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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

자료[산청, 수해 그 이후] 일 년 후, 안부를 묻다 - 농부 박창웅, 정현옥, 성두환, 이종혁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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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멜론이 영글기를 기다리며 

신안면 상정마을 박창웅 농부




후천마을 밭에 나타난 박창웅 농부의 손엔 예초기가 들려 있다. 오랜 가뭄 끝에 제법 많은 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요즘, 농부는 마음이 급하면서도 사뭇 설렌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해 이후로는 농사다운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정마을과 후천마을에서 ‘친환경’으로 멜론과 토종대파를 키워오던 그에게, 작년 물난리는 집과 하우스를 앗아간 것 말고도 토양 오염이라는 난제를 안겨주었다. 지난겨울과 올봄 내내 그가 농사 대신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했던 이유다.


“온 동네를 휩쓴 물이 우리 밭을 덮치니까 토양에서 잔류 농약이 검출된 거예요. 그거 뺀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계속 깨끗한 물을 들이붓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부어서 빼고 또 부어서 빼고. 그걸 몇 개월을 하느라 봄 동안 아무것도 못 심었다 아입니까. 몇 번 농약 검사하고 다시 친환경 인증받아서 얼마 전에 멜론 모종을 심었지요. 대파도 곧 다시 심긴 해야 하는데 여긴 사방이 논이고 드론으로 농약을 치는 곳이라 친환경 인증받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우선 김장배추부터 심을라고 오늘 예초기를 들고 온 거라.” 


간신히 토양을 되살려 멜론 모종은 심었으나 전반적인 농사 환경이 수해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지금도 하우스 복구는 진행 중이며, 작년 농사를 망친 데 따른 손해를 메꾸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안 된다. 그래도 박창웅 농부는 “드디어 농사를 다시 시작”한 것에 의의를 둔다. 작년 8월 이후 생계비와 농사 비용 마련을 위해 틈틈이 다니던 공사 일을 그만두고 내 몸과 정신을 오롯이 땅과 작물에만 쏟을 수 있음이 기쁘고 감사하다는 얘기다. 


“하우스 시설 공사니 전기공사 해주고 몇천만 원 버는 것보다 농사로 단돈 만 원 버는 게 훨씬 좋아요. 돈의 가치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천생 농부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그는 ‘목화장터’를 통해 다른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데도 열심이다. 최근엔 장터에서 직접 만든 우무와 콩물을 팔아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비결을 묻자 부산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고향이 부산 해운대라서 어릴 때 바닷가에 나가면 우뭇가사리가 천지삐까리였다고. 내가 주워가면 아버지가 우무를 만들어줬어요. 그때 자연스레 배운 거지예.” 


농사를 재개했으니 가을 장터에는 우무와 콩물 대신 잘 영근 멜론과 배추가 그의 매대 위에 놓일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벌써 입안에 단침이 돈다. 황금빛 가을은 그렇게 박창웅 농부의 손발을 거쳐 한 걸음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1년 전 인터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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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도 술도 다 끊고 살아났지요” 

단성면 구산마을 정현옥 농부




정현옥 농부를 만나면 명랑하고 발랄한 여고생이 떠오른다. 남들은 일생에 한 번 경험하기조차 쉽지 않은 재해를 연이어 겪었음에도, 그이 안에 잠재된 이런 기질이랄까 본성은 어떤 순간 문득 튀어나오곤 한다.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자신을 살리는 쪽으로 손을 뻗고 몸을 기울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해 이후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크고 작은 시련은 그의 얼굴에 그치지 않는 ‘눈물길’을 냈지만, 그럼에도 그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울다가 금세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화재와 수해로 경제적인 타격이 너무 커서 힘든 와중에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면서 더 괴로웠어요. 게다가 작년에 하우스 대충 복구하고 부랴부랴 사서 심은 딸기 모종이 죄다 병들고 썩어가니까 그때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거죠. 판매자가 병 든 모종을 준 거예요. 병든 모종을 심으면 그해 농사만 망치는 게 아니라 상토가 다 병들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거든요. 그거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오더라고. 그래 몇 달을 술에 의존해서 일하고 잠자고 그리 살았죠.”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던 삶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한 지인의 권유로 ‘불교대학’에 입문하고부터다. 수해 때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어서 예의상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자신을 살리는 길이 되어준 것이다. 온라인으로 불교 교리를 듣고 새벽마다 백팔 배를 하면서 정현옥 농부는 “고통이 바깥이 아닌 내 안에 있”음을 보았고, 모든 게 “나의 집착과 의존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임을 알았다. 그러고 나니 원망과 분노가 줄었다. 그는 마침내 술과 수면제를 끊었다. 갈등 관계에 있던 이웃을 먼저 찾아가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다 내가 살려고, 살고 싶어서 불교대학을 잡은 거 같아요. 덕분에 살아났으니 감사하죠. 어떤 병원이나 의사도 하지 못한 치유를 해주었잖아요. 이보다 큰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불교대학이 끝나고 난 뒤 그는 출퇴근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딸기 모종 심기까지 시간 여유가 있는 데다, 하루 중 잠시라도 집과 하우스를 떠나 숨통을 터주는 게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이따금 올라오고, 이를 다스리려면 혼자 숙고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트럭을 몰고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그래서 오히려 반갑다. 


작년과 달리 직접 키운 딸기 모종이 튼실하여 올해는 농사 걱정도 한결 덜하다. 하지만 이제 정현옥 농부는 농사에도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되려 마음이 편하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 본연의 명랑함이 되살아난다. 그이는 이렇게 점점 더 ‘살아나는’ 중이다.


(1년 전 인터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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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빛나는 시간’을 꿈꾼다

단성면 청계 성두환 농부




일 년 사이 성두환 농부는 눈에 띄게 살이 내렸다. 까닭을 물으니 “가뭄으로 논밭에 물 대느라 너무 힘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 여름 수해 이후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다. 네 가구가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온 만큼 실제적인 피해 못지않게 마음의 부담이 컸다고 그는 말한다. “여러 명이 숨만 쉬어도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며 버티는 게 필요했다는 얘기다. 


“복구 작업과 가을 농사를 동시에 해내긴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엄청난 일이었던 거예요. 완전히 무너진 데서 다시 시작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힘들다 고되다 뭐 그런 것도 모르고, 생각하면 골치 아프니까 무조건 그냥 몸으로 움직였죠.”


작년 늦가을 어느 날, 농사를 함께 짓는 5인은 동해안으로 짧은 소풍을 다녀왔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하루 정도는 쉼표를 찍어도 괜찮겠다 싶어, 그날 그들은 평소 엄두를 못 내던 킹크랩을 배불리 먹고 노래방도 가고 다 같이 방파제에 앉아 낚시도 하는 등 호사를 누렸다. 아깝고 소중한 그 장면들을 가슴에 품고 또 열심히 달린 덕분에 올해 들어 공동농장은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공동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상대방의 생활습관이나 기술력과 노동력 등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작년까지가 바로 그런 시간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수해라는 큰일을 같이 겪고 이겨내면서 관계가 더 단단해졌죠. 올해는 그렇게 쌓아온 기반 위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공동 노동은 대파 하나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농사에 쓰기로요. 친환경 대파는 수요가 많고 판로도 안정적이어서 오히려 양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이거 하나만 잘해도 네 가구 생활비는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소농이 혼자 친환경으로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농부가 계절에 맞춰 산나물 끊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부족분을 채워간다. 문제는 그러다 농사와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늘 안타까웠던 성두환 농부는 공동농사에서 대안을 찾았지만, 이 또한 경제적인 안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공동의 ‘실력’, 그리고 손에 쥘 수 있는 ‘소득’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5인의 농부들이 꿈꾸었던 ‘빛나는 시간’은 작년 여름 물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폐허가 된 자리에도 여전히 사람은 남았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꿈을 꾸며 빛을 좇는다. 단단해진 관계 위에서 이제 실속까지 챙길 줄 알게 된 이 농사 공동체의 야무진 발걸음이 어디로, 또 얼마나 멀리 나아갈지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1년 전 인터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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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원은 안 됐지만 이제 뭐든 해볼 수 있겠다 싶어요”

신안면 문대마을 딸기 농부 이종혁




딸기 농부들에게 8월 말은 모종 심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다. 이종혁 농부도 한참 두둑을 만들다 왔다고 했다. 얼마 뒤에 모종을 옮겨심어야 하는데 “모종 상태가 영 별로여서 걱정”이라는 얘기도 들려준다.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좋은 일이든 덜 좋은 일이든, 심지어 힘겨운 일에 직면해서도 시종일관 덤덤한 건 그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지난 지자체 선거에 군의원 후보로 나가 낙선했을 때도 그랬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그는 “괜찮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려야 하는, 그래서 자칫 지치기 쉬운 선거운동 또한 그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후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람들을 만나니까 부담이 없더라고요. 평소 잘 안 가본 데도 막 들어갈 수 있고 누구한테나 얘기도 편하게 붙일 수 있고요. 진보당 후보라서 힘든 것도 전혀 없었어요. 사실 처음엔 안 좋은 소리 들을 각오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저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보당이든 농민회든 주민들은 편견 없이 바라보는데 오히려 내(우리)가 지레 위축돼서 활동을 제한하지 않았나, 그런 걸 깨닫게 된 거죠.” 


농부면서 농민회 사무국장에 지역 활동가이기도 한 이종혁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농어촌기본소득’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녔다. 또 이동의 권리와 자유가 비단 노인뿐 아니라 전 계층에게 보장되어야 함을, 지자체와 주민 간의 상시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비록 선거는 끝났고 그는 낙선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후보로서 내세웠던 정책까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 그는 경상남도의회가 농어촌기본소득주민조례를 제정하도록 의견을 내고 압력을 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머릿속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궁구하고 그려보는 중이다.


“뭐든 할 수 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에요. 예를 들어 당선된 구의원 중 젊은 분들과 협력해서 청년 정책을 만들거나 선거운동 기간에 했던 쓰레기 줍는 일을 꾸준히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어르신들의 애로 사항을 들어주고 그분들 대신 관에 민원을 제기해서 해결하는 ‘홍반장’ 역할 같은 것도 하면 좋을 것 같고요. 마음은 그런데 당장 농사에 세 아이 육아에 현실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네요. 그 점이 아쉽죠.”


이상과 현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일은 흔하지 않고, 그사이 어디쯤에선가 서성이며 기다림을 감수하고 인내를 배워야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어쩌면 이종혁 농부도 그런 시간을 통과하는 중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보다 넓게 열린 생각과 하고 싶은 게 많아진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것들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다만 그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그가 지금의 현실을 견디는 대신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년 전 인터뷰 읽기)








글쓴이_ 자야

함양에 산 지 18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 이 인터뷰는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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