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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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시민사회의 힘이죠!”
신안면 문대마을 딸기 농부 이종혁
글/ 자야

문대마을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산청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이종혁 농부.
지난 9월 1일에 구성된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에서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종혁(40) 농부가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건 7월 21일이었다. 산청의 수해 소식이 연일 신문지면과 방송의 주요 뉴스를 차지하던 때. 신안면 문대마을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산청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그는, 그날 오후에 있었던 일을 깊은 탄식과 함께 풀어놓았다. 짧게 요약하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본 청현마을에 온다는 소식에 그 일대 농민들을 비롯한 수십 명이 모여 기다렸으나, 송 장관이 마을 근처까지만 오고 돌아가는 바람에 그냥 해산했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한두 시부터 모여 있었어요. 비 온 뒤 기온이 올라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마냥 기다린 거예요. 장관이 온다니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죠. 기다리는 장관은 안 오고 먼저 지역 국회의원이 와서는 웃으면서 악수 몇 번 하고 가더라고요. 공무원이며 농협 관계자들이 타고 온 차가 많아서 인근 주민들이 왔다 갔다 하는 데 방해가 됐지만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네 시 반이 넘어갔을 때 마을 대책위 관계자가 누구랑 통화를 하더니 ‘장관이 돌아갔다’고 소리를 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아예 안 온 게 아니라 마을 근처 다리까지는 왔더라고요. 거기 서서 피해 상황을 내려다보고 그냥 간 거죠. 그 다리에서 우리가 서 있던 곳은 겨우 8백 미터 정도였거든요. 차로는 일이 분밖에 안 걸리는데 그거 오는 게 뭐 어렵다고…….”
땡볕 아래 기다림이 깊은 슬픔으로
나중에 듣기로 그날 장관은 군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고 한다. 분노한 농민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했다는 말도 들렸다. 해명인지 변명인지 모를 그 말에 이종혁 농부는 “미칠 노릇”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다른 이도 아닌 농정을 책임져야 할 장관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절망에 빠진 농민들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였다.
7월 19일 폭우가 내리고 제방이 터져 물난리가 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는 아직 전기도 물도 복구되지 않은 때였다. 그날 타는 듯한 뙤약볕에 두세 시간을 서성이며 비지땀을 흘린 이들은 집에 가서 샤워나 제대로 했을까. 하우스는 물론이고 집마저 침수된 이들은 어디서 밤을 보내며 다친 마음을 삭일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종혁 농부는 여전히 화가 나고 슬프기까지 하다.
“사실 저는 그날 장관이 온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농정신문> 기자들이 수해 취재하러 왔길래 피해 현장 안내한다고 청현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거예요. 이미 공무원들이 많이 와 있더라고요. 농협 조합장도 오고 인근 마을 사람들도 많이 와 있고. 그걸 보고 기자들과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게 된 건데 너무 실망스럽더라고요. 사람들이 모여 있던 데가 어디냐 하면 청현, 야정, 신기, 수대, 이 4개 마을로 통하는 도로거든요. 그 일대를 다 막아놓고 몇 시간을 있었으니 결국은 주민들에게 피해만 준 셈이지 뭡니까.”
그가 말한 4개 마을은 하우스 시설로만 치면 7월 폭우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창윤 농부 인터뷰 참고.) 제방이 터지고 물과 토사가 밀려들면서 촘촘하게 서 있던 딸기 하우스들이 죄다 쓰러져 못 쓰게 되었다. 이종혁 농부는 비 그친 7월 20일 아침에 트럭을 타고 그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그곳에 비하면 물이 차올랐다가 빠진 자신의 농장은 “피해를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라 했다.
하지만 정도가 덜할 뿐 그이 역시 힘든 과정을 거쳤다. 7월 19일 아침부터 농장이 자리한 문대마을은 하늘에서 퍼붓는 비와 산에서 쏟아지는 물로 도로가 침수된 상황이어서, 그는 “함께 일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을 원산마을 부모님 댁에 데려다주고 네댓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원지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당시 농장 가까운 데 사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 그의 하우스 전부가 황톳빛 물에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일 아침 이종혁 씨의 모종동 하우스에 물이 차오르는 모습(왼). 오후에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에는 하우스 대신 황톳빛 물만 가득하다(오).
(이하 사진은 이종혁 농부 제공)
다음날 물은 빠졌지만 애써 키운 모종들은 진흙투성이로 변해버렸고 하우스와 창고 또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디에나 엉겨 붙어 있는 토사를 제거하고 쓰레기 치우는 일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모임 <있다> 회원들이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는 모종 씻어내는 일에 주력했는데, 최대한 살린다고 했는데도 3분의 1 정도는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모종들도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보통 9월 초에 모종을 옮겨 심거든요. 지금 날이 엄청 뜨겁고 점점 기온이 오르고 있어서 그때까지 얼마나 살아남을지 잘 모르겠어요. 부족한 건 사다 심어야 하는데 제가 키우는 ‘장희’는 워낙 드물어서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저는 사정이 괜찮은 편이죠. 워낙 심하게 피해 본 분들이 많으니까요. 같은 작목반 회원인 한 분은 작업장에 집까지 침수돼서 잘 데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군에서 임시거주지를 해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아예 없었대요. 제가 면사무소에 요청해보라고 해서 그분이 면에 전화했는데 담당자가 접수하라는 말만 하고는 끝이었다 하고요. 산사태처럼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은 경우는 임시대피소를 해준 것 같던데, 제가 알기로는 개개인이 겪은 피해에 대해서는 따로 안내나 조치가 없었어요.”
발 빠른 대응도, 중장기적 계획도, 소통도 없어
수해 이후 처음 몇 주는 하우스 복구하랴 모종 구하랴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다”는 이종혁 농부는 농장일이 얼추 수습되면서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야정마을을 중심으로 구성된 <4개마을 수해 비상대책위(이하 4개마을 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고 평소 알고 지내온 농민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재난에 대응하는 지자체의 역량 부족과 주민들과의 소통 부재가 피해 당사자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수해 직후 농민에게는 “비록 금액이 적더라도 현금 지원이 절실”한데, 이에 대한 산청군의 대응은 아쉽기만 했다. 몇 년 전 같은 수해를 겪은 구례군은 한 달 만에 각 농가에 100만 원씩 지급했으나 산청군에서는 대출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종혁 농부에 따르면 “아무리 ‘무이자’니 ‘저리’니 해도 이미 대출에 허덕이는 농민들 처지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자격이 안 돼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가 속해 있는 <산음골작목반>과 거래하는 서울 강서시장 ‘서부청과’에서 우리를 돕고 싶다며 무이자로 자금을 내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자금이 농협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농협 심사에 걸리는 거죠. 담보나 이런 게 없는 농민들은 그걸 받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농협 통하지 말고 바로 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안 된대서 그냥 없던 얘기로 끝냈어요. 구례군이 수해 한 달 만에 각 농가에 돈을 지급한 건 굉장히 빠른 대응이었죠. 우리는 두 달이 다 가도록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데.”
발 빠른 초기 대응이 부족해도 대신 중장기적 계획이 명확하면 마음이 좀 놓이련만, 이종혁 농부가 보기에는 “영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심지어 계획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4개 마을에서 진행된 ‘하우스 공동철거’를 일례로 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공동철거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군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공동철거에 참여하면 재난지원금 중 철거비가 제외되고, 개인이 철거할 경우는 철거비를 받긴 하지만 그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고. 또 누가 ‘철거 이후 지원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그건 아직 계획이 없대요.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게, 올해 농사를 망치고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거든요? 공동철거는 군에서 빨리 철거를 해줘서 좋긴 하지만 지원금에서 철거비가 빠지면 내가 받을 지원금이 얼마나 될지,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죠. 만약 그 돈이 너무 적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철거를 하고 파이프라도 펴서 중고로 하우스를 짓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군의 지원 예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경우에 지원을 해주고 어디까지 해줄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니까 공동철거가 나을지 개인 철거가 나을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상황이 이러니까 선택의 여지 없이 일단 철거부터 빨리하자는 분위기로 가더라고요.”

군에서 진행한 ‘하우스 공동철거’ 현장. 철거 이후의 지원 계획을 궁금해하는 농민들에게 군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만 했다. (사진 유창윤)
“구례에 비하면 산청은 초반에 너무 조용했죠”
앞에서 잠깐 구례 사례를 이야기했듯, 이종혁 농부는 이번 수해를 겪으면서 몇 년 전 비슷한 일을 경험한 ‘구례’를 자주 떠올렸다. 섬진강댐 방류와 제방 유실로 구례읍을 비롯해 강 유역의 면들이 큰 수해를 입은 건 5년 전인 2020년 8월 8일의 일이다. 당시 주민들은 충분한 사전 예고 없이 무분별하게 섬진강댐을 방류한 것이 수해의 원인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이는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군 대책위원회>을 구성하여 민간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이례적인 폭우에 댐 방류 문제가 겹쳐져 있는 것은 구례와 산청의 공통점이나, “비교적 분명하게 섬진강댐 방류가 수해 원인으로 밝혀진 구례와 달리 산청은 현재 남강댐의 늦은 수문 개방에 혐의를 두고 이를 따지는 수준이어서 아직 구례만큼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있지는 않다”고 이종혁 씨는 말한다.
“또 산청은 같은 수해라도 지역마다 조금씩 상황이 다르거든요. 산사태가 가장 큰 문제인 곳도 있고, 그냥 물이 찼다가 빠진 단순 침수 지역도 있고, 4개 마을처럼 하우스 피해가 큰 곳도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이 다 같이 한목소리를 내기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구례 농민회장과 친분이 있어 이번에 전화로 묻기도 하고 당시 상황을 기록해둔 책자를 구해 읽어보기도 했는데, 제가 느낀 건 구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의 역량이 어려운 상황에서 돋보였다는 거예요. 군이 손해사정사를 고용해서 피해조사를 하게끔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반면에 산청은 주민들 개개인이 면사무소에 찾아가서 신고하는 식으로 하다 보니까 정확한 피해조사가 이루어지기 어려웠죠. 지원금이 지급되고 나서도 주민들 사이에서 계속 형평성과 투명성을 따지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고요.”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의 대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주민과 활동가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뒷받침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이 이종혁 농부가 구례와 산청 사례를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구례의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은 수해 이후 며칠 만에 대책위를 만들어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와 싸울 것인가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산청은 초반에 “너무 조용했다.”
“물론 의료사협(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그늘과언덕 같은 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맞아요. 그렇지만 <농민회>도 그렇고 우선은 개개인이 복구하는 데 바빠서 결집이 잘 안 됐던 건 사실이에요.”

수해 초반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산청군농민회>는 이후 여러 농민단체와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추석 전에는 각 마을을 돌면서 ‘칼 갈아주기’ 활동을 벌였다.
이종혁 씨가 농민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여러 농민단체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이제라도 농민 스스로 나서서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키워 산청군과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9월 1일에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이하 산청군대책위)>가 만들어진 것은 그 작은 성과라 할 만하다. <산청군농민회>를 비롯해 <한국농업경영인회>, <쌀전업농>, <한우협회>, <딸기연합회> 같은 농민단체가 폭넓게 참여하고 있는 <산청군대책위>는 발족 이후 곧바로 군수와의 면담을 추진했으며, 지난 11월 3일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 앞에서 열린 ‘남강댐 상류지역 주민 총궐기대회’도 <4개마을 대책위>와 함께 준비해 치러냈다. 그간의 ‘조용함’이 무색하게 이날 대회에 참석한 인원은 산청군을 비롯해 하동, 진주 등 인근 지역 농민들까지 합쳐서 450여 명에 이르렀다.
군과 주민이 처음으로 한목소리 낸 ‘총궐기대회’
‘11.3 총궐기대회’는 폭우가 쏟아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가 수문 개방 운영을 잘못하여 상류 지역의 피해가 커졌음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남강댐의 수문 관리가 탄력적으로 이루어져 19일 전에 물을 충분히 빼뒀더라면 산청의 피해는 훨씬 적었”을 거라는 얘기다. 대회는 또한 “우리는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 변명하는 남강댐지사에 “매뉴얼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매뉴얼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총궐기대회는 <4개마을 대책위>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어요. 거기에 <산청군대책위>가 결합해서 같이 준비를 한 거죠. 주민들만의 집회가 아니라 산청군 전체가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군수와 군의원도 모두 참석했어요. 산청군민이 가장 많았지만 하동과 진주 지역 농민회에서도 와주었고요. 사실은 대회 전에 남강댐지사 쪽에서 연락이 와서 군수하고 다 같이 보는 자리가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도 댐 관계자는 똑같은 얘길 하더라고요. 남강댐과 산청의 피해는 무관하다, 우리는 매뉴얼대로 일했다는 거예요. 그 말에 한 농민이 분노해서 고함을 치는 바람에 면담이 원활하게 진행되진 못했어요. 대회 당일에도 지사장이 잠깐 나왔는데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해서 주민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죠.”


11월 3일 ‘남강댐 상류지역 주민 총궐기대회’에 모인 산청군민과 하동 및 진주 지역 농민들(왼).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수해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오).
수해 이후 처음 열린 집회에 많은 이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 것은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종혁 농부는 그로 인해 문제가 금세 해결되거나 상황이 크게 좋아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눈에 띄는 성과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부분에서 변화의 작은 씨앗을 본다. <산청군대책위> 사무국장으로서 총궐기대회의 실무를 담당했던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대회를 계기로 농민회와 농민들이 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농민회가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면서도 편견과 거부감을 지닌 분들이 꽤 있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농민회가 실무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다 보니 그런 인식이 많이 희석된 거 같아요. 솔직히 저는 지금껏 농민회 활동을 해오면서도 사람들에게 농민회를 소개하거나 가입을 권유하는 데는 소극적이었어요. 내가 말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컸던 거죠. 그런데 제게 먼저 다가와서 농민회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가입 방법을 물어보는 분들을 보면서, 앞으로는 두려움 없이 농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구례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가 많이 고민하고 배운 게 있다면 ‘어떻게 조직을 만들어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거든요.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도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다시 조용해진 산청, 그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며
수해 이후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선 지금. 엄청난 일을 겪고도 어떻게든 농사를 이어가게 된 농민들은 부지깽이마저 손을 보태야 하는 분주한 시기를 맞아 묵묵히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글렀으나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농민들은 또 그들대로 하우스를 새로 짓고 딸기 어미묘를 키울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11월 3일의 열기와 함성은 가라앉고 산청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4개마을 대책위>는 한국수자원공사와 금호건설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을 계속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한국수자원공사를 찾아가 남강댐 상류 지역 문제를 이슈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탄에 잠긴 농민들의 손을 뜨겁게 맞잡아주었던 <의료사협> 등 시민단체들은 ‘수해 기록 작업과 재난 예방 및 대응에 관한 조사연구’를 통해 더 나은 지역 공동체를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저는 <산청군대책위>가 조만간 군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하는 공식적인 토론회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소통만 원활해도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많은데 지금은 단절돼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토론회를 통해 상호소통의 물꼬를 트고, 그걸 바탕으로 현장과 동떨어진 재난 관련 정책과 제도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좋겠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산청군농민회 신안면지회’를 만들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어요. 수해와 그 이후를 경험하면서 제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셈이죠.”
하우스 공동철거가 끝난 4개 마을 주변은 애초부터 거기에 하우스는 없었던 듯 빈 들판이 되어 늦가을의 서리와 찬바람을 맞고 있다. 지금은 비록 한없이 스산해 보이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저 땅에도 온갖 생명이 깃들지 않을까.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산청 또한 그 안에 뜨겁게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품고 있지는 않을까. 이종혁 농부는 이렇게 되뇌며 자신의 활동 기반인 농민회와 대책위, 의료사협과 그늘과언덕 같은 조직을 떠올린다. 그리고 잊지 않기로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현안 해결을 우선시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역량을 키우는 게 지역의 희망이라는 것을. 그것이 결국은 공동선과 모두를 위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리라는 것을.
** 위의 글은 8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모두 세 차례의 대면 및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 이종혁 농부는 최근 쌀을 거두었는데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예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딸기도 수해의 영향인지 정식한 모종이 많이 죽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고요. 그래도 <산청군대책위>와 <4개마을 대책위>가 함께 준비한 ‘11.3 총궐기대회’를 잘 끝내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두 아이와 감 따는 정겨운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글쓴이_ 자야
함양에 산 지 17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시민사회의 힘이죠!”
신안면 문대마을 딸기 농부 이종혁
글/ 자야
문대마을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산청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이종혁 농부.
지난 9월 1일에 구성된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에서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종혁(40) 농부가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건 7월 21일이었다. 산청의 수해 소식이 연일 신문지면과 방송의 주요 뉴스를 차지하던 때. 신안면 문대마을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산청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그는, 그날 오후에 있었던 일을 깊은 탄식과 함께 풀어놓았다. 짧게 요약하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본 청현마을에 온다는 소식에 그 일대 농민들을 비롯한 수십 명이 모여 기다렸으나, 송 장관이 마을 근처까지만 오고 돌아가는 바람에 그냥 해산했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한두 시부터 모여 있었어요. 비 온 뒤 기온이 올라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마냥 기다린 거예요. 장관이 온다니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죠. 기다리는 장관은 안 오고 먼저 지역 국회의원이 와서는 웃으면서 악수 몇 번 하고 가더라고요. 공무원이며 농협 관계자들이 타고 온 차가 많아서 인근 주민들이 왔다 갔다 하는 데 방해가 됐지만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네 시 반이 넘어갔을 때 마을 대책위 관계자가 누구랑 통화를 하더니 ‘장관이 돌아갔다’고 소리를 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아예 안 온 게 아니라 마을 근처 다리까지는 왔더라고요. 거기 서서 피해 상황을 내려다보고 그냥 간 거죠. 그 다리에서 우리가 서 있던 곳은 겨우 8백 미터 정도였거든요. 차로는 일이 분밖에 안 걸리는데 그거 오는 게 뭐 어렵다고…….”
땡볕 아래 기다림이 깊은 슬픔으로
나중에 듣기로 그날 장관은 군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고 한다. 분노한 농민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했다는 말도 들렸다. 해명인지 변명인지 모를 그 말에 이종혁 농부는 “미칠 노릇”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다른 이도 아닌 농정을 책임져야 할 장관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절망에 빠진 농민들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였다.
7월 19일 폭우가 내리고 제방이 터져 물난리가 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는 아직 전기도 물도 복구되지 않은 때였다. 그날 타는 듯한 뙤약볕에 두세 시간을 서성이며 비지땀을 흘린 이들은 집에 가서 샤워나 제대로 했을까. 하우스는 물론이고 집마저 침수된 이들은 어디서 밤을 보내며 다친 마음을 삭일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종혁 농부는 여전히 화가 나고 슬프기까지 하다.
“사실 저는 그날 장관이 온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농정신문> 기자들이 수해 취재하러 왔길래 피해 현장 안내한다고 청현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거예요. 이미 공무원들이 많이 와 있더라고요. 농협 조합장도 오고 인근 마을 사람들도 많이 와 있고. 그걸 보고 기자들과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게 된 건데 너무 실망스럽더라고요. 사람들이 모여 있던 데가 어디냐 하면 청현, 야정, 신기, 수대, 이 4개 마을로 통하는 도로거든요. 그 일대를 다 막아놓고 몇 시간을 있었으니 결국은 주민들에게 피해만 준 셈이지 뭡니까.”
그가 말한 4개 마을은 하우스 시설로만 치면 7월 폭우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창윤 농부 인터뷰 참고.) 제방이 터지고 물과 토사가 밀려들면서 촘촘하게 서 있던 딸기 하우스들이 죄다 쓰러져 못 쓰게 되었다. 이종혁 농부는 비 그친 7월 20일 아침에 트럭을 타고 그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그곳에 비하면 물이 차올랐다가 빠진 자신의 농장은 “피해를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라 했다.
하지만 정도가 덜할 뿐 그이 역시 힘든 과정을 거쳤다. 7월 19일 아침부터 농장이 자리한 문대마을은 하늘에서 퍼붓는 비와 산에서 쏟아지는 물로 도로가 침수된 상황이어서, 그는 “함께 일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을 원산마을 부모님 댁에 데려다주고 네댓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원지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당시 농장 가까운 데 사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 그의 하우스 전부가 황톳빛 물에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일 아침 이종혁 씨의 모종동 하우스에 물이 차오르는 모습(왼). 오후에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에는 하우스 대신 황톳빛 물만 가득하다(오).
(이하 사진은 이종혁 농부 제공)
다음날 물은 빠졌지만 애써 키운 모종들은 진흙투성이로 변해버렸고 하우스와 창고 또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디에나 엉겨 붙어 있는 토사를 제거하고 쓰레기 치우는 일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모임 <있다> 회원들이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는 모종 씻어내는 일에 주력했는데, 최대한 살린다고 했는데도 3분의 1 정도는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모종들도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보통 9월 초에 모종을 옮겨 심거든요. 지금 날이 엄청 뜨겁고 점점 기온이 오르고 있어서 그때까지 얼마나 살아남을지 잘 모르겠어요. 부족한 건 사다 심어야 하는데 제가 키우는 ‘장희’는 워낙 드물어서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저는 사정이 괜찮은 편이죠. 워낙 심하게 피해 본 분들이 많으니까요. 같은 작목반 회원인 한 분은 작업장에 집까지 침수돼서 잘 데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군에서 임시거주지를 해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아예 없었대요. 제가 면사무소에 요청해보라고 해서 그분이 면에 전화했는데 담당자가 접수하라는 말만 하고는 끝이었다 하고요. 산사태처럼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은 경우는 임시대피소를 해준 것 같던데, 제가 알기로는 개개인이 겪은 피해에 대해서는 따로 안내나 조치가 없었어요.”
발 빠른 대응도, 중장기적 계획도, 소통도 없어
수해 이후 처음 몇 주는 하우스 복구하랴 모종 구하랴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다”는 이종혁 농부는 농장일이 얼추 수습되면서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야정마을을 중심으로 구성된 <4개마을 수해 비상대책위(이하 4개마을 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고 평소 알고 지내온 농민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재난에 대응하는 지자체의 역량 부족과 주민들과의 소통 부재가 피해 당사자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수해 직후 농민에게는 “비록 금액이 적더라도 현금 지원이 절실”한데, 이에 대한 산청군의 대응은 아쉽기만 했다. 몇 년 전 같은 수해를 겪은 구례군은 한 달 만에 각 농가에 100만 원씩 지급했으나 산청군에서는 대출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종혁 농부에 따르면 “아무리 ‘무이자’니 ‘저리’니 해도 이미 대출에 허덕이는 농민들 처지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자격이 안 돼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가 속해 있는 <산음골작목반>과 거래하는 서울 강서시장 ‘서부청과’에서 우리를 돕고 싶다며 무이자로 자금을 내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자금이 농협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농협 심사에 걸리는 거죠. 담보나 이런 게 없는 농민들은 그걸 받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농협 통하지 말고 바로 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건 안 된대서 그냥 없던 얘기로 끝냈어요. 구례군이 수해 한 달 만에 각 농가에 돈을 지급한 건 굉장히 빠른 대응이었죠. 우리는 두 달이 다 가도록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데.”
발 빠른 초기 대응이 부족해도 대신 중장기적 계획이 명확하면 마음이 좀 놓이련만, 이종혁 농부가 보기에는 “영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심지어 계획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4개 마을에서 진행된 ‘하우스 공동철거’를 일례로 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공동철거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군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공동철거에 참여하면 재난지원금 중 철거비가 제외되고, 개인이 철거할 경우는 철거비를 받긴 하지만 그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고. 또 누가 ‘철거 이후 지원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그건 아직 계획이 없대요.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게, 올해 농사를 망치고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거든요? 공동철거는 군에서 빨리 철거를 해줘서 좋긴 하지만 지원금에서 철거비가 빠지면 내가 받을 지원금이 얼마나 될지,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죠. 만약 그 돈이 너무 적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철거를 하고 파이프라도 펴서 중고로 하우스를 짓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군의 지원 예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경우에 지원을 해주고 어디까지 해줄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니까 공동철거가 나을지 개인 철거가 나을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상황이 이러니까 선택의 여지 없이 일단 철거부터 빨리하자는 분위기로 가더라고요.”
군에서 진행한 ‘하우스 공동철거’ 현장. 철거 이후의 지원 계획을 궁금해하는 농민들에게 군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만 했다. (사진 유창윤)
“구례에 비하면 산청은 초반에 너무 조용했죠”
앞에서 잠깐 구례 사례를 이야기했듯, 이종혁 농부는 이번 수해를 겪으면서 몇 년 전 비슷한 일을 경험한 ‘구례’를 자주 떠올렸다. 섬진강댐 방류와 제방 유실로 구례읍을 비롯해 강 유역의 면들이 큰 수해를 입은 건 5년 전인 2020년 8월 8일의 일이다. 당시 주민들은 충분한 사전 예고 없이 무분별하게 섬진강댐을 방류한 것이 수해의 원인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이는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군 대책위원회>을 구성하여 민간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이례적인 폭우에 댐 방류 문제가 겹쳐져 있는 것은 구례와 산청의 공통점이나, “비교적 분명하게 섬진강댐 방류가 수해 원인으로 밝혀진 구례와 달리 산청은 현재 남강댐의 늦은 수문 개방에 혐의를 두고 이를 따지는 수준이어서 아직 구례만큼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있지는 않다”고 이종혁 씨는 말한다.
“또 산청은 같은 수해라도 지역마다 조금씩 상황이 다르거든요. 산사태가 가장 큰 문제인 곳도 있고, 그냥 물이 찼다가 빠진 단순 침수 지역도 있고, 4개 마을처럼 하우스 피해가 큰 곳도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이 다 같이 한목소리를 내기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구례 농민회장과 친분이 있어 이번에 전화로 묻기도 하고 당시 상황을 기록해둔 책자를 구해 읽어보기도 했는데, 제가 느낀 건 구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의 역량이 어려운 상황에서 돋보였다는 거예요. 군이 손해사정사를 고용해서 피해조사를 하게끔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반면에 산청은 주민들 개개인이 면사무소에 찾아가서 신고하는 식으로 하다 보니까 정확한 피해조사가 이루어지기 어려웠죠. 지원금이 지급되고 나서도 주민들 사이에서 계속 형평성과 투명성을 따지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고요.”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의 대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주민과 활동가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뒷받침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이 이종혁 농부가 구례와 산청 사례를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구례의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은 수해 이후 며칠 만에 대책위를 만들어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와 싸울 것인가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산청은 초반에 “너무 조용했다.”
“물론 의료사협(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그늘과언덕 같은 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맞아요. 그렇지만 <농민회>도 그렇고 우선은 개개인이 복구하는 데 바빠서 결집이 잘 안 됐던 건 사실이에요.”
수해 초반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산청군농민회>는 이후 여러 농민단체와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추석 전에는 각 마을을 돌면서 ‘칼 갈아주기’ 활동을 벌였다.
이종혁 씨가 농민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여러 농민단체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이제라도 농민 스스로 나서서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키워 산청군과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9월 1일에 <7.19 산청군 수해대책위원회(이하 산청군대책위)>가 만들어진 것은 그 작은 성과라 할 만하다. <산청군농민회>를 비롯해 <한국농업경영인회>, <쌀전업농>, <한우협회>, <딸기연합회> 같은 농민단체가 폭넓게 참여하고 있는 <산청군대책위>는 발족 이후 곧바로 군수와의 면담을 추진했으며, 지난 11월 3일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 앞에서 열린 ‘남강댐 상류지역 주민 총궐기대회’도 <4개마을 대책위>와 함께 준비해 치러냈다. 그간의 ‘조용함’이 무색하게 이날 대회에 참석한 인원은 산청군을 비롯해 하동, 진주 등 인근 지역 농민들까지 합쳐서 450여 명에 이르렀다.
군과 주민이 처음으로 한목소리 낸 ‘총궐기대회’
‘11.3 총궐기대회’는 폭우가 쏟아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가 수문 개방 운영을 잘못하여 상류 지역의 피해가 커졌음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남강댐의 수문 관리가 탄력적으로 이루어져 19일 전에 물을 충분히 빼뒀더라면 산청의 피해는 훨씬 적었”을 거라는 얘기다. 대회는 또한 “우리는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 변명하는 남강댐지사에 “매뉴얼대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매뉴얼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총궐기대회는 <4개마을 대책위>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어요. 거기에 <산청군대책위>가 결합해서 같이 준비를 한 거죠. 주민들만의 집회가 아니라 산청군 전체가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군수와 군의원도 모두 참석했어요. 산청군민이 가장 많았지만 하동과 진주 지역 농민회에서도 와주었고요. 사실은 대회 전에 남강댐지사 쪽에서 연락이 와서 군수하고 다 같이 보는 자리가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도 댐 관계자는 똑같은 얘길 하더라고요. 남강댐과 산청의 피해는 무관하다, 우리는 매뉴얼대로 일했다는 거예요. 그 말에 한 농민이 분노해서 고함을 치는 바람에 면담이 원활하게 진행되진 못했어요. 대회 당일에도 지사장이 잠깐 나왔는데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해서 주민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죠.”
11월 3일 ‘남강댐 상류지역 주민 총궐기대회’에 모인 산청군민과 하동 및 진주 지역 농민들(왼).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수해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오).
수해 이후 처음 열린 집회에 많은 이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 것은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종혁 농부는 그로 인해 문제가 금세 해결되거나 상황이 크게 좋아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눈에 띄는 성과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부분에서 변화의 작은 씨앗을 본다. <산청군대책위> 사무국장으로서 총궐기대회의 실무를 담당했던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대회를 계기로 농민회와 농민들이 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농민회가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면서도 편견과 거부감을 지닌 분들이 꽤 있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농민회가 실무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다 보니 그런 인식이 많이 희석된 거 같아요. 솔직히 저는 지금껏 농민회 활동을 해오면서도 사람들에게 농민회를 소개하거나 가입을 권유하는 데는 소극적이었어요. 내가 말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컸던 거죠. 그런데 제게 먼저 다가와서 농민회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가입 방법을 물어보는 분들을 보면서, 앞으로는 두려움 없이 농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구례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가 많이 고민하고 배운 게 있다면 ‘어떻게 조직을 만들어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거든요.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도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다시 조용해진 산청, 그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며
수해 이후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선 지금. 엄청난 일을 겪고도 어떻게든 농사를 이어가게 된 농민들은 부지깽이마저 손을 보태야 하는 분주한 시기를 맞아 묵묵히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글렀으나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농민들은 또 그들대로 하우스를 새로 짓고 딸기 어미묘를 키울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11월 3일의 열기와 함성은 가라앉고 산청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4개마을 대책위>는 한국수자원공사와 금호건설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을 계속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한국수자원공사를 찾아가 남강댐 상류 지역 문제를 이슈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탄에 잠긴 농민들의 손을 뜨겁게 맞잡아주었던 <의료사협> 등 시민단체들은 ‘수해 기록 작업과 재난 예방 및 대응에 관한 조사연구’를 통해 더 나은 지역 공동체를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저는 <산청군대책위>가 조만간 군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하는 공식적인 토론회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소통만 원활해도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많은데 지금은 단절돼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토론회를 통해 상호소통의 물꼬를 트고, 그걸 바탕으로 현장과 동떨어진 재난 관련 정책과 제도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좋겠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산청군농민회 신안면지회’를 만들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어요. 수해와 그 이후를 경험하면서 제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셈이죠.”
하우스 공동철거가 끝난 4개 마을 주변은 애초부터 거기에 하우스는 없었던 듯 빈 들판이 되어 늦가을의 서리와 찬바람을 맞고 있다. 지금은 비록 한없이 스산해 보이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저 땅에도 온갖 생명이 깃들지 않을까.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산청 또한 그 안에 뜨겁게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품고 있지는 않을까. 이종혁 농부는 이렇게 되뇌며 자신의 활동 기반인 농민회와 대책위, 의료사협과 그늘과언덕 같은 조직을 떠올린다. 그리고 잊지 않기로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현안 해결을 우선시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역량을 키우는 게 지역의 희망이라는 것을. 그것이 결국은 공동선과 모두를 위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리라는 것을.
** 위의 글은 8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모두 세 차례의 대면 및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 이종혁 농부는 최근 쌀을 거두었는데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예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딸기도 수해의 영향인지 정식한 모종이 많이 죽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고요. 그래도 <산청군대책위>와 <4개마을 대책위>가 함께 준비한 ‘11.3 총궐기대회’를 잘 끝내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두 아이와 감 따는 정겨운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