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희망 없는 세상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 산청 수해 농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2025-12-23


산청, 수해 그 이후 - 여는 말


통행이 통제된 도로가 여전히 많았다. 아직 상수도가 복구되지 않았다는 마을도 있었다. 가까운 산과 언덕 곳곳에 산사태로 흘러내린 붉은 흙이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화에 목장갑, 흙투성이 옷차림을 하고 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기였다. 

폭우로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된 이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경남 산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산청 의료사협)’과 함께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에 단체 ‘그늘과 언덕’은 ‘지리산이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아마 2020년 구례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산청 수해 복구를 응원하며 엿새동안 산청에 식사를 챙겨 준 하동 HAB(Happy All Beings)의 수진이 수해 복구 활동의 과정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산청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정신도 없을 것 같아 자료를 모아 정리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늘과 언덕’은 급히 ‘산청 의료사협’과 논의하여 수해와 그 복구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기록활동가를 섭외했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동과 함양에서 수진과 자야, 두 분의 기록활동가가 기꺼이 기록작업을 맡아 주셨다. ‘지리산이음’과 ‘산청 의료사협’이 지원하고 ‘그늘과 언덕’이 주관단체로 진행하는 산청의 수해와 그 회복과 복구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 기록을 읽는 이들에게 당시 기준으로 ‘현재의 목소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여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가 당사자 또는 이웃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산청 수해 농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글/ 자야


 


“함양은 괜찮냐”는 메시지를 유독 많이 받은 한 해였다. 산과 들과 마을에 봄꽃들이 하나둘 수줍게 피어나던 3월 말. 이웃 지역인 산청에 산불이 나고 화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갈 즈음, 고개를 들면 연무로 뿌예진 하늘이 보였다. 7월 중순에는 또 산청에서 들려오는 수해 소식에 초조한 마음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야 했다. 그 당시 가족과 지인들이 보내오는 안부 확인 문자에 “여긴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있는 곳이 정말로 괜찮은지 자신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나만 괜찮으면 그만인 거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웅웅댔기 때문이다.


산청 수해 기록에 참여한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내면의 혼란과 죄책감과 소란스러움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의 한복판에 있는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솔직히 두려웠으나,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음을(『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정) 겸허히 받아들이며 7인의 농민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그 시간을 되짚어보는 가운데 다섯 편의 인터뷰 글에 미처 담지 못했거나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3개월간의 기록 활동을 매듭지으려 한다.



뉴스 바깥의 수많은 ‘혜진’들을 기억하기


40대 여성 농부 혜진(가명) 씨를 만난 것은 10월이 끝나갈 때였다. 원지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 그와 남편이 꾸려가는 농장이 있었다. 잘 정비된 몇 동의 하우스와 그 안에서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는 딸기 모종들만 봐서는 백일 전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농장 한쪽에 방치된 하우스처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수해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하우스 너머가 바로 제방이거든요. 여기는 신안면처럼 제방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덕천강이 (제방 위로) 넘쳤어요. 마을 분들 얘기로는 70년을 살았는데 강이 넘친 건 처음이래요. 저희 농장이 제방과 가장 가까운 데 있어서 피해를 많이 봤죠. 저희랑 옆집 빼고 나머지는 지대가 높아서 괜찮았고요. 동네에서는 주민 전체가 수해를 입은 게 아니어서 그런지 관심이 별로 없으시더라고요. 그나마 하동 사는 지인이 자원봉사 인력을 신청하라고 알려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어요. 하우스 다섯 동에 토사가 쌓여 엉망이다. 그랬더니 다음날 해병대원 몇십 명이 와서 치우는 걸 많이 도와주셨죠.” 



타지에서 산청군 단성면으로 귀농한 지 5년 된 혜진 부부는 지난 4년간 임대로 딸기 농사를 짓다가 올해 봄 대출을 받아 1,200평 땅을 사서 이곳에 들어왔다. 육묘장으로 쓸 땅 900여 평도 역시 대출로 장기임대를 했다. 마침내 ‘내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꿈에 부풀어 하우스 설비공사를 서두른 두 사람은, 그러나 “99퍼센트가 완공되고 전선만 이으면 되는” 상황에서 물난리를 겪고 만다.

 

비가 쏟아지던 7월 19일. 딸기 일을 도우러 올라온 어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농장에 나와 있던 혜진 씨는 “배수로 파고 하우스에서 물 퍼내던” 중에 강물이 넘치고 있음을 알았다. 물이 무릎에서 가슴까지 빠르게 차오르더니 순식간에 “냉장고가 쓰러지고 유동팬이며 난방기에 연막기 같은 기계들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고. 다음날 살펴보니 하우스 파이프는 여기저기 비틀린 데가 많아 일일이 손을 써야 했고, 새로 장만한 기계들은 대부분 떠내려가거나 진흙에 처박혀 쓸 수 없게 돼버렸다.

 

“보험으로 어느 정도는 보상될 거라 믿었는데 시설이 100퍼센트 완공된 상태가 아니면 보상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전선만 이으면 끝난다, 장마 때문에 작업을 미루어서 어쩔 수 없이 늦어진 거다, 이렇게 사정을 얘기해도 규정상 안 된다는 말만 하더라고요. 마침 면사무소에서 피해조사를 하길래 사진이랑 동영상이랑 열심히 첨부해서 신청서 작성하고 담당자에게 저희 상황을 자세히 얘기했죠. 그랬더니 처음엔 피해 금액의 상당 부분을 지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한시름 놓았는데, 나중에는 피해는 인정되나 보험에 가입돼 있어서 지원받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험사에서는 보상을 못 해준다고 하고, 군에서는 보험 때문에 지원을 못 해준다고 하니 진짜 암담했죠.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죄 산청 수해 소식인데 저희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도 너무 속상했어요.”

 

 

“수해보다 수해 이후에 겪는 일들이 더 힘들어요”

 

같은 재난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피해가 가장 심각해 보이는 곳을 먼저 비추기 마련이고, 산청의 경우 초점은 산사태가 났거나 하우스가 대규모로 밀집된 지역에 맞춰졌다. 이는 물론 이해할 만한 일이나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작은’ 이야기를 지닌, 이를테면 혜진 씨 부부 같은 사람들은 수해 관련 논의나 정책에서 소외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농민 중 다수는 “농사 규모가 작은 이들”이나 “마을 단위가 아닌 개인의 피해로 그친” 경우 “지자체의 지원을 제대로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혜진 씨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관의 재난 대응 매뉴얼이 체계적이지 않고 지원의 기준과 단계가 분명하게 공유되지 않아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언제라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또 넘치는 것 아닌가 싶어 그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제방 옆이라 계속 불안하죠. 비가 많이 올 경우를 대비해 제방과 옹벽 공사를 면에 요청했는데 말로는 보강해준다고 하면서도 언제 해줄 거냐고 물으면 답이 없어요. 또 하우스 말고 임대한 땅 주변은 제방보다 낮아서 전부터 비만 오면 물이 찼거든요. 그쪽을 돋우는 공사를 해달라고 면에 얘기했었는데 그런 건 마을숙원사업으로 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치만 마을 분들은 저희한테 관심이 없고 돈을 그런 데 쓰고 싶어 하지 않아요. 우리가 직접 벽돌을 쌓겠다고 면에 얘기했는데 그것도 안 된대요. 그 와중에 수해를 당한 거고, 지금까지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는 수해보다 수해 이후의 상황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하루는 화를 내고 그다음 날은 직접 찾아가 애걸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다는 것. “우리 부부가 무슨 악덕 민원인이라도 되는 듯 피하거나 귀찮아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모멸감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현실 앞에서 많은 것이 저절로 포기된 지금. 혜진 씨 부부는 “이제 농사나 열심히 짓자”는 생각으로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또다시 대출을 받아 딸기 모종을 심은 상황이기에 “올해 농사까지 망치면 정말 끝”이라는 절박함이 그들을 하우스 안에 붙잡아두고 있다 할까.

 

“남편도 저도 농사가 좋고 적성에 맞아서 이 길을 선택한 거고, 잘할 자신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물은 논과 밭과 하우스를 침수시키지만, 수해 이후에 경험하는 어떤 일들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사진제공 박창웅) 



경제적 손실 못지않게 쓰라린 마음의 상처   

 

수해로 인해 농민들이 떠안게 된 가장 큰 부담이 경제적 손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농민들은 누구나 군의 긴급지원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실망스러웠다고, 지자체가 재난지원금의 명확한 규모와 계획을 밝히지 못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혼란과 갈등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피해 농민들이 느끼는 고통이 단지 경제적인 손실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고백한다. 


앞서 나간 인터뷰 기사 중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자신을 오랜 시간 기다려온 농민들을 지척에 두고도 그냥 돌아간 일에 대해 언급한 이종혁 농부는, 이를 주제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 마지막 문단에 “어찌 믿고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는지 슬프기만 하다”고 썼다. 또 한 농민은 인터뷰 중 “수해 직후 일주일 사이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들이 거의 다 왔다 갔다”며 “차에서 내릴 때는 구두 차림인데 사진 찍을 때 장화로 갈아 신는 이도 있더라”고 했다. 이런 에피소드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헤아리기는커녕 들러리 취급하는, 흔히 말해 ‘진정성’이 결여된 이 사회의 그늘진 면모를 보여준다. 그 순간에 농민들이 입은 생채기는 “어디서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탄식한 혜진 씨 마음에 박힌 가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명 ‘높은 분’이나 ‘관’의 무신경하고 무책임한 태도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타지에서 수해 소식을 듣고 연락해오는 친인척과 지인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수해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이웃들의 ‘어떤’ 말들은 위로 대신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에 대해 몇몇 농민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뉴스 보고 전화했다고, 너 괜찮냐고 물어본 다음에 바로 나오는 소리가 ‘보상받았냐’예요. 열이면 아홉은 꼭 보상을 물어봐요. 아직 받은 게 없다고 그러면 얼마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수해 이후 한 달 동안 전화로 그 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는 이게 너무 싫어서 아예 단체문자를 보내셨대요. 아직 보상은 안 되었으니 그런 걸 묻는 전화는 안 주셔도 된다고, 보상받으면 추후 연락 드리겠다고요. 오죽하면 그런 문자를 돌렸겠습니까.” 


“수해를 입지 않은 분들은 저희가 면사무소나 군에 뭔가를 요청하는 걸 안 좋게 보기도 하더라고요. 너희 돈으로 해야지 왜 나랏돈으로 하려고 그러냐는 분도 있고. 더 심하게 피해 본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유난 떤다는 식으로 보는 게 느껴지니까,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위축되고 아예 표현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상실’은 뿌리 깊고 ‘회복’은 멀어   


인터뷰에 응해준 농민들은 대부분 수해 이후 또다시 빚을 내어 농사를 시작했고, 최근의 안부를 묻는 나의 문자에 푸르게 자라나는 모종과 작물 사진을 보내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덧붙였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공공시설의 복구도 빠르게 이루어져 막혔던 곳은 뚫리고 무너지거나 부서진 것들은 재건된 지 오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한 회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수해 이후 “빗방울만 떨어져도 심장이 두근대”고 “혼자 있을 때면 멍해지는” 증세를 호소하는데 이런 것을 다 무시한 채 쉽게 회복을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재난 복구 전문가인 ‘루시 이스트호프’는 자신이 쓴 책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서 “재난으로 인한 상실은 땅과 집 등 형태가 있는 것뿐 아니라 안정감과 신뢰처럼 형태가 없는 것”, 나아가 “재난 이전의 삶, 즉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까지 포함”하기에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곧 피해 당사자를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가 재난 이후 “고통의 만성화와 영속성”을 인지하고 (스스로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중요함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겉으로는 멀쩡해졌으나 많은 것들이 아직 ‘괜찮지 않음’을 알아봐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을 가능케 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인터뷰한 농민들 역시나 자신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도와주려는 모습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렵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망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짊어져야 할 고통과 그로 인한 압박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혜진 씨의 말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제가 앞서 한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신안면에는 공동대책위가 만들어졌잖아요. 그분들이 저보다 더 큰 피해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저는 부럽더라고요. 같이 문제를 논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지난 10월 21일에 열린 <재난의 원인 규명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주민토론회>에 참여한 사람들. 
힘든 상황에서는 함께 모여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터놓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힘과 위로가 된다. (사진제공 김한범)



수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재발을 막는 데는 당연히 복합적인 정책과 기술과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게 무슨 정책이고 어떤 기술이든지 가장 밑바닥에 깔린 전제는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재난 앞에서 취약하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돌볼 때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루시 이스트호프는 위의 책에서 영화 <후크>의 한 장면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영화 <후크>를 볼 때마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릴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성인이 된 피터 팬 역할의 로빈 윌리엄스가 네버랜드를 떠나며 ‘잃어버린 아이들’ 중 가장 어린아이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이다. 피터는 말한다. “너희보다 작은 것들을 전부 돌봐줘.” 그러자 가장 작은 아이 ‘투 스몰’이 묻는다. “그럼 나는 누구를 돌봐야 해?” 피터는 그에게 대답한다. “작은 벌레들을 돌봐줘.”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338쪽)

 

 

모든 이가 자신보다 작은 것을 돌본다면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방송과 신문을 도배하는 아비규환의 현장과 비극을 계량화하여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숫자들은, 당장은 충격을 줄지언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런 가운데 잊히고 지워지는 것은 재난을 몸으로 경험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이야기이다. 7인의 농민과 인터뷰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미지나 숫자가 아닌 바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덕분에 그들을 단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저마다의 이야기와 생의 역사를 지닌 고유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신기하게도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은 차츰 걷히고 연민과 사랑, 존중의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의 머릿속에는 또한 애초의 혼란스러움 대신 이런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구상의 그 어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우리 모두 불안전할지언정 자신보다 작은 것들을 돌보면서 서로를 떠받치는 그물망을 함께 짜나갈 수 있다는 것. 끊임없이 갈라지고 가라앉고 불타오르는 세상에서는 나의 안전에 대한 열망보다 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와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 재난이 곧 일상이 된 희망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순간순간 삶이 주는 기쁨에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은 믿음을 내게 심어준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산청 기록 사업을 통해 그런 분들을 만난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모두에게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모든 이가 자신보다 작고 여린 것을 돌보면서 서로를 떠받치는 그물망을 함께 짜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희망 없는 세상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 아닐까.







글쓴이_ 자야

함양에 산 지 17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 이 인터뷰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의 지원과 '그늘과언덕'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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