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족’의 바깥에서 시민적 유대와 돌봄의 관계를 발명하기
만약 아픈 친구나 동료가 아프거나 다쳐 함께 병원에 가야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친 사람의 가족 연락처를 알아볼 것이다. 내가 병원에 갔을 때 그를 위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무수히 많다. 길거리에서 혼자 우는 아이를 발견한다면? 마을의 노인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동거인이 실종되었다면? 우리가 위기의 순간마다 가족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응급실의 수술동의서 앞에서, 주민센터나 경찰서의 창구 앞에서 국가는 언제나 법적 서류상의 가족을 유일한 보호자로 호명하기 떄문이다.
24번째 지리산쌀롱에서는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활동가를 모시고 실제로는 가장 가깝게 지냈으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남이 될 수 밖에 없는 비혈연 관계에 대한 배경, 그리고 다양한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고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때 맨 처음에 질문한 게 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고 많이 하잖아요. 요즘은 이렇게 원가족 안에서 요구되었던 방식을 질문하면서 다른 삶, 다른 시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진보 그룹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자고 주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냐는 질문과는 별개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의존의 인프라를 만들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때인 것 같습니다.”
김순남 활동가는 여성 엄마, 남성 아빠, 자녀로 구성된 이상적인 가족의 상을 ‘그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정상가족’이라는 단어를 쓰면 이것이 성찰의 대상이라기 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를 공고히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가족이라고 칭함으로써 가족을 낯선 대상으로 마주할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 그는 이번 지리산쌀롱에서 이야기 할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며, 태어나 삶을 살고 떠나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가족’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달라지고 우리에게 낯설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 대안이 퀴어가족정치로서의 가족구성권이다.
“퀴어함이라는 게 성소수자의 퀴어 정체성도 있지만, 여기서의 퀴어는 기존의 사회가 생각하는 익숙하고 주류적인, 소위 말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틀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공존의 의미를 찾는, 그 연결의 계보를 퀴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퀴어한 사례를 찾아보니 지리산이음에 대한 설명이 보였어요.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 제가 오늘 할 말도 어떻게 이을 것인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 김순남 (지은이), 오월의봄 (펴낸곳)
‘그 가족’의 탄생, 호주제 폐지
21세기 초, 호주제 폐지에 대한 운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한국 사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많은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왜 나는 시댁가족의 일부가 되는지, 왜 아이는 반드시 아빠의 성(姓)을 따라야 하는지 물었다. 이윽고 2005년 호주제 폐지를 통해 호주에 의해서 가족구성이 결정되는 시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새로운 제도를 통해 가족의 기준을 정의했다. 현재 공고한 가족구조의 핵심이 되는 가족관계등록법, 건강가정기본법, 민법 779조는 모두 그 시기에 생겨났다.
※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호주제 폐지 시점에서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 779조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원래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정한 가족의 범위라는 건 없었습니다. 호주제 때는 호주가 가족의 범위를 정하는 주체였어요. 혈연이든 아니든 상관없었죠. 남편의 혼외자라고 할 지라도 호주인 남편이 정하면 자신의 가족으로 들일 수 있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이 법이 들어오면서 가족의 범위를 국가가 정해버린 겁니다. 민법에서 가족의 범위를 정해버리는 게 왜 큰일이냐면 이게 모든 사회, 각 분야의 제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조사를 해보니 최소 240개의 조항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해외에 나가서 실종된다면 재난신고센터에 신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법에서 정한 가족 뿐이예요. 아무리 친구, 친한 동생, 파트너가 있어도 할 수 없습니다. 이 힘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에 민법 779조 제정 당시에 많은 헌법학자들도 반대를 했습니다. 이렇게 민법에 가족 범위를 정할 것이 아니라 의료 결정권, 상속, 주거권 등 영역 별로 따로 정해야 한다고 했고, 또 호주제 폐지 이후의 운동 방향은 가족을 신분으로 묶는 게 아니라 개인별 등록으로 가야한다고 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내 가족을 전시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만들어버린 거죠.”
※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2. “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2의2. “1인가구”라 함은 1명이 단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3. “건강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4. “건강가정사업”이라 함은 건강가정을 저해하는 문제(이하 “가정문제”라 한다)의 발생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와 가족의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의 가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말한다. 제8조(혼인과 출산) 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②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모ㆍ부성권 보호 및 태아의 건강보장 등 적절한 출산ㆍ육아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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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이 만들어질 때가 IMF 외환위기 이후에요. 굉장히 많은 실직자들, 이혼한 사람들, 가족의 변화가 많은 시기였는데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 1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라고 되어있어요. 이게 어느 정도 영향이냐면요. 국가가 처음 가족 정책으로 만든 법에서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국민의 의무’를 정의해버린 거예요. 이때부터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반대해왔는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주장하는 건 사회의 기본값을 바꾸라는 거예요. 기본값을 가족이 아니라 관계 중심으로 바꾸라는 게 핵심이에요.”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나은 가족구성과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오히려 편협해진 가족의 범위였다. 가족은 혈연, 혼인 관계가 아니면 안 되었고, 혼인과 출산은 모든 국민이 가져야 할 사명감이 되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실제 우리 주변에서 관계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동거하는 파트너일 수도 있고, 약을 대신 타 와주는 이웃일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났을 때 반려견을 맡길 수 있는 친구일 수도 있다. 김순남 활동가는 “현대에는 원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지하고 함께하는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곁에 머물고 있는 비혈연 공동체의 모습을 ‘의존적 생태계’로 표현했다.
“실질적으로 가족의 의미는 변하고 있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가족이든 벗이든 동반자든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그 가족’ 바깥에서 탐색하는 건 사회에서 좀 더 존엄하게 머물고 존엄하게 삶을 떠날 수 있는 생애 전반의 중요한 관계를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가족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관계의 실천을 봤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누가 아픈지 신경 쓰는 사람들은 곁에 머무는 이 다양한 의존적인 생태계를 맺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굉장히 많은 차별에 연루되는 거죠.”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인구소멸지역에서는 흔히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사전적으로 인프라는 김순남 활동가는 인프라의 정의를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그것들을 지켜야 할 가치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서울시의 실정은 어떨까.
“우리를 우리답게 살게 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목소리를 잃지 않고 살게 하는 것이 인프라인데 내가 아픈 걸 알고 누구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인프라를 갖췄다는 거죠. 그러니까 중요하게 다룰 것은 인구의 소멸이 아니라 가치의 소멸이예요.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 정책을 보면 많은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인프라를 없애버리면서 점점 가치들이 소멸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가 효율성 강화, 예산 절감, 기능 중복을 명분으로 성평등, 돌봄, 청소년 분야 지원 공공기 관과 사업을 대거 축소하거나 폐지한 대표적인 목록이다. 김순남 활동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 자리를 대체한 서울시의 신설 정책 ‘난자 냉동 시술비 지원 사업’을 소개했다.
“서울시가 생각하는 미래는 재생산 중심의 미래예요. 퀴어나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낙인을 만들죠. 지금 출생율은 바닥이고, 사람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출산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이 행태가 재생산과 미래를 연결시키고 그 몫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난자 채취 과정을 알고 계시나요? 여성의 몸을 자원화해서 어느 정도 건강 수치(난소 기능 수치, AMH)가 되지 않으면 난자 채취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여성들은 과배란 유도제를 맞고 각종 항산화 영양제와 보약 등을 먹으며 몸의 기준을 맞춰야 하거든요.”

불행의 아카이브 *
이 사회에서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가령 가정을 떠난 사람들은 정말 불행할까. 하지만 집 밖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집 안의 경계가 공고하며 그곳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혼 제도의 영향력이 너무 비대할 때 어떤 여성들은 가정폭력을 겪고도 이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혼에 성공하더라도 사회가 ‘이혼은 불행’이라고 여겼을 때 이혼한 삶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가정, 이혼, 비혼, 결혼 바깥의 삶을 사는 사람들, 퀴어한 삶은 모두 새로운 계보를 찾는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지, 정상궤도에서 조금 벗어나서 다른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지,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갈 위로와 연대의 틈을 찾는다. 사회가 ‘그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해 찍은 불행의 낙인을 전복하듯 김순남 활동가는 이를 ‘불행의 아카이브’, 새로운 조상찾기로 설명했다.
“우리 삶의 계보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삶과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가 무엇을 불행하다고 여겨왔는지 생각하는 과정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불행으로 간주되었던 가치와 대상은 보통 누구였습니까? 박복하고 팍팍한 삶. 예를 들어 성소수자는 불행해, 이혼하면 불행해, 결혼해서 집 나간 여성들은 불행해, 집 나간 청소년들은 불행해. 사회는 그들에게 불행해지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이야기 했거든요. 하지만 내 삶의 계보는 어떤 할머니로부터 올 수도 있고,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불행의 역사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사실 끊임없이 자기 계보를 찾으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발명하고, 다르게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흐름들이었어요.”
그들은 사실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온몸에 사회가 찍은 불행의 낙인을 뒤집어 쓰고 살기 위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의 계보를 찾고 있었다. 김순남 활동가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의 역할이 “어려운 조건과 억압 속에서 집을 떠날 수 있는 힘 자체를 무력화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삶은 집을 떠나면서, 즉 움직이면서 삶의 반경이 확장되고,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타자와 연결되며 삶의 반경을 확장한다. 타자를 만나면서 동시에 ‘나’를 만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이동’의 과정에 제약을 두는 사회란 이들에게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가족신분사회: 호주제 폐지 이후의 한국가족정치』(가족구성권연구소 지음, 와온, 2025) 중 김순남의 글 「정상가족 밖에서 생존의 세계를 모색하는 한부모여성」에서
신분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가족주의는 비단 내국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다. 김순남 활동가가 만난 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장 취약한 불평등의 핵심은 “너네 나라로 보낸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장소성의 상실’이라 표현했다. 당사자가 맺고 있는 관계, 의미, 가치 등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키는 말이자 ‘너의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기도 했다.
“최근에 한 강의를 들었는데 2022년에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가 3,340명이래요. 그런데 이 중에 이유가 밝혀진 경우는 6.4%뿐이었어요. 이주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의존 생태계인데도 그들이 왜 건강한 몸으로 한국에 와서 불구화 되는지 사회가 묻지 않아요.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축적인 노동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잖아요. 너네 나라로 보낸다고 하면서 이주민들에게 엄청난 불평등이 가해지고 있는 거예요.”
한국 가족이 겪어 왔던 문제도 있다. 바로 밥상머리 예절을 강조했던 식사시간이다. 식사는 보통 ‘가장’의 경제 노동과 ‘주부’의 가사 노동이 합쳐져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권력으로 작동될 때 아이들은 그들이 주는 음식을 빌미로 통제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순남 활동가는 만약 가정이 훈육의 공간이고 명령의 공간이라면 이곳이 ‘집’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을 갖는다.
“이제 성인이 된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폭력이 많았대요. 집에서 말 안들으면 ‘나가!’ 라고 하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이주민에게도 그렇게 나가라고 많이 한대요. 그런데 사실 한국의 10대, 이주민들이 집을 나와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쉼터에 가더라도 다 집으로 전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뺏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성소수자 같은 경우는 절반 이상이 노숙을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도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거예요.”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책 <가족 신분 사회>에서는 아동, 청소년, 한부모여성, 결혼이주여성, 비혼여성, 장애인, 동성 부부 등 소수자의 관점에서 ‘가족’이 무엇인지 질문하는데, 여기에서는 ‘그 가족’ 바깥에서 성원권을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내가 어떤 가족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서 모든 삶의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를 ‘가족 신분 사회’라고 이름지었어요. 사회가 혈연 가족만을 중심으로 나아간다고 했을 때 그 인프라의 핵심이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이주민의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를 출생 등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없습니다. 한국은 무조건 가족관계등록부를 통해서만 출생 등록이 되거든요. 한국의 가족 신분이라고 하는 것은 가족의 돈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반드시 가족제도를 통해서 가족관계등록부를 받아야 하고, 이것은 사회적인 신분을 갖는 것인 거죠. 그리고 이것이 누가 장례를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까지 이어집니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가족’이라는 공고한 울타리 안에서 설계된 거예요.”

출처 :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겨레』
고립된 ‘취약가족’
호주제 폐지 당시 생겨난 건강가정기본법 제 12조에는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하고,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한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한 달 전체가 가정의 달이라고 공식 지정된 나라는 한국 뿐이다. 2004년, 호주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가족이 흐트러지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나라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있는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 지정했다. ‘건강한’ 가족을 토대로 한 건강가정기본법을 통해 사회는 역설적으로 조손가족, 한부모가족, 비혼 동거 가구 등 ‘유해한’ 가정에 대한 인식의 틀을 만들었다. 국가는 가족 밖은 불행하다는 이데올로기 아래 ‘그 가족’을 공고히 유지해 온 한국은 틀을 벗어난 가족을 ‘취약가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취약가족, 위기가족. 이런 말들을 왜 여전히 반복할까요? 가족의 변화가 이렇게 많은 사회에서는 모든 존재가 취약하잖아요. 모든 존재는 위기를 가지고 있고요. 그런데 이런 명명을 통해서 위기와 취약함을 누구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나요?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죠. 그런데 이렇게 가족의 위기를 만드는 것은 사회 인프라가 부재하기 때문이거든요. 여기서 겪는 위기란 다르게 살 수 있는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사회에서 경험하는 위기이지, 특정 가족의 위기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위기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지원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동시에 서로 의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올해 성평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는 새로운 취약가족으로 ‘고립청년’을 포함시켰다. 비자발적으로 돌봄 공백이 생긴 노년층과 달리 자발적 독립의 성격이 강한 청년층 1인 가구(2030 청년 중 1인 가구는 35.9%)는 이제 ‘고립’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빠져있다.
“얼마 전 성평등가족부의 발표를 보면 청년 고립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는데 정부는 그 모든 고립청년 문제를 결혼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그래서 모든 지원정책이 1인 가구 아니면 신혼부부 정책 밖에 없어요. 그러면 결혼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청년은 1인 가구로 남아있겠죠. 그런데 청년들이 원하는 삶이 1인 가구만은 아니거든요. 1인 가구와 신혼부부 사이에 있는 청년은 늘어나기만 하는데, 이러다 보니 무슨 현상이 일어나죠? ‘청년층’의 범위가 점점 늘어납니다. 29세에서 34세, 34세에서 39세로. 결국 실제 많은 스펙트럼의 청년층은 통계에서 1인 가구로만 잡히고 있습니다. ‘그 가족’ 중심의 정책이 발달할수록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청년층은 더욱 고립되는 아이러니가 있는 겁니다.”
김순남 활동가는 좋아하는 미국의 페미니즘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의 말을 인용해 각자 고립되는 사회가 잃어버린 것을 설명했다. “독립의 반대말은 의존이 아니라 고립이다.” 상호 의존은 부끄럽거나 극복해야할 무엇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기본적 형태라는 것이다. 자율적인 인간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벗어나 상호의존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관계 안에서 연결되고 연루되며 고립을 멈출 수 있다.
고통의 가족주의
김순남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누구의 고통에 주목하는 지를 보면 국가가 가족주의를 얼마나 ‘허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나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라는 문구에서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는가. ‘가장의 무게’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상상하는가. 이렇듯 사회는 이성애, 결혼, 남성, 자국민, 성인,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고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고통의 주체가 될 때 고통의 피해자는 반대편의 아동, 여성, 이주민, 장애인, 퀴어가 된다.
“우리가 이성애, 남성 중심으로 고통을 상상할 때 나머지 고통은 추상적이게 되고, 우리가 가진 관계의 신뢰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장례를 고인의 친구가 주관하겠다고 하면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뭐예요? 아, 저 고인은 가족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죠. 국가는 어떤 고통은 허락하고, 어떤 고통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어떤 고통의 자리는 보이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그만큼 우리나라의 가족주의라는 말은 단순히 가족을 중요시하는 정서가 아니라 사회의 공적이고 지배적인 시스템이예요.”

2025년 4월 26일 열린 다큐멘터리 <침몰가족> 특별 상영 포스터
낯섦에서 시작되는 변화
그렇다면 가족주의로부터의 단절과 새로운 이동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김순남 활동가는 다큐멘터리 <침몰가족>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침몰가족>은 스물두 살의 싱글맘, 가노 호코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모집하고 이에 낯선 보육자들이 모여 펼쳐지는 대안적 공동육아의 기록으로, 이야기는 이 환경에서 자란 당사자, 가노 쓰치가 20년 후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영화를 본 어떤 이는 질문한다. “위험하게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아이를 맡깁니까?” 여기에 대해 김순남 활동가는 대답한다. “위험한 게 아니라 안전할 수 있는 돌봄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우리는 익숙한 건 안전하고, 낯선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위험하다는 폐쇄성에서부터 우리가 연결되고 만나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침몰가족>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양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난잡한 돌봄의 매뉴얼을 발명하고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우리 모든 관계도 낯섦으로부터 시작하잖아요.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이혼이 이렇게 낯설지 않아졌나요? 모든 새로운 진보는 낯섦을 통해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마치 익숙한 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삶을 지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강력한 정서 중 하나가 가족주의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 가족’ 안에 머물 때 행복하셨습니까?”
가족 돌봄의 시대의 종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년기에는 더 이상 자녀의 돌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로 나타난다. 가족돌봄 보다는 국가 정책과 자기 돌봄을 바라는 응답의 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김순남 활동가는 공고한 가족주의가 가져온 모순을 지적했다.
“이제 돌봄의 사회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아파트값이 오르거나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큰 반발이 있잖아요. 통계를 봤을 때 노후에 자식에게 돌봄을 맡기겠다는 응답은 4%에 불과해요. 그러면 내 돈은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돌봄은 사회가 하라는 모순이 생겨버려요. 소유적인 가족주의죠. 사회의 올바른 돌봄이 필요하려면 공공 영역에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그 돈은 내고 싶지 않고 노후는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라는 모순적인 가족주의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사회가 혈연가족에게만 부여한 돌봄의 의무는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가족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돌봄 인프라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활동가들은 그 모순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형태를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시민연대로서의 생활동반자법
“내가 약해질 때 누구에게 의존하고 싶은지 추이를 보면 가족 구성이나 사회를 잘 알 수 있어요. 실제로 비혈연 관계에 의존하는 비율(23.7%)이 굉장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요.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보면 반려동물이나 전통적 관계를 벗어난 관계도 굉장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요. 이 높은 비율이 시사하는 점이 바로 생활동반자법 제도의 도입의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변화는 엄청 빨리 일어나고 있어요.”
생활동반자법은 혈연이나 결혼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실제로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는 성인 두 사람에게 법적인 가족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원래라면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서만 가능한 의료, 돌봄, 복지, 동거 기간의 재산 분배 등의 공공서비스를 한국 사회의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에 맞게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령 비혼인 동거 커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면 현재 법으로는 함께 아이를 출생등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성과의 결혼이 아니면 ‘취약 가족’인 미혼모, 미혼부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지정한 생활동반자가 의료 행위가 필요할 때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고, 서로가 아플 때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사망할 경우 재산 상속이나 주택 임차권 등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기존의 혈연 가족이 가졌던 권리가 상호합의한 동반자 1인에게 실질적인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과 결혼 제도의 결정적인 차이는 친족 관계에 얽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생활동반자법은 1대1 계약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이뤄진 계약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이나 의료 행위까지 두 사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친족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생활동반자법입니다. 결혼 제도 외에 함께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주요한 권리, 시민 연대로서의 생활동반자를 인정하자는 취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생활동반자법’ 도입에 대해 65세 이상 노년층 역시 2030 청년층(70~80%대) 못지않게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노년층 중 37.8%가 1인 가구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흐름은 당연하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할 수 있는 사람과 위급한 상황에 119에 신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함은 물론, 상속 갈등이나 연금에서의 위험 부담이 있는 ‘재혼’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도 새로운 파트너와 의료, 돌봄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2026 지방선거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요구하는 변화! (바로가기)
가족을 구성할 권리
제도가 개인의 삶을 구속할 때 미래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은 불안도가 높은 경향이 있고,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변화에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개인은 점차 고립된다. 김순남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페미니스트 학자인 로렌 벌랜트의 말을 빌려 ‘느린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느린 죽음(Slow death):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삶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잠식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폭력을 가리키며,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을 개인의 결함이나 선택으로 환원해 ‘정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함께 작동한다. (…) 느린 죽음의 상태는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갈 수록 좁아지고,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것이 아니라 더 좁아지는 것을 느끼는 상태이자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정동의 상태를 의미한다.
*** 참고문헌 : 김순남, 2025. '미래없음'과 '생애부정의':'퀴어-생애-정치'의 대안적 미래 만들기", 한국여성학
“정상가족 바깥의 사회에서 존중될 수 없는 사람들의 취약한 조건 그 자체가 우리 사회가 가족주의로 작동한다는 방증이예요. 비혼이거나 비정규직인데 혼자 살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여성은 소수일 수 밖에 없잖아요. 또 만약 사회가 이야기하는 이성애 결혼 관계가 아닐 때를 상상해보세요.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묻는 게 ‘무슨 관계냐’고 해요. 질문을 받는 위치는 끊임없이 신원 미상의 존재로 추궁당하고 심문 당하는 거예요. 가족 바깥에서는 죽을 때도 ‘무명’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정말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무연고 사망자의 80%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지만 현존성을 갖지 못하고 추방되는 존재의 불안정성이 저는 고립의 조건들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종화된 가족주의에서 이주민과 탈가정 청소년은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성애 중심의 가족주의에서 성소수자는 파트너가 있더라도 법적인 권리를 갖기 어렵다. 이러한 바탕에서 이들은 사회의 ‘개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김순남 활동가는 가족을 구성한다는 것은 “어떤 가족이든 만들 수 있음을 넘어 누가 이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될 수 없는 존재인지,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지형”이라고 말한다. 대안적인 가족 구성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의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성해내는 힘 자체가 중요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가족조차 만들 수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위치에서 삶과 죽음에 기록이 없는 신원 미상의 세계가 일어나고 있어요. 국가의 제도에서 예외적인 상태가 반복해서 작동하는 거죠. 국가의 인프라 자체가 누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보면 무엇을 중요시하는 지 알 수 있어요. 10대를 시민으로 보지 않는데 어떻게 아동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왜 굳이 4명까지만 만나게 해줬을까요? 아무도 근거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가족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가족은 이제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닌 개인이 선택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순남 활동가는 캐스 웨스턴의 책 <선택하는 가족들>을 인용하면서 는 이 맥락이 단순히 낭만적이거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치부될 수 있는, 개인들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님을 지적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HIV로 정말 많은 성소수자가 사망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고 방관하면서 에이즈에 대해 언급하길 꺼렸거든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ACT UP’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90년대 초에 운동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시위가 ‘유골 살포 시위’라고 가장 사랑했던 친구, 가족, 동료들의 유골함을 들고 가서 백악관에서 뼛가루를 뿌린 거예요. 그리고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친구와 동료들이 남긴 자녀들을 돌봤다는 겁니다.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 자리에서 활동가들은 새로운 돌봄과 양육 방식을 경험한 거예요. 그건 애도의 과정이기도 했고,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가족구성권 운동이 단순히 ‘선택성’을 중심으로만 해석되는 건 조금 아쉬움이 있어요.”
‘FAMILY PRACTICE’
영국의 학자 데이비드 모가인은 가족을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이야기했다. 김순남 활동가는 그의 말을 빌려 ‘누가’ 무엇을 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핵심은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밥을 하는 행위, 돌봄을 하는 행위,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 위급할 때 달려갈 수 있는 행위처럼 모든 관계는 실천으로부터 만들어져요. 깊은 관계는 그 행위성이 반복될 때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가족이니까 밥을 먹는 게 아니고, 밥을 함께 먹는 관계가 가족이든 벗이든 동반자든 될 수 있는 거죠. 행위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뿐이지, 관계가 있어서 의미가 생겨나는 건 아니에요.”
새로운 돌봄 상상하기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는 민법,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 및 폐지와 더불어 중요한 지점으로 ‘지정인 제도’를 든다. 김순남 활동가는 “생활동반자법으로 법적인 가족을 등록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연대에 기반한 차원에서의 내가 지정한 1인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결혼 관계 안에서도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삶을 떠나는 경우도 있고, 출생, 의료, 장례, 사후돌봄 등의 생애과정에서 국가가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립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영국에서는 법적인 배우자가 있더라도 장례를 주관하는 1순위는 내가 지정한 사람이며, 독일에서는 질병이나 노령으로 정신적·신체적 판단 능력을 잃었을 때 나를 대리해 줄 사람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실질적인 관계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범위를 중심으로 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새로운 제도는 새로운 연대, 돌봄,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연고자에 준하는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장사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의료법에 의해서 사망진단서는 또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장사법, 의료법, 가족관계등록법 이 모든 것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아무리 내가 유언장에 장례주도자를 지정해도 사망하는 순간 경찰이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힌 사람에게 연락합니다. 퀴어한 죽음은 제대로 된 애도조차 힘든 현실인 거죠.”
퀴어한 삶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고립되거나 위기를 맞이할 확률이 높고, 그 배경에는 민법 779조에서 비롯한 240개의 많은 조항이 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김순남 활동가는 ‘그 가족’에 대한 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제안했다.
“우리는 많은 관계들을 통해서 변화하고 있고, 관계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족’을 중심으로 관계의 위기와 실패와 변화, 그리고 도달해야하는 목표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스스로 뭔가 결여되고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는 거죠. 환상적인 ‘그 가족’의 기준이 되는 나 자신도 함께 돌아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 바깥에서 함께 돌봄의 가이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한 집단적 역량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제도가 변해야 합니다. 답은 없고 그저 답을 찾아갈 수밖에 없어요.”
옆으로 살기, Growing Sideways
암울하기만 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했을 때 김순남 활동가는 Stockton의 ‘옆으로 새기(Growing Sideways)’를 생각했다고 한다. 정상성의 각본은 우리는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며 취업하고, 결혼하고, 성공하라고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각본을 따를 수 없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잠깐 멈추거나 옆길로 샐 수 밖에 없다. Stockton은 이를 훌륭한 저항이자 행위성으로 보았다.
“우리 삶은 선형적인 직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꾸 문제라고 하는데, 이미 우리 모든 삶은 옆으로 새고 있습니다. 옆길로 새면서 저기 가면 재미있을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무수하게 더 많이 옆길로 새고 더 많이 배회하는 방식을 통해서 다른 삶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규범적인 시간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자원이 되길 바랍니다.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옆길에서 직면하는 힘들이 모여서 옆으로 성장하는 길을 많이 생성해두는 게 우리의 집단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순남 활동가는 꾸준히 기존의 질서를 뜯어보고 새로운 질문을 찾는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게 된 배경에는 어떤 흐름들이 있었는지 톺아보고 그것을 해체하며 정의되지 않은 낯선 관계들이 여기에 있다고 사회에 외친다.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이미 실존하고 있는 관계들을 통해서 상호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방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 본 자료는 제24회 지리산쌀롱 강연을 정리한 개인 강의록입니다. 사전 동의 및 출처 표기 없이 본 자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복제·배포·인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
글 | 승현
‘그 가족’의 바깥에서 시민적 유대와 돌봄의 관계를 발명하기
만약 아픈 친구나 동료가 아프거나 다쳐 함께 병원에 가야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친 사람의 가족 연락처를 알아볼 것이다. 내가 병원에 갔을 때 그를 위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무수히 많다. 길거리에서 혼자 우는 아이를 발견한다면? 마을의 노인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동거인이 실종되었다면? 우리가 위기의 순간마다 가족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응급실의 수술동의서 앞에서, 주민센터나 경찰서의 창구 앞에서 국가는 언제나 법적 서류상의 가족을 유일한 보호자로 호명하기 떄문이다.
24번째 지리산쌀롱에서는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활동가를 모시고 실제로는 가장 가깝게 지냈으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남이 될 수 밖에 없는 비혈연 관계에 대한 배경, 그리고 다양한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고 새로운 방식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순남 활동가는 여성 엄마, 남성 아빠, 자녀로 구성된 이상적인 가족의 상을 ‘그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정상가족’이라는 단어를 쓰면 이것이 성찰의 대상이라기 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를 공고히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가족이라고 칭함으로써 가족을 낯선 대상으로 마주할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 그는 이번 지리산쌀롱에서 이야기 할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며, 태어나 삶을 살고 떠나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가족’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달라지고 우리에게 낯설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 대안이 퀴어가족정치로서의 가족구성권이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 김순남 (지은이), 오월의봄 (펴낸곳)
‘그 가족’의 탄생, 호주제 폐지
21세기 초, 호주제 폐지에 대한 운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한국 사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많은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왜 나는 시댁가족의 일부가 되는지, 왜 아이는 반드시 아빠의 성(姓)을 따라야 하는지 물었다. 이윽고 2005년 호주제 폐지를 통해 호주에 의해서 가족구성이 결정되는 시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새로운 제도를 통해 가족의 기준을 정의했다. 현재 공고한 가족구조의 핵심이 되는 가족관계등록법, 건강가정기본법, 민법 779조는 모두 그 시기에 생겨났다.
※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2. “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2의2. “1인가구”라 함은 1명이 단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3. “건강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4. “건강가정사업”이라 함은 건강가정을 저해하는 문제(이하 “가정문제”라 한다)의 발생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와 가족의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의 가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말한다.
제8조(혼인과 출산)
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②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모ㆍ부성권 보호 및 태아의 건강보장 등 적절한 출산ㆍ육아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나은 가족구성과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오히려 편협해진 가족의 범위였다. 가족은 혈연, 혼인 관계가 아니면 안 되었고, 혼인과 출산은 모든 국민이 가져야 할 사명감이 되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실제 우리 주변에서 관계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동거하는 파트너일 수도 있고, 약을 대신 타 와주는 이웃일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났을 때 반려견을 맡길 수 있는 친구일 수도 있다. 김순남 활동가는 “현대에는 원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지하고 함께하는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곁에 머물고 있는 비혈연 공동체의 모습을 ‘의존적 생태계’로 표현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인구소멸지역에서는 흔히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사전적으로 인프라는 김순남 활동가는 인프라의 정의를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그것들을 지켜야 할 가치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서울시의 실정은 어떨까.
최근 서울시가 효율성 강화, 예산 절감, 기능 중복을 명분으로 성평등, 돌봄, 청소년 분야 지원 공공기 관과 사업을 대거 축소하거나 폐지한 대표적인 목록이다. 김순남 활동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 자리를 대체한 서울시의 신설 정책 ‘난자 냉동 시술비 지원 사업’을 소개했다.
불행의 아카이브 *
이 사회에서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가령 가정을 떠난 사람들은 정말 불행할까. 하지만 집 밖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집 안의 경계가 공고하며 그곳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혼 제도의 영향력이 너무 비대할 때 어떤 여성들은 가정폭력을 겪고도 이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혼에 성공하더라도 사회가 ‘이혼은 불행’이라고 여겼을 때 이혼한 삶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가정, 이혼, 비혼, 결혼 바깥의 삶을 사는 사람들, 퀴어한 삶은 모두 새로운 계보를 찾는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지, 정상궤도에서 조금 벗어나서 다른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지,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갈 위로와 연대의 틈을 찾는다. 사회가 ‘그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해 찍은 불행의 낙인을 전복하듯 김순남 활동가는 이를 ‘불행의 아카이브’, 새로운 조상찾기로 설명했다.
그들은 사실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온몸에 사회가 찍은 불행의 낙인을 뒤집어 쓰고 살기 위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의 계보를 찾고 있었다. 김순남 활동가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의 역할이 “어려운 조건과 억압 속에서 집을 떠날 수 있는 힘 자체를 무력화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삶은 집을 떠나면서, 즉 움직이면서 삶의 반경이 확장되고,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타자와 연결되며 삶의 반경을 확장한다. 타자를 만나면서 동시에 ‘나’를 만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이동’의 과정에 제약을 두는 사회란 이들에게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가족신분사회: 호주제 폐지 이후의 한국가족정치』(가족구성권연구소 지음, 와온, 2025) 중 김순남의 글 「정상가족 밖에서 생존의 세계를 모색하는 한부모여성」에서
신분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가족주의는 비단 내국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다. 김순남 활동가가 만난 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장 취약한 불평등의 핵심은 “너네 나라로 보낸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장소성의 상실’이라 표현했다. 당사자가 맺고 있는 관계, 의미, 가치 등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키는 말이자 ‘너의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기도 했다.
한국 가족이 겪어 왔던 문제도 있다. 바로 밥상머리 예절을 강조했던 식사시간이다. 식사는 보통 ‘가장’의 경제 노동과 ‘주부’의 가사 노동이 합쳐져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권력으로 작동될 때 아이들은 그들이 주는 음식을 빌미로 통제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순남 활동가는 만약 가정이 훈육의 공간이고 명령의 공간이라면 이곳이 ‘집’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을 갖는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책 <가족 신분 사회>에서는 아동, 청소년, 한부모여성, 결혼이주여성, 비혼여성, 장애인, 동성 부부 등 소수자의 관점에서 ‘가족’이 무엇인지 질문하는데, 여기에서는 ‘그 가족’ 바깥에서 성원권을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출처 :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겨레』
고립된 ‘취약가족’
호주제 폐지 당시 생겨난 건강가정기본법 제 12조에는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하고,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한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한 달 전체가 가정의 달이라고 공식 지정된 나라는 한국 뿐이다. 2004년, 호주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가족이 흐트러지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나라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있는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 지정했다. ‘건강한’ 가족을 토대로 한 건강가정기본법을 통해 사회는 역설적으로 조손가족, 한부모가족, 비혼 동거 가구 등 ‘유해한’ 가정에 대한 인식의 틀을 만들었다. 국가는 가족 밖은 불행하다는 이데올로기 아래 ‘그 가족’을 공고히 유지해 온 한국은 틀을 벗어난 가족을 ‘취약가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위기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지원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동시에 서로 의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올해 성평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는 새로운 취약가족으로 ‘고립청년’을 포함시켰다. 비자발적으로 돌봄 공백이 생긴 노년층과 달리 자발적 독립의 성격이 강한 청년층 1인 가구(2030 청년 중 1인 가구는 35.9%)는 이제 ‘고립’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빠져있다.
김순남 활동가는 좋아하는 미국의 페미니즘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의 말을 인용해 각자 고립되는 사회가 잃어버린 것을 설명했다. “독립의 반대말은 의존이 아니라 고립이다.” 상호 의존은 부끄럽거나 극복해야할 무엇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기본적 형태라는 것이다. 자율적인 인간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벗어나 상호의존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관계 안에서 연결되고 연루되며 고립을 멈출 수 있다.
고통의 가족주의
김순남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누구의 고통에 주목하는 지를 보면 국가가 가족주의를 얼마나 ‘허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나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라는 문구에서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는가. ‘가장의 무게’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상상하는가. 이렇듯 사회는 이성애, 결혼, 남성, 자국민, 성인,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고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고통의 주체가 될 때 고통의 피해자는 반대편의 아동, 여성, 이주민, 장애인, 퀴어가 된다.
2025년 4월 26일 열린 다큐멘터리 <침몰가족> 특별 상영 포스터
낯섦에서 시작되는 변화
그렇다면 가족주의로부터의 단절과 새로운 이동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김순남 활동가는 다큐멘터리 <침몰가족>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침몰가족>은 스물두 살의 싱글맘, 가노 호코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모집하고 이에 낯선 보육자들이 모여 펼쳐지는 대안적 공동육아의 기록으로, 이야기는 이 환경에서 자란 당사자, 가노 쓰치가 20년 후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영화를 본 어떤 이는 질문한다. “위험하게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아이를 맡깁니까?” 여기에 대해 김순남 활동가는 대답한다. “위험한 게 아니라 안전할 수 있는 돌봄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가족 돌봄의 시대의 종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년기에는 더 이상 자녀의 돌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로 나타난다. 가족돌봄 보다는 국가 정책과 자기 돌봄을 바라는 응답의 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김순남 활동가는 공고한 가족주의가 가져온 모순을 지적했다.
사회가 혈연가족에게만 부여한 돌봄의 의무는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가족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돌봄 인프라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활동가들은 그 모순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형태를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시민연대로서의 생활동반자법
생활동반자법은 혈연이나 결혼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실제로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는 성인 두 사람에게 법적인 가족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원래라면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서만 가능한 의료, 돌봄, 복지, 동거 기간의 재산 분배 등의 공공서비스를 한국 사회의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에 맞게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령 비혼인 동거 커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면 현재 법으로는 함께 아이를 출생등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성과의 결혼이 아니면 ‘취약 가족’인 미혼모, 미혼부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지정한 생활동반자가 의료 행위가 필요할 때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고, 서로가 아플 때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사망할 경우 재산 상속이나 주택 임차권 등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기존의 혈연 가족이 가졌던 권리가 상호합의한 동반자 1인에게 실질적인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생활동반자법’ 도입에 대해 65세 이상 노년층 역시 2030 청년층(70~80%대) 못지않게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노년층 중 37.8%가 1인 가구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흐름은 당연하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할 수 있는 사람과 위급한 상황에 119에 신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함은 물론, 상속 갈등이나 연금에서의 위험 부담이 있는 ‘재혼’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도 새로운 파트너와 의료, 돌봄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2026 지방선거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요구하는 변화! (바로가기)
가족을 구성할 권리
제도가 개인의 삶을 구속할 때 미래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은 불안도가 높은 경향이 있고,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변화에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개인은 점차 고립된다. 김순남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페미니스트 학자인 로렌 벌랜트의 말을 빌려 ‘느린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느린 죽음(Slow death):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삶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잠식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폭력을 가리키며,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을 개인의 결함이나 선택으로 환원해 ‘정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함께 작동한다. (…) 느린 죽음의 상태는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갈 수록 좁아지고,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것이 아니라 더 좁아지는 것을 느끼는 상태이자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정동의 상태를 의미한다.
*** 참고문헌 : 김순남, 2025. '미래없음'과 '생애부정의':'퀴어-생애-정치'의 대안적 미래 만들기", 한국여성학
인종화된 가족주의에서 이주민과 탈가정 청소년은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성애 중심의 가족주의에서 성소수자는 파트너가 있더라도 법적인 권리를 갖기 어렵다. 이러한 바탕에서 이들은 사회의 ‘개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김순남 활동가는 가족을 구성한다는 것은 “어떤 가족이든 만들 수 있음을 넘어 누가 이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될 수 없는 존재인지,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지형”이라고 말한다. 대안적인 가족 구성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의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성해내는 힘 자체가 중요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가족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가족은 이제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닌 개인이 선택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순남 활동가는 캐스 웨스턴의 책 <선택하는 가족들>을 인용하면서 는 이 맥락이 단순히 낭만적이거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치부될 수 있는, 개인들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님을 지적했다.
‘FAMILY PRACTICE’
영국의 학자 데이비드 모가인은 가족을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이야기했다. 김순남 활동가는 그의 말을 빌려 ‘누가’ 무엇을 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핵심은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돌봄 상상하기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는 민법,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 및 폐지와 더불어 중요한 지점으로 ‘지정인 제도’를 든다. 김순남 활동가는 “생활동반자법으로 법적인 가족을 등록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연대에 기반한 차원에서의 내가 지정한 1인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결혼 관계 안에서도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삶을 떠나는 경우도 있고, 출생, 의료, 장례, 사후돌봄 등의 생애과정에서 국가가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립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영국에서는 법적인 배우자가 있더라도 장례를 주관하는 1순위는 내가 지정한 사람이며, 독일에서는 질병이나 노령으로 정신적·신체적 판단 능력을 잃었을 때 나를 대리해 줄 사람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퀴어한 삶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고립되거나 위기를 맞이할 확률이 높고, 그 배경에는 민법 779조에서 비롯한 240개의 많은 조항이 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김순남 활동가는 ‘그 가족’에 대한 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제안했다.
옆으로 살기, Growing Sideways
암울하기만 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했을 때 김순남 활동가는 Stockton의 ‘옆으로 새기(Growing Sideways)’를 생각했다고 한다. 정상성의 각본은 우리는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며 취업하고, 결혼하고, 성공하라고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각본을 따를 수 없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잠깐 멈추거나 옆길로 샐 수 밖에 없다. Stockton은 이를 훌륭한 저항이자 행위성으로 보았다.
김순남 활동가는 꾸준히 기존의 질서를 뜯어보고 새로운 질문을 찾는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게 된 배경에는 어떤 흐름들이 있었는지 톺아보고 그것을 해체하며 정의되지 않은 낯선 관계들이 여기에 있다고 사회에 외친다.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이미 실존하고 있는 관계들을 통해서 상호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방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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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