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내人터뷰>는 지리산의 품 안에 자리 잡은 마을, 남원시 산내면에 사는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모양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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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지리산 산내를 잇는 조용한 여정
여기 몹시 희미하지만 단호한 발자국이 있다. 오랫동안 때가 되면 새벽밥을 지어먹고 길을 나선 이가 사부작사부작 만들어 낸, 좁고 구불구불하고 아주 기나긴 길.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이 섬세한 발자국 문양 속에는 사실 한 사람이 전 생애를 기울여 만들고 채우고 확장해낸 우주가 들어 있다.

산내의 유일한 옷가게이자 동네 패셔니스타들의 아지트, 천연 면화에서 실을 뽑아 전통적인 인도의 수공예방식으로 짠 카디(Khadi)로 만든 옷을 판매하는 옷가게 ‘노닐다’의 주인이자 에콜로지카‘ecologica’ 라는 브랜드의 창조자인 지영씨 이야기이다. 이 글은 또한 천성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많아 사람들과 광장에서 어울리기를 몹시 어려워하지만 내 울타리 바깥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 책임감으로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왕래하는, 한 사람이 쓴 평화와 사랑의 연대기이도 하다.
카페 ‘히말라야’ 옆 연두색 컨테이너로 상징되던 노닐다가 지리산 산내에 문을 연 지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았다.
초기에는 빈티지 의류와 인도 옷, 개성 넘치는 소품들을 소개하는 작은 가게였지만, 5년 전부터는 건너편의 번듯한 공간으로 넓혀 인도 디자이너들의 수작업 옷을 소개하는 편집숍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간간히 팝업을 통해 수도권·원거리 고객들과 교류하고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저렴한 가격대의 생활복들이 많이 없어서 아쉬우실 거예요. 가격대비 좋은 옷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도 했고 체력도 예전같이 않아 인도 수작업 옷들만 취급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리 되었어요. 토종면화에 베틀로 짜서 만든 옷이라 아무래도 가격대가 있다보니 예전만큼 편하게 발걸음을 하시기 어려우신 것 같아요. 그래도 이 공간이 더 많은 동네분들이 편하게 들러서 차도 마시고 편하게 옷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해요."

2017년 노닐다의 첫 해

부끄러움은 많지만 언제나 찾아오는 사람을 진심으로 환대할 줄 아는 속정이 깊고 다정한 지영씨, 인도에서 호주로, 태국에서 다시 인도를 돌아 산내로, 청춘을 같이한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 배낭을 메고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지영씨는 산내의 히말라야 카페 옆에 터를 잡기 전, 그 긴긴 방랑의 이력을 조금씩 들려주었다.
"남편과는 교회에서 만났어요. 저는 꽤 체제순응적인 사람이었고 남편은 반골 기질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서로 사귄 10년의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당연한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함께 답을 찾는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다르게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이 그때는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배낭을 싸고는 세계 여러 곳을 다니게 되었어요. 2009년 긴긴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하자마자 3일 후 인도로 떠났는데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남편에게 딱 맞는 곳이었죠. 1년간 이어졌던 인도에서의 신혼여행 그리고 그 막바지에 푸쉬카르에서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 블록프린트 천 한장이 지금의 노닐다의 시작이었어요.
나무 도장을 파서 사람이 일일이 찍었다고 하는데 처음엔 거짓말이라 생각했죠. 제 눈에 너무 귀하고 아름다웠는데 정작 파는 이들이 그것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없음이 놀라웠어요. 인도 아플리케 중에 유명한 생명의 나무 작품을 몇 장 사면서 만든 이들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먼 시골의 배워먹지 못한 여자들이 만든다며 심드렁하게 얘기하는 가게 주인의 말에 그 언젠가 꼭 이 멋진 여인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어요."

나무 도장으로 찍어내는 블록프린트 천
인도에서 호주로, 다시 태국으로
"언제나 그랬듯 호주행도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3년을 살았어요. 인도의 수공예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는 열망은 계속 커져만 갔고 나중을 위해 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어요. 이미 이때 수공예로 만든 직물을 다루는 일이 나의 숙명이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호주에 있는 내내 인도 수공업 현장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낮에는 청소 노동자로 밤에는 학생으로 지냈던 호주에서의 시간들은 한 번도 몸을 써서 일을 해 본적이 없었던 제게 평생 육체 노동으로 가족을 건사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인도의 수공예 노동자들을 향한 지금의 마음은 그때 길러진 것 같아요. 노동이 존중받는 호주에서의 경험 덕에 정말 즐겁게 청소일을 했고 제 인생의 가장 자랑스런 이력으로 남았네요."
태국의 빠이는 삶에 지칠 때면 종종 찾아가던 곳이었고, 호주 생활을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빠이로 달려갔다. 배낭여행자들의 무덤으로 불리우는 태국 산골마을 빠이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방콕의 예술가들이 정착하면서 알려지게 된 작고 예쁜 마을인데 대안적인 삶을 꿈꾸던 두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십 수년전의 빠이와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주로 마을 외곽에서 조용히 원주민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겐 여전히 고향같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곳에서 미얀마와 라오스의 수공예무역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네덜란드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고 공정무역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던 지영씨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2014년 인도 수공업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지영씨는 다시 인도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인도. 남인도를 시작으로 구자라트, 라자스탄, 바라나시, 폰디체리로
"나의 상상 속에, 활자 속에 존재하던 것들을 마주하기 위한 여정이었어요. 2010년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온 블록 프린트 천 한장, 그것에 이끌려 힘든지도 모르고 작업장을 찾아다녔어요. 자이뿌르만해도 이천개가 넘는 작업장이 있는데 8월 혹서기에 지도 한장 달랑들고 골목골목을 헤메고 다니다 40도가 넘는 열기에 길에 주저앉은 적도 있었으니 무모하기 짝이 없었죠. 그때부터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장인들을 만나러 오지를 가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유전자조작 면화가 점령한 인도에서 토종면으로 농사 지으시는 구자라트 농부님 (왼)
점점 사라져가는 천연염색 작업장, 4년 전 문을 닫은 인디고 작업장 (오)


물레를 돌리며 손으로 실을 잣는 라바리 할머니 (왼)
가가호호 무식하게 작업장을 찾아 다니던 시절 (오)

파키스탄 국경까지 김지영 씨를 처음 현장으로 인도했던,이 일의 시작이 되어준 아플리케 장인들
"신혼 여행때 40일을 있었던 바라나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4년 만에 다시 찾은 그 곳에서 지금의 근간이 되어준 운명의 책을 만나게 되었어요.. 자그마한 악기 상점 한켠에 놓여있던 작은 책장에 한국어로 된 책이 있어 신기했는데 그때 빌려 온 두 권의 책이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와 ’녹색평론‘이었어요. 대량생산과 기계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손으로 지은 것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들을 가르쳐준, 그리고 획일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삶을 목표로 삼는 사회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독려해준 고마운 책을 결국 제 브랜드 이름으로 삼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첫 인도여행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생태 공동체인 폰디체리의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나무 심는 자원 봉사를 하며 자급자족에 대한 생각, 혹 한국에서 산다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6개월간의 인도여정을 마치고 다시 빠이로 가서 그 곳에서 오래 살아볼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아버지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양의 시목마을, 그리고 산내
"아버지를 참 좋아했고 존경했어요. 살면서 한 번도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셨고, 큰딸인 제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늘 존중해주셨죠. 아버지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돌아볼 것도 없이 바로 태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죠. 그 후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해발 700미터가 넘는 함양의 시목마을 시골집에서 저와 남편 그리고 엄마와 함께 그곳에서 아버지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같이 보냈어요. 말할 수 없이 특별한 시간이었는데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고 그 후 한 7개월 밖에 못 나가고 칩거를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발자국도 발을 떼기 어려울만큼 마음이 무너져있던 시절, 외국에서 공정무역 사업을 하려던 꿈도 의지도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저 하루하루 견디는 일이 버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함양과 가까운 곳에 녹색평론에서 보았던 생태와 환경의 조화를 꿈꾸는 별난 공동체 마을인 산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내와의 인연은 빵아재에서 시작되었어요. 우연히 블로그에서 천연발효종 수업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전화를 해서 참여하고 싶다했더니 한번 와보라 하시더라구요. 그때 함께했던 산내 사람들이 정겨웠고 산내에 살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더니 같이 수업을 받던 상남 언니가 마침 집이 어제 나왔는데 보러 가자고 했어요. 우리의 두 번째 집도 언니가 소개해줬으니 저희의 은인이죠. 2016년 중황 산 속의 오순 언니집 근처에 집주인이 잠시 비워둔 집에서 처음 산내 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옷가게를 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재정과 경험이 쌓이면 에콜로지카라는 이름으로 공정무역을 하고픈 꿈이 있었고 그때까지 뭐라도 해보려던 차에 세상에 예쁜 것들을 모아 파는 가게를 여는 것이 어떠냐는 빵아재 영준샘의 뜬금없는 한마디가 마중물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몰랐지만 같은 시기에 인도에 있었던 히말라야 카페의 성진씨가 가게 옆에 비어있던 컨테이너를 선뜻 빌려주었고 세상을 떠돌며 모았던 이런저런 소품과 좋아했던 빈티지 의류들, 인도에서 가져온 옷감과 옷들을 모아 ‘노닐다‘를 열고서 산내 사람이 되었다.

시골에 웬 옷가게?
"옷가게나 소품샵이 시골에 흔치 않던 시절, 장사가 될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은 산내에 여전히 안목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시골로 이사왔다고 있던 취향이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이 작은 가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도 살 수 있었던 건 되려 시골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산내 노닐다와 함께했던 저의 40대는 제법 행복했다 말하고 싶네요."
산내에서 시작한 노닐다이지만, 요즘에는 인도에서 만들어온 수공예 옷과 소품들이 주로 판매되면서 예전처럼 편하고 저렴하며 개성이 넘쳤던 노닐다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지영씨 스스로도 오랫동안 고민하며 풀어가야 했던 숙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힘이 되었던 순간은 구자라트의 유기농 토종원단을 가지고 피어나 수강생들이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동네에서 전시를 열었던 일. 단순한 소비를 넘어 ’스스로 짓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엔 숨은 금손들이 많다는 것도.

구자라트 유기농 토종원단으로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전시한 모습
길 없는 길 위의 여행
"노닐다를 시작하고도 매년 겨울이면 석 달씩 문을 닫고 인도에서 지냈어요. 천연염색으로 블록 프린팅을 하는 라자스탄 지역에서 주로 지내는데 점점 사라져 가는 전통 방식들을 배우고 기록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네요. 숙소도 식당도 없는 곳이라 현지인 집에 살며 마을 사람들과는 격의 없는 식구가 되었죠. 몇 해전부터 토종면에 심취하게 되면서 구자라트를 비롯해서 베틀 작업하는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제가 판매하는 모든 것들의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것이 나름의 원칙이라 남인도에서 벵골 지방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역을 다니게 되네요."


"손으로 실을 잣고 베틀로 짠 천을 ’카디’라고 부르는데요, 카디로 작업하는 인도 디자이너의 옷을 소개하기도 하고 한국 상황에 맞게 커스텀 작업을 함께 오래 하다보니 제게는 가족과 다름 없는 사람들이라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면서도, 사라져가는 인도 수공업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전달하고픈 책임감과 부채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한국의 고객들도 이 귀한 옷들을 합리적인 가격대에 누릴 수 있게 할까라는 고민도 늘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가격대가 저렴할 수 없는 원단이라 산내에서만 판매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대도시에 팝업스토어를 연다거나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몇 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어요. 덕분에 제가 하는 일이 좀 더 많이 알려지고 또 협업의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어서 십 수년 전부터 품었던 오랜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올 겨울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인도에서 보낼 예정이라는 지영씨, 또다시 남편과 덜컹거리는 오토바이에 올라 사막길을 달려가서 수공예 장인들과 달디단 짜이를 마시고, 오늘을 함께 보내고 내일을 도모하면서 한 계절을 오롯이 날 예정이다. 그들의 작업 현장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그 숨결을 머나먼 이곳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진정한 자유란 우리가 속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책임,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특유의 조용하고 치열한 여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영씨. 여행자와 노동자, 예술가 그 어느 쪽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만큼 남다른 삶의 지도를 만들어 온 그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돌아올 내년 봄날을 기다려본다. 그리하여 그 기나긴 여정을 담은 기록과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건, 언젠가는 여기 지리산 이웃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해본다.
진행 / 자유
글 / 이덕임
사진 / 김지영 제공
인터뷰어 | 이덕임
살 곳을 찾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05년에 지리산 산내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텃밭과 꽃밭 가꾸기, 이웃과 산책하기를 본업만큼 좋아하는 뼛속까지 시골 생활자이다.
※ 이 인터뷰는 브라이언임팩트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도와 지리산 산내를 잇는 조용한 여정
여기 몹시 희미하지만 단호한 발자국이 있다. 오랫동안 때가 되면 새벽밥을 지어먹고 길을 나선 이가 사부작사부작 만들어 낸, 좁고 구불구불하고 아주 기나긴 길.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이 섬세한 발자국 문양 속에는 사실 한 사람이 전 생애를 기울여 만들고 채우고 확장해낸 우주가 들어 있다.
산내의 유일한 옷가게이자 동네 패셔니스타들의 아지트, 천연 면화에서 실을 뽑아 전통적인 인도의 수공예방식으로 짠 카디(Khadi)로 만든 옷을 판매하는 옷가게 ‘노닐다’의 주인이자 에콜로지카‘ecologica’ 라는 브랜드의 창조자인 지영씨 이야기이다. 이 글은 또한 천성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많아 사람들과 광장에서 어울리기를 몹시 어려워하지만 내 울타리 바깥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 책임감으로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왕래하는, 한 사람이 쓴 평화와 사랑의 연대기이도 하다.
카페 ‘히말라야’ 옆 연두색 컨테이너로 상징되던 노닐다가 지리산 산내에 문을 연 지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았다.
초기에는 빈티지 의류와 인도 옷, 개성 넘치는 소품들을 소개하는 작은 가게였지만, 5년 전부터는 건너편의 번듯한 공간으로 넓혀 인도 디자이너들의 수작업 옷을 소개하는 편집숍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간간히 팝업을 통해 수도권·원거리 고객들과 교류하고 있다.
2017년 노닐다의 첫 해
부끄러움은 많지만 언제나 찾아오는 사람을 진심으로 환대할 줄 아는 속정이 깊고 다정한 지영씨, 인도에서 호주로, 태국에서 다시 인도를 돌아 산내로, 청춘을 같이한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 배낭을 메고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지영씨는 산내의 히말라야 카페 옆에 터를 잡기 전, 그 긴긴 방랑의 이력을 조금씩 들려주었다.
나무 도장으로 찍어내는 블록프린트 천
인도에서 호주로, 다시 태국으로
태국의 빠이는 삶에 지칠 때면 종종 찾아가던 곳이었고, 호주 생활을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빠이로 달려갔다. 배낭여행자들의 무덤으로 불리우는 태국 산골마을 빠이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방콕의 예술가들이 정착하면서 알려지게 된 작고 예쁜 마을인데 대안적인 삶을 꿈꾸던 두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십 수년전의 빠이와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주로 마을 외곽에서 조용히 원주민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겐 여전히 고향같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곳에서 미얀마와 라오스의 수공예무역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네덜란드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고 공정무역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던 지영씨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2014년 인도 수공업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지영씨는 다시 인도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인도. 남인도를 시작으로 구자라트, 라자스탄, 바라나시, 폰디체리로
유전자조작 면화가 점령한 인도에서 토종면으로 농사 지으시는 구자라트 농부님 (왼)
점점 사라져가는 천연염색 작업장, 4년 전 문을 닫은 인디고 작업장 (오)
물레를 돌리며 손으로 실을 잣는 라바리 할머니 (왼)
가가호호 무식하게 작업장을 찾아 다니던 시절 (오)
파키스탄 국경까지 김지영 씨를 처음 현장으로 인도했던,이 일의 시작이 되어준 아플리케 장인들
마지막으로 첫 인도여행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생태 공동체인 폰디체리의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나무 심는 자원 봉사를 하며 자급자족에 대한 생각, 혹 한국에서 산다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6개월간의 인도여정을 마치고 다시 빠이로 가서 그 곳에서 오래 살아볼 궁리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아버지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양의 시목마을, 그리고 산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발자국도 발을 떼기 어려울만큼 마음이 무너져있던 시절, 외국에서 공정무역 사업을 하려던 꿈도 의지도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저 하루하루 견디는 일이 버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함양과 가까운 곳에 녹색평론에서 보았던 생태와 환경의 조화를 꿈꾸는 별난 공동체 마을인 산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옷가게를 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재정과 경험이 쌓이면 에콜로지카라는 이름으로 공정무역을 하고픈 꿈이 있었고 그때까지 뭐라도 해보려던 차에 세상에 예쁜 것들을 모아 파는 가게를 여는 것이 어떠냐는 빵아재 영준샘의 뜬금없는 한마디가 마중물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몰랐지만 같은 시기에 인도에 있었던 히말라야 카페의 성진씨가 가게 옆에 비어있던 컨테이너를 선뜻 빌려주었고 세상을 떠돌며 모았던 이런저런 소품과 좋아했던 빈티지 의류들, 인도에서 가져온 옷감과 옷들을 모아 ‘노닐다‘를 열고서 산내 사람이 되었다.
시골에 웬 옷가게?
산내에서 시작한 노닐다이지만, 요즘에는 인도에서 만들어온 수공예 옷과 소품들이 주로 판매되면서 예전처럼 편하고 저렴하며 개성이 넘쳤던 노닐다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지영씨 스스로도 오랫동안 고민하며 풀어가야 했던 숙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힘이 되었던 순간은 구자라트의 유기농 토종원단을 가지고 피어나 수강생들이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동네에서 전시를 열었던 일. 단순한 소비를 넘어 ’스스로 짓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엔 숨은 금손들이 많다는 것도.
구자라트 유기농 토종원단으로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전시한 모습
길 없는 길 위의 여행
올 겨울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인도에서 보낼 예정이라는 지영씨, 또다시 남편과 덜컹거리는 오토바이에 올라 사막길을 달려가서 수공예 장인들과 달디단 짜이를 마시고, 오늘을 함께 보내고 내일을 도모하면서 한 계절을 오롯이 날 예정이다. 그들의 작업 현장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그 숨결을 머나먼 이곳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진정한 자유란 우리가 속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책임,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특유의 조용하고 치열한 여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영씨. 여행자와 노동자, 예술가 그 어느 쪽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만큼 남다른 삶의 지도를 만들어 온 그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돌아올 내년 봄날을 기다려본다. 그리하여 그 기나긴 여정을 담은 기록과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건, 언젠가는 여기 지리산 이웃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해본다.
진행 / 자유
글 / 이덕임
사진 / 김지영 제공
※ 이 인터뷰는 브라이언임팩트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