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없는 무시(無始)의 먼 길을 걸어보면 알리라
길이 길을 막는 게 아니라
길이 길을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끝도 없는 무종(無終)의 오랜 길을 걸어보면 알게 되리라
- 이원규, <길을 나서는 시>중에서
2010년 2월에 시작해 1년간 진행된 지리산 만인보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366일 동안 338킬로미터, 850리 지리산 길을 걸었다. 침묵과 함께 걸으며, 함께 걷는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했던 사람들, 그 길에서 꽃잎 한 장, 풀씨 하나 취하지 않고 오히려 가진 것을 내려놓고자 했던 사람들, 운명의 산, 평화의 산, 공동체의 땅 지리산을 걸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던 것일까.
2010년 2월에 시작해 1년간 진행된 지리산 만인보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1990년대에 시작되었던 구례군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2009년 다시 불거졌다. 2009년 5월1일, 환경부가 자연공원 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설치 구간을 현행 2km에서 5km로 늘리는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반대운동을 하던 환경 활동가들 사이에선 자괴감이 싹텄다. 어쩌면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걸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무력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운동 실패로 인한 여파도 컸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개발광풍 속에서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무력했어요. 그래서 구례에 있는 활동가들이라도 무작정 걸어보자고 제안했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고 싶었어요. 혼자라도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지리산만인보를 기획한 구례 윤주옥님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국시모)’ 윤주옥 협력처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왜 혼자 걷냐며, 함께 걷자며 윤처장의 제안에 뜻을 함께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2009년 봄부터 시작된 고민은 여름, 가을의 현장답사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걷기도 하고 차로 오르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기도 하며 다섯 차례에 걸쳐 답사를 했다. 주로 2007년부터 조성된 지리산 둘레길 개통구간이거나 개통 예정구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만인보(萬人步)라 이름 지었다. 고은 시인의 연작 시집이 만인의 족보이자 계보(萬人譜)였다면 이는 만인의 발걸음이 될 터였다.
2010년 2월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된 <지리산 만인보>는 2011년 2월 남원 실상사에서 그 대장정을 끝내기까지 총인원 2400명, 중복해서 다녀 간 이들을 추려내더라도 4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다. 1년 동안, 2주에 한번 씩, 스물 네 차례에 걸쳐 그들은 걸었다. 아이가 있었고 어른이 있었으며 단체의 활동가가 걸었는가 하면 단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들도 그 길을 함께 했다. 깃발을 들고 행렬의 앞과 뒤에서 묵묵히 걷던 이들이 있었고 스물 네 번의 걸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그 한해 <지리산 만인보>가 ‘삶의 목표’였던 참가자도 있었다. 그들은 걸으면서 침묵했고 그 길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을 존중했으며 자연과 조우하여 내 자신이 먼저 낮아지고자 했다.
케이블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시작한 걸음이었으나 <지리산 만인보>는 오히려 케이블카 문제를 포함한 환경운동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만인보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조직운동가의 태도로서, 케이블카 반대운동 역시 조직운동가의 일로써만 접근했을 거예요. 지리산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과 길의 역사인 지리산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뿐만 아니라 ‘국시모’ 외에 다른 환경단체들의 존재 이유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운동의 방법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거죠."
윤주옥 처장은 특히 그 길에 살고 계신,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참 소중하다고 했다. 마을에 들를 때마다 누렸던 이장님의 환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마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자신이 부족하다 싶으면 정통한 분을 모셔오기까지 했다. 그들을 통해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케이블카도 반대하는구나’ 하는 점을 확인했다.
“1년간의 발걸음을 마무리하면서 만인보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만인보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이후 어떻게 엮어낼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막상 뭘 하게 되지는 않았어요. 워낙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참여한 탓에 국시모에서만 뭔가를 도모하는 건 얌체 짓이기도 했구요.”
윤처장이 웃으며 답한다. 실제로 <지리산 만인보>에는 종교계와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인사들이 참여하였고 남원, 산청, 하동, 구례, 함양에 지역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하였다.
2011년 2월, <지리산 만인보>의 행보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도 ‘걷기예찬’, ‘걸어도 걸어도’ 등 국시모 내부의 걷는 모임들은 만인보를 꿈꾸며 여전히 걷고 있다. “만인보를 통해서 지역민들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점이 기쁩니다. 지난 발걸음이 큰 자취로 남지는 못하더라도 이후에 꾸려나갈 일들의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어요.”
남원 산내 등구재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다랑이논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이원규 시인의 <길을 나서는 시>를 읊조리며 시작되었던 만인의 걸음은 한보리씨의 <달팽이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보리씨의 노랫말처럼 그들은 ‘천천히’,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과 ‘눈 맞추려’ 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책 <걷기예찬>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라고.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기 때문에 만인에게 주어진다.’고.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은 그대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만인의 것임을 알고 걷는 그대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2010년 2월에 시작해 1년간 진행된 지리산 만인보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366일 동안 338킬로미터, 850리 지리산 길을 걸었다. 침묵과 함께 걸으며, 함께 걷는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했던 사람들, 그 길에서 꽃잎 한 장, 풀씨 하나 취하지 않고 오히려 가진 것을 내려놓고자 했던 사람들, 운명의 산, 평화의 산, 공동체의 땅 지리산을 걸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던 것일까.
2010년 2월에 시작해 1년간 진행된 지리산 만인보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1990년대에 시작되었던 구례군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2009년 다시 불거졌다. 2009년 5월1일, 환경부가 자연공원 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설치 구간을 현행 2km에서 5km로 늘리는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반대운동을 하던 환경 활동가들 사이에선 자괴감이 싹텄다. 어쩌면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걸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무력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운동 실패로 인한 여파도 컸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개발광풍 속에서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만인보를 기획한 구례 윤주옥님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국시모)’ 윤주옥 협력처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왜 혼자 걷냐며, 함께 걷자며 윤처장의 제안에 뜻을 함께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2009년 봄부터 시작된 고민은 여름, 가을의 현장답사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걷기도 하고 차로 오르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기도 하며 다섯 차례에 걸쳐 답사를 했다. 주로 2007년부터 조성된 지리산 둘레길 개통구간이거나 개통 예정구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만인보(萬人步)라 이름 지었다. 고은 시인의 연작 시집이 만인의 족보이자 계보(萬人譜)였다면 이는 만인의 발걸음이 될 터였다.
2010년 2월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된 <지리산 만인보>는 2011년 2월 남원 실상사에서 그 대장정을 끝내기까지 총인원 2400명, 중복해서 다녀 간 이들을 추려내더라도 4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다. 1년 동안, 2주에 한번 씩, 스물 네 차례에 걸쳐 그들은 걸었다. 아이가 있었고 어른이 있었으며 단체의 활동가가 걸었는가 하면 단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들도 그 길을 함께 했다. 깃발을 들고 행렬의 앞과 뒤에서 묵묵히 걷던 이들이 있었고 스물 네 번의 걸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그 한해 <지리산 만인보>가 ‘삶의 목표’였던 참가자도 있었다. 그들은 걸으면서 침묵했고 그 길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을 존중했으며 자연과 조우하여 내 자신이 먼저 낮아지고자 했다.
케이블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시작한 걸음이었으나 <지리산 만인보>는 오히려 케이블카 문제를 포함한 환경운동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윤주옥 처장은 특히 그 길에 살고 계신,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참 소중하다고 했다. 마을에 들를 때마다 누렸던 이장님의 환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마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자신이 부족하다 싶으면 정통한 분을 모셔오기까지 했다. 그들을 통해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케이블카도 반대하는구나’ 하는 점을 확인했다.
윤처장이 웃으며 답한다. 실제로 <지리산 만인보>에는 종교계와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인사들이 참여하였고 남원, 산청, 하동, 구례, 함양에 지역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하였다.
2011년 2월, <지리산 만인보>의 행보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도 ‘걷기예찬’, ‘걸어도 걸어도’ 등 국시모 내부의 걷는 모임들은 만인보를 꿈꾸며 여전히 걷고 있다. “만인보를 통해서 지역민들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점이 기쁩니다. 지난 발걸음이 큰 자취로 남지는 못하더라도 이후에 꾸려나갈 일들의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어요.”
남원 산내 등구재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다랑이논 (사진출처 : 지리산만인보)
이원규 시인의 <길을 나서는 시>를 읊조리며 시작되었던 만인의 걸음은 한보리씨의 <달팽이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보리씨의 노랫말처럼 그들은 ‘천천히’,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과 ‘눈 맞추려’ 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책 <걷기예찬>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라고.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기 때문에 만인에게 주어진다.’고.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은 그대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만인의 것임을 알고 걷는 그대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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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