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사업[시골언니들의 땡땡땡땡 상담소/참여자후기] 서로 닮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응원이 된다는 건 - 혜빈 (옥천)

2023-10-23


서로 닮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응원이 된다는 건

-옥천에서 온 혜빈이 남기는 기록



굽이치는 지리산을 따라 난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내릴 때가 됐음을 알린다. 오래도록 지리산자락에 터를 이루고 지내온 마을, 남원시 산내면이다. 지리산 한편을 차지한 공간답게 푸릇한 앞뜰과 큰 창이 인상적인 지리산 작은변화커뮤니티공간 ‘들썩’은 쾌청한 가을하늘을 오롯이 담아내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산내면 산책 중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산내면으로의 초대장


지난여름의 끝자락, 지리산포럼 취재로 찾았던 들썩 앞마당에서 함께 온 동료에게 말했다. “옥천에 돌아가면 지리산의 이 풍경들이 그리울 것 같아요.” 온종일 진행되는 세션마다 녹취 남기랴 사진 찍으랴 기운이 쪽 빠지는 일정이었지만, 막상 끝을 앞두니 아름다운 지리산이 이제야 눈에 밟힌 탓이었다. 한껏 감상에 젖어 보려는데 곁의 동료가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산통을 깼다. “또 오면 되잖아요?”


‘그리울 만큼 좋다’는 마음을 왜 몰라주냐며 서운함을 토로하게 한 그 말이 이번 여정의 복선이 됐다. 옥천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골언니들의 땡땡땡땡 상담소(이하 시골언니 상담소)’ 초대장을 받은 것이다. 옥천군민으로 지낸 지 이제 반년, 스스로를 ‘시골언니’라 부르기엔 아직 짧은 시간이었던지라 ‘시골언니 상담소’로의 초청이 수신인을 잘못 찾은 편지 같았다. ‘거절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시골언니와의 만남에서 내 지역살이 속 고민의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다시 지리산으로 향했다.




우리만의 대화법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참여한 자리지만, 막상 모르는 사람 수십과 함께 하려니 자연히 몸이 굳었다. 게다가 대부분 지역살이 선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긴장 가득한 몸을 깨운 것은 은진과 함께 공동 진행을 맡은 먼지가 알려준 박수였다.





 회은 언니 아지트 탐방 중 회은 언니의 짝꿍이 홍시를 따다 선물해주셨다. 조금 떫어도 맛있던 시월홍시.



나와 옆 사람의 어깨를 톡톡 치고, 옆으로 앞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손과 몸에 열이 올랐다. 뜨거워진 열기를 따라 몸 곳곳을 채우던 긴장이 빠져나가고, 그렇게 조금은 흐물흐물해진 몸으로 우리는 가을바람과 코스모스가 되어, 마을 절과 산내 언니들의 아지트를 걸으며, 각자 지역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본격적인 일정 시작 전 서로의 언어를 모아 정한 약속문 첫 조항인 “새로운 인연 3명 이상 만들어 가요”의 충실한 이행자들이 만들어 낸 풍경이었다.


2박3일 함께하며 발견한 재미난 대화의 규칙 중 하나는 혼자 앉아있든, 둘셋이 모여 있든 누군가 옆에 앉으면 대화에 자연스레 합류한다는 것이다. 이미 대화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라면, 들썩에서의 2박 3일간 동안만은 예외. 서로를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재미난 규칙이 아니었나 싶다. 이 덕분에 불필요한 체면치레를 내려놓고 서로의 고민과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시골언니들의 인사이드 아웃, 우리가 말하는 시골살이의 기쁨과 슬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채로운 모양의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모였지만, ‘여성, 시골살이, 삶의 전환’이라는 키워드에 공감하는 이들이라 쿵 하면 자연히 짝 소리가 터져 나오는 공감대가 대화 내내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잠시 눈 돌린 새 부쩍 자라는 풀과의 사투, 치맥은 상상도 못하는 거리적 제약, 일과 생활을 잘 꾸려 나가고픈 고민, 그리고 지역살이의 숱한 불편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그곳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그랬다.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들


가을날 아침 뱀사골에서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독서라니, 너무 좋잖아…!



프로그램 이튿날 아침 뱀사골 계곡에 누워 책을 읽고 산새를 감상하다 들썩으로 돌아오는 길. “옥천 풍경도 예쁜데, 지리산 있다 가면 옥천 풍경이 아쉬울 것 같다”는 내 말에 옆자리의 현숙 님이 운을 뗐다. “일본 전동드릴은 내구성과 성능으로 아주 유명해요. 반면 한국 브랜드인 아이삭은 그 정도의 성능을 담아내진 못해요. 그런데도 아이삭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죠? 무게나 가격 등 아이삭만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아이삭이 일본 전동드릴과 같은 성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만의 가치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지 않겠어요?”


시골언니 상담소에서 참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만났다. 내가 어릴 적 뛰어다니던 동네를 기록하고 새 일을 만드는 시골언니와 지역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게 지역살이 팁이라며 시골언니 상담소 일정이 끝나면 노래를 부르러 간다는 시골언니, 그리고 산을 가진 동네이웃에게 장작을 받아 3일에 한 번 집 구들장을 데운다는 시골언니까지.


한국 전동드릴이 일본만큼의 성능을 지니지 못했다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지 않듯, 우리 지역의 자연경관, 교통, 문화시설 따위가 어느 지역보다 못하다고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시골언니 상담소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와 삶을 통해 그 각기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 또한 각자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는걸, 옥천살이의 방향을 고민하던 내 걱정도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걸 배웠다.



산내를 떠나, 다시 옥천으로


 2박 3일 동고동락한 시골언니들의 이름들



시골언니 상담소의 마지막 시간, 회고를 나누기 위해 원을 만들어 모였다. 동그랗게 모인 얼굴을 찬찬히 돌아보니 첫날의 낯선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아는 얼굴들 뿐이다. 한데 모인 얼굴이 새삼스레 반갑고 애틋하다. ‘내가 시골언니라고?’하는 마음으로 찾은 이곳에서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그리고 나와 아주 다른 선택으로 삶을 일궈온 시골언니를 만나며 혜빈다운 옥천살이를 해보자, 다짐했다. 내가 이들을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듯, 누군가 나를 보며 용기 내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시골언니들의 땡땡땡땡 상담소> 특설 페이지 바로가기 (클릭)

개요 및 일정, 참가자 프로필, 현장 사진 등 공개된 모든 정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