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음 활동 소식

자료이토록 발칙한 맨땅 투자기 – 구례 ‘맨 땅에 펀드’

2014-07-10

100명의 사람들이 30만원씩을 내놓았다. 그 이듬해에는 첫 해의 3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같은 돈을 냈다. 그렇게 내놓은 돈으로 그들은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감자를 받고 가끔은 썩은 고구마를 사들인다. 조합도 아니고 커뮤니티도, 자선단체는 더더욱 아닌, 이것은…? 아연실색, 펀드란다. ‘투자 위험등급 1등급’이라는 경고를 서슴지 않는 기획자와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30만원씩을 꼴아 박은 이들의 아슬아슬한 조합, 그들의 이름은 말 그대로 ‘맨땅에 펀드’다.

 


맨땅에 30만원을 투자한 434명의 사람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마을

 


‘맨땅에 펀드’는 7년여의 시간동안 구례, 흔히 오미동이라 불리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온 인터넷 커뮤니티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이 선택한 소통의 도구다. 그리고 그 소통을 위한 수단은 밥상이며 먹을거리다. 비용을 먼저 받고 투자자들에게 생산물을 보낸다는 점에서, 잉여 생산물은 판매를 통해서 운용 기금으로 사용하거나 수익으로 남을 경우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펀드의 운용 방식과 다를 건 없다. 그러나 ‘맨땅에 펀드’의 중심에는 생산물인 농산물 이상의 것이 있다. 펀드 출사표에 의하면 ‘「맨땅에 펀드」는 농산물이 아닌 ‘작은 마을’과‘못난 나무들’ 그리고 ‘이야기와 말씀들’에게 투자하는 바보 같은 펀드’ 이다.

 

‘지리산닷컴’ 안의 ‘맨땅에 펀드’ 게시판을 훑어보니 펀드를 기획한 사람도 그 펀드에 투자한 사람도 서로를 제정신이 아니라며(!) 쑥덕댄다. 게다가 이 펀드의 매니저는 수석 매니저인 ‘대평댁’을 비롯해 지정댁, 남원댁, 최샌, 박샌에 이르기까지 30년에서 50년 경력의 텃밭 운용 전문가들이다. 이토록 요상한 펀드의 기획자들은 1년 동안 7차례에 거쳐 약 21종의 농산물을 투자자에게 보냈다. 3월에 첫 파종한 감자부터 5,6월에 수확한 매실로 담은 매실청이며 쌀과 콩, 밀가루, 국수, 청국장까지. 그러나 투자자들이 회수하는 것은 농산물만이 아니다. 그들은 농산물이 배달되는 사이사이, ‘맨땅에 펀드’ 팀이 제공하는 농사 생중계를 감상할 수 있다.

 

"쇼핑몰이나 꾸러미에서 동전만한 감자를 받거나 썩은 고구마를 보내면 소비자들은 화를 내겠죠. 하지만 과정을 공유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농부가 그 감자를 어떻게 키웠는지, 밭을 어떻게 갈고, 씨를 어떻게 뿌렸는지 함께 지켜보는 거죠. 한창 가물 때, 물을 댈 수 없는 밭에 물 조리개를 들고 헤드랜턴을 쓴 채 500번씩 왔다 갔다 하는 농부들을 지켜 본 사람이라면 그 농부의 땀과 고통 또한 외면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마을이장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지리산닷컴’의 운영자 권산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떼를 쓰듯 투자자들에게 ‘무조건 감수!’를 복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예비 투자자를 대상으로 선착순에 기반을 둔 일종의 자격 심사를 한다. ‘지리산닷컴’은 언제부터 들락거렸는지, ‘맨땅에 펀드’에 투자하는 나름의 의미가 펀드 운영 방식에 부합되는지, 혹시나 ‘맨땅에 펀드’를 유기농 쇼핑몰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등 간략하지만 철저한 투자 자격 심사가 치러진다. 이렇게 모이고 묶이다 보니 장단도 척척 들어맞는다. 마을이장이 구례 인근의 꽃나무 사진을 올리면 그 꽃향기가 못내 그리운 도시 생활자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꽃향기를 보내주세요.”라는 댓글을 올린다. 며칠 후 도시 투자자에게 도착한 것은 감자와 오이와 산마늘과 놀랍게도 동백꽃 한 송이이다. 



사진 : 맨땅에 펀드 투자자가 받은 동백꽃, 지리산닷컴 홈페이지에 “우리집에 온 동백꽃”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있다.
(사진출처 : http://www.jirisan.com)



 

가장 강력한 소통의 도구, 밥상

 

“감자를 수확한 농부가 20킬로그램 한 상자를 2만원에 내놓겠다고 하면 그 값보다 더 쳐줍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해요. ‘저 농부가 얼마가 고생했는지 아시죠? (그 노동에 비해 감자 값은) 너무 싸잖아요.’ 그럼 다들 수긍합니다. 탈곡 전의 밀을 길게 잘라 보내드린 일도 있어요. 일 년 내내 드라이플라워처럼 책상 앞에 걸어놓으셨다는 분도 계셨죠. 아마도 투자자 중에 30만원이라는 돈을 농산물로 회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은 안 계실 거예요. 그분들이 그 돈으로 소비하는 건 아마도 ‘스토리’겠죠.”

 


맨땅에 펀드 이야기를 담은 책



2012년 출범한 ‘맨땅에 펀드’는 ‘농사도 모르는 바보들과 아직 농사짓는 바보들의 좌충우돌’로 요약되었다. 평균 3;1의 경쟁률을 뚫고 펀드 투자에 ‘응시’한 투자자들에 의해 첫 번째 펀드는 완판 되었다. 이듬해는 세배의 투자자들을 모집하였고 그 또한 거침없이 완판 되었다. 그 해 그들의 헤드라인은 ‘3인의 검객과 7인의 농부’였다. 첫해에는 오미동 인근의 농부가 생산에 참여했고 2013년에는 구례전역으로 범위를 넓혔다. ‘지리산닷컴’의 문을 연 것도, ‘맨땅에 펀드’에서 펀딩을 시작한 것도 모두 장난처럼 벌인 일이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는 일찌감치 없었다. ‘지리산닷컴’이라는 도메인을 사놓은 선배가 있었고 선배의 꼬드김과 그즈음 권 산씨가 가졌던 도시 생활에 대한 의문이 타이밍상 일치했다.

 

"의식적으로 귀농이니 귀촌이니 하는 말들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냥 ‘이사 왔다’고 합니다. 부산이나 서울에서 했던 일들을 여기 구례에서도 하고 있으니까요. 웹 디자인을 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은 시골에 살고 있으니 시골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 하죠. 걸어 나가기만 하면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어르신들 말씀엔 복선이 없어요. 그냥 말 그대로죠. 그런 화법이 저한테 맞습니다."

 


시골 마을 이야기가 도시생활자에게 스토리로

 

‘맨땅에 펀드’의 이른바 판매조직인 ‘지리산닷컴’은 현재 안식년 상태다. 단체는 유지하되 활동가들이 안식년을 취하는 게 보통인데 사이트 자체에게 안식년을 허하고 있으니 이 발상 또한 기발하다. 그래도 작년에 이미 수매를 약속한 농산물이 있어 아예 문을 닫아 걸 수는 없는 형편이다. 9년 전 우연히 시작한 밀가루 장사가 5년 째 계속되고 있다. 밀가루뿐만이 아니다. 농산물의 재배 면적은 넓어지고 일의 규모도 커졌다. 가내수공업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 큰맘 먹고 셔터를 내렸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의 ‘지리산닷컴’과 ‘맨땅에 펀드’도 전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식년이니만큼 전개상황은 불투명하지만 온오프라인 주말 장터에 관한 계획은 내치지 못하고 있다. 이름 하여 <젠zen·장場>! ‘생각하는 장터!’ 인 것이다 크로아티아 일요시장의 상징이 빨간 파라솔이라면 <젠zen·장場>에는 오방색의 휘장이 펄럭일 가능성이 크다. ‘맨땅의 펀드’가 생각하는 주말시장은 공판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다. 정말이지 생각하는 장터다.

 




"펀드는 몇몇 농부를 스타를 만들 수 있고, 그 농부에게 고마운 대상이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농부의 기본적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관행농을 하면서 공판장에 납품하는 농부들 말씀을 듣고 많이 배워요. 사실 유기농 직거래라는 게 참 귀찮은 일이거든요. 일일이 전화 응대해야지, 개별 포장해야지, 그러고는 일주일 쯤 지나면 감감 무소식이고. 그래서 가격이 들쑥날쑥해도 한꺼번에 수매해주는 공판장을 좋아하세요. 고정적인 수입이 되니까요. 결국 물류시스템이 전환되어야죠. 지속적으로 지역 농산물을 내다 팔 수 있는 자체 공판장이 그래서 필요해요."

 


지역의 자체 공판장을 꿈꾸며

 

‘지리산닷컴’의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 장난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라지만 ‘맨땅에 펀드’는 재미로, 가볍게, 끝날 수는 없을 것 같다. 7년, 2,3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마을이장인 권산씨 혼자 써내려간 글만 1600편에 이른다. 지리산에서 보낸 편지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적시고 시골 마을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되새기게 하였다. 그들은 소통의 밥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함께 웃고 울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밥상은 먹을거리가 오가는 밥상에서 희로애락이 오고가는 삶의 밥상이 되었다. 글쓰기와 인터넷으로 장난치기 이외에 별다른 잡기에 능하지 않은, 자거나 TV를 보거나 수다 떠는 것으로 휴식 시간을 보낸다는 권 산씨는 어쩌면 그 꿀맛 같은 잠 속에서 조차 오방색 깃발을 휘날리며 ‘맨땅의 펀드’ 투자자들과 함께 시골 마을을 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꾸는 꿈도 늘 꿈으로 끝나진 않는다. 전염성이 강한 누군가의 꿈은 가끔 모두의 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About The Author

똥폼 (세상똥폼 여든까지! 가끔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행복하다. 백살까지 건강하게 책보며 살고 싶은 철들긴 글러먹은 욕.심.쟁.이)

 


 

<지리산 이음>에서 함양,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지리산권의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리산권의 여러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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