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발까지의 여정 - 진주 시민 박희란 인터뷰

2025-12-04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발까지의 여정

진주 박희란님 인터뷰

 

글 / 정수진



이번 수해 복구에는 500여명이 넘는 전국의 봉사자들이 다녀갔다.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과 산청 주민모임 ’그늘과언덕‘이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봉사자의 76%는 산청이 아닌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었고 59%는 재난지역 자원봉사 경험이 전혀 없는 분들이었다. 어떤 계기로 참여했냐는 물음에 이런 대답이 있었다. ‘더불어 사는 힘을 믿고, 서로 도울 때 더 큰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사는 힘’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익숙하지만 실제 일상에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번 수해복구를 통해 ‘더불어 사는 힘’을 체감했다는 봉사자들이 많았다. 

 뜨거운 여름날, 더불어 사는 힘을 믿고 수해복구를 도운 진주 시민 박희란님을 만났다. 희란님은 ‘산청 간디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아들을 둔 학부모였고 평소 ‘큰들(산청에 자리한 문화예술단체)’을 좋아해 자주 산청을 오갔다.



봉사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수진  이번 산청 수해 복구 봉사 활동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희란  처음에는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꾸려진 ‘통일선봉대(이하 ’통선대‘)’를 통해 봉사를 왔어요. 첫 봉사를 하고 ‘하루 봉사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끝나고 소감을 나누면서 8월 중순까지는 방학이니 ‘끝나기 전에 한 번은 더 오겠다.’ 했어요. (희란님은 통영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봉사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아무 농가에나 가서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활동하던 ‘김제동과 어깨동무(청년 자원 활동 단체, 이하 ’어깨동무‘)’가 산청에서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곳을 통해 ‘산청합천 수해복구 단톡방’을 알게 되었고요. 


수진  봉사하면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희란  ‘통선대’로 처음 갔던 곳은 가정집이었어요. 침수된 집과 창고의 물건을 모두 꺼내어 쓰레기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했어요. 이후에는 주로 딸기 하우스에서 상토를 치우고 청소하는 일을 했죠. 다녀와서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했어요. ‘나 이제 삽질도 할 수 있어!’ 수해복구하며 처음 삽질을 해봤어요. 


수진  ‘어깨동무’는 평소에도 활동하셨어요? 


희란  ‘어깨동무’에는 다양한 이벤트와 봉사가 많았어요. 목도리를 떠서 택배노동자, 소방관, 의료진에게 선물하는 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고 폐현수막으로 만든 쓰레기 줍기 키트를 가지고 줍깅(산책이나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올 봄부터 연탄 배달 봉사, 산불피해지역 봉사를 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산청은 가깝기도 하고 첫 봉사 후 다시 한 번 봉사를 가고자 마음을 먹었던 곳이라 참여하게 되었죠.



딸기하우스에서 침수된 상토를 정리하는 일을 주로 했다.



봉사자와 피해 농가, 주고받는 다정한 마음


수진  목도리 후원이나 줍깅에 비해서 수해복구 봉사는 훨씬 적극적인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악한 환경에서 몸을 많이 쓰면서 하게 되는 일이잖아요. 마음을 먹고 행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봉사하셨나요? 


희란  그 지역에 봄에 불난리가 났는데 짧은 사이에 다시 물난리가 났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가깝다보니 오가면서 보게 되거든요. 허물어진 비닐하우스, 엉뚱한 곳에 올라가있는 자동차, 냉동 창고 같은 것들을요. 눈에 보이니 안 할수가 없겠더라고요. 다들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전에는 거리가 멀어 봉사하러 갈 용기가 나지 않기도 했는데 산청에 여러 번 봉사를 하면서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합천에 봉사한다는 소식을 알고 거기도 다녀오게 되었죠. ‘이제 더 멀어도 간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낯선 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삽질을 한 번도 안 해봤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하고 나니 ‘어! 나도 할 수 있구나!’ 했어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는데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배려하는 마음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쉬어가며 하세요.’라고 격려하고 ‘이건 둘이서 하면 더 편해요.’라고 서로를 돕고요. 일을 하면서 점점 손을 맞춰가고 배려하니 ‘여기 또 와야겠다.’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수해를 입은 분들께도 도움이 되겠지만 봉사자들을 만나며 마음이 따뜻해져서 참 좋았어요. 

 오전 봉사를 마치고 ‘남다른 이유’카페에 가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멀리서 온 봉사자의 버스를 같이 기다려주거나 터미널에 태워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참 좋았어요. 비슷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힘이 많이 되었죠. 


수진  평소에는 그런 마음을 낼 기회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들을 살피며 사는 게 전부인데 전혀 얼굴도 모르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농가에게 다정한 마음을 내는 게 참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희란  맞아요. 얼굴 새까맣게 타긴 했지만요, 하하하. 이 계절을 지나고 보니 얼굴이 정말 새까매졌더라고요. 개학하고 학교에 가니 ‘좋은데 놀다 오셨냐?’고 묻더라고요. 


수진  방학 동안 몇 번 다녀가셨어요? 너무 자주 오셔서 햇살이 마지막엔 ‘그만 오라’고 하셨다던데요? 


희란  글쎄요... 여덟 번쯤 갔나? 개학을 하면 더 이상 가기 어려울 것 같아 ‘남다른 이유’에 봉사자들을 위한 ‘까치밥(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까치가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두는 감. 까치밥을 선결제해서 한 켠에 달아두면 누구든 필요할 때 음료를 마실 수 있다.)’을 달아두고 왔는데 봉사자가 없다는 햇살의 글을 보고 개학 후에 한 번 더 가게 되었어요.  


수진  피해 농가는 어땠나요?


희란  처참한 곳도 있었어요. 말할 수 없이 미안했죠. 비가 온 게 내 탓이 아닌데도 ‘함께 대비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미안했어요. 같이 일을 하다보면 그 마음이 괜찮아질 것 같은 자기위안도 있었죠. 그런데 농민들은 다들 친절하셨어요. 제가 갔던 곳은 대부분 젊은 농부가 귀농하거나 부모님 일을 물려받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분들이셨거든요, ‘망연자실하고 있었는데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농민들의 마음이 정말 따뜻했어요. 절망스럽겠지만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웠어요. 


수진  참 이상하죠? 비가 많이 와서 하우스가 무너졌는데 왜 내가 미안할까요? 농민들이 고마워해주는데 왜 내가 더 고마울까요?


희란  사람한테 힘을 얻는다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훌쩍)


수진  저도 하동 옥종 딸기 농가에 봉사하러 갔었는데 8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장주셨어요. 할아버지가 일하시다 미끄러져서 팔이 부러진 거예요. 할머니 혼자 밤새 일 하셨어요. 그러다 봉사자들이 가게 되었는데 봉사를 끝내고 차를 타고 출발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창문을 두드리셨어요. 창을 내리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시며 “정말 고맙습니다. 살면서 평생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해주시는데 ‘살면서 낯선 사람한테 이렇게 진심어린 축복을 받을 일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훌쩍)


희란  F들은 이래서 안 돼요. 너무 감동적이라니까. (훌쩍)


수진  상황은 절망적인데 사람들은 희망적이죠. 



힘든 작업환경에도 서로에게 다정했던 봉사자들과 희란님(왼쪽에서 네 번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함께 사는 세상


수진  이전에 봉사를 해 보신 경험이 있으세요?


희란  이런 봉사를 한 경험은 거의 없어요. 환경연합에서 함께 줍깅을 하거나 교육 봉사만 했더라고요. ‘몸을 쓰는 봉사는 정말 안했구나.’ 생각했어요. 기회가 많이 없기도 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수진  이번에 봉사하러 온 아이들, 청소년들도 꽤 있었어요. 어른만큼 일을 하기는 어려워도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희란  맞아요. 봉사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함께 쓰레기라도 주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직접 해보면서 봉사하고 남을 돕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될 텐데 일상적으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교실 안에서 1년 내내 가르쳐도 가르침이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에 관련한 범교과 교육이 학교로 들어오거든요.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수영’ 과목이 생겼고, 디지털 관련 문제가 생기면 ‘디지털 리트러시(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과목이 생겨요.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요. 교과가 학교로 들어올 게 아니라 학교 안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 함께 배우면 좋겠어요. 선생님 혹은 부모님과 함께 밖에서 체험해야 아이들 몸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수진  봉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심어지길 바라세요?


희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요. ‘다른 사람에 대한 정중한 태도’를 아이들이 배우면 좋겠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생들이 청소를 했는데 요즘은 안 해요. 작은 빗자루로 자기 주변만 청소하죠. 나머지 공간은 선생님들이 해요. 아이들에게 시켜도 못 해내요. 배정된 청소시간도 없고요. 자기 자리가 아니더라도 쓰레기가 있으면 청소해야한다고 가르쳐도 아이들은 잘 몰라요. “저기 휴지 좀 주울래?”하면 아이들은 “제가 버린 게 아니에요.”라고 대답해요. 


수진  옛날 이야기인가 싶지만 저는 화장실 청소도 하고 집에서 양초를 가져와 교실과 복도 마룻바닥을 초칠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셨군요. 


희란  그렇죠. 요즘은 아이들이 같이 있지만 각자 휴대폰 보며 혼자 놀죠. 휴대폰 끄고 밖에 나가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이번에 봉사현장에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제법 있었어요. 너무 감사했죠.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의 보이지 않는 많은 면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집과 학교에서 자라나는 모습들을 예상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세상은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돕는 세상이다.



정말 중요한 일, 농사


수진  혹시 이번에 봉사하고 희란님에게 어떤 변화들이 있나요? 


희란  딸기요. 앞으로는 딸기가 그냥 딸기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음식이 그냥 오는 게 아니구나.’ 알았어요. 농사가 다르게 보였죠.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던 건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말로는 쉽게 ‘쌀 한 톨이 내 입에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는가. 누군가의 피와 땀이...’라고 하지만 저 조차도 몸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봉사하며 농민을 만나고 피해 현장을 보고나니 이게 정말 허투루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귀하게 먹어야지.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요리를 잘 못해서 어디 가면 농산물을 잘 받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봉사한 농가에서 단호박을 나누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피해를 당했는데도 뭔가를 나누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게 단순히 ‘농산물’로 보이지 않았어요. 


수진  봉사를 해보니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용기가 났다는 이야기가 참 좋네요. ‘더불어 살아가는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도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언젠가 일어나더라도 함께 도와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희란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여름을 정리하게 되어 좋았어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진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희란님과 만난 첫 순간을 기억한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밝고 싱그럽던지 종전까지 ‘인터뷰를 어떻게 풀어갈까...?’고민하던 순간이 무색해지던 순간이었다. 희란님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이후 희란님이 보내주신 글귀를 덧붙이며 이번 글을 마무리 짓는다.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희란님(왼쪽)




『 신영복 선생님의 글 중 좋아하는 부분을 보냅니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올해 여름은 마음 좋고 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복한 계절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하면서도 힘겹지 않았던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되돌아본다.’는 것도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