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그날’에 의문 제기하며 ‘소송’까지 간 농민들 - 신안면 야정마을 청년 농부 유창윤 인터뷰

2025-11-19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날’에 의문 제기하며 ‘소송’까지 간 농민들

신안면 야정마을 청년 농부 유창윤 인터뷰

 

글/ 자야


 

유소년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축구선수로 운동장을 누볐다. 다리를 다치면서 현역에서는 물러났으나 대학 졸업 후 중학교 코치로 일하는 등 전공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랬던 이가 일찍이 산청군 야정마을로 귀농해 딸기 농사를 짓고 있던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농사 수업을 받기 시작한 건 3년 전 일이다. 놀기 좋아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우려’와는 달리 2년간 착실히 땅에 붙박여 땀 흘린 결과였을까. 유창윤(32) 씨는 작년에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청년창업농’이 되었고, “앞으로 한 20년만 열심히 일하면 노후는 괘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로운 업에 대한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의 평범하면서도 야무진 포부는, 그러나 지난 7월 산청에 폭우가 내리고 양천강 제방 곳곳이 터지면서 급류에 쓸려가고 만다. 모종동에 재배동까지 모두 7개 동의 딸기 하우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인근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과 이웃들의 상황 또한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무너진 제방 근처에 자리한 야정, 청현, 신기, 수대 마을이 손을 잡고 <4개 마을 수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한 이유다. 유창윤 씨는 여기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 중인 유창윤 농부. 7월 19일 수해 이후 <4개마을 수해 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상처 입은 땅, 복구는 너무 먼 이야기                    


“저희 마을에서만 300동이 훨씬 넘는 딸기 하우스가 피해를 봤어요. 그중 20동 정도는 어떻게든 모종을 심어 올해 농사를 짓겠다 하고 나머지는 다 철거죠. 4개 마을 전체로 보면 거의 600동 가까이가 그런 상태예요. 시설이 완파되다 보니까 일단 철거를 해야 되는데, 개인이 하기엔 비용도 그렇고 엄두가 안 나잖아요. 야정마을에서 먼저 공동철거로 가는 게 낫겠다고 했더니 군청과 농업기술센터가 도와주겠다면서 그전에 수요조사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정뿐 아니라 제방 터져서 피해 본 마을의 이장님들 부르고 딸기 시설농 하는 분들까지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대책위가 시작된 거예요.”


산청 지역에 유례없는 폭우가 내려 인명 사고와 재산 피해가 속출한 지 한 달째 되어가던 8월 중순. 하우스 공동철거가 진행 중인 야정마을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의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사로 뒤덮인 농경지엔 엿가락처럼 휘어진 하우스 파이프와 그에 걸려 나풀거리는 비닐 조각들, 그리고 철거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이 가득했다. 수해 복구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뜨겁고 건조한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이 얼마나 살벌하고 황량했으면, 차라리 두 눈을 감고 싶을 정도였다. 



수해로 주저앉은 하우스들(왼). 완파된 이들 하우스가 철거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오). (이하 사진들은 유창윤 농부 제공)



야정을 비롯해 이번 폭우로 하우스 시설 피해가 가장 컸던 신안면의 4개 마을은 모두 양천강을 끼고 있다. 이 지역 농민들에게 장마철 침수가 늘 걱정거리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는 하우스에 물이 어느 정도 차올랐다 빠지는 식이었기에 이번에도 7월 19일 점심 무렵에 제방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17일부터 말씀드리면 그날도 비가 많이 와서 베드(*작물을 심고 키울 수 있게 1미터 정도의 높이에 설치된 시설물), 그러니까 제 허리 높이 정도로 물이 찼다가 비가 그치면서 쭉 빠지더라고요. 그때는 보일러 고장이랑, 침수됐다 빠지면 토양이 오염될 수 있어서 그 부분이 신경 쓰였죠. 그밖에 다른 건 크게 우려를 안 했고요. 19일에는 물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것 같아서 일단 작업을 멈추고 외국인 노동자들 점심 먹으라고 보냈는데 좀 이따 청현 제방이 터진 거예요. 12시 40분인가 50분 그쯤에. 야정이 그래도 고지대인데 청현 제방하고 가까우니까 물이 쓰나미처럼 밀려들더니 금세 마을회관 신발장까지 차더라고요. 이게 자연침수면 물이 찼다가 쓰윽 빠지는데 제방이 뚫리니까 압력이 세서 전부 다 무너지고 쓸리는 거예요. 그날 찍은 영상 보면 난리도 아니에요. 한쪽에서는 축사 무너져서 소들이 막 떠내려오지, 또 한쪽에선 자동차가 둥둥 떠다니지. 그런데 얼마 지나 신기 수대 쪽 제방이 터졌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찼던 물이 그리로 빠지더라고요. 변기 물 내려갈 때 쑤욱 빠지는 것처럼요. 만약 여기만 터지고 그쪽이 안 터졌으면 야정마을은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집들은 다 잠겼을 거고, 어쩌면 진짜 사람 목숨이 위험했을 수도 있어요.”



<4개마을대책위>는 왜 수자원공사와 금호건설에 책임을 묻는가  


양천강 제방이 터진 게 사태를 키운 직접적인 원인임에도 이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 매체 역시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방이 유실되었다’고 보도하는 게 전부였다. 반면에 대책위 안에서는 제방이 터진 ‘진짜’ 이유를 의심하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직접 조사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2020년 합천댐 방류 피해를 분쟁조정위원회에 제소했던 당사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것이 대책위가 최근 경남도청, 수자원공사, 금호건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된 배경이다. 

 

“남강댐이 방류된 게 7월 19일 오후 4시였어요. 그전까지는 물을 계속 가둬놨다는 얘기예요. 저희는 그게 과부하가 돼서 제방이 터진 게 아닌가 의심하는 거고요. 물론 수자원에서는 ‘우린 매뉴얼대로 했다’고 하죠. 만조가 어쩌고 낙동강 수위가 어쩌고 하면서요. 그러면 그 매뉴얼이란 게 하류 쪽 주민들만을 위한 것인가, 상류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피해를 봐도 괜찮은 건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잖아요? 19일 당일에 원지 사는 분들이 하는 말이, 4시에 댐 방류하기 전까지는 물이 미동도 없다가 방류를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빠지더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17일부터 19일까지 비가 쏟아진 그 기간에 조금씩이라도 미리 방류를 해서 수위를 조절했다면 과연 제방이 터졌을까, 저희는 그게 궁금한 겁니다. 또 산청에는 지금 생비량면과 덕산을 잇는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거든요. 벌써 몇 년 됐어요. 시공사가 금호건설인데 공사를 하려면 큰 차량들이 현장에 드나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리를 놓았는데 이번에 그 다리 옆 제방이 터졌다는 거 아닙니까. 저희로서는 다리를 놓으면서 제방을 건드렸든지 하여간 안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양천강의 청현 제방이 무너진 현장. 



댐 방류로 인한 소송 주체는 대개 하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대책위도 “상류 사례는 아마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승소 가능성이 과연 있을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점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소송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그만큼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싸움이다. 그런데도 대책위는 4개 마을에서 하우스 570개 동에 해당하는 소송인을 모았다. 이는 그곳에 거주하는 농민 80~90퍼센트에 해당하는 인원이며, 소송에 드는 비용은 전액 이들에게서 갹출된다.


유창윤 씨에 따르면, 평생 소송은커녕 법도 잘 모르고 살아온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는 “현실적인 절박함”이 깔려 있다. “재난에 따른 보험과 정책자금과 지원금을 다 받는다고 해도 완전한 복구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보험이든 지원금이든 전부 자부담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도 농민들에게는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다. 또 보상과 지원에 대한 말들은 난무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으며 언제 실행될지도 요원한 상황이다. 말하자면 이번 소송은 농사와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하는” 이들이 결과에 대한 확신과 낙관 없이 결정한 선택이라 할까. 

 

“승소가 당연히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그게 유일한 목표는 아니에요. 수자원공사는 툭하면 매뉴얼을 언급하는데 그 매뉴얼이 뭔지는 공개를 않거든요. 저희가 소송까지 간 이유는 그런 관행을 좀 바꿔야 한다는 것도 있어요. 투명하게 오픈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라는 거죠. 특히 이상기후다 위기다 말만 하지 말고 그에 맞게끔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 하류뿐 아니라 상류 거주민들도 안심할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메시지를 소송을 통해 알리고 싶은 거예요.” 



<4개마을 수해 비상대책위>는 양천강의 여러 제방이 붕괴한 원인을 수자원공사의 남강댐 관리 부실로 보고 집회를 준비 중이다. 



한창 모종 심을 시기에 폐기물 주우러 다니는 농민들   


수해 입은 농민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기에, 소송 외에도 대책위가 따지고 살펴봐야 할 사안은 많다. 시설 농사에서 딸기의 ‘제철’은 겨울이다. 봄여름에 모종을 키워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재배동에 옮겨 심는다. 수해가 난 7월 중순은 모종 키우는 데 막바지 정성을 쏟는 동시에 재배동을 준비하는 때로, 이 시기에 모종과 하우스를 다 잃었다는 것은 한 해 농사가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한다. 다시 빠르게 시설을 복구하는 것도 무리고, 뒤늦게 좋은 모종을 구해서 제때 심기란 더 어렵다. 게다가 올해 수입원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당장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지가 걱정이기에 내년 농사 준비는 더더욱 막막할 수밖에 없다.


“하우스 철거가 이미 끝난 사람들은 할 일이 없거든요. 그래도 다들 일하던 습관이 있어서 날 밝으면 나와요. 어디서 모종동 철거한다 그러면 가서 뭐 쓸 만한 거 없나 기웃대다가 또 폐기장이나 고물상 돌아다니면서 건질 만한 거 있으면 건지고. 작은 부속품 하나도 아쉬운 상황이니까요. 저라고 뭐 다르겠어요? 시간 나면 맨 뭐 주우러 돌아다니고 모타랑 양액기 같은 거 해체해서 말리고 그러고 있죠.” 


대책위는 일찍이 몇 가지 요구안(*전체 내용은 게시글 하단의 표 참고)을 정리하여 산청군을 포함해 경남도 농정국장과 대통령 농업비서관에게 전달했다. 이 중 현재 농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생계 및 농사기반과 관련한 내용으로는 ‘무너진 시설 신축과 고장 난 농기계 수리 지원’ ‘기초생계비와 생활 터전 복구 지원’ ‘딸기 모종 및 상토 지원’ ‘농사용 전기세 및 면세유 값 인하’ 등이 있다. 이에 대해 산청군은 모종과 상토 값을 반액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뿐,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긴급생활지원금은 9월 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솔직히 그건 얼마 안 돼요. 군에서 피해 조사를 했는데 농민들이 체감하는 피해와 얼마나 일치할지, 언제 돈이 집행될지도 알 수 없고요. 이건 뭐 일단 받아봐야 우리도 얘기할 게 생기겠죠. 또 사람들은 보험 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아는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모종도 안 돼, 점적호스도 안 돼, 하여간 보상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더군다나 보험금과 재난지원금은 둘 중 하나만 받게 되어 있어서 잘 따져봐야 해요. 그리고 저처럼 농경지가 완전히 쓸려나간 곳은 복토부터 해야 하거든요. 군에서는 농수로 확보하고 배수펌프장 확장 공사해서 땅을 복구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땅을 내놔야 하는 사람이 생기고 먼저 협상이 이루어져야 하니까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긴 어렵겠죠.”


최근 대책위 활동에 속도와 탄력이 붙으면서 바빠진 것이 그나마 유창윤 씨에게는 다행이라 할 만하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최소한 무기력과 우울감에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만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알 수 없는 감정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옴짝달싹할 수가 없게 된다. 그건 단순히 분노라고도, 슬픔이라고도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며, 입구도 출구도 모르게 뒤엉킨 미로 속에 갇힌 기분에 가깝다. 


“살면서 이렇게 큰일을 맞닥뜨려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저도 지금 제 상태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갑자기 심각해지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가 그다음 날 되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 이렇게 바뀌면서 한없이 가라앉고. 사실은 대책위 사무장 한다고 뛰어다니고 소송하는 것도 다 드라마 같고 안 믿겨요. 안 믿긴다는 거. 그게 가장 솔직한 저의 심경 같아요. 그렇다고 현실을 회피할 수는 없죠. 가족이 있으니까,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하니까요. 그냥 견디고 헤쳐나가는 거예요.” 



아직도 믿기지 않아, 살기 위해 할 일 하며 견딜 뿐  


축구코치에서 농부로 업을 바꿀 때 유창윤 씨가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는 둘 다 몸 쓰는 일이고 그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 몸을 쓰는 만큼 경제적인 보상이 따른다고 여겼기에, 그는 청년창업농이 되면서 받은 대출 3억을 빚이 아닌 자신의 꿈에 대한 투자로 여겼다. 올여름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을 겪으면서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내상을 입었지만, 그가 여전히 자신의 몸을, 꿈을 믿는다는 점은 변함없다. 다만 지난 3년 내내 유지해온 “파이팅 넘치는” 정신을 회복하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달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요. 한 5년쯤 지나면 이걸로 ‘추억팔이’를 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그때 그랬지, 뭐 이런 식으로요. 과연 그게 가능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고, 저는 그냥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최선이겠죠.”


그가 말하는 지금 해야 할 일이란 대책위가 세운 목표와 방향대로 잘 가는 것, 그리고 내년 농사를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땅을 딛고 그는 이렇게 다시 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산청군 폭우 피해 농가 대책에 관한 <4개마을 수해 비상대책위원회> 요구사항
  • 산청군을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
  • 어제 (7/21) 송미령 농식품부장관 방문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 
    • (농민들은 피해복구도 멈추고 땡볕에 4시간 이상 기다렸음)
  • 정책자금 및 다시 농사지을 수 있는 기반 조성 
    • (공동철거 및 피해복구, 하우스와 작업장과 간이시설 등 신축, 침수 및 파손된 양액기, 모터, 전기시설 AS 요구)
  • 농사가 가능하기까지 기초생계비 및 생활 터전 복구 지원
  • 하우스 보험제도 재검토
    • (현재는 모종 피해와 물에 잠긴 전기제품의 보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 재난 시 소통체계 개선
    • (복구상황, 임시거주지 등 안내 부재)
  • 강둑구조 개선, 남강댐 수문 개폐 투명성 요구, 4차선 도로공사와 터진 강둑의 연관성에 대한 진상조사 
  • 이후 농사를 위해 딸기 모종(우량모주) 대량 확보 
  • 농사용 전기 및 면세유 값 인하 
  • 축산 피해 농가 소 값 보상
    • (현재 70여 두가 죽거나 생사 불명)



** 위 원고는 9월 초에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유창윤 농부님은 요즘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며 근황을 알려왔습니다.
아래 사진은 대책위 주최로 11월 3일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 앞에서 열린 집회 현장을 담은 것입니다. 




(김은영 제공)





글쓴이_ 자야

함양에 산 지 17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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