지 고민하던 차에 마음을 보탠다.’, ‘할 수 있는 게 뭘까 궁금해 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고맙다.’하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밥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힘이 되었죠. 돈이 들어와서 힘이 되었다기보다는 ‘우리 활동을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있구나.’ 응원을 받아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후원을 해주신 분들과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들에게 현장의 상황을 잘 전하고 보태준 마음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진 하루가 다르게 식사하러 오는 사람이 늘었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어요. 식사하러 와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요.
정준 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이 안 되었어요. 하하하.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혹시나 음식이 모자랄까봐. ‘남는 건 괜찮은데 모자라면 낭패다.’ 그 생각에 밥을 할 때 자꾸만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는 50인분 밥솥을 가득 채워 했어요.
첫째 날 식사를 하고 난 후로는 어색했던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밑반찬, 후식이나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많이 계셨어요. 점점 식탁이 풍성해졌죠.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식사 인원도 늘었습니다.
따로 요청을 드린 게 아닌데 산청 이웃분이 오셔서 아이를 봐 주시기도 했어요. 딸기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었는데 바로 옆 하우스까지 물이 들어와 크게 놀랐다 하시며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도와야할지 난감해하다가 여기서 밥 하는 것을 보며 본인도 뭔가를 해야겠다며 오신 분이 계셨어요. 하원한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초기에 요청받았던 ‘아이 돌봄’은 실제로 수요가 많지 않아서 식사 준비만 했다.)
이웃 꼬마가 쿠키를 만들어 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광주와 함양의 빵집에서 보내준 빵을 함께 나누어 먹고 수해 농가에 전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보태는 사람들
수진 식사를 함께 하며 정말 다양한 분들과 함께 했죠. 산청에서 식사를 같이 한 사람들도 그렇고 준비를 함께 한 사람들도 그렇고요.
정준 각지에서 오신 수해 복구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어요. 낮에는 토사가 가득한 농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저녁엔 식사하러 ‘남다른 이유’로 오셨어요. 지역 주민들도 오셨고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도시락으로 음식을 싸서 가신 분들도 계셨어요.
음식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처음 시작은 ‘해피올빙즈’가 했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어요. 하동에 사는 승일과 민주가 매일 와서 식재료 준비를 도와줬고 공영주님(하동 적량면 문화복지센터 총괄이사)도 오셔서 재료 준비를 도와주셨어요. 감자 썰고 양파 썰고요. 50인분 이상을 매일 준비 하다 보니 감자만 썰어도 수십 개를 씻고 깎고 잘라야 해요. 그런 일들이 손이 많이 가는데 식재료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데 큰 도움 주신 분도 계시고요. 손맛 좋은 하동의 김옥랑님, 합천의 박미영님(하루)이 밑반찬을 늘 해주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수진 공영주님이 오셔서 서툰 칼질을 하시던 순간이 재미있었어요. 아마도 살면서 요리를 거의 안하셨을 것 같은 ‘아저씨’가 서툴지만 열심히 재료를 다듬어주셨거든요. 조금 재밌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이유로 만나서 같이 요리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식사 준비를 하면서 저희 집에는 또 다른 봉사의 장이 열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산청에 직접 가서 손을 보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 같았거든요. 식사 준비를 하는 저희가 그 분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분들께도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산청의 ‘정인’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산청에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소통 역할은 정인이 해주었어요. 덕분에 저희는 밥만 하고요. ‘산청 쪽은 정인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믿는 구석이랄까요. 식사를 하는 장소와 시간을 계속해서 안내하고 식사량을 가늠할 수 있도록 식사 인원을 확인하는 일을 정인에게 맡겼어요. 이게 꽤 번다한 일이었을 텐데 정인의 도움이 컸죠.
식사준비를 함께 한 하동의 이웃들
인상적인 순간
수진 식사를 함께 하며 인상적인 순간이나 사람들이 있었나요?
정준 그 때 오신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특별했던 분들은 노부부요. 할아버지는 팔을 다치셨고 집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저녁 먹으러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 한켠에서 조용히 식사하셨는데 돌아가시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시는 노부부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소식 듣고 식사하러 오신 분도 계시지만 밥 못 먹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난 속에서 챙겨지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들며 안타까웠어요. 수많은 독거노인, 현재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노부부가 분명 어딘가에 계실 텐데 싶었어요. 그 커플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수진 저도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는 순간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밥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았는데 어느 날 산청의 김현주(달아)님이 “이제부터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역할을 찾아 봉사하기 시작하신 거예요. 부엌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 앞에서 사람들이 먹고 가져오는 빈 그릇을 모두 받아 설거지하고 정리를 다 해주셨어요. 다음 날이 되니 자기만의 요령으로 일을 더 수월하게 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감동이었죠. ‘주인된 자세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하고 배우는 순간이었어요.
일상화된 재난에서 이웃의 역할
정준 식사를 함께 하는 와중에 ‘경남산청의료사회적협동조합’, ‘그늘과 언덕’이 중심이 되어 산청 수해복구를 지원하는 오픈 채팅 방이 열렸고 이후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자원 봉사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해요.
봉사자들이 식사하러 많이 오셨는데 그런 걸 보며 일상화된 재난의 시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나 큰 단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죠. 그건 그것대로 하되 재난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사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방식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 입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고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집을 같이 치우고, 밥해서 같이 나누어 먹고, 아이를 잠깐이라도 돌봐주는 일 말고는 또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서로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위안과 위로도 주고받고요. 다음 재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요. 그 말은 다음 재난은 나, 우리 집, 우리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일상화된 재난’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이번엔 산청이었지만 그 비구름이 하동에 멈췄으면 하동에 재난이 나는 거죠. 아무리 예방이 잘 되어도 자연재해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것인지를 우리끼리 잘 찾아야 해요.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부상조와 두레 같은 것들. 그것 말고는 달리 해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요. 현대 사회에 맞게 변형해 적용해내는 운영의 묘를 잘 살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수진 저도 공감해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재난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당장 스위치를 눌러 지구 온도를 낮출 수도 없고 게임하듯이 침엽수는 뽑아내고 그 자리에 활엽수를 꽂을 수도 없잖아요. 지금의 삶터를 버리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를 갈 수도 없고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서로를 돕는 일’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함께 돕고, 함께 나누는 것.
수진 그런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궁금했어요. ‘동력은 뭘까?’하고요. 정준님의 동력은 뭐였어요?
정준 생각해보면 옆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는 게 자연스럽죠. 안 도와주는 게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자기 생업도 있고 잘 몰랐을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못 돕는 거죠. ‘내가 지금 이거 안 하면 뭐 하겠나?’ 이런 생각 했어요. 안 하고 있으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것 같아요. 복잡하게 생각 할 것도 없이 사람이 밥은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밥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듣고 가볍게 시작했어요. 너무 잘 하려고 하기보다는 가볍게 ‘열 명 오면, 열 명 밥 한다.’ ‘밥 잘못 되면 진밥 먹는 거지.’ 이렇게 가볍게 했어요. 그래야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진 앞으로의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는 더 효율적으로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우리나라도 이제 재난의 현장이 되었네요. 인도나 네팔까지 멀리 안 가도 여기서 할 일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엔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질적으로는 ‘밥 차’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반찬을 많이 해서 배달을 하러 다녀도 좋을 것 같고요. 사람들을 식사 장소로 모으기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밥을 함께 먹으며 사람들이 만나고 모여 안부 묻는 자체가 참 좋았어요. 그렇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까지 손이 닿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는 음식을 싸서 농가로 배달해준 ‘종혁’님이 있어 참 고마웠어요. 그런 역할이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동 수해
수진 하동에도 피해가 꽤 있었어요. 거기도 다녀오셨죠.
정준 네. 산청 식사지원을 끝내고 하동 옥종에도 피해가 있다고 전해 듣고 두 농가에 봉사하러 다녀왔어요. 피해의 정도는 산청과 거의 비슷하지만 규모가 적다보니 덜 알려진 것 같기도 해요. ‘하동시민행동’에서 복구 봉사를 하고 있어 참여했어요. 가서는 산청에서 우리가 밥 해줬던 봉사자들이 했던 일을 했어요. 딸기하우스 가서 토사 치우는 일을 계속 했죠. 농민들이 너무 고마워 하셨어요. 옥종 농장주 어르신이 “팔십 평생 살며 이런 사람들 처음 본다. 어찌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가. 놀랍다. 고맙다는 말도 못하겠다. 나는 한 번도 봉사라는 걸 해 본적이 없는데 인생을 헛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당신들 따라다니며 휴지라도 줍겠다. 우째 이런 사람들이 다 있노...’ 이런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이야기 들으면서 이 또한 세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하나가 생기는 것 같은, 작은 촛불 하나가 탁, 켜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동 옥종의 수해복구 현장. ‘하동시민행동’과 함께 했습니다.
6일간 300인분에 가까운 식사를 준비했다. 보람이 있었다기보다는 재미가 있었다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정말 그랬다. 매일 매일 체력이 조금씩 고갈되는 느낌이었지만 마음은 매일 매일 조금씩 채워지는 나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밥’이 필요했다기보다도 안부를 나눌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흙과 땀투성이가 되어 저녁을 먹으러 돌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빛났던 것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피올빙즈’의 ‘밥먹고 합시다.’프로젝트에 모인 후원금은 식재료 구입에 주로 사용했고 남은 후원금은 하동 옥종면 수해 피해 농가 100가구에 전기 주전자 1대씩 총 100대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