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와 연결 : 연결의 진화 & 로컬 팩트
지원금과 숫자 너머, 조희정 박사가 말한 로컬 이주의 불편한 사실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
지역은 오랫동안 이 질문을 물어왔다. 누군가는 귀촌을 꿈꾼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언젠가 도시를 떠나 작은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실제로 짐을 싸서 내려오는 사람은 많지 않고, 내려온 사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은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지원금을 만들고, 청년 창업사업을 열고, 한달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를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운다. 그런데도 질문은 반복된다.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
5월 19일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진행된 제23회 지리산쌀롱 ‘몇 개의 대안’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날 강연 제목은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였다. 초대손님인 더가능연구소 조희정 박사는 지역재생과 로컬 이주, 관계인구,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영역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다. 그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 『로컬의 진화』, 『로컬에서 청년하다』 등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로컬 팩트』를 번역하고 『연결의 진화』를 함께 썼다.
이날 조희정 박사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했다. 사람은 지원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행정은 사람을 숫자로 세고 싶어 하지만, 실제 이주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주는 주소지를 옮기는 행정행위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행복, 일감, 관계, 이동성, 정체성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

사람은 왜 움직이는가!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와 연결
조희정 박사는 자신이 지역을 연구하는 이유를 “연구를 위한 연구”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변화를 보는 일이 흥미롭다고 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짓을 할까”, “그 일을 하면 돈이 남을까, 명예를 얻을까, 아니면 행복해질까” 같은 질문이 사회과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인구정책의 언어로 보면 사람은 숫자가 된다. 몇 명이 왔는지, 몇 명이 전입했는지, 몇 명이 창업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그 사람은 왜 이 지역에 오고 싶어 했는가. 이곳에서 어떤 삶을 기대했는가. 실제로 와보니 무엇이 달랐는가. 이곳에서 누구와 연결됐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가.
조희정 박사는 한국의 행정 구조가 지역에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장면을 반복해서 봐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정책 연구자에 가깝다고 하면서도, 정책을 연구하다 보면 오히려 “정책이 지역을 망가뜨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만들어지는 사업들이 실제 지역의 삶과 잘 맞지 않고, 행정의 구조가 지역에 도움이 되기보다 단절과 피로를 만들 때가 많다는 뜻이다.

지방이주는 유행인가, 오래된 반복인가? 『로컬 팩트』가 보여준 이주의 현실
조희정 박사는 최근 번역한 『로컬 팩트』를 중심으로 지방 이주의 현실을 설명했다. 『로컬 팩트』는 일본 연구자 이토 마사토가 쓴 책으로, 지방 이주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주의 현실과 정책의 문제를 분석한 책이다. 조희정 박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 이주는 새로운 유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 반복된 담론이다. 일본에서는 30년 넘게 “지방 이주의 붐”이라는 말이 반복돼 왔다고 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귀농·귀촌, 한달살이, 워케이션, 관계인구, 생활인구, 청년마을, 로컬창업 등 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핵심 질문은 비슷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오게 할 것인가’ 묻는 일이다.
문제는 그 질문이 너무나 “오게 할 것인가”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왜 오는가, 어떤 조건에서 머무는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부족하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연고 없는 지역으로 가요. 누군가는 교육 때문에 이동하고, 누군가는 원격근무가 가능해져 이동하고, 누군가는 요양을 위해, 누군가는 특정 콘텐츠나 팬덤을 따라 지역과 관계를 맺어요. 그러니까 이주의 형태가 다 다른데 정책은 자주 하나의 페르소나만을 상상한다는 거죠”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 느슨한 삶을 찾아 지역으로 내려온다는 이미지를 쉽게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고정 수입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동은 쉽지 않다.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일감, 주거, 교육, 돌봄, 교통 같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실제 이주는 일어나기 어렵다.
좋아 보이는 지역과 살 수 있는 지역은 다르다. 여행하고 싶은 지역과 정착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지역이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을 부르는 정책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에 오면 얼마 줄게”라는 방식의 한계
이날 강연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목 중 하나는 지원금 이야기였다. 행정은 지역에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지원금을 만든다.
“청년에게 창업비를 주고, 이주자에게 정착금을 주고, 아이가 있으면 더 주고, 집수리비를 주고, 한달살이 비용을 보조하고요. 이게 행정 입장에서는 분명한 정책 수단이죠. 예산을 세울 수 있고, 공고를 낼 수 있고, 몇 명을 지원했는지 결과를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조희정 박사는 이 방식이 이주를 거래처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이주 상담 과정에서 “그 지역으로 이주하면 얼마 주느냐”고 묻는 사례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어느 지역은 얼마를 주고, 어느 지역은 더 많이 주는지 비교한다. 지역의 삶보다 지원금 액수가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도 연구하는 김에 이사나 가볼까 싶어 여러 정책을 찾아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살펴보니 “그 돈 받고 거길 가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주가 값을 매긴 거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원금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초기 이주자에게 주거비, 창업비, 교육비, 이동비는 중요하다. 문제는 지원금이 이주의 전부가 될 때다. 돈은 문을 열 수 있지만, 오래 머물 이유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돈 받고 왔다가 돈 떨어지면 떠난다”는 말이 나온다.
지역이 물어야 할 것은 “얼마를 주면 올 것인가”가 아니다. “이 사람이 이곳에서 어떤 삶을 꾸릴 수 있는가”다. 지역의 일감은 무엇인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아플 때 돌봄을 받을 수 있는가. 지역 안에서 자기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빠진 지원금은 사람을 잠시 데려올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물게 하기는 어렵다.

생활인구 몇만 명이라는 공허한 목표
조희정 박사는 관계인구와 생활인구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짚었다. 어떻게 보면 조희정 박사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이 국내에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낸 당사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개념이 행정 안에서 다시 숫자 목표로만 소비되는 장면을 보고 있다고 했다.
관계인구는 본래 사는 인구와 관광객만으로 지역의 사람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실제 지역에는 주민도 있고, 관광객도 있고, 일 때문에 오가는 사람도 있고, 통학하는 사람도 있고, 군복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완전히 외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지역 안팎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지자체는 생활인구 몇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식으로 목표를 세운다. 조희정 박사는 이런 공약이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생활인구를 늘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머릿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 되면, 관계인구 역시 관광객 수를 세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완전히 지역 밖에 있는 외지인만 바라보기보다, 이미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역 안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업무상 자주 오가는 사람, 통학하거나 군복무를 하는 사람, 특정 활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찾는 사람도 지역의 중요한 관계망 안에 있다.
관계인구는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다. 한 사람이 한 번 축제에 다녀갔다고 해서 관계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역의 농가와 연결되고, 다음 해에도 다시 찾아오고, 지역의 일을 함께 돕고, 누군가를 소개하고, 새로운 활동을 제안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이 왔는지가 아니라, 어떤 관계가 생겼는지다.
좋은 이주자? 지역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조희정 박사는 지역이 이주자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편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은 종종 “유익한 이주자”를 기대한다. IT를 하는 사람, AI 창업을 하는 사람, 고소득 전문직, 지역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줄 청년 창업가 같은 이미지다.
그러나 실제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훨씬 복잡하다. 청년이라고 모두 같은 청년이 아니고, 이주자라고 모두 같은 이주자가 아니며, 관계인구라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는 관계인구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서울에서 우리 지역에 왔다 갔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지역 안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고, 일을 하러 오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왜 관계인구로 잘 보이지 않는가. 지역은 어떤 사람을 환영하고, 어떤 사람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지역은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상상한 사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의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 지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줄 사람, 행정 성과로 설명하기 쉬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에는 어쩌면 이런 답도 숨어 있다. 지역은 사람을 부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사람만 상상하고 있을 수 있다.
지역 이주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일자리다. 조희정 박사는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자리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에는 일자리가 많다. 농촌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일도 많다. 문제는 그것이 이주자가 원하는 일자리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일자리보다 “일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했다. 일자리는 고용 형태와 직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감은 지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과제를 포함한다. 지역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월급을 주는 자리만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대목은 청년 이주와도 연결된다. 청년이 지역에 오지 않는 이유가 반드시 지역을 싫어해서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지역에 필요한 역할이 있는데도 그것이 일감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쓸모 있다고 느끼고, 지역 안에서 할 일이 생기고, 그 일이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 머문다. 지역이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일자리 목록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 구조다.

연결 없는 단기 지원사업의 피로
강연 후반부에서 조희정 박사는 『연결의 진화』를 중심으로 지역사업의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정부 지원사업 대부분이 1년짜리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실제 사업기간은 더 짧다. 예산은 늦게 내려오고 정산은 데드라인 전에 해야 하니 1년짜리 사업이 실제로는 10개월, 8개월짜리 사업이 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몇 명이 참여했는지, 몇 회를 운영했는지, 몇 건의 홍보물이 나갔는지를 정리한다.
조희정 박사는 이 지점에서 실속있는 부가가치를 강조했다.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지역에 좋은 것은 아니다. 방문객이 많았다고 해서 지역이 지속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안에 어떤 연결이 생겼는지, 그 연결이 다음 활동으로 이어지는지, 지역의 자원과 사람, 산업과 문화, 관계와 경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지와 같은 알짜 가치다.
지역 현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사업이 많다. 그러나 좋은 뜻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사업이 끝나고 나서도 남는 관계, 남는 일감, 남는 공간, 남는 수익 구조가 있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행사의 성공이 아니라 연결의 지속이다.

히가시카와의 의자, 하나의 사소한 행위가 지역 생태계가 될 때
『연결의 진화』에서 조희정 박사가 강조한 대표 사례 중 하나는 일본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의 ‘의자 프로젝트’였다. 히가시카와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자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출생 축하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희정 박사는 이 사례의 핵심이 의자 하나를 주는 데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
아이가 태어나면 지역이 의자를 준다. 그 의자는 지역의 목공 장인이 만든다. 의자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고,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은 아이와 가족이 있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을 지역이 축하해줬다는 감각을 갖는다. 장인은 자신이 만든 의자가 한 아이의 삶과 연결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지역의 목재 산업은 하나의 문화적 의미를 얻는다.
의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아이, 가족, 장인, 산업, 지역의 관계를 잇는 매개가 된다. 조희정 박사는 이 작은 행위가 산업, 문화, 공동체로 이어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도 아이에게 의자 하나 주자”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의자가 아니다. 의자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가다. 그 의자가 지역 장인의 자부심이 되고, 목재 산업의 쇼룸이 되고, 아이의 기억이 되고, 지역의 메시지가 될 때 비로소 연결은 부가가치가 된다.
히가시카와의 사례가 인상적인 이유는 작은 자원을 끝까지 연결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있는 사소한 자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한 번의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사람과 산업과 문화와 정체성으로 이어갔다. 조희정 박사가 말한 “연결의 진화”는 바로 이런 과정이었다.
지역 전체가 캠퍼스가 될 수 있을까? 배움의 연결을 사람의 연결로
조희정 박사는 또 다른 사례로 ‘사토노바 대학’을 소개했다. 이는 지역 전체를 배움의 장으로 삼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여러 지역을 경험하며 배우고, 지역 어른들은 학생을 단순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단계별로 상담하고 컨설팅한다. 시험으로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감각과 관계를 배운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정말로 지역이 학교가 된다는 것. 지역 전체가 캠퍼스라는 말은 멋진 슬로건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역 안의 어른들이 학생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학생이 지역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해보고, 어떤 실패를 겪고, 어떻게 다시 시도할 수 있는지가 설계되어야 한다.
‘사토노바 대학’에서는 학생 한 명이 1년 동안 지역에서 맺는 깊은 관계가 60명 이상이다. 이는 단순한 참여자 수보다 훨씬 중요한 지표일 수 있다.
만약 지역에 온 학생이 지역 어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면 학생은 지역을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지역 역시 그 학생을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성장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런 관계가 쌓일 때 지역은 단순히 사람을 유치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곳이 된다.

왜 안 오느냐보다,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
사람들은 지역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곧바로 이주 의사를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도시 생활에 대한 피로, 자연에 대한 동경, 아이를 다르게 키우고 싶은 마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은 바람, 막연한 탈출 욕구가 섞여 있다. 실제 이주는 그 감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살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일자리보다 더 넓은 의미의 일감이 필요하다.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교육과 돌봄이 필요하다. 병원과 교통, 문화와 관계망이 필요하다. 지역 안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하다.
그래서 “왜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외부 사람을 탓하는 질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고 싶다는 마음을 실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계단이 지역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한 번 와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지역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는가. 일감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지역은 더 이상 “오세요”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오면 얼마를 주겠다”는 방식만으로도 부족하다. 이제는 “여기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어떤 일을 함께 만들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오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 올 이유가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머물 조건이 아직 충분히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몇 명 데려올 것인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과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는가. 지역의 미래는 인구 숫자를 늘리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역과 맺는 관계의 밀도,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일감과 배움과 실속,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행복의 가능성에서 시작된다.
글 | 최학수 (주간함양)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와 연결 : 연결의 진화 & 로컬 팩트
지원금과 숫자 너머, 조희정 박사가 말한 로컬 이주의 불편한 사실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
지역은 오랫동안 이 질문을 물어왔다. 누군가는 귀촌을 꿈꾼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언젠가 도시를 떠나 작은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실제로 짐을 싸서 내려오는 사람은 많지 않고, 내려온 사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은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지원금을 만들고, 청년 창업사업을 열고, 한달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를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운다. 그런데도 질문은 반복된다.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
5월 19일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진행된 제23회 지리산쌀롱 ‘몇 개의 대안’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날 강연 제목은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였다. 초대손님인 더가능연구소 조희정 박사는 지역재생과 로컬 이주, 관계인구,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영역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다. 그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 『로컬의 진화』, 『로컬에서 청년하다』 등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로컬 팩트』를 번역하고 『연결의 진화』를 함께 썼다.
이날 조희정 박사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했다. 사람은 지원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행정은 사람을 숫자로 세고 싶어 하지만, 실제 이주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주는 주소지를 옮기는 행정행위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행복, 일감, 관계, 이동성, 정체성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
사람은 왜 움직이는가!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와 연결
조희정 박사는 자신이 지역을 연구하는 이유를 “연구를 위한 연구”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변화를 보는 일이 흥미롭다고 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짓을 할까”, “그 일을 하면 돈이 남을까, 명예를 얻을까, 아니면 행복해질까” 같은 질문이 사회과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인구정책의 언어로 보면 사람은 숫자가 된다. 몇 명이 왔는지, 몇 명이 전입했는지, 몇 명이 창업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그 사람은 왜 이 지역에 오고 싶어 했는가. 이곳에서 어떤 삶을 기대했는가. 실제로 와보니 무엇이 달랐는가. 이곳에서 누구와 연결됐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가.
조희정 박사는 한국의 행정 구조가 지역에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장면을 반복해서 봐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정책 연구자에 가깝다고 하면서도, 정책을 연구하다 보면 오히려 “정책이 지역을 망가뜨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만들어지는 사업들이 실제 지역의 삶과 잘 맞지 않고, 행정의 구조가 지역에 도움이 되기보다 단절과 피로를 만들 때가 많다는 뜻이다.
지방이주는 유행인가, 오래된 반복인가? 『로컬 팩트』가 보여준 이주의 현실
조희정 박사는 최근 번역한 『로컬 팩트』를 중심으로 지방 이주의 현실을 설명했다. 『로컬 팩트』는 일본 연구자 이토 마사토가 쓴 책으로, 지방 이주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주의 현실과 정책의 문제를 분석한 책이다. 조희정 박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 이주는 새로운 유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 반복된 담론이다. 일본에서는 30년 넘게 “지방 이주의 붐”이라는 말이 반복돼 왔다고 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귀농·귀촌, 한달살이, 워케이션, 관계인구, 생활인구, 청년마을, 로컬창업 등 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핵심 질문은 비슷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오게 할 것인가’ 묻는 일이다.
문제는 그 질문이 너무나 “오게 할 것인가”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왜 오는가, 어떤 조건에서 머무는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부족하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연고 없는 지역으로 가요. 누군가는 교육 때문에 이동하고, 누군가는 원격근무가 가능해져 이동하고, 누군가는 요양을 위해, 누군가는 특정 콘텐츠나 팬덤을 따라 지역과 관계를 맺어요. 그러니까 이주의 형태가 다 다른데 정책은 자주 하나의 페르소나만을 상상한다는 거죠”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 느슨한 삶을 찾아 지역으로 내려온다는 이미지를 쉽게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고정 수입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동은 쉽지 않다.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일감, 주거, 교육, 돌봄, 교통 같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실제 이주는 일어나기 어렵다.
좋아 보이는 지역과 살 수 있는 지역은 다르다. 여행하고 싶은 지역과 정착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지역이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을 부르는 정책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에 오면 얼마 줄게”라는 방식의 한계
이날 강연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목 중 하나는 지원금 이야기였다. 행정은 지역에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지원금을 만든다.
“청년에게 창업비를 주고, 이주자에게 정착금을 주고, 아이가 있으면 더 주고, 집수리비를 주고, 한달살이 비용을 보조하고요. 이게 행정 입장에서는 분명한 정책 수단이죠. 예산을 세울 수 있고, 공고를 낼 수 있고, 몇 명을 지원했는지 결과를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조희정 박사는 이 방식이 이주를 거래처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이주 상담 과정에서 “그 지역으로 이주하면 얼마 주느냐”고 묻는 사례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어느 지역은 얼마를 주고, 어느 지역은 더 많이 주는지 비교한다. 지역의 삶보다 지원금 액수가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도 연구하는 김에 이사나 가볼까 싶어 여러 정책을 찾아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살펴보니 “그 돈 받고 거길 가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주가 값을 매긴 거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원금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초기 이주자에게 주거비, 창업비, 교육비, 이동비는 중요하다. 문제는 지원금이 이주의 전부가 될 때다. 돈은 문을 열 수 있지만, 오래 머물 이유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돈 받고 왔다가 돈 떨어지면 떠난다”는 말이 나온다.
지역이 물어야 할 것은 “얼마를 주면 올 것인가”가 아니다. “이 사람이 이곳에서 어떤 삶을 꾸릴 수 있는가”다. 지역의 일감은 무엇인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아플 때 돌봄을 받을 수 있는가. 지역 안에서 자기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빠진 지원금은 사람을 잠시 데려올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물게 하기는 어렵다.
생활인구 몇만 명이라는 공허한 목표
조희정 박사는 관계인구와 생활인구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짚었다. 어떻게 보면 조희정 박사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이 국내에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낸 당사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개념이 행정 안에서 다시 숫자 목표로만 소비되는 장면을 보고 있다고 했다.
관계인구는 본래 사는 인구와 관광객만으로 지역의 사람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실제 지역에는 주민도 있고, 관광객도 있고, 일 때문에 오가는 사람도 있고, 통학하는 사람도 있고, 군복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완전히 외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지역 안팎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지자체는 생활인구 몇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식으로 목표를 세운다. 조희정 박사는 이런 공약이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생활인구를 늘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머릿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 되면, 관계인구 역시 관광객 수를 세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완전히 지역 밖에 있는 외지인만 바라보기보다, 이미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역 안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업무상 자주 오가는 사람, 통학하거나 군복무를 하는 사람, 특정 활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찾는 사람도 지역의 중요한 관계망 안에 있다.
관계인구는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다. 한 사람이 한 번 축제에 다녀갔다고 해서 관계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역의 농가와 연결되고, 다음 해에도 다시 찾아오고, 지역의 일을 함께 돕고, 누군가를 소개하고, 새로운 활동을 제안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이 왔는지가 아니라, 어떤 관계가 생겼는지다.
좋은 이주자? 지역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조희정 박사는 지역이 이주자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편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은 종종 “유익한 이주자”를 기대한다. IT를 하는 사람, AI 창업을 하는 사람, 고소득 전문직, 지역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줄 청년 창업가 같은 이미지다.
그러나 실제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훨씬 복잡하다. 청년이라고 모두 같은 청년이 아니고, 이주자라고 모두 같은 이주자가 아니며, 관계인구라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는 관계인구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서울에서 우리 지역에 왔다 갔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지역 안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고, 일을 하러 오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왜 관계인구로 잘 보이지 않는가. 지역은 어떤 사람을 환영하고, 어떤 사람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지역은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상상한 사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의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 지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줄 사람, 행정 성과로 설명하기 쉬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에는 어쩌면 이런 답도 숨어 있다. 지역은 사람을 부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사람만 상상하고 있을 수 있다.
지역 이주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일자리다. 조희정 박사는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자리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에는 일자리가 많다. 농촌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일도 많다. 문제는 그것이 이주자가 원하는 일자리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일자리보다 “일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했다. 일자리는 고용 형태와 직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감은 지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과제를 포함한다. 지역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월급을 주는 자리만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대목은 청년 이주와도 연결된다. 청년이 지역에 오지 않는 이유가 반드시 지역을 싫어해서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지역에 필요한 역할이 있는데도 그것이 일감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쓸모 있다고 느끼고, 지역 안에서 할 일이 생기고, 그 일이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 머문다. 지역이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일자리 목록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 구조다.
연결 없는 단기 지원사업의 피로
강연 후반부에서 조희정 박사는 『연결의 진화』를 중심으로 지역사업의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정부 지원사업 대부분이 1년짜리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실제 사업기간은 더 짧다. 예산은 늦게 내려오고 정산은 데드라인 전에 해야 하니 1년짜리 사업이 실제로는 10개월, 8개월짜리 사업이 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몇 명이 참여했는지, 몇 회를 운영했는지, 몇 건의 홍보물이 나갔는지를 정리한다.
조희정 박사는 이 지점에서 실속있는 부가가치를 강조했다.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지역에 좋은 것은 아니다. 방문객이 많았다고 해서 지역이 지속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안에 어떤 연결이 생겼는지, 그 연결이 다음 활동으로 이어지는지, 지역의 자원과 사람, 산업과 문화, 관계와 경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지와 같은 알짜 가치다.
지역 현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사업이 많다. 그러나 좋은 뜻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사업이 끝나고 나서도 남는 관계, 남는 일감, 남는 공간, 남는 수익 구조가 있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행사의 성공이 아니라 연결의 지속이다.
히가시카와의 의자, 하나의 사소한 행위가 지역 생태계가 될 때
『연결의 진화』에서 조희정 박사가 강조한 대표 사례 중 하나는 일본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의 ‘의자 프로젝트’였다. 히가시카와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자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출생 축하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희정 박사는 이 사례의 핵심이 의자 하나를 주는 데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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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면 지역이 의자를 준다. 그 의자는 지역의 목공 장인이 만든다. 의자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고,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은 아이와 가족이 있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을 지역이 축하해줬다는 감각을 갖는다. 장인은 자신이 만든 의자가 한 아이의 삶과 연결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지역의 목재 산업은 하나의 문화적 의미를 얻는다.
의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아이, 가족, 장인, 산업, 지역의 관계를 잇는 매개가 된다. 조희정 박사는 이 작은 행위가 산업, 문화, 공동체로 이어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도 아이에게 의자 하나 주자”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의자가 아니다. 의자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가다. 그 의자가 지역 장인의 자부심이 되고, 목재 산업의 쇼룸이 되고, 아이의 기억이 되고, 지역의 메시지가 될 때 비로소 연결은 부가가치가 된다.
히가시카와의 사례가 인상적인 이유는 작은 자원을 끝까지 연결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있는 사소한 자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한 번의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사람과 산업과 문화와 정체성으로 이어갔다. 조희정 박사가 말한 “연결의 진화”는 바로 이런 과정이었다.
지역 전체가 캠퍼스가 될 수 있을까? 배움의 연결을 사람의 연결로
조희정 박사는 또 다른 사례로 ‘사토노바 대학’을 소개했다. 이는 지역 전체를 배움의 장으로 삼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여러 지역을 경험하며 배우고, 지역 어른들은 학생을 단순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단계별로 상담하고 컨설팅한다. 시험으로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감각과 관계를 배운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정말로 지역이 학교가 된다는 것. 지역 전체가 캠퍼스라는 말은 멋진 슬로건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역 안의 어른들이 학생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학생이 지역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해보고, 어떤 실패를 겪고, 어떻게 다시 시도할 수 있는지가 설계되어야 한다.
‘사토노바 대학’에서는 학생 한 명이 1년 동안 지역에서 맺는 깊은 관계가 60명 이상이다. 이는 단순한 참여자 수보다 훨씬 중요한 지표일 수 있다.
만약 지역에 온 학생이 지역 어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면 학생은 지역을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지역 역시 그 학생을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성장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런 관계가 쌓일 때 지역은 단순히 사람을 유치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곳이 된다.
왜 안 오느냐보다,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
사람들은 지역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곧바로 이주 의사를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도시 생활에 대한 피로, 자연에 대한 동경, 아이를 다르게 키우고 싶은 마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은 바람, 막연한 탈출 욕구가 섞여 있다. 실제 이주는 그 감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살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일자리보다 더 넓은 의미의 일감이 필요하다.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교육과 돌봄이 필요하다. 병원과 교통, 문화와 관계망이 필요하다. 지역 안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하다.
그래서 “왜 오고 싶다고 하면서 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외부 사람을 탓하는 질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고 싶다는 마음을 실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계단이 지역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한 번 와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지역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는가. 일감을 실험해볼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지역은 더 이상 “오세요”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오면 얼마를 주겠다”는 방식만으로도 부족하다. 이제는 “여기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어떤 일을 함께 만들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은 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오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 올 이유가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머물 조건이 아직 충분히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몇 명 데려올 것인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과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는가. 지역의 미래는 인구 숫자를 늘리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역과 맺는 관계의 밀도,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일감과 배움과 실속,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행복의 가능성에서 시작된다.
글 | 최학수 (주간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