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포럼은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변화에 관한 아이디어, 사례, 경험, 계획 등을 공유하고 사회 의제를 토론하면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축제형 포럼입니다.
2015년, '세상을 보는 색다른 100가지 생각'을 주제로 지리산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10년 후 OO'을 주제로 하여 우리의 10년 후에 대해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나눠주실 분들을 지리산에 초대해보려 합니다.
지리산포럼2022 [더 알아보기]
10년 후 지역, 서로 다른 커뮤니티가 연결되어 장기간의 변화를 만들 때
2022년 10월 1일 (토) 오후 2시, 실상사 선재집
: 지속가능한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혁신 자본이 필요합니다. 지적 자본, 사회적 자본, 창조적 자본 등은 서로 다른 커뮤니티들이 서로 연결되고 융합할 때 발생하며, 이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토대가 됩니다. 지역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제주가 연결과 커뮤니티의 창조의 섬이 되어간 사례를 통해 10년 후 지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이미 기후위기로 인해 농업이 지속가능성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식량위기라는 말을 근거로 농업을 기업화하고 산업화하는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차라리 식량위기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정환 / 前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다양한 영역의 경계인입니다. 전산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하였고, 2015년부터 7년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역임했습니다. 2019년 저서 <밀레니얼의 반격>을 출간했고, 현재 'Connecting Communities and Co-creating Values'라는 슬로건으로 커뮤니티엑스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 지리산이음
나는 수많은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 소개로 시작하려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40대 중반까지 계속 살다가 2015년에 제주에 와서 8년째 살고 있다. 10대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해서 전산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가 '또 하나의 나라'라는 단체에서 창작 운동을 하게 되면서 문화 쪽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7년까지는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면서 논문은 조직 혁신을 주제로 썼다. 그리고 X세대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민주화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라는 양극단 사이에 있다. 이렇게 저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고요', '제주에 살고 있고요' 하는 말들에 다 커뮤니티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정의할 때 커뮤니티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연결된 총체가 나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커뮤니티' 사이에 나의 삶의 의미가 있다. 커뮤니티와 분리되어 '나'에만 혼자 파고든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가 생길까? 아닐 것이다. 나와 동떨어진 커뮤니티에 어떤 일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가 생길까?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조직'과 '커뮤니티'가 다르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보통 조직을 회사라고 생각하면,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하고 은퇴하는 분들을 보면 은퇴 이후에 굉장히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제 명함도 없고, 조직도 없으니 자기 자신에 대해 움츠러들게 되는데 그 모습은 보여주기는 싫고. 사실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그 안에서 커뮤니티도 같이 제공을 받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개인이 속한 회사의 미션에 맞춰서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좋은 동료들도 있고, 그 커뮤니티 안에서 행복하게 있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회사가 합병이 되거나 개인이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게 된다면 조직은 더 이상 그 사람과 관련이 없는 곳이 되면서 커뮤니티의 분리에 의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커뮤니티가 분리될 때에 개인과 커뮤니티의 문제가 생긴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일했는데 갑자기 산업화 세대가 지나가 버렸어.'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됐어'. 이럴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상황이 된다. 흔한 솔루션으로는 안정적인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는 것이 있다. 종교 활동이나 정치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갭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40대였던 조선 시대나 60세에 은퇴해서 65세까지 살다가 죽었던 시절과 전혀 다르다. 점점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살면서 여러 번 커뮤니티를 상실할 수밖에 없고, 압축성장의 결과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세대가 뒤섞여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다.
결과적으로 삶의 기술로서 커뮤니티 웨이를 만들어가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 결론이다. 나 자신을 찾는 것은 커뮤니티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고, 나는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고정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하거나 기존의 커뮤니티가 아주 느리게 변화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참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그리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고립감을 느낄 이유도 없고 삶의 의미가 끊임없이 창출될 것이다.
커뮤니티를 둘러싼 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원 바깥쪽에 가까울수록 '주변인'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원 바깥쪽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혁신가라면 본인 스스로는 승진하기도 어렵고, 주변인이라고 느낄 수 있다. 상가라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원 중간에 있는 것은 상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가연합회 회장님일 것이고, '다른 곳과 잘 협업을 하자'는 의견을 개진하는 분들은 주변인으로서 원 바깥쪽에 위치할 것이다. 이 주변인이 다른 커뮤니티에도 동시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쪽에서도 주변인, 저 쪽에서도 주변인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을 저는 '경계인'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창의적인 경계인들이 자신과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가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갈 때 변화가 생긴다. 경계인들이 변화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기존의 고착된 커뮤니티들도 함께 변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리산이음
제주의 커뮤니티 자본 변화가 시사하는 것
지금 제주는 누구나 여행을 가고, 체류하고, 이주하고 싶어하는 섬이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제주는 고립된 유배의 섬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상을 배경으로 무역을 하는 '탐라국', 즉 연결의 섬이었다. 고립된 섬 제주는 20세기에 들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보면 1400년 무렵의 제주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1949년 인구를 보면 25만이다. 그 사이에 전 세계 인구는 8배 가량 늘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제주는 무척 적게 늘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인구가 많이 늘었고, 정체기를 지나 2010년부터 현재까지 또 많이 늘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는 제주를 관광으로 개발하던 시기에 호남 인구가 자연재해를 피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주한 경우가 많다. 이때 이주한 사람들이 한 30~40년이 지나도 도민들 입장에서는 '외지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부터 다른 흐름이 생겼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문화 이민자가 많다. 제주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주해 오게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제주의 문화도 많이 변화해 갔다.
제주에는 '괸당'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가족, 친족을 뜻하는 제주어다. '삼무' 정신이라고 제주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무도, 무걸, 무대문, 즉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는 뜻이다. 못 살아도 서로 서로 끈끈하게 챙겨서 그래도 굶지 않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괸당'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외지인까지 다 챙길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배척하는 문화가 될 수도 있다. 2014년 당시 원희룡 도지사도 괸당 문화를 비판했다가 도민들의 반발에 사과하기도 했다. 2015년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을 할 때, '괸당이라는 단어가 무척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괸당의 진화를 이야기했다. '괸당이라는 문화는 인구 10만 명 시절에 굉장히 좋았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 제주가 발전하면서 이주민이 늘어난 지금, 연결과 창조의 섬 제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괸당 2.0으로 나가야 한다. 괸당이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저와 괸당을 맺자.' 이렇게 말했더니 이분들이 마음을 열어주셨다. 지역에 있는 분들이 좁은 관점에서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변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점이 변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걸 그분들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된다. 제주 하면 감귤 산업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산업화된 것은 1965년 무렵이다. '감귤 나무 한두 그루만 있으면 자녀를 대학 보낼 수 있다'고 할 만큼 고부가가치 사업이었다. 이들이 감귤 산업에 종사하면서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 보냈다. 하지만 자녀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곳에서 센터를 소개할 때 센터의 일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돌아와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 '여러분 시대의 감귤 사업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주도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 1965~ '대학나무'라고 불렸던 감귤 산업
- 1975~ 신혼여행지, 돌하르방으로 대표된 제주
- 1988 <제주도의 푸른밤>과 탈물질주의의 섬 제주
- 2002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 2004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주 시작
- 2007 제주 올레길 시작
- 2010 문화이민자 이주 본격화, 이효리 이주
- 2011 제주국제학교 개교
- 2015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
연표를 보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2004년부터 이주를 시작한다. 선발대를 20명 정도 보내서 유수암의 펜션에서 머무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2003년 정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직원이 굉장히 출근을 늦게 하는 바람에 대표와 함께하는 회의에 늦었다. 왜 늦었냐고 했더니 '출퇴근이 왕복 3시간 걸립니다'라고 했고, 대표 입장에서는 'IT기업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원격 근무나 재택 근무가 자연스럽지만 그때만 해도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지역으로 한번 가보자고 검토하던 와중에 제주 출신이었던 김종현 당시 검색기획팀장이 총대를 매고 제주로 이주시킨 것이다. 그분은 넥슨으로 이직해서 또 넥슨을 제주로 이전시키고, 지금은 제주더큰내일센터 센터장을 하면서 제주 청년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도 시사저널 편집장을 하다가 2007년 정도에 '리턴'을 해서 올레길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저 세대가 리턴을 해서 지역에 무언가 만드는 것이 흔치 않았던 상황이다. 외지인의 시각에서 보면 제주, 지역이 너무 멋지지만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던 사람은 서울에 가야 성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주 밖에서 만난 비슷한 세대의 어른들도 제주에 대해 낙후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제주가 발전을 해나가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제주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그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센터에서도 보면 제주 출신의 20대 여성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원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제가 묻는다. "왜 여기 제주에 오려고 해요?" 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가 좋은 줄 몰랐다고 한다. 부모들이나 누구도 얘기해준 적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대학에 가니까 친구들이 "너 제주에서 왔구나."하며 부러워하고, 그래서 '어? 내 고향 제주가 그런 곳인가?'하고 제주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돌아와서 자기 일을 제주에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아직 대부분의 지역에선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경향신문에서 절반의 한국이라는 기획기사를 썼다. 강릉 소녀들을 추적해서 인터뷰한 내용인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좋은 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지역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야 하고, 스스로 자율성을 갖고 할 수 있는 '룸'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제주가 가장 앞선 편인 것 같다.
찰스 랜드리가 쓴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이라는 책을 보면 크리에이티브 시티의 조건을 열거하고 있다. 지적 자본,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 창조적 자본, 문화 자본, 리더십 자본, 환경 자본 등이 여기서 말하는 혁신 자본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 자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다. 혁신 자본이 있는 곳에 가야 내가 우연하게라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서울로 떠난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혁신 자본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 지리산이음
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면서 '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를 슬로건으로 기존의 제주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방향을 설정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직원들도 제주로 이전은 했지만 지역민들과 연결하며 시너지를 내는 게 부족했다. 그때 상황을 보면 자발적인 문화 이민자들은 있으나 다양함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한달살이 열품이 있는 것, 올레길이 있는 것도 강점이지만 이 역시 연결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존 도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 또한 컸으며,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고 해서 지역에 다양한 성장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이 있었다. 따라서 크리에이티브한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요소들을 연결(Connect)하고, 커뮤니티(Community)를 만들고,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자 역할을 센터가 하고자 했다.
제주에 자발적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전문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 등 다양한데 제주 도민들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로컬크리에이터라고 하는 분들이나 스타트업 하는 분들의 커뮤니티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저때만 해도 서로 몰랐다. 제가 A와 B를 만나서 당연히 서로 알 것이라 생각하고 "서로 아시죠?"하면 "만난 적이 없는데?" 내지는 "이름만 들어봤어요." 한다. 센터에서 계속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지식을 공유하게 하고, 협업하게 하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센터를 1기(2015년 4월~2017년 4월), 2기(2017년 4월~2022년 4월), 3기(2022년 4월~현재)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들고 인재를 유입하는 것, 지역에 있는 청년들끼리 연결을 만들어서 서울로 나가지 않더라도 홈그라운드인 제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2기에서는 센터에서 직접 시드머니를 투자하고 도시재생 관련한 협업을 했다. 당시 정부에서도 관련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마지막으로 3기에서는 도민 자본 기반으로 투자 조합을 만들고 싱크탱크를 강화했다.
1기부터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했다. 일부러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가운데에 배치해서 오피스에 머물다가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갈 때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고, 코워킹 매니저가 서로 인사시켜 주고 연결해줄 수 있도록 구상했다. 일부러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는 점심을 먹으면서 네트워킹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금요일은 사업 아이디어 피칭 데이로 정했다. 여기에 제주와 시너지를 내고 싶거나 이주에 관심 있는 스타트업 15명 가량을 선정해서 모바일 오피스에 입주하도록 하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서서히 이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곳을 통해 제주상회와 어반플레이가 만나서 교류하고, 3년이 지나서는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서로간의 지식과 네트워크, 지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계속 확장되도록 만드는 게 센터가 한 일이다.
센터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가 <J-Connect Day>다. 1년 동안 전국에서 지역을 혁신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서 제주에 모아 지식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의 자리를 만든다. 이 자리가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때만 해도 각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만 외롭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주에 모아 놓고 서로 교류하게 하니까 너무 힘이 난다는 피드백을 얻었다. 제주의 생태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제주를 '성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 거기서 어떤 커뮤니티적 경험을 했느냐가 그 지역에 대한 인상을 만들고, 애정을 만든다. 제주에 특별한 인상이 있고 애정이 있는 분들은 제주에서 무언가 한다고 하면 '나도 제주에 가서 참여할래, 기여할래' 하면서 언제든지 와주시는 분들이 된다. 이렇게 서울 바깥에서 커뮤니티를 키울 수 있는, 커뮤니티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허브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센터 프로그램 중에 <로컬 브랜딩 스쿨>이라는 것이 있다. 장인과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모델이다.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프로그램이 다 조금씩 바뀌고 있어서, 몇 년 전에 제가 세팅해서 운영했던 내용을 설명드리고 있다. 대부분의 장인들을 보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고, 우연히 이 기술을 배웠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문체부 같은 곳에서 상을 주고 전시를 하더라고 말한다. '내 대에서 그만 끊어야지, 이제 이 고된 일을 배울 사람도 없고….'하는 분들인데 만약에 어떤 크리에이터 청년이 청년이 찾아가서 '선생님이 하시는 것 제가 이제 이렇게 하겠습니다'하면 당연히 서로 대화가 잘 안 통할 것이다. 센터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이걸 가지고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해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크리에이터들이 기획을 거쳐 발표를 한다. 말하자면 이 장인을 리브랜딩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이런 걸 해오신 게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사회가 이렇게 변화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장인들은 고집이 세기 때문에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쾌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설레는데요.',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자본이 쌓이게 된다.
삶의 의미는 나와 커뮤니티 사이에 놓여져 있다
어느 지역의 원도심이든 그렇 듯이 제주 원도심에도 중앙로가 있다. 중앙로에는 37년간 횡단보도가 없었다. 지하상가 상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백화점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하 상가가 백화점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쇼핑을 하던 곳이다. 점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지하상가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지기 시작했고 상가 상인들은 점점 더 불안하니까 '횡단보도를 만들어선 안된다, 그걸 만들면 사람들이 더 안 내려오려고 할 것이다'하며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지하 상가에 있는 사람들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원 중앙에 있는 사람들,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회장님'들은 협업을 할 생각이 없다. 이겨야 한다. 대치 상황이 오래 가고 있던 와중에 세대 교체가 일어났고, 협업에 대한 생각들이 생겨났고, 공공에서는 모더레이터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4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금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다 설치하고 횡단보도도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 저는 의미 있는 커뮤니티 간의 협업이라고 여기고, 공공도 인상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나는 수많은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고 내 삶의 의미는 커뮤니티 사이에 놓여져 있다.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저 스스로도 커뮤니티가 풍성해지고, 제 자신의 삶도 좀 더 나아진 부분이 있다. 센터라는 조직을 그만두고 나서도 저를 찾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커뮤니티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경제적 자유만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자유를 획득해서 나의 의미를 찾고 커뮤니티의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발제 | 전정환
기록 및 정리 | 김누리
사진 | 지리산이음
지리산포럼은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변화에 관한 아이디어, 사례, 경험, 계획 등을 공유하고 사회 의제를 토론하면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축제형 포럼입니다.
2015년, '세상을 보는 색다른 100가지 생각'을 주제로 지리산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10년 후 OO'을 주제로 하여 우리의 10년 후에 대해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나눠주실 분들을 지리산에 초대해보려 합니다.
지리산포럼2022 [더 알아보기]
10년 후 지역, 서로 다른 커뮤니티가 연결되어 장기간의 변화를 만들 때
2022년 10월 1일 (토) 오후 2시, 실상사 선재집
: 지속가능한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혁신 자본이 필요합니다. 지적 자본, 사회적 자본, 창조적 자본 등은 서로 다른 커뮤니티들이 서로 연결되고 융합할 때 발생하며, 이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토대가 됩니다. 지역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제주가 연결과 커뮤니티의 창조의 섬이 되어간 사례를 통해 10년 후 지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이미 기후위기로 인해 농업이 지속가능성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식량위기라는 말을 근거로 농업을 기업화하고 산업화하는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차라리 식량위기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정환 / 前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다양한 영역의 경계인입니다. 전산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하였고, 2015년부터 7년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역임했습니다. 2019년 저서 <밀레니얼의 반격>을 출간했고, 현재 'Connecting Communities and Co-creating Values'라는 슬로건으로 커뮤니티엑스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 지리산이음
나는 수많은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 소개로 시작하려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40대 중반까지 계속 살다가 2015년에 제주에 와서 8년째 살고 있다. 10대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해서 전산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가 '또 하나의 나라'라는 단체에서 창작 운동을 하게 되면서 문화 쪽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7년까지는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면서 논문은 조직 혁신을 주제로 썼다. 그리고 X세대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민주화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라는 양극단 사이에 있다. 이렇게 저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고요', '제주에 살고 있고요' 하는 말들에 다 커뮤니티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정의할 때 커뮤니티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연결된 총체가 나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커뮤니티' 사이에 나의 삶의 의미가 있다. 커뮤니티와 분리되어 '나'에만 혼자 파고든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가 생길까? 아닐 것이다. 나와 동떨어진 커뮤니티에 어떤 일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가 생길까?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조직'과 '커뮤니티'가 다르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보통 조직을 회사라고 생각하면,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하고 은퇴하는 분들을 보면 은퇴 이후에 굉장히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제 명함도 없고, 조직도 없으니 자기 자신에 대해 움츠러들게 되는데 그 모습은 보여주기는 싫고. 사실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그 안에서 커뮤니티도 같이 제공을 받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개인이 속한 회사의 미션에 맞춰서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좋은 동료들도 있고, 그 커뮤니티 안에서 행복하게 있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회사가 합병이 되거나 개인이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게 된다면 조직은 더 이상 그 사람과 관련이 없는 곳이 되면서 커뮤니티의 분리에 의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커뮤니티가 분리될 때에 개인과 커뮤니티의 문제가 생긴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일했는데 갑자기 산업화 세대가 지나가 버렸어.'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됐어'. 이럴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상황이 된다. 흔한 솔루션으로는 안정적인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는 것이 있다. 종교 활동이나 정치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갭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40대였던 조선 시대나 60세에 은퇴해서 65세까지 살다가 죽었던 시절과 전혀 다르다. 점점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살면서 여러 번 커뮤니티를 상실할 수밖에 없고, 압축성장의 결과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세대가 뒤섞여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다.
결과적으로 삶의 기술로서 커뮤니티 웨이를 만들어가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 결론이다. 나 자신을 찾는 것은 커뮤니티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고, 나는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고정적인 커뮤니티가 존재하거나 기존의 커뮤니티가 아주 느리게 변화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참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그리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고립감을 느낄 이유도 없고 삶의 의미가 끊임없이 창출될 것이다.
커뮤니티를 둘러싼 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원 바깥쪽에 가까울수록 '주변인'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원 바깥쪽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혁신가라면 본인 스스로는 승진하기도 어렵고, 주변인이라고 느낄 수 있다. 상가라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원 중간에 있는 것은 상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가연합회 회장님일 것이고, '다른 곳과 잘 협업을 하자'는 의견을 개진하는 분들은 주변인으로서 원 바깥쪽에 위치할 것이다. 이 주변인이 다른 커뮤니티에도 동시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쪽에서도 주변인, 저 쪽에서도 주변인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을 저는 '경계인'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창의적인 경계인들이 자신과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가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갈 때 변화가 생긴다. 경계인들이 변화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기존의 고착된 커뮤니티들도 함께 변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리산이음
제주의 커뮤니티 자본 변화가 시사하는 것
지금 제주는 누구나 여행을 가고, 체류하고, 이주하고 싶어하는 섬이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제주는 고립된 유배의 섬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상을 배경으로 무역을 하는 '탐라국', 즉 연결의 섬이었다. 고립된 섬 제주는 20세기에 들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보면 1400년 무렵의 제주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1949년 인구를 보면 25만이다. 그 사이에 전 세계 인구는 8배 가량 늘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제주는 무척 적게 늘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인구가 많이 늘었고, 정체기를 지나 2010년부터 현재까지 또 많이 늘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는 제주를 관광으로 개발하던 시기에 호남 인구가 자연재해를 피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주한 경우가 많다. 이때 이주한 사람들이 한 30~40년이 지나도 도민들 입장에서는 '외지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부터 다른 흐름이 생겼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문화 이민자가 많다. 제주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주해 오게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제주의 문화도 많이 변화해 갔다.
제주에는 '괸당'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가족, 친족을 뜻하는 제주어다. '삼무' 정신이라고 제주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무도, 무걸, 무대문, 즉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는 뜻이다. 못 살아도 서로 서로 끈끈하게 챙겨서 그래도 굶지 않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괸당'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외지인까지 다 챙길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배척하는 문화가 될 수도 있다. 2014년 당시 원희룡 도지사도 괸당 문화를 비판했다가 도민들의 반발에 사과하기도 했다. 2015년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을 할 때, '괸당이라는 단어가 무척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괸당의 진화를 이야기했다. '괸당이라는 문화는 인구 10만 명 시절에 굉장히 좋았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 제주가 발전하면서 이주민이 늘어난 지금, 연결과 창조의 섬 제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괸당 2.0으로 나가야 한다. 괸당이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저와 괸당을 맺자.' 이렇게 말했더니 이분들이 마음을 열어주셨다. 지역에 있는 분들이 좁은 관점에서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변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점이 변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걸 그분들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된다. 제주 하면 감귤 산업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산업화된 것은 1965년 무렵이다. '감귤 나무 한두 그루만 있으면 자녀를 대학 보낼 수 있다'고 할 만큼 고부가가치 사업이었다. 이들이 감귤 산업에 종사하면서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 보냈다. 하지만 자녀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곳에서 센터를 소개할 때 센터의 일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돌아와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 '여러분 시대의 감귤 사업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주도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연표를 보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2004년부터 이주를 시작한다. 선발대를 20명 정도 보내서 유수암의 펜션에서 머무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2003년 정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직원이 굉장히 출근을 늦게 하는 바람에 대표와 함께하는 회의에 늦었다. 왜 늦었냐고 했더니 '출퇴근이 왕복 3시간 걸립니다'라고 했고, 대표 입장에서는 'IT기업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원격 근무나 재택 근무가 자연스럽지만 그때만 해도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지역으로 한번 가보자고 검토하던 와중에 제주 출신이었던 김종현 당시 검색기획팀장이 총대를 매고 제주로 이주시킨 것이다. 그분은 넥슨으로 이직해서 또 넥슨을 제주로 이전시키고, 지금은 제주더큰내일센터 센터장을 하면서 제주 청년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제주 올레의 서명숙 이사장도 시사저널 편집장을 하다가 2007년 정도에 '리턴'을 해서 올레길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저 세대가 리턴을 해서 지역에 무언가 만드는 것이 흔치 않았던 상황이다. 외지인의 시각에서 보면 제주, 지역이 너무 멋지지만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던 사람은 서울에 가야 성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주 밖에서 만난 비슷한 세대의 어른들도 제주에 대해 낙후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제주가 발전을 해나가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제주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그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센터에서도 보면 제주 출신의 20대 여성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원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제가 묻는다. "왜 여기 제주에 오려고 해요?" 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가 좋은 줄 몰랐다고 한다. 부모들이나 누구도 얘기해준 적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대학에 가니까 친구들이 "너 제주에서 왔구나."하며 부러워하고, 그래서 '어? 내 고향 제주가 그런 곳인가?'하고 제주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돌아와서 자기 일을 제주에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아직 대부분의 지역에선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경향신문에서 절반의 한국이라는 기획기사를 썼다. 강릉 소녀들을 추적해서 인터뷰한 내용인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좋은 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지역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야 하고, 스스로 자율성을 갖고 할 수 있는 '룸'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제주가 가장 앞선 편인 것 같다.
찰스 랜드리가 쓴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이라는 책을 보면 크리에이티브 시티의 조건을 열거하고 있다. 지적 자본,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 창조적 자본, 문화 자본, 리더십 자본, 환경 자본 등이 여기서 말하는 혁신 자본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 자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다. 혁신 자본이 있는 곳에 가야 내가 우연하게라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서울로 떠난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혁신 자본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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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면서 '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를 슬로건으로 기존의 제주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방향을 설정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직원들도 제주로 이전은 했지만 지역민들과 연결하며 시너지를 내는 게 부족했다. 그때 상황을 보면 자발적인 문화 이민자들은 있으나 다양함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한달살이 열품이 있는 것, 올레길이 있는 것도 강점이지만 이 역시 연결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존 도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 또한 컸으며,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고 해서 지역에 다양한 성장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이 있었다. 따라서 크리에이티브한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요소들을 연결(Connect)하고, 커뮤니티(Community)를 만들고,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자 역할을 센터가 하고자 했다.
제주에 자발적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전문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 등 다양한데 제주 도민들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로컬크리에이터라고 하는 분들이나 스타트업 하는 분들의 커뮤니티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저때만 해도 서로 몰랐다. 제가 A와 B를 만나서 당연히 서로 알 것이라 생각하고 "서로 아시죠?"하면 "만난 적이 없는데?" 내지는 "이름만 들어봤어요." 한다. 센터에서 계속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지식을 공유하게 하고, 협업하게 하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센터를 1기(2015년 4월~2017년 4월), 2기(2017년 4월~2022년 4월), 3기(2022년 4월~현재)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들고 인재를 유입하는 것, 지역에 있는 청년들끼리 연결을 만들어서 서울로 나가지 않더라도 홈그라운드인 제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2기에서는 센터에서 직접 시드머니를 투자하고 도시재생 관련한 협업을 했다. 당시 정부에서도 관련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마지막으로 3기에서는 도민 자본 기반으로 투자 조합을 만들고 싱크탱크를 강화했다.
1기부터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했다. 일부러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가운데에 배치해서 오피스에 머물다가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갈 때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고, 코워킹 매니저가 서로 인사시켜 주고 연결해줄 수 있도록 구상했다. 일부러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는 점심을 먹으면서 네트워킹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금요일은 사업 아이디어 피칭 데이로 정했다. 여기에 제주와 시너지를 내고 싶거나 이주에 관심 있는 스타트업 15명 가량을 선정해서 모바일 오피스에 입주하도록 하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서서히 이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곳을 통해 제주상회와 어반플레이가 만나서 교류하고, 3년이 지나서는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서로간의 지식과 네트워크, 지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계속 확장되도록 만드는 게 센터가 한 일이다.
센터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가 <J-Connect Day>다. 1년 동안 전국에서 지역을 혁신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서 제주에 모아 지식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의 자리를 만든다. 이 자리가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때만 해도 각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만 외롭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주에 모아 놓고 서로 교류하게 하니까 너무 힘이 난다는 피드백을 얻었다. 제주의 생태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제주를 '성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 거기서 어떤 커뮤니티적 경험을 했느냐가 그 지역에 대한 인상을 만들고, 애정을 만든다. 제주에 특별한 인상이 있고 애정이 있는 분들은 제주에서 무언가 한다고 하면 '나도 제주에 가서 참여할래, 기여할래' 하면서 언제든지 와주시는 분들이 된다. 이렇게 서울 바깥에서 커뮤니티를 키울 수 있는, 커뮤니티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허브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센터 프로그램 중에 <로컬 브랜딩 스쿨>이라는 것이 있다. 장인과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모델이다.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프로그램이 다 조금씩 바뀌고 있어서, 몇 년 전에 제가 세팅해서 운영했던 내용을 설명드리고 있다. 대부분의 장인들을 보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고, 우연히 이 기술을 배웠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문체부 같은 곳에서 상을 주고 전시를 하더라고 말한다. '내 대에서 그만 끊어야지, 이제 이 고된 일을 배울 사람도 없고….'하는 분들인데 만약에 어떤 크리에이터 청년이 청년이 찾아가서 '선생님이 하시는 것 제가 이제 이렇게 하겠습니다'하면 당연히 서로 대화가 잘 안 통할 것이다. 센터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이걸 가지고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해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크리에이터들이 기획을 거쳐 발표를 한다. 말하자면 이 장인을 리브랜딩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이런 걸 해오신 게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사회가 이렇게 변화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장인들은 고집이 세기 때문에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쾌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설레는데요.',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자본이 쌓이게 된다.
삶의 의미는 나와 커뮤니티 사이에 놓여져 있다
어느 지역의 원도심이든 그렇 듯이 제주 원도심에도 중앙로가 있다. 중앙로에는 37년간 횡단보도가 없었다. 지하상가 상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백화점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하 상가가 백화점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쇼핑을 하던 곳이다. 점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지하상가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지기 시작했고 상가 상인들은 점점 더 불안하니까 '횡단보도를 만들어선 안된다, 그걸 만들면 사람들이 더 안 내려오려고 할 것이다'하며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지하 상가에 있는 사람들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원 중앙에 있는 사람들,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회장님'들은 협업을 할 생각이 없다. 이겨야 한다. 대치 상황이 오래 가고 있던 와중에 세대 교체가 일어났고, 협업에 대한 생각들이 생겨났고, 공공에서는 모더레이터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4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금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다 설치하고 횡단보도도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 저는 의미 있는 커뮤니티 간의 협업이라고 여기고, 공공도 인상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나는 수많은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고 내 삶의 의미는 커뮤니티 사이에 놓여져 있다.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저 스스로도 커뮤니티가 풍성해지고, 제 자신의 삶도 좀 더 나아진 부분이 있다. 센터라는 조직을 그만두고 나서도 저를 찾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커뮤니티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경제적 자유만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자유를 획득해서 나의 의미를 찾고 커뮤니티의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발제 | 전정환
기록 및 정리 | 김누리
사진 | 지리산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