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혼인 잔치 : 버들과 승현이 환대하는 법
진행 / 넉넉
글 / 푸른
** 인터뷰 일시 : 2025년 6월 9일 오후 1시
올해로 10년 차 연인, 버들과 승현은 이제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의 소란하지 않은 다정함과 담백한 미소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한 덩어리가 아닌, 차곡차곡 공들여 쌓은 겹겹의 층이라는 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않고, 매 순간의 서로를 소중히 바라봐주려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 사람이 지리산에 온 이야기부터 들어야겠다.
꿈에 그린 사람
2015년, 승현은 시골 민박 관련 스타트업에서 청년들을 모아 시골을 여행하는 컨셉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번외 프로그램으로 수원 화성 밤 산책을 하던 날, 참가자로 온 버들을 처음 만났다. 버들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버들 “승현 회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저랑 감성이 잘 맞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집은 외박이 안 돼서 참여를 못 했어요. 그러다 한 번은 밤 산책을 한다길래 참여했는데, 진행자이던 승현이 너무 화사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수원 화성의 노을이 비치면서 ‘웃는 게 되게 예쁘다’ 생각했어요. 그 후에 부모님께 우겨서 하동 1박 2일 프로그램까지 간 거예요.”
하동에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얘기할수록 닮은 부분이 많았다. 버들은 나름대로 승현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다. ‘너 마음에 든다구! 어서 고백해!’
승현 “그때는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막 지나올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연애해도 될지 확신이 너무 없었어요.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버들이 나온 거죠. 버들이랑 언덕에서 손잡고 놀았어요. 그래서 ‘아 이런 꿈을 꿀 정도면 그냥 만나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죠.”
광교 호수공원에서 승현의 고백으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도시에서 각자 막막함과 불안을 느끼던 두 사람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공통된 바람을 발견했다. 번아웃 상태였던 승현은 반복되는 과로와 회의감 속에서, 시골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여유 있는 삶을 떠올렸다. 버들은 동물권에서 채식으로, 채식에서 농사로 점점 관심이 넓혀졌고, 자연스럽게 시골로 마음이 기울었다. 막연했던 두 사람의 바람은 함께하면서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승현 “일하면서 상품처럼 꾸며진 시골을 팔아야 하는 느낌인 거예요. 내가 겪은 건 그게 아닌데… 그런 것도 있고,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일이 되게 힘들었죠. 월급도 적고, 야근은 야근대로 하고요. 반복되는 과로에 너무 지쳤었고 이래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 꽉꽉 껴서 타면, 진짜 회의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대비되는 두 모습을 보면서 ‘시골이 나한테 더 잘 맞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회사 대표는 사기를 북돋으려 수시로 “5년 뒤의 너를 상상해 봐라.”고 했다. 승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대로 5년이면 자신이 갈려 나갈 것만 같았다. 마침 회사의 방향이 전환되는 시기였고, 승현은 열정을 쏟았던 첫 직장을 나왔다.
승현은 양평의 한 펜션에서 숙식하며 매니저로 일했다. 그 후엔 하동에 인연이 닿아 6개월간 살기도 했다. 감사한 인연들에 기대어 시골살이를 경험할 수 있었지만, 자립과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몸을 다치면서 고향 부산에 잠시 머물렀다.
한 편, 버들은 버들대로 시골로 흘러들고 있었다. 농부 시장 마르쉐에서 만난 농부를 통해 더욱 시골과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맨발로 논에 들어간 그 촉감도 좋고,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얼마나 자연을 좋아하는지 예찬하는 시간도 너무 귀엽고, 그 농부님들이 사는 모습들도 보기 좋은 거예요. 그때 제가 멋있는 사람을 처음 봤던 것 같아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화관을 쓴 신랑 신부 (버들, 승현 제공)
지리산으로
결국 버들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마치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인드라망 공동체에 들어가게 됐다. 부모님의 반대도 설득해 낼 만큼 버들에겐 꽤 큰 결심이 섰다.
버들 “승현이 만나고부터 계속 시골에 관심이 있다는 걸 가족들한테 어필했어요. 사실 이전부터 뻥 치고 나간 적도 많거든요. ‘둘이 가는 게 아니고~ 승현이 출장 가는 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1~2년간 승현이랑 시골 탐방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시골에 대한 제 관심을 가족들이 알게 됐어요. 산내에 아예 온다고 할 때는 엄마 반대가 심하셨어요. 근데 저한테는 이것 밖에 별로 다른 길이 없는 거예요. 여기가 가장 저한테는 빛나는 길이었어요. 가족들이 반대하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제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승현도 같은 해 실상사에 들어왔다. 다친 몸을 회복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공동체에서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긴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드디어 한마을에 살게 됐다. 그것도 꿈에 그리던 시골에서! 이후 두 사람은 청년 인생 학교 과정을 거쳐 친환경 먹거리 매장 ‘느티나무’ 활동가로 일했다.
버들 “저는 여기 와서 마음이 계속 편안했어요. 도시에서는 아무리 일을 찾아도 공장 일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공장 일을 너무 오래 했고, 내가 공장 문화에 맞춰 변해가는 게 느껴지니까 싫었어요. 근데 여기서는 공장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것 외에 다른 건 다 너무 편하니까, 상관없겠더라고요.”
승현 “저도 조건은 똑같거나 더 열악해졌는데, 버들처럼 마음이 편해졌어요. 인식의 전환이 됐거든요.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접하고 배운 것들, 지구나 환경, 우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막연했던 생각이 점점 선명해졌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잡게 됐어요. 그러니까 다른 조건이 좀 불투명해도 좀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서는 내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구나,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서 덜 불안했던 것 같아요.”
살림을 합치다
공동체 숙소, 마을 활동가 숙소에서 머물러오던 두 사람은 2020년 6월, 새집을 구하면서 살림을 합쳤다. ‘공동체’에서 산내라는 ‘마을’로, 삶의 반경이 한 뼘 더 넓어졌다.
버들 “저희가 함께 살게 된 소식을 알렸더니. 마을에서 십시일반으로 집에 필요한 모든 살림을 다 마련해 주신 거예요. 안 쓰던 숟가락이며 쓰레기통, 욕실 의자부터 세탁기, 냉장고까지요. 우리 돈으로 한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다 받은 거예요. 지금까지도 너무 잘 쓰고 있어요.”
승현 “그래서 여기의 삶이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청하면 누군가는 응답을 해주는 곳이구나.’,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채 주고, 보살펴주는구나.’ 이걸 저희가 엄청 크게 느꼈어요. 마을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환대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두 사람은 마을의 크고 작은 도움과 환대에 기대어 점차 지리산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남원시 산내면의 마을절 실상사에서 열린 혼인 잔치 (버들, 승현 제공)
우리 결혼할까?
어느덧 지리산에서도 한 해, 두 해 흐르고 귀촌 8년 차. 두 사람의 관계도 서서히 새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산내에서 아영으로 또 한 번 새 둥지를 틀고, 삶과 일도 한소끔 안정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들은 자연스레 ‘결혼’이라는 길로 들어섰다.
버들 “서로에게 원하는 걸 듣고, 자기가 가진 성격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여러 번 겪었어요. 그런 부딪힘과 갈등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히려 결혼을 다짐하게 됐어요. 우리에게 앞으로 비슷한 일이 오면 또 울고불고하겠지만, 서로의 마음을 금방 말할 수 있는 관계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 앞에 주인공 인형처럼 서 있는 결혼식은 절대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버들의 부모님은 친척들을 꼭 초대해야 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버들 “처음에는 둘만의 세레머니로 등산을 한다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방식도 생각했어요.”
승현 “근데 양가 부모님들은 저희가 오래 만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으니 얼마나 기다리셨겠어요. 거의 반 포기 상태였는데, 상견례를 하자고 하니까 눈이 번쩍 뜨이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서히 각자의 욕망이 드러났죠.”
하객 인원을 추려보고, 여기저기 최소한의 예식을 올릴 만한 공간을 떠올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도 초대하고 싶은 사람 다 초대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우리만의 의미를 담은 감사제
승현은 초대 명단을 적다가 270명이라는 숫자에 놀랐다. “이 인원을 감당할 장소는 실상사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장소가 정해지고,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구체화해 나갔다. “저희의 첫 마음은 결혼식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기 때문에, 이왕 하게 된 결혼식을 잘 해내려면, 우리만의 의미를 찾아서 즐겁게 해야 했어요. 그래서 ‘감사제’라는 의미를 떠올린 거예요.”
거기에 버들이 ‘혼인잔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동안 지리산에서 받았던 사랑과 환대를, 잔치를 통해 보답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결혼식’ 대신 ‘혼인잔치’, 단어 하나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두 사람만의 방식으로 정성 들여 준비했다.
모두가 빛나는 결혼식
실제로 초대장엔 이런 문구도 있었다. ‘여러분들이 행사의 장식이기에,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분들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착장으로 부탁드립니다. 신랑 신부보다 빛나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편안한 복장도 괜찮고요.’
이런 혼인잔치가 가능했던 건, 그들과 한마음으로 도운 친구와 이웃들 덕분이다. 촬영, 음악, 음식, 공연, 공간 세팅, 장식 그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의 손길로 채워졌다.
버들 “충만했어요. 의자나 천막 같은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잔치를 채워주고 있다는 게 되게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요. 저희끼리 부딪치다가도 주변에서 ‘싸우는 게 당연해’하시면 한시름 풀어지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혼식은 스님의 축사, 동네책방지기들의 사회, 마을 예술인들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버들, 승현 제공)
2025년 5월 18일, 지리산 실상사 약사전 앞
두 사람의 혼인잔치는 두 사람이 지리산살이를 시작했던 실상사에서 열렸다. 실상사에서 약 13년 만에 열린 결혼식이다. 사찰의 고요함과 엄숙함, 잔칫날의 설렘과 기쁨이 어우러져 색다른 공기가 흘렀다.
신부 버들은 아침 법석에 참석하며 마음을 가다듬어서인지, 분주한 기색도 없이 편안한 얼굴로 하객을 맞았다. 신랑 승현은 계속된 사진 촬영에 입꼬리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무렴 좋았다. 하늘색 한복에 화관을 쓴 두 사람의 모습은 잊을 수 없게 아름다웠다.
함께 만든 눈부신 장면들
축의와 답례 부스는 각 가정의 남자 형제들이 맡는 대신, 지리산 여성 동료 누리와 자유가 지켰다. 축의봉투마저 부부가 이면지를 하나하나 접어 준비해 두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대나무 아치와 버들의 어머니가 직접 장식한 꽃들로 자연스럽게 무대가 꾸며졌고, 한쪽에는 커피 트럭과 다회용 컵 부스까지 있었다. 하객들은 의자에 앉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고, 돗자리를 펼쳐 앉기도 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뛰어놀고, 여기저기를 가로질러 다녔다.
사회는 함양 독립서점 <오후공책>지기인 사사와 갱구가 맡았다. 나풀나풀 편안한 듯 또랑또랑 쏙쏙 들리는 목소리, 정중하면서도 다정한 말투. 찰떡같은 섭외였다.
“가족행진이 있겠습니다.” 사회자 멘트와 함께 살래 재즈트리오의 연주가 시작됐다. 대나무로 지어진 ‘생명평화기도소’에서 출발해 형제자매와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 마지막으로 신부 버들과 신랑 승현까지 온 가족이 차례로 나와 손을 흔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입장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객들을 바라보고 나란히 섰다. 양가 가족 대표가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고 직접 인사를 전했다. “(부산 억양으로)앞으로도 잘 부탁드리며, 지리산 동료들과 행복만 깃들기를 바랍니다.”
순서 하나하나, 역할 하나하나마다 눈부신 기획과 섭외에 감탄하고 있을 때, 또 한 번 엄청난 사람을 소개했다. 버들의 최애 가수, 최고은이었다. 가수 최고은은 <사랑축가>를 불렀다. 2절은 버들도 함께 불렀다. ‘시간은 선물처럼 우리 둘을 이어주네. 모든 게 익숙해지고, 가장 친한 친구 되고, 부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갈 둘의 이야기’ 떨리는 목소리에 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버들 “구구절절 되게 주접을 떨면서 엄청 장문의 편지를 장문의 메일을 썼어요. 여기가 얼마나 멋있고 멋있는 곳인지 막 썼어요. 메일이 누락됐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 달 뒤에 고은 님이 답장을 주셨어요. 리허설도 해보자고 하시고요. 그래서 <사랑축가>로 노래도 정하고, 서울에서 만나서 같이 연습도 했어요. 연습할 때 진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프로듀서님도 계시고, 보컬 코칭도 해주셨어요.”
최애 가수와 함께 잊지 못할 축가 무대를 남기고, 신부 버들과 신랑 승현이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면서 1부 혼인식이 끝났다.

버들의 최애가수와 함께한 축가 무대 (버들, 승현 제공)
잔치의 빛이 되어주시길 간청합니다
식사 역시 부부와 인연이 있는 ‘미미부엌’이 맡았다. 식사가 준비되던 공양간 앞에는 ‘저희의 은인과도 같은 식사 팀에게 다정한 인사로 잔치의 빛이 되어주시길 간청합니다. 인사를 나눠주시거나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어 있었다. 곳곳에 빠짐없이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쏟았는지 느껴졌다.
승현 “지나고 보니 모든 부분에 다 ‘이거 하기 너무 잘했어.’, ‘그 분으로 하길 너무 잘했어.’ 할 만큼 고민했던 보람이 있고, 만족스러워요. 섭외 한 명 한 명 되게 신경 썼고, 그렇게 일을 부탁드리는 분들은 웬만하면 저희가 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어요. 단순히 일로써 부탁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느낌을 전하기 위해서 좀 정성을 들였던 것 같아요. 하객들 초대할 때도요.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는 잔치인데, 여기에 꼭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어요.”
열광의 혼인잔치
2부는 공연으로 꽉 채웠다. 역시 지리산 사람들의 공연이었다. 버들과 승현도 여러 번 무대에 등장했다. 우쿨렐레 연주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승현은 재즈트리오와 콜라보 해 힙합 무대를 선보였다. 어떻게 여태 이걸 안 보여줬을까 싶을 만큼 실력이 수준급이라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스탠딩 콘서트장이 됐다.
승현 “그 전날 합주 한 번 맞춰보고, 바로 그 무대에 선 거예요. 연주하는 사람도 그렇고, 같이 무대한 둔치와 행자도 그렇고, 다들 프로잖아요. 제가 어떻게 해도 맞춰주실 분들이라서, 저는 제 것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혼자서 소밥 주는 알바할 때 이어폰 꽂고 연습하고 그랬어요.”
분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산내놀이단의 풍물 장단에 모두 손에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했다. 신랑도 신부도 하객 속에 섞여 기진맥진할 때까지 한바탕 신나게 놀고는 열광의 혼인잔치가 끝났다.

열광의 혼인잔치 (버들, 승현 제공)
이들에게 결혼식이란?
이들은 처음 생각보다 성대해진 이 잔치를 ‘욕망의 혼인잔치’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게 그들이 말한 ‘욕망’이었다면, 얼마든지 부려도 되지 않을까. 꿈꾸는 삶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욕망, 아무것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은 정성에 대한 욕망, 모두를 빛내고 싶은 욕망, 받은 사랑을 몇 배로 돌려주고 싶은 보답의 욕망. 그런 욕망 밖에는 찾을 수 없었다.
결혼식에서 가장 공들인게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 관계요.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하는 거요.” 고민없이 턱 나온 이 대답이 오랫동안 머리에 울렸다. 그 화려한 욕망의 혼인잔치가 어떻게 맑은 울림만을 주었는지 알 것 같다.
승현 “5월 18일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이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도움을 청한 것부터, 끝나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까지요. 이 ‘결혼식’이라는 과정이 저희한테는 큰 의미가 됐어요. 떠났던 산내와 다시 연결되는 의미도 있고, 시작했던 실상사에서 새출발하는 의미도 있고요. 감사한 분들을 초대하고 다시 뵌 것도요.”
두 사람의 내일도 환하게
삶의 터전으로 연고 없는 지리산을 선택하고, 결혼 의례로는 전례 없는 환상의 혼인잔치를 기획한 두 사람. 앞으로는 또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두 사람만의 색으로 그려갈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승현 “다음 목표는 집을 구해보는 거예요. 아직 지향하는 집의 형태가 정해진 건 아니고요. 헌 집을 구해서 수리한 친구도 만나보고, 계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아요.”
버들 “잔치를 준비하느라 실상사에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했어요. ‘여긴 정말 오래된 터인데, 우리는 찰나의 순간에 잠깐 왔다 가는 거구나.’ 싶었어요. 우리 인생에는 굉장히 큰 순간이지만 잠시 빌려 쓰는 것뿐이니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겠다고요. 지리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엔 ‘산’이 좀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때로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참 많구나.’하고 생각하게 돼요.”
승현 “지리산 사람들이 좋아서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가진 개성이나 그들만의 우주 같은 것들을 만나면서 제가 많이 변해가고 힘을 얻었어요. 저를 변화해 준 만큼 저도 여기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삶과 사랑을 대하는 승현의 단단함과 버들의 섬세하고 겸손한 태도, 그 시너지가 바로 두 사람이 가진 강력한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 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주변을 가만히 밝힌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두 사람 덕분에 이 찰나 동안 지리산이 얼마나 골고루 빛나고 있는지. 정성과 환대, 연결과 감사가 깃든 잔치로 보여준 진심, 그리고 그 맑고 환한 사랑이 모두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경내를 물들인 농악단과 하객들의 강강수월래 (버들, 승현 제공)
글쓴이 :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은혜 갚은 혼인 잔치 : 버들과 승현이 환대하는 법
진행 / 넉넉
글 / 푸른
** 인터뷰 일시 : 2025년 6월 9일 오후 1시
올해로 10년 차 연인, 버들과 승현은 이제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의 소란하지 않은 다정함과 담백한 미소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한 덩어리가 아닌, 차곡차곡 공들여 쌓은 겹겹의 층이라는 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않고, 매 순간의 서로를 소중히 바라봐주려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 사람이 지리산에 온 이야기부터 들어야겠다.
꿈에 그린 사람
2015년, 승현은 시골 민박 관련 스타트업에서 청년들을 모아 시골을 여행하는 컨셉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번외 프로그램으로 수원 화성 밤 산책을 하던 날, 참가자로 온 버들을 처음 만났다. 버들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버들 “승현 회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저랑 감성이 잘 맞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집은 외박이 안 돼서 참여를 못 했어요. 그러다 한 번은 밤 산책을 한다길래 참여했는데, 진행자이던 승현이 너무 화사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수원 화성의 노을이 비치면서 ‘웃는 게 되게 예쁘다’ 생각했어요. 그 후에 부모님께 우겨서 하동 1박 2일 프로그램까지 간 거예요.”
하동에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얘기할수록 닮은 부분이 많았다. 버들은 나름대로 승현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다. ‘너 마음에 든다구! 어서 고백해!’
승현 “그때는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막 지나올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연애해도 될지 확신이 너무 없었어요.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버들이 나온 거죠. 버들이랑 언덕에서 손잡고 놀았어요. 그래서 ‘아 이런 꿈을 꿀 정도면 그냥 만나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죠.”
광교 호수공원에서 승현의 고백으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도시에서 각자 막막함과 불안을 느끼던 두 사람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공통된 바람을 발견했다. 번아웃 상태였던 승현은 반복되는 과로와 회의감 속에서, 시골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여유 있는 삶을 떠올렸다. 버들은 동물권에서 채식으로, 채식에서 농사로 점점 관심이 넓혀졌고, 자연스럽게 시골로 마음이 기울었다. 막연했던 두 사람의 바람은 함께하면서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승현 “일하면서 상품처럼 꾸며진 시골을 팔아야 하는 느낌인 거예요. 내가 겪은 건 그게 아닌데… 그런 것도 있고,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일이 되게 힘들었죠. 월급도 적고, 야근은 야근대로 하고요. 반복되는 과로에 너무 지쳤었고 이래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 꽉꽉 껴서 타면, 진짜 회의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대비되는 두 모습을 보면서 ‘시골이 나한테 더 잘 맞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회사 대표는 사기를 북돋으려 수시로 “5년 뒤의 너를 상상해 봐라.”고 했다. 승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대로 5년이면 자신이 갈려 나갈 것만 같았다. 마침 회사의 방향이 전환되는 시기였고, 승현은 열정을 쏟았던 첫 직장을 나왔다.
승현은 양평의 한 펜션에서 숙식하며 매니저로 일했다. 그 후엔 하동에 인연이 닿아 6개월간 살기도 했다. 감사한 인연들에 기대어 시골살이를 경험할 수 있었지만, 자립과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몸을 다치면서 고향 부산에 잠시 머물렀다.
한 편, 버들은 버들대로 시골로 흘러들고 있었다. 농부 시장 마르쉐에서 만난 농부를 통해 더욱 시골과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맨발로 논에 들어간 그 촉감도 좋고,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얼마나 자연을 좋아하는지 예찬하는 시간도 너무 귀엽고, 그 농부님들이 사는 모습들도 보기 좋은 거예요. 그때 제가 멋있는 사람을 처음 봤던 것 같아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화관을 쓴 신랑 신부 (버들, 승현 제공)
지리산으로
결국 버들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마치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인드라망 공동체에 들어가게 됐다. 부모님의 반대도 설득해 낼 만큼 버들에겐 꽤 큰 결심이 섰다.
버들 “승현이 만나고부터 계속 시골에 관심이 있다는 걸 가족들한테 어필했어요. 사실 이전부터 뻥 치고 나간 적도 많거든요. ‘둘이 가는 게 아니고~ 승현이 출장 가는 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1~2년간 승현이랑 시골 탐방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시골에 대한 제 관심을 가족들이 알게 됐어요. 산내에 아예 온다고 할 때는 엄마 반대가 심하셨어요. 근데 저한테는 이것 밖에 별로 다른 길이 없는 거예요. 여기가 가장 저한테는 빛나는 길이었어요. 가족들이 반대하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제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승현도 같은 해 실상사에 들어왔다. 다친 몸을 회복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공동체에서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긴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드디어 한마을에 살게 됐다. 그것도 꿈에 그리던 시골에서! 이후 두 사람은 청년 인생 학교 과정을 거쳐 친환경 먹거리 매장 ‘느티나무’ 활동가로 일했다.
버들 “저는 여기 와서 마음이 계속 편안했어요. 도시에서는 아무리 일을 찾아도 공장 일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공장 일을 너무 오래 했고, 내가 공장 문화에 맞춰 변해가는 게 느껴지니까 싫었어요. 근데 여기서는 공장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것 외에 다른 건 다 너무 편하니까, 상관없겠더라고요.”
승현 “저도 조건은 똑같거나 더 열악해졌는데, 버들처럼 마음이 편해졌어요. 인식의 전환이 됐거든요.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접하고 배운 것들, 지구나 환경, 우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막연했던 생각이 점점 선명해졌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잡게 됐어요. 그러니까 다른 조건이 좀 불투명해도 좀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서는 내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구나,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서 덜 불안했던 것 같아요.”
살림을 합치다
공동체 숙소, 마을 활동가 숙소에서 머물러오던 두 사람은 2020년 6월, 새집을 구하면서 살림을 합쳤다. ‘공동체’에서 산내라는 ‘마을’로, 삶의 반경이 한 뼘 더 넓어졌다.
버들 “저희가 함께 살게 된 소식을 알렸더니. 마을에서 십시일반으로 집에 필요한 모든 살림을 다 마련해 주신 거예요. 안 쓰던 숟가락이며 쓰레기통, 욕실 의자부터 세탁기, 냉장고까지요. 우리 돈으로 한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다 받은 거예요. 지금까지도 너무 잘 쓰고 있어요.”
승현 “그래서 여기의 삶이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청하면 누군가는 응답을 해주는 곳이구나.’,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채 주고, 보살펴주는구나.’ 이걸 저희가 엄청 크게 느꼈어요. 마을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환대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두 사람은 마을의 크고 작은 도움과 환대에 기대어 점차 지리산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남원시 산내면의 마을절 실상사에서 열린 혼인 잔치 (버들, 승현 제공)
우리 결혼할까?
어느덧 지리산에서도 한 해, 두 해 흐르고 귀촌 8년 차. 두 사람의 관계도 서서히 새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산내에서 아영으로 또 한 번 새 둥지를 틀고, 삶과 일도 한소끔 안정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들은 자연스레 ‘결혼’이라는 길로 들어섰다.
버들 “서로에게 원하는 걸 듣고, 자기가 가진 성격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여러 번 겪었어요. 그런 부딪힘과 갈등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히려 결혼을 다짐하게 됐어요. 우리에게 앞으로 비슷한 일이 오면 또 울고불고하겠지만, 서로의 마음을 금방 말할 수 있는 관계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 앞에 주인공 인형처럼 서 있는 결혼식은 절대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버들의 부모님은 친척들을 꼭 초대해야 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버들 “처음에는 둘만의 세레머니로 등산을 한다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방식도 생각했어요.”
승현 “근데 양가 부모님들은 저희가 오래 만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으니 얼마나 기다리셨겠어요. 거의 반 포기 상태였는데, 상견례를 하자고 하니까 눈이 번쩍 뜨이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서히 각자의 욕망이 드러났죠.”
하객 인원을 추려보고, 여기저기 최소한의 예식을 올릴 만한 공간을 떠올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도 초대하고 싶은 사람 다 초대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우리만의 의미를 담은 감사제
승현은 초대 명단을 적다가 270명이라는 숫자에 놀랐다. “이 인원을 감당할 장소는 실상사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장소가 정해지고,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구체화해 나갔다. “저희의 첫 마음은 결혼식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기 때문에, 이왕 하게 된 결혼식을 잘 해내려면, 우리만의 의미를 찾아서 즐겁게 해야 했어요. 그래서 ‘감사제’라는 의미를 떠올린 거예요.”
거기에 버들이 ‘혼인잔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동안 지리산에서 받았던 사랑과 환대를, 잔치를 통해 보답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결혼식’ 대신 ‘혼인잔치’, 단어 하나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두 사람만의 방식으로 정성 들여 준비했다.
모두가 빛나는 결혼식
실제로 초대장엔 이런 문구도 있었다. ‘여러분들이 행사의 장식이기에,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분들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착장으로 부탁드립니다. 신랑 신부보다 빛나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편안한 복장도 괜찮고요.’
이런 혼인잔치가 가능했던 건, 그들과 한마음으로 도운 친구와 이웃들 덕분이다. 촬영, 음악, 음식, 공연, 공간 세팅, 장식 그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의 손길로 채워졌다.
버들 “충만했어요. 의자나 천막 같은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잔치를 채워주고 있다는 게 되게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요. 저희끼리 부딪치다가도 주변에서 ‘싸우는 게 당연해’하시면 한시름 풀어지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혼식은 스님의 축사, 동네책방지기들의 사회, 마을 예술인들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버들, 승현 제공)
2025년 5월 18일, 지리산 실상사 약사전 앞
두 사람의 혼인잔치는 두 사람이 지리산살이를 시작했던 실상사에서 열렸다. 실상사에서 약 13년 만에 열린 결혼식이다. 사찰의 고요함과 엄숙함, 잔칫날의 설렘과 기쁨이 어우러져 색다른 공기가 흘렀다.
신부 버들은 아침 법석에 참석하며 마음을 가다듬어서인지, 분주한 기색도 없이 편안한 얼굴로 하객을 맞았다. 신랑 승현은 계속된 사진 촬영에 입꼬리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무렴 좋았다. 하늘색 한복에 화관을 쓴 두 사람의 모습은 잊을 수 없게 아름다웠다.
함께 만든 눈부신 장면들
축의와 답례 부스는 각 가정의 남자 형제들이 맡는 대신, 지리산 여성 동료 누리와 자유가 지켰다. 축의봉투마저 부부가 이면지를 하나하나 접어 준비해 두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대나무 아치와 버들의 어머니가 직접 장식한 꽃들로 자연스럽게 무대가 꾸며졌고, 한쪽에는 커피 트럭과 다회용 컵 부스까지 있었다. 하객들은 의자에 앉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고, 돗자리를 펼쳐 앉기도 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뛰어놀고, 여기저기를 가로질러 다녔다.
사회는 함양 독립서점 <오후공책>지기인 사사와 갱구가 맡았다. 나풀나풀 편안한 듯 또랑또랑 쏙쏙 들리는 목소리, 정중하면서도 다정한 말투. 찰떡같은 섭외였다.
“가족행진이 있겠습니다.” 사회자 멘트와 함께 살래 재즈트리오의 연주가 시작됐다. 대나무로 지어진 ‘생명평화기도소’에서 출발해 형제자매와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 마지막으로 신부 버들과 신랑 승현까지 온 가족이 차례로 나와 손을 흔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입장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객들을 바라보고 나란히 섰다. 양가 가족 대표가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고 직접 인사를 전했다. “(부산 억양으로)앞으로도 잘 부탁드리며, 지리산 동료들과 행복만 깃들기를 바랍니다.”
순서 하나하나, 역할 하나하나마다 눈부신 기획과 섭외에 감탄하고 있을 때, 또 한 번 엄청난 사람을 소개했다. 버들의 최애 가수, 최고은이었다. 가수 최고은은 <사랑축가>를 불렀다. 2절은 버들도 함께 불렀다. ‘시간은 선물처럼 우리 둘을 이어주네. 모든 게 익숙해지고, 가장 친한 친구 되고, 부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갈 둘의 이야기’ 떨리는 목소리에 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버들 “구구절절 되게 주접을 떨면서 엄청 장문의 편지를 장문의 메일을 썼어요. 여기가 얼마나 멋있고 멋있는 곳인지 막 썼어요. 메일이 누락됐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 달 뒤에 고은 님이 답장을 주셨어요. 리허설도 해보자고 하시고요. 그래서 <사랑축가>로 노래도 정하고, 서울에서 만나서 같이 연습도 했어요. 연습할 때 진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프로듀서님도 계시고, 보컬 코칭도 해주셨어요.”
최애 가수와 함께 잊지 못할 축가 무대를 남기고, 신부 버들과 신랑 승현이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면서 1부 혼인식이 끝났다.
버들의 최애가수와 함께한 축가 무대 (버들, 승현 제공)
잔치의 빛이 되어주시길 간청합니다
식사 역시 부부와 인연이 있는 ‘미미부엌’이 맡았다. 식사가 준비되던 공양간 앞에는 ‘저희의 은인과도 같은 식사 팀에게 다정한 인사로 잔치의 빛이 되어주시길 간청합니다. 인사를 나눠주시거나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어 있었다. 곳곳에 빠짐없이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쏟았는지 느껴졌다.
승현 “지나고 보니 모든 부분에 다 ‘이거 하기 너무 잘했어.’, ‘그 분으로 하길 너무 잘했어.’ 할 만큼 고민했던 보람이 있고, 만족스러워요. 섭외 한 명 한 명 되게 신경 썼고, 그렇게 일을 부탁드리는 분들은 웬만하면 저희가 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어요. 단순히 일로써 부탁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느낌을 전하기 위해서 좀 정성을 들였던 것 같아요. 하객들 초대할 때도요.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는 잔치인데, 여기에 꼭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어요.”
열광의 혼인잔치
2부는 공연으로 꽉 채웠다. 역시 지리산 사람들의 공연이었다. 버들과 승현도 여러 번 무대에 등장했다. 우쿨렐레 연주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승현은 재즈트리오와 콜라보 해 힙합 무대를 선보였다. 어떻게 여태 이걸 안 보여줬을까 싶을 만큼 실력이 수준급이라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스탠딩 콘서트장이 됐다.
승현 “그 전날 합주 한 번 맞춰보고, 바로 그 무대에 선 거예요. 연주하는 사람도 그렇고, 같이 무대한 둔치와 행자도 그렇고, 다들 프로잖아요. 제가 어떻게 해도 맞춰주실 분들이라서, 저는 제 것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혼자서 소밥 주는 알바할 때 이어폰 꽂고 연습하고 그랬어요.”
분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산내놀이단의 풍물 장단에 모두 손에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했다. 신랑도 신부도 하객 속에 섞여 기진맥진할 때까지 한바탕 신나게 놀고는 열광의 혼인잔치가 끝났다.
열광의 혼인잔치 (버들, 승현 제공)
이들에게 결혼식이란?
이들은 처음 생각보다 성대해진 이 잔치를 ‘욕망의 혼인잔치’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게 그들이 말한 ‘욕망’이었다면, 얼마든지 부려도 되지 않을까. 꿈꾸는 삶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욕망, 아무것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은 정성에 대한 욕망, 모두를 빛내고 싶은 욕망, 받은 사랑을 몇 배로 돌려주고 싶은 보답의 욕망. 그런 욕망 밖에는 찾을 수 없었다.
결혼식에서 가장 공들인게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 관계요. 그리고 최대한 즐겁게 하는 거요.” 고민없이 턱 나온 이 대답이 오랫동안 머리에 울렸다. 그 화려한 욕망의 혼인잔치가 어떻게 맑은 울림만을 주었는지 알 것 같다.
승현 “5월 18일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이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도움을 청한 것부터, 끝나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까지요. 이 ‘결혼식’이라는 과정이 저희한테는 큰 의미가 됐어요. 떠났던 산내와 다시 연결되는 의미도 있고, 시작했던 실상사에서 새출발하는 의미도 있고요. 감사한 분들을 초대하고 다시 뵌 것도요.”
두 사람의 내일도 환하게
삶의 터전으로 연고 없는 지리산을 선택하고, 결혼 의례로는 전례 없는 환상의 혼인잔치를 기획한 두 사람. 앞으로는 또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두 사람만의 색으로 그려갈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승현 “다음 목표는 집을 구해보는 거예요. 아직 지향하는 집의 형태가 정해진 건 아니고요. 헌 집을 구해서 수리한 친구도 만나보고, 계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아요.”
버들 “잔치를 준비하느라 실상사에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했어요. ‘여긴 정말 오래된 터인데, 우리는 찰나의 순간에 잠깐 왔다 가는 거구나.’ 싶었어요. 우리 인생에는 굉장히 큰 순간이지만 잠시 빌려 쓰는 것뿐이니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겠다고요. 지리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엔 ‘산’이 좀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때로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참 많구나.’하고 생각하게 돼요.”
승현 “지리산 사람들이 좋아서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가진 개성이나 그들만의 우주 같은 것들을 만나면서 제가 많이 변해가고 힘을 얻었어요. 저를 변화해 준 만큼 저도 여기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삶과 사랑을 대하는 승현의 단단함과 버들의 섬세하고 겸손한 태도, 그 시너지가 바로 두 사람이 가진 강력한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 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주변을 가만히 밝힌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두 사람 덕분에 이 찰나 동안 지리산이 얼마나 골고루 빛나고 있는지. 정성과 환대, 연결과 감사가 깃든 잔치로 보여준 진심, 그리고 그 맑고 환한 사랑이 모두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경내를 물들인 농악단과 하객들의 강강수월래 (버들, 승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