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 시간을 달려서 갈 수 있는 거리는 보통 8km에서 12km.
자전거로 간다면 15km에서 20km.
시속 60km의 속도로는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달리기와 자전거, 각자의 방식으로 산내를 누비는 두 사람을 만납니다.
이동이 단순한 이동에 그치지 않고, 관계가 되고 문화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 [삼달리주민회 동동] 달리고 굴리고 누비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산내자전거작업장 한형민] 달리고 굴리고 누비기 : 자전거면 충분하다
[틈틈이 살래]는 산내 사람들의 시선으로 산내를 탐구하는 인터뷰입니다. 지리산이음과 산내청년네트워크 틈새가 함께합니다. |

산내자전거작업장 형민쌤의 즐거운 수리 시간
다시 돌아온 선생님의 하루
누리 : 형민쌤은 실상사 작은학교 선생님으로 처음 산내에 오셔서 지금까지 계속 인드라망 공동체 활동가로 지내고 계시지요. 공동체 안에서도 최근 몇 년은 마을 활동을 위주로 하시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세요?
형민 : 6시에 일어나면 먼저 108번 절을 하고 몸살림 운동 몸풀기를 해요. 저 나름의 아침 루틴이고 기도에요. 마음이 복잡하면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데 절과 운동을 하면서 지금 여기 잘 깨어있어서 동료와 이웃에 잘 쓰이면 좋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에 출근하고 학생들과 함께 아침열기를 합니다.
누리 : 매일 아침마다 하는 거군요! 작은학교는 학생들하고 교사들을 합치면 몇 명 정도인가요?
형민 : 학생들이 지금 28명, 교사들이 8명. 주로 교사들이 줄을 서 있고 학생들이 들어올 때 이렇게, 서로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포옹 인사를 나눠요. 그런 인사들이 뭔가 마음을 좀 열어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나면 요일별로 정해진 주제 발표가 있어요. 일종의 그것도 수업인 셈이죠. 다 왔는지 확인한 다음에, 오늘 목요일 같은 경우에는 우리 식구들이나 마을 분들 이야기를 듣는 ‘사람책’을 해요. 오늘은 태정쌤이 사람책을 했어요. 월요일에는 시사 신문, 학생들이 신문을 읽고 시사에 관한 내용을 브리핑해 주는 걸 하고. 화요일에는 하숑의 농사 이야기, 그러니까 농사를 실제로 짓기도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본인이 경험한 것, 그리고 세계의 농업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그게 학교에서는 하루의 몸과 마음을 여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가 아침에 절을 하듯이.
그러고 나면 이제 담당 구역을 청소하죠. 저는 분리 배출 담당인데, 학교에는 ‘무허가’라는 이름의 자원순환 동아리가 있어요. 그 학생들이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이슈가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쯤 아침 열기에서 발표를 하기도 해요. 그 친구들하고 청소를 하는데, 되게 잘해요. 내가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하려고 되게 노력을 해요. 거기에 그냥 묻어서 같이 청소를 하고. 그 다음엔 업무가 시작이 되죠. 저는 회계 업무를 보고 있어요. 퇴근은 좀 이른 편인데, 4시 넘으면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근데 회의가 있고 하다 보니까 보통 5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그럼 집을 좀 돌보고, 여유가 될 때는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작업도 좀 하고, 그리고는 잠을 자죠.

작은학교 학생들이 '가져오면 고쳐드립니다'라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합격이야, 학교에 지내면서 타도 괜찮아
누리 : 산내자전거작업장에서 자전거 면허증을 발급해 주신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운전면허 같은 건가요?
형민 : 비슷해요. 이론 공부할 내용을 주고, 문제를 풀어오게 해요.
누리 : 주로 안전에 대한 건가요?
형민 : 그렇죠, 안전과 자전거 전반에 대한 공부예요. 문제는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 연령대별로 있어요. 그거를 나눠주고 풀게 한 다음에, 저랑 시간을 잡아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요. 마을에서 타면서 제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알려주는 거죠.
누리 : 돌발 상황들에 대해서요.
형민 : 그렇죠, 같이. 그래서 투어를 한 바퀴 하고 나면 통과예요. 실물 면허증을 주진 않고요. 너무 일이 많아서 거기까진 못 하고, 그냥 "합격이야, 학교에 지내면서 타도 괜찮아."
누리 : 그러면 합격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건가요?
형민 : 그렇죠, 그렇게 약속이 돼 있어요. 안전하게 헬멧도 써야 하고, 너무 위험한 길은 어딘지 그런 것들도 좀 알려줘야 되니까.
누리 : 그럼 입학하고 초기에 면허를 따는 편인가요?
형민 : 음, 그런데 학생들도 바쁘고 저도 바쁘고 하다 보니까, 얼마 전에 한 명 했었고. 잘 못 할 때도 있고, 시간이 좀 걸려요.
누리 : 이쯤에서 고백을 하자면, 저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그런데 저희 집이 산내에서는 드물게 평지에 있거든요. 달리는 사람들이든, 자전거 타는 사람이든 꼭 지나가는 길목에요. 그래서 ‘배워두면 잘 쓸 텐데 왜 안 하냐’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어릴 때 배울 타이밍을 놓치니까 겁이 많아져가지고 배우기가 어렵더라고요.
형민 : 맞아요. 산내에서도 그런 분들 몇 분 알아요. 그래서 한 번은 성인 자전거 교실을 열었어요. 좀 추운 날이었는데, 산내초에서 연습을 했어요. 이게 연습을 꾸준히 해야 되는데, 이분들이 다 차가 있으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그중에서 한 분은 성공하셨어요. 제 주변에도 못 타는 사람 많아요. 우리 누나도 못 타고, 저도 처음부터 잘 타지 않았거든요.

고쳐쓰기 부스. 종목은 자전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상추 하우스에서 쓸 자전거'를 학생들이 뚝딱뚝딱 고친다면
형민 : 자전거가 기후위기에 대한 저항이나 대안적인 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커뮤니티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많이 타면 좋겠다’고 맨날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건 수리네? 했던 거죠. 여기는 없잖아요, 수리할 곳이. 함양에서도 가끔 여기까지 오실 때가 있어요, 고쳐달라고.
누리 : 함양에는 자전거 판매점이 있잖아요. 거기서도 해주지 않아요?
형민 : 그런 데에서도 해 주죠. 해주는데, 그거 아세요? 자전거 ‘가게’가 있고, 자전거 ‘숍’이 있어요.
누리 : 차이가 뭐예요?
형민 : 샵은 고급 자전거를 다룰 수 있는 거죠.
누리 : 영어라서 그런가요?
형민 : 그건 모르겠지만. 그래서 고급 동호회인들 사이에는 "나 숍 가야 돼" 하더라고요. 근데 옛날에 ‘삼천리’ 뭐 이런 것들은 주로 좀 연세 있는 분들이 운영하시고, 판매를 주로 많이 하시는 거죠. 함양에도 한 분이 계셨고 저도 그분한테 배우기도 했는데... 자전거가 경제적으로 장사가 잘 되기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인월, 아영, 운봉에도 없고, 산내도 따로 없고 하니까 여기로 가끔 연락이 와요.
누리 : 수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어요? 원래 그렇게 부품 만지고 하는 일들을 좋아하셨어요?
형민 :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어렸을 때 막,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집에 물건을 새로 사면 어머니가 ‘나 보는 데서 다 열어봐라’ 그랬어요. 혼자 하다 자꾸 뭘 망가뜨렸었나 봐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 다 열어봐라, 뜯어보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손재주가 되게 좋은 분이에요. 60년대에는 그냥 돈 벌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됐었고. 우리 아버지 표현이 맨날 그래요. "나는 야간 공고 나왔어". 주간에 일하고, 야간에 공부하고, 낮에는 또 돈 벌고 이렇게 사시던 분이라. 전기나 통신 이런 쪽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제가 늘 보잖아요. 자꾸 보니까 그런 걸 다루는 게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는 두 개 정도 기억이 나는데. 하나는 옛날에 작은학교가 지금 있는 작은마을 말고 실상사 옆에 있을 때, 자전거가 되게 많았잖아요. 근데 가끔 한 번씩 남원인가, 어디에서 자전거포 아저씨를 모셔다가 수리를 맡겼는데, 돈이 되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몇십만 원이 나오니까, 야 이거 진짜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안 고칠 수도 없고 해서, ‘내가 한번 해볼게’ 한 거죠.
누리 : 학교 그 없는 살림에.
형민 : 없는 살림에, 그때 돈으로 대당 한 1만 원씩 이렇게 받으니까, 그때는 좀 큰 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볼게’ 하면서 시작했던 게 있고요. 근데 그때는 뭔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냥 인터넷 찾아보고 조금 해보고, 실험해 보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자전거작업장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 거는, 한생명에서 제안을 해 주면서예요. 남원시에서 ‘농촌 재능 나눔 사업’이라는 사업을 막 시작하려던 단계였어요. 중앙정부의 사업이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할까, 시에서 좀 고민을 하다가 한생명에 연락을 했었어요. ‘이런 걸 좀 해보려고 하는데, 몇 팀을 좀 알아봐 줄 수 있냐’ 해서, 제가 자전거 수리, 계임쌤이 하시는 판소리, 그렇게 몇 가지를 시하고 연결해 준 거예요. 그러면서 여길 시작하게 됐죠.
이제 산내에서 하는 팀은 없는 것 같지만, 지금도 그 사업은 여전히 있어요. 도움은 많이 됐어요, 지원이 있어서 초기에는 주민들에게 재료비를 안 받았어요. 그냥 대부분 농사짓는 분들이고. “상추 하우스에서 쓸 건데 타이어가 구멍이 났어요” 하시면, 그냥 “괜찮아요, 그냥 가지고 가세요, 저도 이거 공짜로 얻은 거예요.” 그랬었죠. 지금은 재료비는 받고 있지만.
학교에 그 당시에 ‘작업장 수업’이라는 게 있었어요. 약간 프로젝트성 수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과 작업장, 무슨 작업장 해서, 한 네다섯 개를 운영했었어요.이게 잘 되면 학생 협동조합도 할 수 있겠다, 뭐 이런 구상을 가지고 했던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자전거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열었죠. 마침 시기가 비슷해서, 인연이 잘 맞았던 거죠. 학생들은 기술을 익히고 마을에 봉사하고, 마을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여기처럼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는 그런 사회적인 서비스들이 제일 먼저 빠져나가잖아요. 자전거 수리점도 없으니까,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게 된 거죠.
누리 : 자전거 작업장에서 전수를 받은 학생들이 마을 사람들의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고쳐주는 거군요.
형민 : 네, 일을 하는 거죠. 지금도 그런 콘셉트는 가지고 있어요. 오늘 오전에 여기서 한 수업이 '수리수리 마하수리'라는 제목이었는데, <리페어 컬처> 라는 책을 읽고, 그 다음에 실제로 뭔가 자전거든 노트북이든 수리해 보고 연습하는 과정이에요. 이렇게 해서 학생들이 좀 실력을 기르게 되면, 살래장에 나가서 같이 수리도 해 보고. 이 시도는 매년 하고 있어요.
누리 : 어려움은 없으세요?
형민 :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학생들은 무한정 시간을 뺄 수가 없으니까요. 아침에 한 1시간 반 정도 수업을 하는데, 오늘도 아까 노트북 열다가, 열지도 못했어요. 지금도 저기 있는데 열지도 못하고 그냥 ‘야 시간 다 됐다 가자.’ 이렇게 되니까, 학생들은 모르겠는데 제 만족도가 좀…? 그런 건 어려워요.

어린이들을 위한 자전거 시간
13년, 상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시간
형민 : 사실 기획을 촘촘하게 하고 일을 하지는 않아요. 대신 평소에 어떤 생각들은 있어요. 전쟁이 났어요. 기름값이 이렇게 올라갔어요. 이건 정말 좀 큰일인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틈틈이 하다가… 간단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해보고.
하고 싶은 것들은 되게 많아요. 예를 들어 작은학교 학생들 중에서도 마을에 있는 집에 사는 친구들 있잖아요. 그 친구들은 전기자전거로 등하교하기도 해요. 그런 친구들하고 자전거 버스를 하는 거죠, 도시에서 많이 하는 건데.
누리 : 자전거 버스요?
형민 :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는 거예요. 그렇게 가면 좀 안전해요.
누리 : 혼자 있지 않으니까.
형민 : 무리 지어서 가는 거예요. 남태령 고개 같은 곳이 유명하잖아요. 과천에서 고개만 넘으면 서울이라 그렇게 자전거 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부터도 그렇게 도시의 운동으로 있었던 건데, 그런 것처럼 우리도 해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산내초 등교에 맞춰서 누군가 해 줄 수 있으면, 그 다음에는 작은학교 등교 시간에 맞춰서 누군가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린이 청소년들이라도 그런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고 살아요. 그래서 피곤한가, 어쨌든.
누리 : 혼자씩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같이 타고 다니고, 안전 면으로 도움도 되고 눈에 보이고.
형민 : 눈에 보이고. 좋은 건 알겠는데, 혼자 하기는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하고 있는데, 바쁘기도 해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건 잘 안 돼요.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자전거작업장을 한지 한 12, 13년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각만 하던 것들을 그래도 많이, 한 번씩은 해보긴 했어요.
누리 : 그래야 20년도 하니까요.

산내자전거작업장 문을 열면 각종 수리도구들과 슬로건으로 채워진 벽면을 마주치게 된다.

실크스크린으로 자전거를 함께 타자고 알리는 문구를 제작하기도 했다.
다 배우고, 아이디어도 다 얻고
누리 : 앞서 말씀하신 전쟁과 자전거의 연결고리라고 하면, 제가 해석하기로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그 외에도 석유 같은 자원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원들은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것이 되고. 그런 고리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형민 : 그렇죠, 그런데 뭐 저만 도덕적이어서가 아니고, 사실 저도 잘 못 지키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요. 저도 택배왕이에요. 수리도구나 이런 것들을 많이 사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쟁도 어쩌면, 우리의 작은 편리를 추구하는 행동들이 결국에는 돈하고 시장하고 연결되고, 또 어떤 자원에 대한 욕구로 연결되고 하다 보니까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너무 그런 것에 짓눌려 살 필요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상에서 최대한 해보면 좋겠다.
누리 : 저기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구호가 그런 뜻을 담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뭐, 편리한 게 뭔지야 다들 알죠. 근데 가장 편리한 거를 취하려고 하지 않는 노력이요.
형민 : 그렇죠, 그렇죠, 맞아요. 그 구호야 뭐 제가 생각해낸 건 아니지만.
누리 : 누가 생각해낸 구호예요?
형민 : 예를 들어 Burn Fat, Not Oil 이런 건 국제적인 구호예요. '자전거면 충분하다', 이건 저는 춘천에 있는 자전거 단체에서 들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뻔뻔하다고 해야 되나. 춘천에서 하는 모임이잖아요. 근데 그냥 ‘나 거기 들어가도 돼요?’ 막 이렇게 한 거죠. 춘천까지 가지는 못했고 실제로 만난 분은 아무도 없는데, 오픈 채팅방에서 자기소개 하고. ‘저 사실 지리산 사는데, 여러분들의 이 활동에 되게 동의하고 좀 배우고 싶다.’ 그래서 거기 밴드도 가입하고, 아주 가끔 의견을 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거기서 배운 거예요. 다 배우고, 아이디어도 다 얻고. 이렇게 구호를 실크스크린하는 것도 다 그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연대하는 마음으로 잘 쓰고 있고. 그렇게 많이 배워요, 인스타에서도 배우고.
누리 : (산내 최대의 SNS인) 살래장 밴드 같은 경우에도 진짜 산내에 사는 분들만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분들도 ‘살래장 수리 부스? 이런 것도 하네.’ 이러면서 보시겠죠?

지금처럼 대부분의 물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전에도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고, 쟁반을 만들었다.
대나무 공예를 배우는 모임 '산내댓바람' 회원들이 수료증을 자랑하고 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면서 사는 것
형민 : 저는 이런 게 지속되면 좋겠거든요. 그런데 그러려면 무언가 거점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할 때마다 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게 실현돼야 되기 때문에. 자원순환, 새활용 하는 나눔꽃 살림꽃도 초반에 하셨던 분들이 여전히 하고 계시고, 자전거작업장도 중간에 운영위원같은 체계도 둬 봤지만, 지금도 혼자서 하고 있고요. 이게 지속 가능하려면 좀 더 대중들에게 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산내는 산내 나름의 특색 있게 좀 가져가되, 범위는 가까운 4개 읍면 지역으로 확대돼야 된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어요, 혼자.
그래서 나는 나눔꽃 살림꽃, 비니루없는점빵, 산내자전거작업장, 가능하다면 작은학교의 무허가 동아리, 이런 곳들이 모여서 재활용 센터를 만들면 좋겠어요. 시에서 건물이나 인건비 지원 이런 거 좀 해 주고, 그래서 인월쯤에 만들면 참 좋지 않을까요?
누리 : 4개 읍면에서 같이 쓰는 센터요.
형민 : 그렇죠, 그렇죠. 그정도가 경제 공동체로서 적당할 것 같아요. 센터장 감도 지금 다 물색해놨어요. (웃음) 저는 어쨌든 그렇게 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이 작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렇게 ‘운동’으로서 젊은 분들이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노하우나 이런 걸 다 넘겨 주고, 여기서 조용히 수리를 하는 거죠.
누리 : 저는 그런 여건이 갖춰지면 뭘 하고 싶으시냐고 여쭤보려고 그랬더니.
형민 : 아니에요. 전 사실 조용히 하는 게 정말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혼자 이렇게 골똘히 하는 게 좋은 것 같고. 물론 필요하면 궂은 일도 하죠, 해야죠. 해야 되는데, 어쨌든 젊은 분들 중에도 그런 역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 거다, 싶고 그렇다면 제가 가진 노하우를 다 전수하고 싶어요.
누리 : 그런 시간들은 형민쌤에게 어떤 의미예요?
형민 : 일단 뭐 자기만족이죠. 내가 이런 사람이다, 라는 스스로에 대한 어떤 뿌듯함, 성취감이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어쨌든 세상에 도움 되는 쪽으로 사는 게 좋다고 배웠고, 저는 이걸 통해서 그걸 실천하려고 하는 거죠.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재밌죠.
누리 :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형민 : 그리고 저는 다들 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하기 싫은 일 막 하는 것보다도, 꼭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마을에서의 그런 역할을 각자 하나씩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게 돼요. 그러면 이런 작당들이 많아질 것 같거든요. 그래야 같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2026-04-09
사람이 한 시간을 달려서 갈 수 있는 거리는 보통 8km에서 12km.
자전거로 간다면 15km에서 20km.
시속 60km의 속도로는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달리기와 자전거, 각자의 방식으로 산내를 누비는 두 사람을 만납니다.
이동이 단순한 이동에 그치지 않고, 관계가 되고 문화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 [삼달리주민회 동동] 달리고 굴리고 누비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산내자전거작업장 한형민] 달리고 굴리고 누비기 : 자전거면 충분하다
산내자전거작업장 형민쌤의 즐거운 수리 시간
다시 돌아온 선생님의 하루
누리 : 형민쌤은 실상사 작은학교 선생님으로 처음 산내에 오셔서 지금까지 계속 인드라망 공동체 활동가로 지내고 계시지요. 공동체 안에서도 최근 몇 년은 마을 활동을 위주로 하시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세요?
형민 : 6시에 일어나면 먼저 108번 절을 하고 몸살림 운동 몸풀기를 해요. 저 나름의 아침 루틴이고 기도에요. 마음이 복잡하면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데 절과 운동을 하면서 지금 여기 잘 깨어있어서 동료와 이웃에 잘 쓰이면 좋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에 출근하고 학생들과 함께 아침열기를 합니다.
누리 : 매일 아침마다 하는 거군요! 작은학교는 학생들하고 교사들을 합치면 몇 명 정도인가요?
형민 : 학생들이 지금 28명, 교사들이 8명. 주로 교사들이 줄을 서 있고 학생들이 들어올 때 이렇게, 서로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포옹 인사를 나눠요. 그런 인사들이 뭔가 마음을 좀 열어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나면 요일별로 정해진 주제 발표가 있어요. 일종의 그것도 수업인 셈이죠. 다 왔는지 확인한 다음에, 오늘 목요일 같은 경우에는 우리 식구들이나 마을 분들 이야기를 듣는 ‘사람책’을 해요. 오늘은 태정쌤이 사람책을 했어요. 월요일에는 시사 신문, 학생들이 신문을 읽고 시사에 관한 내용을 브리핑해 주는 걸 하고. 화요일에는 하숑의 농사 이야기, 그러니까 농사를 실제로 짓기도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본인이 경험한 것, 그리고 세계의 농업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그게 학교에서는 하루의 몸과 마음을 여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가 아침에 절을 하듯이.
그러고 나면 이제 담당 구역을 청소하죠. 저는 분리 배출 담당인데, 학교에는 ‘무허가’라는 이름의 자원순환 동아리가 있어요. 그 학생들이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이슈가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쯤 아침 열기에서 발표를 하기도 해요. 그 친구들하고 청소를 하는데, 되게 잘해요. 내가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하려고 되게 노력을 해요. 거기에 그냥 묻어서 같이 청소를 하고. 그 다음엔 업무가 시작이 되죠. 저는 회계 업무를 보고 있어요. 퇴근은 좀 이른 편인데, 4시 넘으면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근데 회의가 있고 하다 보니까 보통 5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그럼 집을 좀 돌보고, 여유가 될 때는 대나무로 뭔가 만드는 작업도 좀 하고, 그리고는 잠을 자죠.
작은학교 학생들이 '가져오면 고쳐드립니다'라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합격이야, 학교에 지내면서 타도 괜찮아
누리 : 산내자전거작업장에서 자전거 면허증을 발급해 주신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운전면허 같은 건가요?
형민 : 비슷해요. 이론 공부할 내용을 주고, 문제를 풀어오게 해요.
누리 : 주로 안전에 대한 건가요?
형민 : 그렇죠, 안전과 자전거 전반에 대한 공부예요. 문제는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 연령대별로 있어요. 그거를 나눠주고 풀게 한 다음에, 저랑 시간을 잡아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요. 마을에서 타면서 제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알려주는 거죠.
누리 : 돌발 상황들에 대해서요.
형민 : 그렇죠, 같이. 그래서 투어를 한 바퀴 하고 나면 통과예요. 실물 면허증을 주진 않고요. 너무 일이 많아서 거기까진 못 하고, 그냥 "합격이야, 학교에 지내면서 타도 괜찮아."
누리 : 그러면 합격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건가요?
형민 : 그렇죠, 그렇게 약속이 돼 있어요. 안전하게 헬멧도 써야 하고, 너무 위험한 길은 어딘지 그런 것들도 좀 알려줘야 되니까.
누리 : 그럼 입학하고 초기에 면허를 따는 편인가요?
형민 : 음, 그런데 학생들도 바쁘고 저도 바쁘고 하다 보니까, 얼마 전에 한 명 했었고. 잘 못 할 때도 있고, 시간이 좀 걸려요.
누리 : 이쯤에서 고백을 하자면, 저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그런데 저희 집이 산내에서는 드물게 평지에 있거든요. 달리는 사람들이든, 자전거 타는 사람이든 꼭 지나가는 길목에요. 그래서 ‘배워두면 잘 쓸 텐데 왜 안 하냐’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어릴 때 배울 타이밍을 놓치니까 겁이 많아져가지고 배우기가 어렵더라고요.
형민 : 맞아요. 산내에서도 그런 분들 몇 분 알아요. 그래서 한 번은 성인 자전거 교실을 열었어요. 좀 추운 날이었는데, 산내초에서 연습을 했어요. 이게 연습을 꾸준히 해야 되는데, 이분들이 다 차가 있으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그중에서 한 분은 성공하셨어요. 제 주변에도 못 타는 사람 많아요. 우리 누나도 못 타고, 저도 처음부터 잘 타지 않았거든요.
고쳐쓰기 부스. 종목은 자전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상추 하우스에서 쓸 자전거'를 학생들이 뚝딱뚝딱 고친다면
형민 : 자전거가 기후위기에 대한 저항이나 대안적인 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커뮤니티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많이 타면 좋겠다’고 맨날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건 수리네? 했던 거죠. 여기는 없잖아요, 수리할 곳이. 함양에서도 가끔 여기까지 오실 때가 있어요, 고쳐달라고.
누리 : 함양에는 자전거 판매점이 있잖아요. 거기서도 해주지 않아요?
형민 : 그런 데에서도 해 주죠. 해주는데, 그거 아세요? 자전거 ‘가게’가 있고, 자전거 ‘숍’이 있어요.
누리 : 차이가 뭐예요?
형민 : 샵은 고급 자전거를 다룰 수 있는 거죠.
누리 : 영어라서 그런가요?
형민 : 그건 모르겠지만. 그래서 고급 동호회인들 사이에는 "나 숍 가야 돼" 하더라고요. 근데 옛날에 ‘삼천리’ 뭐 이런 것들은 주로 좀 연세 있는 분들이 운영하시고, 판매를 주로 많이 하시는 거죠. 함양에도 한 분이 계셨고 저도 그분한테 배우기도 했는데... 자전거가 경제적으로 장사가 잘 되기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인월, 아영, 운봉에도 없고, 산내도 따로 없고 하니까 여기로 가끔 연락이 와요.
누리 : 수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어요? 원래 그렇게 부품 만지고 하는 일들을 좋아하셨어요?
형민 :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어렸을 때 막,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집에 물건을 새로 사면 어머니가 ‘나 보는 데서 다 열어봐라’ 그랬어요. 혼자 하다 자꾸 뭘 망가뜨렸었나 봐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 다 열어봐라, 뜯어보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손재주가 되게 좋은 분이에요. 60년대에는 그냥 돈 벌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됐었고. 우리 아버지 표현이 맨날 그래요. "나는 야간 공고 나왔어". 주간에 일하고, 야간에 공부하고, 낮에는 또 돈 벌고 이렇게 사시던 분이라. 전기나 통신 이런 쪽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제가 늘 보잖아요. 자꾸 보니까 그런 걸 다루는 게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는 두 개 정도 기억이 나는데. 하나는 옛날에 작은학교가 지금 있는 작은마을 말고 실상사 옆에 있을 때, 자전거가 되게 많았잖아요. 근데 가끔 한 번씩 남원인가, 어디에서 자전거포 아저씨를 모셔다가 수리를 맡겼는데, 돈이 되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몇십만 원이 나오니까, 야 이거 진짜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안 고칠 수도 없고 해서, ‘내가 한번 해볼게’ 한 거죠.
누리 : 학교 그 없는 살림에.
형민 : 없는 살림에, 그때 돈으로 대당 한 1만 원씩 이렇게 받으니까, 그때는 좀 큰 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볼게’ 하면서 시작했던 게 있고요. 근데 그때는 뭔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냥 인터넷 찾아보고 조금 해보고, 실험해 보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자전거작업장을 제대로 시작하게 된 거는, 한생명에서 제안을 해 주면서예요. 남원시에서 ‘농촌 재능 나눔 사업’이라는 사업을 막 시작하려던 단계였어요. 중앙정부의 사업이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할까, 시에서 좀 고민을 하다가 한생명에 연락을 했었어요. ‘이런 걸 좀 해보려고 하는데, 몇 팀을 좀 알아봐 줄 수 있냐’ 해서, 제가 자전거 수리, 계임쌤이 하시는 판소리, 그렇게 몇 가지를 시하고 연결해 준 거예요. 그러면서 여길 시작하게 됐죠.
이제 산내에서 하는 팀은 없는 것 같지만, 지금도 그 사업은 여전히 있어요. 도움은 많이 됐어요, 지원이 있어서 초기에는 주민들에게 재료비를 안 받았어요. 그냥 대부분 농사짓는 분들이고. “상추 하우스에서 쓸 건데 타이어가 구멍이 났어요” 하시면, 그냥 “괜찮아요, 그냥 가지고 가세요, 저도 이거 공짜로 얻은 거예요.” 그랬었죠. 지금은 재료비는 받고 있지만.
학교에 그 당시에 ‘작업장 수업’이라는 게 있었어요. 약간 프로젝트성 수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과 작업장, 무슨 작업장 해서, 한 네다섯 개를 운영했었어요.이게 잘 되면 학생 협동조합도 할 수 있겠다, 뭐 이런 구상을 가지고 했던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자전거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열었죠. 마침 시기가 비슷해서, 인연이 잘 맞았던 거죠. 학생들은 기술을 익히고 마을에 봉사하고, 마을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여기처럼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는 그런 사회적인 서비스들이 제일 먼저 빠져나가잖아요. 자전거 수리점도 없으니까,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게 된 거죠.
누리 : 자전거 작업장에서 전수를 받은 학생들이 마을 사람들의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고쳐주는 거군요.
형민 : 네, 일을 하는 거죠. 지금도 그런 콘셉트는 가지고 있어요. 오늘 오전에 여기서 한 수업이 '수리수리 마하수리'라는 제목이었는데, <리페어 컬처> 라는 책을 읽고, 그 다음에 실제로 뭔가 자전거든 노트북이든 수리해 보고 연습하는 과정이에요. 이렇게 해서 학생들이 좀 실력을 기르게 되면, 살래장에 나가서 같이 수리도 해 보고. 이 시도는 매년 하고 있어요.
누리 : 어려움은 없으세요?
형민 :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학생들은 무한정 시간을 뺄 수가 없으니까요. 아침에 한 1시간 반 정도 수업을 하는데, 오늘도 아까 노트북 열다가, 열지도 못했어요. 지금도 저기 있는데 열지도 못하고 그냥 ‘야 시간 다 됐다 가자.’ 이렇게 되니까, 학생들은 모르겠는데 제 만족도가 좀…? 그런 건 어려워요.
어린이들을 위한 자전거 시간
13년, 상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시간
형민 : 사실 기획을 촘촘하게 하고 일을 하지는 않아요. 대신 평소에 어떤 생각들은 있어요. 전쟁이 났어요. 기름값이 이렇게 올라갔어요. 이건 정말 좀 큰일인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틈틈이 하다가… 간단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해보고.
하고 싶은 것들은 되게 많아요. 예를 들어 작은학교 학생들 중에서도 마을에 있는 집에 사는 친구들 있잖아요. 그 친구들은 전기자전거로 등하교하기도 해요. 그런 친구들하고 자전거 버스를 하는 거죠, 도시에서 많이 하는 건데.
누리 : 자전거 버스요?
형민 :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는 거예요. 그렇게 가면 좀 안전해요.
누리 : 혼자 있지 않으니까.
형민 : 무리 지어서 가는 거예요. 남태령 고개 같은 곳이 유명하잖아요. 과천에서 고개만 넘으면 서울이라 그렇게 자전거 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부터도 그렇게 도시의 운동으로 있었던 건데, 그런 것처럼 우리도 해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산내초 등교에 맞춰서 누군가 해 줄 수 있으면, 그 다음에는 작은학교 등교 시간에 맞춰서 누군가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린이 청소년들이라도 그런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고 살아요. 그래서 피곤한가, 어쨌든.
누리 : 혼자씩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같이 타고 다니고, 안전 면으로 도움도 되고 눈에 보이고.
형민 : 눈에 보이고. 좋은 건 알겠는데, 혼자 하기는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하고 있는데, 바쁘기도 해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건 잘 안 돼요.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자전거작업장을 한지 한 12, 13년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각만 하던 것들을 그래도 많이, 한 번씩은 해보긴 했어요.
누리 : 그래야 20년도 하니까요.
산내자전거작업장 문을 열면 각종 수리도구들과 슬로건으로 채워진 벽면을 마주치게 된다.
실크스크린으로 자전거를 함께 타자고 알리는 문구를 제작하기도 했다.
다 배우고, 아이디어도 다 얻고
누리 : 앞서 말씀하신 전쟁과 자전거의 연결고리라고 하면, 제가 해석하기로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그 외에도 석유 같은 자원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원들은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것이 되고. 그런 고리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형민 : 그렇죠, 그런데 뭐 저만 도덕적이어서가 아니고, 사실 저도 잘 못 지키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요. 저도 택배왕이에요. 수리도구나 이런 것들을 많이 사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쟁도 어쩌면, 우리의 작은 편리를 추구하는 행동들이 결국에는 돈하고 시장하고 연결되고, 또 어떤 자원에 대한 욕구로 연결되고 하다 보니까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너무 그런 것에 짓눌려 살 필요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상에서 최대한 해보면 좋겠다.
누리 : 저기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구호가 그런 뜻을 담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뭐, 편리한 게 뭔지야 다들 알죠. 근데 가장 편리한 거를 취하려고 하지 않는 노력이요.
형민 : 그렇죠, 그렇죠, 맞아요. 그 구호야 뭐 제가 생각해낸 건 아니지만.
누리 : 누가 생각해낸 구호예요?
형민 : 예를 들어 Burn Fat, Not Oil 이런 건 국제적인 구호예요. '자전거면 충분하다', 이건 저는 춘천에 있는 자전거 단체에서 들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뻔뻔하다고 해야 되나. 춘천에서 하는 모임이잖아요. 근데 그냥 ‘나 거기 들어가도 돼요?’ 막 이렇게 한 거죠. 춘천까지 가지는 못했고 실제로 만난 분은 아무도 없는데, 오픈 채팅방에서 자기소개 하고. ‘저 사실 지리산 사는데, 여러분들의 이 활동에 되게 동의하고 좀 배우고 싶다.’ 그래서 거기 밴드도 가입하고, 아주 가끔 의견을 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거기서 배운 거예요. 다 배우고, 아이디어도 다 얻고. 이렇게 구호를 실크스크린하는 것도 다 그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연대하는 마음으로 잘 쓰고 있고. 그렇게 많이 배워요, 인스타에서도 배우고.
누리 : (산내 최대의 SNS인) 살래장 밴드 같은 경우에도 진짜 산내에 사는 분들만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분들도 ‘살래장 수리 부스? 이런 것도 하네.’ 이러면서 보시겠죠?
지금처럼 대부분의 물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전에도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고, 쟁반을 만들었다.
대나무 공예를 배우는 모임 '산내댓바람' 회원들이 수료증을 자랑하고 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면서 사는 것
형민 : 저는 이런 게 지속되면 좋겠거든요. 그런데 그러려면 무언가 거점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할 때마다 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게 실현돼야 되기 때문에. 자원순환, 새활용 하는 나눔꽃 살림꽃도 초반에 하셨던 분들이 여전히 하고 계시고, 자전거작업장도 중간에 운영위원같은 체계도 둬 봤지만, 지금도 혼자서 하고 있고요. 이게 지속 가능하려면 좀 더 대중들에게 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산내는 산내 나름의 특색 있게 좀 가져가되, 범위는 가까운 4개 읍면 지역으로 확대돼야 된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어요, 혼자.
그래서 나는 나눔꽃 살림꽃, 비니루없는점빵, 산내자전거작업장, 가능하다면 작은학교의 무허가 동아리, 이런 곳들이 모여서 재활용 센터를 만들면 좋겠어요. 시에서 건물이나 인건비 지원 이런 거 좀 해 주고, 그래서 인월쯤에 만들면 참 좋지 않을까요?
누리 : 4개 읍면에서 같이 쓰는 센터요.
형민 : 그렇죠, 그렇죠. 그정도가 경제 공동체로서 적당할 것 같아요. 센터장 감도 지금 다 물색해놨어요. (웃음) 저는 어쨌든 그렇게 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이 작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렇게 ‘운동’으로서 젊은 분들이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노하우나 이런 걸 다 넘겨 주고, 여기서 조용히 수리를 하는 거죠.
누리 : 저는 그런 여건이 갖춰지면 뭘 하고 싶으시냐고 여쭤보려고 그랬더니.
형민 : 아니에요. 전 사실 조용히 하는 게 정말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혼자 이렇게 골똘히 하는 게 좋은 것 같고. 물론 필요하면 궂은 일도 하죠, 해야죠. 해야 되는데, 어쨌든 젊은 분들 중에도 그런 역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 거다, 싶고 그렇다면 제가 가진 노하우를 다 전수하고 싶어요.
누리 : 그런 시간들은 형민쌤에게 어떤 의미예요?
형민 : 일단 뭐 자기만족이죠. 내가 이런 사람이다, 라는 스스로에 대한 어떤 뿌듯함, 성취감이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어쨌든 세상에 도움 되는 쪽으로 사는 게 좋다고 배웠고, 저는 이걸 통해서 그걸 실천하려고 하는 거죠.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재밌죠.
누리 :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형민 : 그리고 저는 다들 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하기 싫은 일 막 하는 것보다도, 꼭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마을에서의 그런 역할을 각자 하나씩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게 돼요. 그러면 이런 작당들이 많아질 것 같거든요. 그래야 같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