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사업[로컬X여성X삶 포럼 2025/참여자후기]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이야기 말고, 진짜 너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해 - 전소현

2025-12-04


얼마 전에 처음 보는 대표님 앞에서 오열했다. “지역을 살린다면서 나를 살리는 건 안 되고 있다는 게...” 사실 막걸리 한 잔에 취해서 어쩌다 울컥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고작 인간인 주제에 뭘 지역을 살리냐 마냐 지만은, 삶을 사랑해서 지역과 잘 지내고 싶고, 그러면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랄까. 문제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잊은 채로 바삐 움직이다가, 일과 함께 삭제된 시간 뒤에 산산조각 난 몸과 마음을 마주했을 때의 회의감과 허망함이다.


누구나 겪는 일이겠고, 남들이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까 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막걸리 한 잔에 울컥 그리고 왈칵. 사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울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나 이제 이런 얘기로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 며칠 후에, 얼마 후에, 언제든지 이 마음을 모아두었다가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뭐 얘기뿐이겠어.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 공감되는 문장을 찾아 또 재미난 모임을 기획하거나 진짜 해결법을 찾는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 이번 2025 로컬여성삶 포럼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했던 생각이다. 


서로의 증인이 되고, 대신 마음을 번역해 주는 관계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나의 안에 움트기 시작할 때쯤 2025 로컬여성삶 포럼을 만났다. 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지, 그래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나만 혼자 애쓰고 있나 vs 나만 혼자 멈춰 서 있나”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는 날들. 이라는 문장을 따라 지리산 이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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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브레멘 음악대에서 선봉장을 맡았을 것 같은 은진이 헤실헤실 웃으며 처음 만난 사람 간의 어색한 공기를 보드랍게 풀어준다. 포럼 홍보물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 한편에 갖고 있던 떨림, 신청서를 쓰는 순간에도 가도 될까 말까 고민하게 했던 낯섦에 대한 불안, 짐을 부둥켜안고 이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차오르는 긴장감, 포럼에 와서도 ‘ 나 괜히 왔나, 잘 온 걸까’ 고민하며 요동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완성한 어색한 공기는 다정한 대화로 따뜻하게 데워진다.


우리는 할 말이 많다. 자리가 주어지지 않아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남이 원하는 그림을 강조해야 해서.... 잡다한 이유로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많다. 더군다나 활동가, 대표자, 지원사업 성과 발표자 등등 다양한 역할 옷을 입으면 책임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이 쌓인다. 로컬여성삶 포럼에 온 이유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나 속에 맺혀있지만 자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발견하여 내뱉기 위함이다. 


처음 본 대표님 앞에서 왈칵 쏟아낸 말도, 이 포럼을 통해 길어 올려진 것이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나 매 순간 좋은 자극을 얻었다. ‘너도 말해. 진짜 속에 있는 얘기를 해도 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이야기 말고, 진짜 너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해’  활동 보고식의 발표가 아닌, 나라는 존재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고백하는 [오늘의 마주침]은 내 안의 목소리를 일깨웠다. 구례 사는 옥수수, 의성 사는 디디, 울주 사는 현이 영순, 제주 사는 나루, 태백 사는 김이동. 지역이 어떻고 활동이 어떤지 보다, 자기 삶이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여정과 의미를 말해주던 사람들. 그 안에 자기만의 언어와 질문, 스스로 찾아낸 답과 실천까지 그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삶'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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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럼의 찐(진-짜로 좋은 부분)은 마주침의 눈빛 교환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다. 밥을 먹거나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마주 보고 대화 나누며 교감하는 사람들의 눈빛 교환이 무척 따수웠다. 어디선가 자꾸 “그랬구나 그랬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도 로컬여성삶 포럼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말해주었고, 또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그랬구나 그랬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옆에 있어도 삶은 살아진다. 무턱대고 감 놔라 배 놔라 일방적인 조언을 폭격하는 사람, 자신의 잣대를 기준으로 남의 삶의 가치를 평가 절하 하는 사람, 눈과 귀를 막고 등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을 지나서, “그랬구나 그랬어” 한 마디를 만나면 내 본래 존재의 날개가 활짝 펴진다. 그러니 로컬여성삶 포럼과 같은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다들 오밀조밀 모여 저마다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햇살이 되고 그늘이 되어준다. 그리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고맙다고 말한다. 이게 존재로서의 자유가 만드는 풍경이다.


우리의 존재를 ‘말하기’로만 끝낸다면 지리산이음이 아니다.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실천의 길을 만드는 지리산 이음은 이번에 2025 로컬X여성X삶 선언문 만들기 시간을 마련했다. 세 번의 [오늘의 마주침]은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 선언문 만들기는 고백하는 시간이다. 한데 모인 사람끼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결 고리를 찾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자 다시 모일 수 있는 구심점. 이야기하면서 흐릿했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공감받고 싶었던 마음의 문장을 발견하고,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문제와 실천을 찾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 어쩌면 로컬여성삶 포럼이 만들어 주려고 한 ‘연결감’은 내 주변에 손뼉을 마주치며 ‘맞아맞아!’ 라고 말할 수 있는 동료를 찾을 수 있는 그물망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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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의 끝에는 “연결감을 안고 각자의 지역으로”라고 적혀있다. 대화의 시간, 노래 들으며 밥 먹는 시간, 요리하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 모두 깨알같이 [같이하기] 시간으로 분류된 이유도 연결감이 중요하기 때문일 테다. 그건 무엇이든 무조건 같이해야만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더 이상 당신의 삶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다정한 온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찾으면 된다. 이번에 마주친 문장들에 대해 더 이야기 해줄 책, 사람, 나눌만한 자리, 찾다 보면 또 연결된다. 흘러흘러 포럼에서 만난 사람들을 또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면 2026 로컬여성삶 포럼을 기다리면 된다! 

 

아참, 먹느라 바빠서 먼지의 라디오 시간에 신청곡을 제출하지 못했다. 2박 3일의 포럼 내내 진수성찬에 눈이 돌아가서 밥을 2공기씩 먹었다. 지각생이 제출할 곡은 송소희의 ‘Not a Dream’이다. ‘나의 안식이 기다리지, 있나? 내게도 드디어. 구름곶 너머 꿈이 아니야. 나의 날 온 거야.’ 








글쓴이_전소현

집이 없는 게 취미인 로컬생활자 소피입니다.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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