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카페 '토닥' 10년 지기 <김현숙 편>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14호 인터뷰
마을카페 토닥이 12월 24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2023년엔 전환을 위한 모색 기간을 갖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공간을 지켜온 김현숙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가을, 겨울이면 해 온 청 담는 일들을 하지 않으니 조금 한가하게 보내고 있다.
Q. 토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쉽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재정적 어려움과 문제가 있는 것을 몰랐다고도 하고. 그런데 왜 송년회 때 음료는 무료로 주냐고도 한다. 다들 아쉬움이 클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매일 갈 수는 없지 않겠냐. 이용수가 너무 적다. 재정적 부담도 있지만, 지금 형태로는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Q. 토닥을 10년 동안 지켜온 공간지기로서 어떤 의미일까?
거의 10년을 했다. 사실 토닥은 집보다 더 편한 공간이다. (집보다 더 자주 청소하지 않나?) 맞다. 집보다 더 아끼고 돌보는 공간이다. 두세 달 전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지는 거니까 나는 이제 어디도 가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달 들어선 오히려 평온하다 .
Q. 토닥 별짓, 뻘짓은 아니고 ‘별짓 리스트’를 만든다면?
삼각김밥에 들어갈 김치를 만드는 김장. 배추부터 길렀다. 모종 10만원어치 사서 50포기도 수확하지 못해 배추를 사서 하기도 했다. 해마다 6월 여름이면 오디 따러 다녔다. 옷 속에 벌레가 들어가서 사흘을 고생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유기농 딸기 구하러 진주까지 간 적도 있는데 기름값이 더 나왔을 거다. 맥주 사러 대구까지 다녀오고, 겨울 메뉴로 뱅쇼도 끓여보고, 점심 밥장사도 했었다. 커피 볶아보려고 연습을 하다가 말았다. 별짓 많이 했네.
Q. 토닥 10년의 보람은?
마을의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 사실 처음엔 아이들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카페니까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가 가깝고 아이들이 달리 갈 곳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이용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토닥은 음료를 마시지 않아도 되고, 물 마실 수 있고 화장실과 전화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다. 요즘은 중학교 시험기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공부한다.
Q. 40대를 온전히 보낸 곳 아닌가?
토닥을 시작할 때 몸이 좋지 않았다. 마음도 우울한 시기였다. 그래서 잠깐 봐 주는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시작했다. 1년이 지날 즈음 ‘어, 1년 넘었네? 내년엔 이어질까?’생각했다. 그렇게 3, 4년 지나면서 주인의식이 생겼고, 5, 6년차부터는 책임감이 더해졌던 것 같다.
토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격이 없어졌달까.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항상 거리를 두는 방어적인 부분이 있다. 처음엔 서툴러서 너무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낯선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 방어적인 게 옅어지는걸 느꼈다. 하면서 더 다듬어진 것이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 더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마음이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게 되더라.
Q. 현숙의 50대는?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로망이 있다.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게 고민이었고 죄의식이 있었다. 40살까지가 딱 그랬다. 결혼해서 애 낳고는 닥친 일이 많아서 잊을 수 있었다. 40이 되니까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있었다. 한 우물을 파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스스로 정리한 것은,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다.’로 정리.
이젠 살면서 안 해 본 것을 해 보고 싶다. 몸이 힘들어서 오래 못 할 수 있지만, 농사 아르바이트같이 몸을 쓰는 노동을 해 보고 싶다. 지금 시절이 내 인생에서 해 보고 싶은 게 가장 많다.
정원 가꾸는 것. 카페를 하면서 뭐라도 있어야 하니 화분에 물을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꽃이 좋아졌다. 정원 가꾸는 일은 꾸준히 하고 싶다.
Q. 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감사하고 죄송하다. (죄송할 일인가?) 마을에서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거니까 죄송한 마음이 있다.
토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불친절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상냥하지는 않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서운했을 수도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보기엔 냉정하고 쎄 보이지만 나름 친절하려고 노력했답니다.
인터뷰 / 글 | 이창림
사진 | 임현택
리모델링 전 버지니아 호프
리모델링 후 벽난로가 있는 토닥
2013년 9월 27일 적정기술 강좌
2015년 12월 28일 기타모임 공연
2013년 12월 14일 송년 파티
마을카페 '토닥' 10년 지기 <김현숙 편>
산내마을소식지 고사리 14호 인터뷰
마을카페 토닥이 12월 24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2023년엔 전환을 위한 모색 기간을 갖기로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공간을 지켜온 김현숙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가을, 겨울이면 해 온 청 담는 일들을 하지 않으니 조금 한가하게 보내고 있다.
Q. 토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쉽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재정적 어려움과 문제가 있는 것을 몰랐다고도 하고. 그런데 왜 송년회 때 음료는 무료로 주냐고도 한다. 다들 아쉬움이 클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매일 갈 수는 없지 않겠냐. 이용수가 너무 적다. 재정적 부담도 있지만, 지금 형태로는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Q. 토닥을 10년 동안 지켜온 공간지기로서 어떤 의미일까?
거의 10년을 했다. 사실 토닥은 집보다 더 편한 공간이다. (집보다 더 자주 청소하지 않나?) 맞다. 집보다 더 아끼고 돌보는 공간이다. 두세 달 전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지는 거니까 나는 이제 어디도 가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달 들어선 오히려 평온하다 .
Q. 토닥 별짓, 뻘짓은 아니고 ‘별짓 리스트’를 만든다면?
삼각김밥에 들어갈 김치를 만드는 김장. 배추부터 길렀다. 모종 10만원어치 사서 50포기도 수확하지 못해 배추를 사서 하기도 했다. 해마다 6월 여름이면 오디 따러 다녔다. 옷 속에 벌레가 들어가서 사흘을 고생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유기농 딸기 구하러 진주까지 간 적도 있는데 기름값이 더 나왔을 거다. 맥주 사러 대구까지 다녀오고, 겨울 메뉴로 뱅쇼도 끓여보고, 점심 밥장사도 했었다. 커피 볶아보려고 연습을 하다가 말았다. 별짓 많이 했네.
Q. 토닥 10년의 보람은?
마을의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 사실 처음엔 아이들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카페니까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가 가깝고 아이들이 달리 갈 곳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이용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토닥은 음료를 마시지 않아도 되고, 물 마실 수 있고 화장실과 전화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다. 요즘은 중학교 시험기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공부한다.
Q. 40대를 온전히 보낸 곳 아닌가?
토닥을 시작할 때 몸이 좋지 않았다. 마음도 우울한 시기였다. 그래서 잠깐 봐 주는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시작했다. 1년이 지날 즈음 ‘어, 1년 넘었네? 내년엔 이어질까?’생각했다. 그렇게 3, 4년 지나면서 주인의식이 생겼고, 5, 6년차부터는 책임감이 더해졌던 것 같다.
토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격이 없어졌달까.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항상 거리를 두는 방어적인 부분이 있다. 처음엔 서툴러서 너무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낯선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 방어적인 게 옅어지는걸 느꼈다. 하면서 더 다듬어진 것이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 더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마음이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게 되더라.
Q. 현숙의 50대는?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로망이 있다.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게 고민이었고 죄의식이 있었다. 40살까지가 딱 그랬다. 결혼해서 애 낳고는 닥친 일이 많아서 잊을 수 있었다. 40이 되니까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있었다. 한 우물을 파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스스로 정리한 것은,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다.’로 정리.
이젠 살면서 안 해 본 것을 해 보고 싶다. 몸이 힘들어서 오래 못 할 수 있지만, 농사 아르바이트같이 몸을 쓰는 노동을 해 보고 싶다. 지금 시절이 내 인생에서 해 보고 싶은 게 가장 많다.
정원 가꾸는 것. 카페를 하면서 뭐라도 있어야 하니 화분에 물을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꽃이 좋아졌다. 정원 가꾸는 일은 꾸준히 하고 싶다.
Q. 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감사하고 죄송하다. (죄송할 일인가?) 마을에서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거니까 죄송한 마음이 있다.
토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불친절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상냥하지는 않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서운했을 수도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보기엔 냉정하고 쎄 보이지만 나름 친절하려고 노력했답니다.
인터뷰 / 글 | 이창림
사진 | 임현택
리모델링 전 버지니아 호프
리모델링 후 벽난로가 있는 토닥
2013년 9월 27일 적정기술 강좌
2015년 12월 28일 기타모임 공연
2013년 12월 14일 송년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