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빈둥’대다. ‘꿈틀’대다. – 함양군, 카페 빈둥

2014-04-10


#스케치 하나

모월 모일 금요일/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시작되는 <빈둥시네마>. 상영작은 불멸의 고전 E.T!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환호성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초등학생 15명, 이에 뒤질세라 음악과 함께 신바람 난 어른들 서너 명, 자전거가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는 함께 날고, 엘리엇과 E.T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카페는 눈물바다.

 

#스케치 둘

모월 모일 일요일/<빈둥>은 문을 열지 않지만, 문을 연다. 이름 하여 오픈 마켓<빈둥은 장날>. 직접 만든 오미자효소며 고등학생의 수제 머핀과 중학생이 만든 천연비누까지. 함양 인근에서 날라 온 각종 수제 잼과 손으로 만든 팔찌, 동글동글 뻥튀기가 장터를 장식한다. 인심 좋은 주인장은 장사는 뒷전이고 주방까지 오픈하며 흥정을 붙인다.

 


<빈둥>, 너 누구냐.

 


‘<빈둥>은 함양초등학교 인근에 자리한 카페다’…라고 하기엔 뭔가 심상치 않은 카페다. ‘누군가 미리 내신 아메리카노 한 잔, 카페라떼 한 잔’이라 쓰인 알림판이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반긴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 손님이 커피 값을 미리 지불해 놓으면 노숙자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는 나눔 운동이다. 실내 한쪽 벽면을 차지한 기하학적 책장이 북카페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맞은 편 벽엔 공정무역포스터가 떡하니 붙어있다.

 

그렇다. <빈둥>에서 마시는 커피는 착,한,커,피,인 것이다! 포스터 주위로 손님들이 직접 그린 얼굴들이 그야말로 덕지덕지 붙어있다. 테이블 한쪽에서는 소년(인지 청년인지)의 기타 연주가 한창이다. 정말이지 손님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로운 연주다. 얼마 후에 이곳에서 열릴 음악회의 연주자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 모든 번잡하고도 질서정연한 분위기를 떡하니 붙들어 매어 두고 있는 <빈둥>.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완충지대에서 공간을 꿈꾸다.

 

카페 <빈둥>의 주인장인 김찬두(45), 이은진(39)씨는 2012년 도시 생활을 접고 내려와 함양에 둥지를 틀었다. 부부가 도시 생활을 정리한 이유는 여느 귀농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았고 먹거리를 고민해야 했고 아이가 자라날 환경 역시 걱정 거리였다. 도시 생활과 미래사이의 연결고리가 불투명했다. 자연스레 한 뼘이나마 내 손으로 일궈낼 땅이 욕심났다. 거기에 ‘탈(脫)서울’이라는 욕망이 동승했다.

 

그러나 귀농에 대한 부담감이 적잖았기에 농부로서의 삶을 온전히 받아 안을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도시의 삶과 탈 도시의 삶을 기웃거리는 사이 큰아이의 취학시기가 다가왔다. 부부는 작은 규모의 학교를 원했고 제주도까지 내려가 보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하우스 쉐어를 하며 가족처럼 지내던 함양의 지인을 떠올렸다. 지인 덕분에 둘레길도 구경하고 천년의 숲 상림을 돌아보며 함양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부부는 생각했다. 함양이라면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함양은 귀농의 부담감과 탈 서울의 욕망을 완충시킬 수 있는 지역이었다.


 

"늘 어떤 공간을 꿈꿔왔어요. 여행자나 지인들을 위해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죠. 지역사람들과 청소년이 모여 북적거릴 수 있는 공간도 원했구요. 막연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카페를 겸한 공간을 생각했습니다."

 


카페 빈둥의 운영자 김찬두님, 이은진님



문화기획자였던 전직 탓인지 찬두씨는 공연 및 전시 공간, 특히 강좌와 워크숍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30년간 자전거포를 운영한 할아버님께 듣는 자전거 강좌> 같은, 지역인이 강사가 되고 또 지역인이 수강생이 되는 강좌를 꿈꾼다. 아내인 은진씨는 오랫동안 교육관련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대안교육센터에서도 근무했다. ‘아,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튼 것도 어쩌면, 대안교육센터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작업을 지켜보았던 그 시기였는지 모른다.


찬두씨 역시 그랬다. 문화기획자 역할을 통해 거꾸로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행위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함양군청의 공무원이 찬두씨의 경력을 전해 듣고 <빈둥>에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공무원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걸 이런 조그마한 데서 합니까?” 찬두씨의 대답은 이랬다. “그런 걸 이런 데서 해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내려왔는데요.”

 

부부는 얼마 전 함양중학교 근처에 새로 집을 지었다. 집은 가족의 살림집이기도 하지만 <빈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꿈꿀 수 있는 두 번째 공간이기도 하다. 2층은 오픈 도서관이나 게스트하우스처럼 열린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닫힌 사고와 닫힌 공간은 싫어서요.” 찬두씨의 말이다.

 


빈둥대다 꿈틀대다

 

카페 <빈둥>은 실은, <빈둥생활연구소>의 부설기관이다. 빈둥생활연구소는 ‘빈둥대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유유자적한 몸과 마음(을 연습해 나가는)/창조적 빈둥의 산실(을 꿈꾸는)빈둥(대는)생활연구소’이다. ‘슬렁슬렁, 빈둥빈둥, 유유자적한 삶을 함께 연구하고 나누어 미래, 돈, 효율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세상에 똥침을 가하고자’하는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핫’한 연구소이다. ‘빈둥 철학’을 꿈꾸었던 그들에게 문을 연지 2년여가 지난 지금 <빈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활력인 것 같아요. <빈둥>에서 혹은 <빈둥>을 통해서 이 지역에서 없었거나 덜했던 것을 경험하기를, 그래서 활력이 생기기를 바랐죠. 일종의 활력프로젝트라고나 할까요."

 

<빈둥>은 친구나 애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장소이기도 하지만(기실, 은밀함을 원하는 이들에겐 효율성이 떨어지는 곳이기는 하다) 낯선 이들이 만나 무엇인가를 도모하고 나누며 변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고등학생과 원어민이 <빈둥>에서 만나 서로의 모국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고객인 중학생이 빈둥시네마의 홍보 포스터를 자청해서 그려놓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변화가 생기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는가 하면 이제야 살맛이 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해요. 연결의 묘미에서 느껴지는 보람이랄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친해지고 이해하게 되고 변화하는 것, 그런 것을 지켜보는 보람이 있어요."


은진씨의 이야기다. 보람이 있으니 고민도 있다. 카페 운영과 더불어 크고 작은 행사의 진행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 오픈 마켓을 진행하면서는 적극적 스태프 혹은 또 다른 운영자의 필요를 느끼기도 했다.

 

"이를테면 오픈마켓을 열 때, 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더라구요. 마켓에 적당한 물건을 만들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를 끌어들이고 연결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앞으로는 운영자가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재미를 느끼면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빈둥>은 카페다

 

<빈둥>의 고객층은 다양하다. 귀농자 그룹이 있는가 하면 지역민도 있고 청소년들도 있다. 함양에는 적지 않은 카페와 카페 차원의 휴식 공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빈둥>에서 빈둥대는 걸까. “편안하다고들 하세요. 물론 저는 ‘맛있어서요’라는 말을 더 듣고 싶지만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답하는 은진씨. 빈둥대는 사람들의 중심에는 바로 은진씨가 있다. 은진씨의 아이가 학교에 다니니 자연스레 학부모가 드나든다. 그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아이들도 문턱을 넘나든다. 오픈마켓처럼 공식적인 근무일이 아닐 때에도 사람들은 수시로 은진씨를 찾는다. 단순히 인맥 때문이 아니라 손님들을 대하는 은진씨의 마담으로서의 태도도 한몫을 한다.

 

"작은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관계를 운영하는 기술이랄까 그런 게 필요하더라구요."

 

<빈둥>은 문화공간이기 이전에 카페다. 이것이 정치적인 성향이나 이념에 따라 고객이 걸러지는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빈둥>이 다른 점이다. <빈둥>에는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원한다면 마담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마담이 걸어놓은 포스터 한 장, 운영자가 선정한 영화 한 편에 가랑비에 옷 젖듯 마음이 젖는 것은 결코 주인장의 계산된 의도가 아니라니깐요.)

 

"얼마 전에 둘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커피에, 카페에 더 집중을 하는 게 좋겠다고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소망하기도 하지만 카페는 수익을 올려야 유지가 되는 영업장이잖아요. 그 수익을 통해 문화공간을 꾸려가기도 하구요. 스스로 동력이 생길 때까진 카페에 좀 더 집중하면서 지속가능성을 타진해 보려고 해요."

 


<빈둥>의 주인장은 여전히 꿈을 꾼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빈둥>의 주인 되는 그 날을. 그래서 주인장에게 1년에 두 달의 휴가가 허해지는 그 날을. 그리하여 그 두 달간 주인장이 온전히 빈둥댈 수 있는 그 날을. 카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진씨는 자전거 페달을 밝으며 생각한다. 길이 참 좋구나. 그렇다. 빈둥대다 꿈틀대니 그 길이 어찌 아니 좋을 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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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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